본문 바로가기
독서노트

코스모스 - 칼세이건 (사이언스북스 홍승수 옮김)

by 강대원 2022. 1. 18.

1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코스모스(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 만다.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未知)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당연한 반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류는 영원 무한한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주제에 코스모스의 크기와 나이를 헤아리고자 한다는 것은 인류의 이해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키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 젊고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충만하며 용기 또한 대단해서 '될 성싶은 떡잎'임에 틀림이 없는 특별한 생물 종이다. 인류가 최근 수천 년동안 코스모스에서 자신의 위상과, 코스모스에 관하여 이룩한 발견의 폭과 인식의 깊이는 예상 밖의 놀라움을 인류 자신에게 가져다주었다. 우주 탐험,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은 설렌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진화는 인류로 하여금 삼라만상에 대하여 의문을 품도록 유전자 속에 프로그램을 잘 짜놓았다.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사람에게 기쁨이자 생존의 도구이다.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라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 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류의 미래는 우리가 오늘 코스모스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코스모스를 거대한 바다라고 생각한다면 지구의 표면은 곧 바닷가에 해당한다. '우주라는 바다'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우리가 이 바닷가에 서서 스스로 배워서 알아낸 것이다. 직접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겨우 발가락을 적시는 수준이었다. 아니, 기껏해야 발목을 물에 적셨다고나 할까. 그 물은 시원해서 좋다. 그리고 저 바다는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우리가 바로 이 바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슴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간절하게 품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이러한 갈망이 미지의 신들의 심기를 불편케 할지언정 그것을 불경스럽다고만 탓하지 말자.

 

드디어 기나긴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작고 부서지기 쉬운, 청백색의 세계로 돌아왔다. 우리의 상상력이 아무리 대담하게 비약한다한들 지구를 코스모스라는 광대한 바다와 대등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는 광막한 우주의 미아이며 무수히 많은 세계 중의 하나일 뿐이다. 지구가 우리게게만 의미심장한 곳일지 모르겠지만, 어쩌랴 우리의 보금자리요 우리를 길러준 부모가 지구인 것을, 이곳에 생명이 발생하여 진화했으며, 인류도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지내고 성년으로 자라는 중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류는 코스모스 탐험의 열정을 키웠으며 아무전 보장없이 고통스러운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가이아 이론)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의 크기 측정방법과 이 발견에 의한 용감하고 대담한 선원들이 여러번 대항해를 시도하고는 했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약 600년 동안 인류를 우주의 바다로 이끈 지적 모험을 잉태하고 양육한 곳이다. 

알렉산드라에서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 중의 하나인 파로스라는 거대한 등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제일가는 자랑거리는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과 그 부속 박물관이었다. 박물관(museum)이란 사실 이름을 그대로 옮기면 뮤즈(muse)라고 불리던 아홉 여신의 전공 분야에 각각 바쳐진 연구소였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서 활동한 학자들 중에는 에라토스테네스 이외에도, 별자리의 지도를 작성하고 별의 밝기를 추정한 히파르코스(Hipparachos) 가 있었고, 기하학을 명쾌하게 체계화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로 끙끙거리던 임금에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건낸 유명한 유크리드(Euclid)가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헤론 (Heron)은 톱니바퀴 열차와 증기 기관을 발명하고 로봇에 관한 최초의 책 오토마타(Automate)를 저술했다. 페르가 (Perga)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타원, 포물선, 쌍곡선이 원추곡선임을 밝힌 수학자였다. 

 

   고대인들은 세계가 아주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먼 과거까지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주가 옛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됐음을 알고 있다. 인류는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우주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 점 티끌 위에 살고 있고 그 티끌은 어느 은하의 외진 한 귀퉁이에 틀어 박혀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이제는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 - 적어도 가장 최근에 부활한 우주가 - 약 150~200 억 년 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은 '대폭발' 또는 '빅뱅'이라고 불리는 시점에서부터 계산한 우주의 나이다.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에는 은하도 별도 행성도 없었다. 생명도 문명도 없이, 그저 위황한 불덩이가 우주 공간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대폭발의 혼돈으로부터 이제 막 우리가 깨닫기 시작한 조화의 코스모스로 이어지기까지 우주가 밟아 온 진화의 과정은 물질과 에너지의 멋진 상호 변환이었다. 이 지극히 숭고한 전환의 과정을 엿불 수 있음은 인류사에서 현대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주 어딘가에서 우리보다 지능이 더 높은 생물을 찾을 때까지, 우리 인류야말로 우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2장 우주 생명의 푸가

