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딴생각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말해주는 것... 우리 정신을 배회하게 뒀을 대 생기는 이점
우리는 딴생각 중에 천천히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분명히 개별 단어와 문장에 집중하지만, 정신의 작은 일부는 언제나 배회하고 있다. 우리는 이 단어들이 자기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생각한다. 내가 다음에 말할지 모를 내용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하는 말이 모순으로 가득한지, 또는 결국 한 점으로 모일지 궁금해한다. 갑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지난주에 텔레비전에서 본 내용을 떠올리기도 한다. 조너선은 "사람들은 핵심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 책의 여러 다른 부분을 하나로 합칩니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독서에서의 결함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독서다. 지금 정신이 배회하게 두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이해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방황한 정신적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삶도 그렇다. 딴생각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조너선은 내게 "딴생각을 하지 못한면 다른 수많은 것들이 사라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딴생각을 많이 할수록 더욱 체계적인 목표를 세우고 더 창의적이며, 끈기있는 장기적 결정을 더 잘 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신이 표류하면서 천천히 무의식적으로 삶을 이해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더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
둘째, 딴생각을 할 때 우리의 정신은 서로 다른 것을 새로 연결하기 시작하며, 종종 이 과정에서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른다. 네이선은 이렇게 말했다. "제 생각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때 뇌가 적절한 답을 찾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게 유명한 사례를 알려 주었다. 19세기의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앙카레는 수학의 난제 중 하나로 씨름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 숫자 하나하나에 자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으나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을 떠나 버스 계단을 오르던 앙리 푸앙카레에게 섬광처럼 문제의 해답이 떠올랐다. 그는 초점의 스포트라이트를 끄고 정신이 배회하게 두었을 때에 이 떨어진 조각을 이어붙여 마침내 문제의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창의력은 뇌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이선이 말했다. "창의력은 이미 그곳에 있었던 두 가지를 새롭게 연결하는 거에요. "딴생각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더욱 활짝 펼쳐지게 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연결이 이뤄"진다. 계속 자신이 폴자고 했던 수학 문제에만 초점을 두었거나 정신이 완전히 산만했다면 앙리 푸앙카레는 해결책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답을 떠올리는 데는 딴생각이 필요했다.
셋째, 딴생각을 하는 동안 우리의 정신은 "머릿속 시간 여행"을 떠나 과거를 더듬고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정신은 눈앞의 사안만 생각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지면 다음에 일어날지 모를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며, 이는 미래를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네이선은 우리가 하나의 스포트라이트로 주의를 좁혀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일정량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스포트라이트를 꺼도 "우리는 여전히 그 에너지를 더 많이 할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주의력이 꼭 낮아지는 것은 아니며," 다른 중요한 형태의 사고로 "자리를 옮기는 것일 뿐"이다.
현재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은 스포트라이트 같은 집중뿐만이 아니다. 딴생각 또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두가지 위기가 생각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딴생각을 하지 않으면 세상을 이해하기 힘들어지며, 그 결과로 불안하고 혼란한 상태가 되면 우리는 그 다음에 찾아오는 방해 요소에 더욱더 취약해진다.
6장 우리를 추적하고 조종하는 테크기업들....집중력 파괴는 그들의 사업 모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이들은 사람들의 집중 시간을 끝장내려고 전자기기나 웹사이트를 설계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혼란을 심고 우리를 멍청하게 만들려는 조커가 아니다. 이들도 명상과 요가에 많은 시간을 쓴다. 자신이 설계하는 웹사이트와 전자기기를 자녀가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아이들을 전자기기 없는 몬테소리 학교에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사업 모델은 사회 전체의 집중 시간을 장악해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액손모빌의 고의로 북극 빙하를 녹이려 하는 것이 아니듯, 집중력 파괴도 이들의 목표가 아니다. 그러나 집중력 파괴는 현 사업모델의 불가피한 결과다.
제프는 기술의 책무가 사람들을 고양해 더 높은 목표를 성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기술의 목적이 뭘까? 우리는 왜 기술을 만들까? 우리가 기술을 만드는 이유는 기술이 우리 안의 가장 인간적인 면을 끌어내 확장하기 때문이야. 그게 붓의 목적이야. 첼로도 그렇고, 언어도 그래, 이 기술들은 전부 우리 안의 어떤 면을 넓혀줘, 기술은 우리를 초인으로 만들어주는게 아냐. 우리를 더욱더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거지."
아자 (제프의 아들)는 조숙한 어린 코더가 되었고, 열 살 때 처음으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강연을 했다. 20대 초반이 되었을 무렵에는 최전선에서 최초의 인터넷 브라우저를 설계하고 있었고, 파이어 폭스(Firefox) 의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였다. 그는 업무의 일환으로 웹의 작동 방식을 뚜렷하게 바꿔놓은 기능을 설계했다. 그 기능의 이름은 '무한 스크롤'이었다. 나이가 있는 독자는 인터넷이 여러 페이지로 나뉘어 있었던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는 한 페이지의 맨 밑에 도착하면 버튼을 클릭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했다. 적극적인 선택이었다. 이 버튼은 잠시 멈추고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내가 계속해서 이걸 보고 싶은가? 아자는 더 이상 질문이 필요 없는 코드를 설계했다. 페이스북을 열었다고 상상해보자. 우리가 읽을 상당한 양의 상태 업데이트가 다운로드된다. 손가락을 움직여 아래로 스크롤을 내린다. 그러다 맨 밑에 도착하면 상당한 양의 내용이 또다시 자동으로 다운로드된다. 다시 맨 밑에 도착하면 엄청난 양이 또다시 알아서 다운로드되고, 그렇게 영원히 이어진다. 절대로 끝을 볼 수 없다. 스크롤은 무한히 계속된다.
아자는 자신의 설계가 자랑스러웠다. "처음에는 정말 좋은 발명처럼 보여요." 그리가 말했다. 그는 자신이 모두의 삶을 더 손쉽게 만들고 있다고 믿었다. 접근의 속도와 효율이 높아지는 일은 늘 진보라고 배워왔다. 오늘날의 모든 소셜미디어와 수많은 웹사이트가 무한 스크롤의 한 형태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때 아자는 주위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화면을 내리며 전자기기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어느 정도는 그가 설계한 코드 때문이었다. 아자 본인도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나중에야 자신이 본 내용이 쓸데없는 정보임을 깨닫곤했고, 자신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인지 고민했다.
32살이었던 어느 날, 아자는 자리에 앉아 계산 하나를 했다. 보수적으로 추산하면 무한 스크롤은 트위터 같은 웹사이트에서 시간을 50퍼센트 더 많이 보내게 만든다. 그는 낮게 어림잡은 이 수치를 이용해, 수십억 명이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시간을 50퍼센트 더 많이 보낸다는 것이 사실상 어떤 의미인지 알아내고자 했다. 계산을 마친 그는 총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가 발명한 기능의 결과로, 총 20만 명이 넘는 인간의 삶이 매일 화면을 스크롤 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시간들은 무한 스크롤이 없었다면 다른 활동에 쓰였을 것이다.
7장 산만함에 불을 지피다....집중하지 못하는 사회는 어떻게 위험에 빠졌나
페이스북이나 스냅챗, 트위터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상태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또는 구글에서 무언가를 검색할 때마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이 스캔되고 분류되고 저장된다. 이 기업들은 우리의 프로필을 축적해서 우리를 겨냥하려는 광고주에게 판매한다. 예를 들어 2004년부터 우리가 지메일을 사용하면 구글의 자동 시스템이 우리의 사적인 이메일을 전부 스캔해 개개인의 '광고 프로필'을 생성하고 있다.
테크 기업이 무언가를 공짜로 제공한다면 그건 언제나 저주 인형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구글맵은 왜 공짜일까? 저주 인형이 우리가 매일 가는 곳의 자세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스피커인 아마존 에코와 구글 네스트 허브는 왜 생산 단가보다 훨씬 저렴한 약 30달러에 판매될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저주 인형이 우리가 화면에서 검색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집에서 말하는 내용까지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웹사이트들을 만들고 유지하는 사업 모델이다. 이 시스템을 칭하는 전문 용어(뛰어난 하버드 대학 교수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가 만들었다.) 는 '감시 자본주의'다. 그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현재 일어나나고 있는 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집중력을 좀먹는 현재의 기술 작동 방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선택의 결과이다. 이 방식은 실리콘밸리의 선택이며, 실리콘밸리가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사회 전반의 선택이다. 과거에 인간은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었고, 현재에도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트리스탄은 이러한 기술을 전부 그대로 보유하면서, 최대한 우리를 산만하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정반대의 목표를 가지고 이 기술들을 설계할 수 있다.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존중하고, 사람들을 최소한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더 중요하고 유의마한 목표에서 사람들을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목표 성취를 돕도록 기술을 설계할 수 있다.