 

   지상의 모든 생물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같은 유기화학적 원리가 지상의 생물들을 지배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오랜 세월동안 같은 진화의 코드를 통해서 변신해 왔다. 따라서 지구의 생물학은 철저하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구 생물에게는 단 한 가지의 생물학만으로 충분하다. 생물학을 음악에 비유해 볼 때, 지구 생물학은 단성부로, 단일 주제 형식의 음악만을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천 광년 떨어진 저 먼 곳의 생명은 우리에게 어떤 형식의 음악을 들려줄 준비를 해 놓고 있을까 매우 궁금하다. 풀피리 하나로 연주되는 지구 생명의 이 외로운 음악 하나가 우리가 우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일까? 우주 생물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릿 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우주 음악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교차하는 다성부 대위법 양식의 둔주곡을 기대한다.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생명의 탄생 이후 40억 년의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 지구의 생명계는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던 청록색의 조류들이 지배했다. 대략 6억 년 전부터 조류의 독과점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폭발적으로 지구에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캄브리아기 대폭발 (Cambrian Great Explosion)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최초의 어류에서 최초의 척추동물로 빠르게 이어졌다. 바다에서만 살던 실물 중에 차츰 서식지를 육지로 옮기는 식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최초의 곤충이 태어났고 그 후손들이 땅에서 사는 육서 동물들의 선구자가 됐다. 뒤어어 날개 가진 곤충이 양서류와 함께 나타났다. 폐어를 닮은 양서류는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구에 최초의 나무가 등장했고 최초의 파충류가 출현해 공룡으로 진화해 갔다. 그리고 포유류가 지상에 출했다. 그 후 최초의 새외 최초의 꽃이 생겨났다. 공룡이 멸종하고 돌고래와 고래의 조상인 가장 초기의 고래류가 나타났다. 같은 시기에 원숭이, 유인원, 인간의 공동 조상인 영장류가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다. 1,000만 년 전에 인간과 아주 비슷한 생물이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그들이 진화함에 다라 뇌의 크기도 현자하게 커졌다. 그리고 그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겨우 수백만년 전에 최초의 인간이 나타났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생명 현상의 뿌리에는 세포의 화학 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 분자와 유전 설계도를 간직한 핵산이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본질적으로 같은 단백질 분자와 핵산 분자가 모든 동물과 식물에 공통적으로 관여한다는 것이다. 세포 안에 있는 분자 덩어리들은 거의 대부분 단백질이다. 왕성하게 활동 중인 것들이 있는가 하면 대기 중인 것들도 있다. 가장 중요한 단백질은 세포 안에서 화학 반응을 조절하는 효소이다. 효소는 공장의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숙련 노동자와 같아서 자신의 맡은바 기능을 분자 수준에서 수행한다. 