문제는 핸드폰이 아니라 현재 핸드폰이 설계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인터넷이 아니라 현재 인터넷이 설계되는 방식과, 그 방식의 설계자들에게 제공되는 유인책이다. 우리는 자신의 핸드폰과 노트북, 소셜미디어 계정을 계속 보유하면서 집중력을 훨씬 잘 발휘할 수 있다. 이것들이 다른 종류의 유인책 위에서 설계된다면 말이다.
페이스북이 뉴스피드에서 우리가 볼 정보를 결정할 때, 이들에게는 보여줄 내용이 수천 가지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가 무엇을 볼 지 자동으로 결정하는 코드를 작성한다.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알고리즘, 즉 우리가 무엇을 어떤 순서로 볼지 결정하는 방식은 무척 다양하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정보를 보여주도록 설계된 알고리즘도 있을 수 있다. 친구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정보를 보여줄 알고리즘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설계 가능한 알고리즘의 목록은 길게 이어진다.
이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알고리즘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일관된 핵심 원칙이 하나 있다.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게 만들 정보를 보여준다. 그게 다다. 우리가 화면을 더 많이 들여다볼수록 그들이 버는 돈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알고리즘은 언제나 우리가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도록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보를 파악해서 그 내용을 점점 화면에 들이붓는다. 알고리즘은 집중을 방해하도록 설계된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행동에는 기이한 특성이 하나 있다. 대체로 우리는 긍정적이고 잔잔한 것보다는 부정적이고 충격적인 것을 훨씬 오래 바라본다. 행복한 사람들과 화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화난 얼굴부터 분간한다. 심지어 태어난지 10주 밖에 안 된 아기들조차 화난 얼굴에 다르게 반응한다. 이 현상은 오래전에 심리학 분야에 알려졌고, 바탕에 방대한 증거가 있다. 이 현상은 '부정 편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타고난 인간 특성이 온라인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점점 늘고 있다. 유튜브에서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고 싶다면 영상 제목에 어떤 단어를 넣어야 할까? 그 단어들은 '증오, 말살, 혹평, 파괴'다. 뉴욕 대학의 한 대규모 연구 는 도덕적 분노를 자아내는 단어를 트윗에 하나 추가할 때마다 리트윗되는 비율이 평균 20퍼센트 증가하며, 리트윗 비율을 가장 많이 높이는 단어들은 '공격', '나쁜', '비난'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를 화면 앞에 붙잡아두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알고리즘은 우리를 화나고 격노하게 만드는 일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분노를 많이 일으킬수록 참여도도 높아진다.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을 분노하는 데 쓰면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다. 트리스탄이 말했듯이, 이러한 현상은 '증오를 습관화'한다.
지금껏 알게 된 증거를 종합해 다시 분류했을 때, 이 시스템이 집중력을 훼손하는 여섯 가지 방식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이 웹사이트와 앱들은 우리의 정신을 길들여 잦은 보상을 갈망하게 만들도록 설계된다. 우리가 '하트'와 '좋아요'를 갈구하게 만든다. 이러한 갈망 때문에 우리는 이 시스템에 연결되지 않았을 때보다 핸드폰을 더 많이 집어 들게 된다.
둘째, 이 웹사이트들은 평소보다 전환을 더 자주 하게 만든다. 핸드폰을 집어 들거나 노트북에서 페이스북을 클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전환이 집중력에 일으키는 피해가 고스란히 발생한다.
셋째, 이 웹사이트들은 우리를 '내침'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이들은 우리가 무엇에 반응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우리가 무엇을 즐겨 보고, 무엇에 화를 내고,무엇에 격노하는지를 배운다. 우리의 개인적 트리거를, 구체적으로 무엇이 우리를 어지럽히는지를 배운다. 즉 우리의 집중력을 뚫고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할 때마다 이 사이트들은 우리의 과거 행동을 통해 학습한 내용들을 조금씩 내놓으며 우리가 계속 스크롤을 내리게 만든다.
넷째,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 때문에 이 웹사이트들은 우리를 자주 화나게 만든다. 과학자들은 수년 전부터 실험을 통해 분노 자체가 우리의 집중력을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입증해오고 있다.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분노하면 주변에서 멀어지는 논쟁에 평소만큼 집중하지 못하며 "정보 처리의 깊이가 얕아'짐을 발견했다. 즉, 더 얄팍하고 부주의한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이 웹사이트들은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것에 더해, 우리가 타인의 분노에 애워싸여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 현상은 우리에게 다양한 심리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웹사이트들은 우리가 분노와 적대감으로 가득한 환경에 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이로써 우리는 더욱 각성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집중력은 위험을 찾는 상태로 바뀌고, 책을 읽거나 자녀와 함께 노는 활동처럼 더 느린 형태의 집중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여섯째, 이 웹사이트들은 사회 전체에 불을 지른다. 여러 단계로 구성된 이 현상은 우리의 집중력에 가해지는 가장 복잡한 형태의 피해이지자, 내가 보기에 가장 해로운 피해다.
한 사회로서 힘을 합쳐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우리의 능력을 이 웹사이트들이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이 사이트들은 개인의 집중력뿐만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집중력까지 파괴한다. 오늘날 소셜미디어에서는 거짓 주장이 진실보다 훨씬 빨리 퍼져나가는데, 알고리즘이 분노를 유발하는 내용을 더 빠르고 멀리 퍼뜨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짓말 속에서 길을 잃고 동료 시민에게 화를 내면 여기서부터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우리는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집단으로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더 커지고 악화된다. 그 결과 사회는 위험하게 느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더 위험해진다.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실제 위험이 커질수록, 우리는 더더욱 각성 상태가 된다.
구글의 전 전략인 제임스 윌리엄스는 다음과 같이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GPS 가 있는데, 처음에는 잘 잘동해요. 그런데 다음번에는 가고 싶은 곳에서 몇 길 건너편으로 우리를 안내해요. 그다음에는 아예 다른 마을로 안내하고요" 이는 전부 GPS 에 자금을 대는 광고주들이 이렇게 하라고 돈을 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마 우리는 그 GPS 를 게속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소셜미디어도 정확히 이렇게 작동한다. "우리에겐 가고 싶은 목적지가 있어요. 그런데 소셜미디어는 대부분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지 않아요. 우리가 길에서 벗어나게 만들죠. 소셜미디어가 정보 공간이 아닌 물리적 공간에서 우리를 안내했다면, 우리는 이걸 계속 하용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 자체로 결함이 있으니까요."
트리스탄과 아자는 이 모든 효과가 합쳐저 일종의 "인류 퇴화"를 낳고 있다고 믿는다. 아자는 말했다. "저는 우리가 스스로를 역설계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두개골을 열어서 우리를 제어하는 실을 찾은 다음, 그걸로 우리가 가진 마리오네트 인형의 실을 당기는 방법을 찾아냈어요. 한번 그렇게 하면, 머릿속의 실이 우연히 한 방향으로 홱 움직였을 때 우리의 말도 홱 꺽이고 되고, 그러면 우리가 쥔 마리오네트 인형의 실도 홱 당기게 되요....이게 바로 현재 우리가 향하고 있는 시대의 모습입니다." 트리스탄은 현재 우리가 "인류의 집단적 퇴화와 기계적 진화"를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합리성과 지성, 집중력을 갈수록 잃어가고 있다.
아자는 낙천주의자가 폭발하는 가운데 인류가 무언가를 만들었다가 자신이 만든 발명품을 더 이상 제어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문학에 가득하다고 말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 역시 그에게서 탈출해 살인을 저지른다. 아자는 전 세계의 유명한 웹사이트를 설계하는 엔지니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친구들에게 추천 알고리즘이 특정 내용을 추천하는 이유 같은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은 이런식이었어요. 왜 알고리즘이 그런 것들을 추천하는지 나도 잘 몰라." 아자는 친구들에 늘 이렇게 말한다. "자기 발명품이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할 때, 우화에서는 그때가 바로 그 발명품이 작동을 멈추는 순 아니야?"