   이제 세포의 핵 속을 들여다보자. 거기에서 우리는 국수 공장의 폭발 현장과 유사한 풍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코일과 가닥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데, 그것들이 DNA 와 RNA 라는 이름의 두 가지 이름의 두 가지 핵산이다. DNA 는 무엇을 해야 할지 업무 수행의 구체적 단계를 알고 있으며, 그 내용을 기술하는 코드를 갖고 이에 따라 지침을 하달한다. RNA는 DNA 가 하달하는 지침들을 받아서 세포의 여기저기로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40억 년에 걸친 진화의 정수로서 세포가 또는 나무가 또는 인간이 생명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의 모든 정보를 자기 안에 담고 있다.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가깝다.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하고,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만 한다. 역사학에 예견론이 없는 것처럼 생물학에도 확립된 예견론이 없다. 이유는 양쪽 모두 같다. 연구 대상들이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은 공통된 교훈을 가르쳐 준다. 그것은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계 생명에 관한 단 하나의 예만 연구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하나가 아무리 미미한 수준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생물학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와 다른 생물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지 않겟는가? 외계 생물에 대한 탐구가 중요하다고 누구나 말하지만, 우리는 외계 생명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계의 생명은 우리가 추구할 궁극의 목표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3장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만일 누군가가 절대 불변의 행성에 살고 있다면, 그가 할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예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땜분이다. 그런 세계에서는 과학하려는 마음이 일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또 하나의 극단인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변화가 지극히 무작위적이거나 지나치게 복잡해서 생각해 봤자 별수없는 처지라면, 그런 세상 역시 과학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두 극단의 중간 어디쯤엔가 있다. 사물의 변화가 있되 그 변화는 어떤 패턴이나 규칙을 따른다. 흔히들 만물의 변화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고 한다. 허공에 집어 던진 막대기는 반드시 땅으로 다시 떨어지고,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진 해는 반드시 다음 날 아침 동쪽 하늘에 다시 떠오른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해 보면 알아낼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가능하고 과학이 밝혀낸 지식을 이용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세상을 파악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애초부터 인간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배후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인류가 사냥을 하고 불을 피울 수 있었던 것도 무언가를 생각해 보고 알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텔레비젼, 영화, 라디오, 하다못해 책마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류는 지난날의 거의 대부분을 이런 생태로 보냈다. 우리 조상들은 달 없는 밤, 활활 타오러든 모닥불이 사그라져 깜부기불이 되면 그 주위에 앉아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재해를 뜻하는 'disaster"는 그리어 어로 '나쁜 별'이란 뜻이고, 유행성 감기를 뜻하는 'influenza'는 이탈리아 어로 별의 '영향'을 뜻하는 'influence'에서 나온 말이고, 건배를 뜻하는 'mazeltov' 는 히브리 어 (본질적으로는 바빌로니아 어)로 '좋은 별자리'다. 'shlamazel'이라는 이디시 어는 악운이 끊이지 않고 겹치는 사람을 기리키는데 이 역시 바빌론의 천문학 용어에서 나왔다. 플리니우스(Plinius) 의 주장에 따르면 로마에서는 'sideratio' 라 하여 '행성에 얻어맞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 인들은 행성을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여겼던 것이다. 여기에서 '고려하다'는 뜻인 'consider'를 살펴보는 일도 유익할 것이다. 이 단어는 '행성과 함께'라는 뜻인데, 진지하게 생각할 때에는 반드시 행성을 함께 고려했어야 했나 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과 달과 별들이 지구의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지구 중심의 우주관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땅은 안정되어 있고 단단하고 고정적인 데 반하여 그 외의 천체들은 매일같이 뜨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지구 중심 우주관이 하나의 보편타당한 자연 진리로 서슴없이 받아들여졌다. 이 시점에서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가 남겼다는 기록을 다시 읽어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따라서 달리 교육을 받지 않는 한 누구나, '지구는 커다란 집과 같다. 그 위를 덮고 있는 둥근 천장이 하늘이고 집과 천장은 고정되어 있다. 천장 안에서 매우 작어느 태양이 새가 허공을 누비며 날아다니듯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지나가는 것이다.' 라고 생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행성의 겉보기 운동에서 볼 수 있는 역행 운동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화성의 역행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보다 수천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고대 이집트 인들이 화성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이름들 중에는 '세크데드에프 엠 케트테크(sekked-ef em khetkhet)'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거꾸로 가는 자' 라는 뜻이다. 이것은 거꾸로 가거나 공중제비를 넘는 듯한, 화성의 겉보기 운동이 갖는 특성을 의식해서 붙인 이름임에 틀림없다. 

  케플러는 이렇게 해서 화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할 때 원 궤도가 아니라 타원 궤도를 따라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행성들의 궤도도 타원이기는 하지만 화성의 궤도보다 훨씬 더 원에가깝다. 튀코브라헤가 화성이 아니라, 예를 들어 금성의 움직임을 연구해 보라고 부추겼다면 케플러는 영영 행성의 진짜 궤도 모양을 발견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태양은 타원 궤도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중심을 조금 비껴나간 초점에 자리한다. 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행성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행성이 태양에서 가장 먼 곳에 이르렀을 때 궤도 속도가 가장 느리다. 이러한 운동 때문에 행성이 태양을 향해 떨어지는 중이지만, 절대로 태양으로 곤두박질하지는 않는다. 행성의 운동을 규정한 케플러의 첫 번째 법칙을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제 1법칙. 행성은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로 태양은 그 타원의 초점에 있다. 

 

일정한 속도로 원 운동을 하는 행성이라면 중심각이 같은 부채꼴의 호 또는 그 부분의 원둘레를 도는 데 같은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원 운동을 하는 행성이 원둘레의 3분의 2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43분의 1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의 꼭 2배이다. 케플러가 보니 타원 궤도를 도는 행성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행성이 태양과 멀리 있을 때의 길고 뾰족한 부채꼴의 넓이는 행성이 태양과 가까이 있을 때의 짧고 넓적한 부채꼴의 넓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이 행성의 운동을 규정한 케플러의 두 번째 법칙이다. 

 

      제 2법칙.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동경은 같은 시간 동안에 같은 넓이를 휩쓴다.

 

   몇 년이 더 지난 후,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에 관한 마지막 규칙인 세 번째 법칙을 생각해 냈다. 이것은 여러 행성들이 다른 행성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기술하는 법칙인데, 태양계 안에서 움직이는 각종 천체들의 운동 원리를 올바르게 제시하고 있다. 제플러는 자신의 세 번째 법칙을 '세상의 조화들(the Harmoise of the World)'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케플러는 '조화(harmony)' 라는 한 마디 말로 그가 알고 있던 많은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제 3법칙. 행성의 주기 (행성이 궤도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를 제곱한 것은 행성과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를 세제곱한 것에 비례한다. 즉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일수록 더 천천히 움직이되, 그 관계가 수학공식 P2=a3을 정확하게 따른다.

 

   P는 행성의 공전주기를 1년 단위로 표시한 것이고, a 는 태양에서 행성까지의 평균 거리를 '천문단위'로 잰 값이다. 

 

케플러는 지구에 적용되는 측정 가능한 물리 법칙이 천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여기서 측정 가능하다는 것은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인류사에서 최초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에서 신비주의가 배제되었다. 이제 지구는 코스모스의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의 지방으로 물러나야만 했다. 케플러는 역사의 한 꼭짓점에서 "천문학은 물리학의 일부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그런 주장을 할 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인류사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과학적 점성술사가 우리가 만난 최초의 천체물리학자였던 것이다. 

 

   케플러가 살던 시절의 사람들이 지구가 돈다는 생각을 거부했던 첫번 째 이유는 아무도 그 회전을 느낄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케플러는 '꿈(Somnium)' 을 통해서 지구의 자전이 가능한 일이라고 멋있으며 이해할 수 있는 현상임을 알리려고 애썼다. "다수가 그른 길을 걷지 않는 한......나 역시 다수의 편에 서고 있다. 그 까닭에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과학을 설명해 주려고 무진 애를 쓰는 바이다." 또 다른 상황에서 그는 편지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수학 계산의 쳇바퀴에 저를 온종일 매워 두지는 마십시요. 철학적 사색은 제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오니, 제게 사색할 여유를 허락해 주십시요."

   요하네스 케플러는 미래의 하늘에는 "천상의 바람을 잘 탈 수 있는 돛단배들이" 날아다니고 우주 공간은 "우주의 광막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탐험가들로 그득할 것이라 했다. 오늘날 우주 탐사선이 광대한 우주를 가로질러 외계로 달려갈 때 사람이고 기계고 가릴 것 없이 그들에게는 확고부동한 이정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케플러가 밝혀낸 행성 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이다. 그의 평생에 걸친 수고로 그는 발견의 환희를 맛보았고 우리는 우주의 이정표를 얻었다. 

 

   케플러와 마찬가지로 뉴턴도 그 시대를 풍미하던 미신을 완전히 멀리 하지 못했고 신비주의자와도 자주 접촉했다. 사실상, 뉴턴이 지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도 상당 부분 이 같은 이성주의와 신비주의의 대립과 긴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1663년 스투어브리지(Stourbridge) 에서 박람회가 열렸다. 당시 스무 살이던 뉴턴은 그곳에서 "안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궁금해서" 점성술 책을 한 권 구입했다고 한다. 그 책에 있는 도면을 하나 이해하지 못해 막혔는데 이것은 뉴턴이 삼각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삼각법에 관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그 책의 기하학적 논의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Elements of Geometry)" 을 구해다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에 뉴턴은 미적분학을 발명하기에 이른다. 

 

    어쨋거나 뉴턴의 천재적 지력은 늙어도 지칠 줄 몰랐다.  1696년 스위스의 수학자 장 베르누이 (Johan Bernoulli)가 동료 수학자들에게 당시까지 미해결로 남아있던 최속 강하선의 문제를 도전 형식으로 제시했다. 이 문제는 연직면 위의 두 점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 한 물체가 윗점에서 아랫점까지 오직 인력의 영향으로 떨어져 내리간다면 어떤 형태의 곡선 경로를 따라야 가장 짧은 시간에 강하할 수 있는가를 묻는 문제였다. 베르누이는 본래 마감일을 6개월 후로 잡았다.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요청에 따라 1년 반으로 연장했다. 라이프니츠는 당시의 선구적인 학자로서, 뉴턴과는 독자적으로 미분법과 적분법을 발명한 수학자이다. 도전장이 뉴턴에게 전달된 시각은 1697년 1월 29일 오후 4시, 그 때부터 그 다음날 출근 전까지, 뉴턴은 변분법이라는 전혀 새로운 분야의 수학을 발명했고 이것을 이용해서 최속 강하선의 문제를 해결한 뒤, 정리한 답을 돌려보냈다. 뉴턴의 풀이는 그의 요구대로 익명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해결책의 뛰어남과 독창성으로 말마암아 저자의 이름이 저절로 밝혀졌다. 베르누이는 해답을 보자 " 발톱 자국을 보아하니 사자가 한 일이다." 라고 평했다고 한다. 뉴턴은 그때의 나이가 55세였다.

   케플러와 뉴턴은 인류 역사의 중대한 전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비교적 단순한 수학 법칙이 자연 전체에 두루 영향을 미치고 지상에서 적용되는 법칙이 천상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며 인간의 사고방식과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서로 공명(共鳴)함을 밝혔다. 그들은 관측 자료의 정확성을 인정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행성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써 인간이 코스모스를 대단히 깊은 수준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확고한 증거를 제시했다. 오늘날 세계화된 우리의 문명, 우리의 세계관 그리고 현대의 우주 탐험은 전적으로 그들의 예지에 힘입은 것이다. 

   뉴턴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빼앗길까 늘 전전긍긍하고 동료 과학자들과 무서울 정도로 경쟁적이었다. 역제곱의 법칙을 발견하고도 10년, 20년이 다 지나서야 발표하는 일은 뉴턴에게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의 장대함과 복잡 미묘함 앞에서 뉴턴은 프톨레마이오스와 케플러와 마찬가지로 명량하면서 또 정감 어린 겸손을 보일 줄도 알았다. 죽기 바로 전 뉴턴은 이렇게 썼다.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더 매끈하게 닦인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주우며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한 미지로 내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다."

 

 

4장 천국과 지옥

 

   지구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특별한 사건이 없는 우리에게 마음의 고요를 허락하는 곳이기도 하다. 변화가 있되 아주 천천히 일어난다. 한 개인이 평생 동안 겪게 되는 자연재해 중에서 대단한 것이라고 해봐야 태풍 정도가 고작이니, 우리는 지구에서 안도하고 마음을 놓으며 크게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긴 자연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연 재해에 관한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세상이 온통 풍비박산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의도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최근에는 자기 파멸적인 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기술적 '발전'이 파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의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는 다른 행성들의 지형을 살펴봐도 그곳에서 대규모의 자연 재해들이 많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얼마나 긴 시간 척도로 변화를 보느냐에 따라 '평온과 고요의 지구'가 '격동과 소란의 행성'이 될 수도 있다. 인생 100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라도 100만년이라는 긴 세월에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 상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20세기에도 아주 기이한 자연 현상이 몇 건 일어났다.  (퉁구스카 사건;혜성)

   혜성은 대부분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문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얼음' 이라는 표현을 순수하게 물로 된 얼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물(H2O), 메탄 (CH4), 암모니아(NH3) 등의 혼합물이 결빙된 것을 총체적으로 얼음이라고 지칭한다. 이러한 얼음 물질에 미세한 암석 티끌들이 한데 엉겨 붙어서 혜성의 핵을 이룬다. 웬만한 크기의 혜성 조각이 지구 대기와 충돌한다면 혜성은 거대하고 눈부신 불덩이로 변하고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시킬 것이다. 그리고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태워 버릴 것이며 숲은 납작하게 쓰러뜨릴 것이다. 또한 이 격변에서 발생하는 굉음을 세계 구석구석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땅에는 변변한 크기의 충돌 구덩이 하나 파이지 않을 수 있다. 혜성을 이루던 얼음이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다 녹아 증발하기 때문에 혜성의 조각이라고 볼 수 있는 덩어리는 지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혜성의 핵에서 나온 미세 고체 알갱이 몇몇뿐이다. 작은 다이아몬드 조각들이 퉁구스카 대폭발 현장에 무수히 흩어져 있음을 최근에 (구)소련의 과학자 소토보비치가 확인했다. 이런 종류의 다이아몬드 알갱이들은 운성에도 존재한다. 지표에까지 떨어진 운석 중에는 그 기원이 혜성인 것도 있다. 

 

   행성들은 태양 주위의 타원 궤도를 따라 운동하지만, 그 궤도의 모양이 아주 찌그러진 타원은 아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리고 웬만한 어럼짐작으로는 원 궤도와 구별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원에 가까운 타원이다. 그것에 비해 혜성은-특히 공전 주기가 긴 혜성일수록-정말 보란 듯이 길쭉한 타원형의 궤도를 그리며 돈다. 어째서 행성들은 거의 원형 궤도를, 그것도 이웃 행성들과 갈라선 듯 따로따로 멀리 떨어진 원 궤도를 도는가? 그런데 혜성은 어떤 연유에서 길쭉한 타원을 그린단 말인가. 그것은 행성들이 태양계의 고참인 반면에, 혜성은 신참내기들이기 때문이다. 행성들이 아주 찌그러진 모양의 타원 궤도를 따라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다. 태양계의 형성 초기에는 생성 중이던 행성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그것들 중에서 긴 타원형 궤도를 그리며 서로 엇갈리는 궤도를 돌던 행성들은 충돌하여 붕괴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원형 궤도를 돌던 원시 행성들은 살아남아 점점 크게 자랄 수 있었다. 현재의 행성들은 충돌이라는 자연 선택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것들이다. 초기의 파국적 충돌을 모두 이겨 내고 이제 우리 태양계는 중년의 안정기에 들어선 것이다. 

   태양계의 외곽, 행성계 너머 어두컴컴한 저편에는 수조 개에 이르는 혜성의 핵들이 둥글게 원 궤도를 이루고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구름을 이루고 있다. 이것을 '오르트의 혜성 핵 구름 (Oort cloud)' 이라고 부른다. 구름을 형성하는 혜성의 핵 하나하나는 인디애나폴리스 500 자동차 경기장에서 달리는 경주용 자동차보다 결코 빠르지 않은 속력으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이것은 다른 행성에 비하면 아주 '느린' 속력이다. 혜성 핵의 대부분은 지름이 1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눈 덩어리로서 사람이 굴릴 수 있다면 대굴대굴 굴러갈 수 있을 정도로 구에 가까운 형상이다. 대부분의 혜성들은 명왕성의 궤도가 그리는 경계선을 뚫고 그 안으로 넘어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가끔씩 태양계의 외곽을 지나는 별이 중력으로 인력에 변동을 주어, 혜성 구름에 요란을 일으키는 일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혜성의 핵이 대단히 길쭉한 타원형의 궤도를 타고 태양을 향해 돌진하게 된다. 도중에 목성이나 토성의 인력을 받으면 그 궤도의 모양과 방향이 또 바뀐다. 이러한 일은 평균 100년에 한 번꼴로 일어난다. 목성과 화성 궤도 중간 쯤에 이르면 혜성의 핵은 태양의 열을 받아 증발하기 시작한다. 태양의 대기에서 뿜어져 나온 물질의 흐름을 우리는 태양풍이라고 하는데, 태양풍 때문에 먼지 조간과 얼음이 혜성 핵의 뒷편으로 밀려 나간다. 이렇게 해서 혜성의 꼬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일 목성의 지름이 1미터라면 혜성인 티끌보다 작다 그렇지만 충분히 성장한 혜성의 꼬리는 행성과 행성 사이를 이를 만큼 길다. 혜성이 지구 가까이에 이르러 마침내 지구인들의 눈에 띄기 시작하면 지구에서는 온갖 얼토당토않은 미신들이 난무하게 된다. 그러나 곧 지구인들도 혜성이 지구 대기 중에 있지 않고, 더 바깥쪽 행성들 사이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혜성의 궤도를 계산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작은 우주선을 쏘아올려 별나라에서 우리를 찾아온 희귀한 방문객을 탐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언젠가 이 혜성들은 행성과 충돌하고 만다. 한편 소행성은 태양계가 형성되던 과정에서 남은 짜투리 조각들이다. 지구와 지구의 동반자인 달은 소행성과 혜성 들에게 무수히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크기가 작은 물체들이 큰 것보다 수적으로 월등히 많기 때문에 작은 물체와의 충돌이 그만큼 더 자주 일어난다. 지구와 작은 혜성 조각이 충돌하면 퉁구스카 사건과 같은 폭발이 일어나는데, 이런 사건은 대략 1,00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한다. 그러나 혤리 혜성과 같이 지름이 대략 20킬리모터 수준에 이르는, 비교적 커다란 혜성과 충돌할 확률은 기껏해야 10억 년에 한 번꼴이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제시한 것만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제시한 가설들 중에도 훗날 틀렸다고 밝혀지는 것이 많다. 그러나 과학은 자기 검증을 생명으로 한다. 과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생각이 인정을 받으려면 증거 제시라는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벨리코프스키 건의 가장 서글편 면은 그 가설이 틀렸다거나 그가 이미 입증된 사실을 간과해서가 아니라, 자칭 과학자라는 몇몇 이들이 벨리코프스키의 작업을 억압하려 했던 데에 있다. 과학은 자유로운 탐구 정신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으며 자유로운 탐구가 곧 과학의 목적이다. 어떤 가설이든 그것이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그 가설이 지니는 장점을 잘 따져봐 주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을 억압하는 일은 종교나 정치에서는 흔히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 이런 자세의 과학이라면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어느 누가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지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자기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지구의 경우, 또 다른 요인 때문에 풍경과 기후가 바뀐다. 그것은 지적 생물의 활동이다. 금성처럼 지구에도 이산화탄소와 수증기가 존재하므로 온실 효과가 작용한다. 온실 효과가 없었다면 지구 전체의 평균 온도는 영하에 머물렀을 것이다. 온실 효과 때문에 지구의 바다는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생물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온실 효과는 이렇게 생명에게 유익하다. 금성처럼 지구에도 약 90기압의 이산화탄소가 있다. 기체 상태가 아니라 석회암이나 다른 종류의 탄산염 형태로 지각에 존재한다. 지구가 지금보다 태양과 아주 조금만 더 가까웠따면, 지구의 기온은 현재보다 약간 높았을 것이고, 그 때문에 이산화탄소의 일부가 암석에서 대기 중으로 분출하게 됐을 것이다.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온실 효과를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고 이에 따라서 지표의 온도 역시 더 상승할 것이다. 이제 더 뜨거워진 표면 온도는 더 많은 양의 탄산염들을 이산화탄소로 기화시켜서 온실 효과는 한층 더 효율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온실 효과의 폭주로 말마암아 지구의 표면 온도가 현재보다 무척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런 폭주 현상이 금성의 초기 역사에서 벌어졌던 것 같다. 지구보다 금성이 태양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현재 금성의 표면이 처한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재앙이 지구의 위치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읽게 된다.

   현대 산업 문명의 주요 에너지원은 화석 연료이다. 우리는 나무, 석유, 석탄, 천연가스를 태우고 이 과정에서 폐기 기체, 주로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내보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함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지구의 기온이 온실 효과로 인해 급격히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 지구 전체의 평균 기곤이 1도 내지 2도만 상승해도, 그것이 오래할 재앙은 자못 심각하다. 석탄, 석유, 휘발유를 태울 때,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황산 기체도 대기 중으로 내보내진다. 그렇기 때문에 금성에서처럼 지구의 성층권에도 아주 작은 액체 황산의 방울들로 이루어진 상당한 규모의 황산 안개층이 형성된다. 우리의 주요 도시들은 유독 가스로 오염되어 있다. 인간이 무심코 행하는 일련의 활동들이 장기간에 걸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현재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정반대의 측면에서도 기후를 교란시켜 왔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은 숲을 태우고 나무를 베고 가축을 초원에 방목함으로써 초원과 밀림을 지속적으로 파괴해 왔다. 화전 농업과 산업을 위한 열대림의 개간, 그리고 지나친 방목이 지구 도처에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숲은 초원보다 어둡고, 초원은 사막보다 어둡다. 결과적으로 지표에 흡수되는 햇빛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즉 토지의 사용 양식이 변함에 따라 지구의 표면 온도가 낮아질 수 있다. 이런 식의 냉각은 극지방에 있는 만년설 지대의 넓이를 증가시킬 것이다. 만년설 지대가 넓어지면 햇빛이 더 잘 반사되어 지구 밖에 나간다. 그 결과로 지구의 표면 온도는 더욱 낮아질 것이다. 이것이 온실 효과의 또 다른 방향으로의 폭주이다. 급격하게 치솟는 반사도(행성에서 들어온 햇빛  중 우주로 반사되어 다시 돌아간 부분을 나타내는 수치) 때문에 지구는 종국에 '백색 재앙'의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아름답고 푸른 행성 지구는 인류가 아는 유일한 삶의 보금자리이다. 금성은 너무 덥고 화성은 너무 춥지만 지구의 기후는 적당하다. 인류에게 지구야말로 낙원인 듯하다. 결국 우리는 이곳에서 진화해 왔다. 지구의 현재 기후 여건이 실은 불안정한 평형 상태일 가능성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수단들을 동원하여 지구의 연약한 환경을 더욱 교란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초래할 심각한 결과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이다. 지구의 환경이 지옥과 같은 금성의 현실이나, 빙하기에 놓여 있는 화성의 현재 상황으로 근접할 위험은 없는가? 이 질문에 당장할 수 있는 답은 현재로서는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뿐이다. 행성 지구의 전일적 기후학 그리고 비교 행성학적 연구는 아직 초보 단계에 있다. 이 분야 연구들에 지원되는 예산의 규모 또한 아주 보잘것없다. 우리는 지구 기후의 장기 변화에 대해서 참으로 무지하다. 인류는 자신의 무지를 망각한 채 대기를 오염시키고 숲을 제거함으로써 지표면의 반사도를 점점 높이고 있다.

   수백만 년 전 인류가 오랜 진화 과정으로 통해 지구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을 때는 지구가 젊음의 격변기와 형성 초기의 격렬함에서부터 46억 년이나 되는 세월을 이미 보내고 중년기의 안정을 찾은 뒤였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인류의 활동이 지구에 아주 새롭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지능과 기술이 기후와 같은 자연 현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부여한 것이다.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무지와 자기만족의 만행을 계속 묵인할 것인가? 지구의 전체적 번영보다 단기적이로 국지적인 이득을 더 중요시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자녀와 손자손녀를 위한 걱정과 함께, 미묘하고 복잡하게 작용하는 생명 유지의 전 지구적 메커니즘을 올바로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좀 더 긴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인가? 알고 보니 지구는 참으로 작고 연약한 세계이다. 지구는 좀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