트리스탄은 상원에서 증언하며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우리의 집중력을 퇴화시키고,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능력을 퇴화시키고, 공유된 진실을 퇴화시키고, 우리의 신념을 음모론적 사고로 퇴화시키면, 그래서 의제를 구축하고 공유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현재 전 세계의 가장 긴급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겨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상황이 현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에 말이죠.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유인책으로 인해 이 상황이 매일같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8장 작고 얄팍한 해결책....'문제는 네 안에 있어'라는 말이 틀린 이유
니르는 앱과 전자기기에 점점 중독되는 과정을 극복하려면 모든 개개인이 각자 기술을 개발해 이러한 방해 요소에 굴복하는 자신의 내면에 저항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애초에 왜 그것들을 강박적으로 사용하고 싶은지를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내적 트리거', 즉 나쁜 습관에 무릎 꿇게 하는 삶의 순간이 있다.
"내적 트리거는 불편한 감정 상태입니다." 니르가 말했다. "핵심은 회피에요. '이 불편한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나지?' 가 핵심이죠" 그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내적 트리거를 탐구하고 고찰해 그것을 없앨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을 들쑤시는 감정이나 지루함, 스트레스가 느껴질 때마다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했고, 포스트잇 한 뭉치를 집어 알고 싶은 내용을 그 위에 적었다. 그리고 오로지 글을 충분히 오래 쓴 다음에만 구글에서 그 내용을 검색했다.
이 방법은 니르에게 효과가 있었다. 이로써 그는 알게 되었다. "우리는 습관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습관은 끊을 수 있어요. 언제나요. 우리는 습관을 바꿀 수 있어요. 그 방법은 내적 트리거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과 그 행동 사이에 일종의 틈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10분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 규칙이란 핸드폰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 10분만 기다리는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가 '타임박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매일 할 일의 자세한 계획을 짜서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앱이 온종일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의 집중력을 없애지 않도록 핸드폰의 알림 설정을 바꿀 것을 권하고, 핸드폰에서 앱을 최대한 지우되 남겨할 앱이 있다면 그 앱의 사용 시간을 미리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메일 구독을 취소하고, 가능하다면 이메일의 '업무 시간'을 정해서 하루에 몇 번만 확인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무시하라고 조언한다.
설계자의 목표는 사용자를 계속 돌아오게 할 '내적 트리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설계자가 자신이 겨냥하는 사람을 더욱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그는 "어떤 정보를 자기만 모르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줄리라는 이름의 사용자를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 우리에게 이용할 것이 생겼다! 두려움은 강력한 내적 트리거이며, 우리는 줄리의 두려움을 가라앉힐 해결책을 설계할 수 있다."일단 이러한 감정을 이용하는 데 성공하면 "습관이 형성되고, 사용자는 줄에서 기다리면서 시간을 죽이고 싶을 때처럼 일상적인 상황에서 그 제품을 자동으로 사용하게 된다."라고 니르는 만족스럽게 말한다.
설계자는 여러분과 내가 '오랜 기간, 이상적으로 남은 평생 그 행동을 반복하게'만들어야 한다. 니르는 이것이 사람들의 삶을 개선한다고 믿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습관은 수익 발생에 매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는 여기에 윤리적 선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이를 겨냥해서는 안 되며, 설계자 본인도 '자신이 제공하는 것을 즐겨야' 하고 자신이 만든 앱을 직접 사용해야 한다. 니르가 모든 규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주일에 페이스북을 35시간 이상 사용하는 사람에게 팝업창을 띄워 지금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고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을 연결하는 것이 법적 의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비만이나 우울, 중독처럼 우리 문화에 근본 원인이 있는 거대한 문제와 관련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언어로 단순한 개인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 주장은 낙관적으로 들리는데, 문제를 금방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주장은 잔혹한데, 이렇게 제시하는 해결책이 너무 제한적이고 근본 문제를 전혀 보지 못하기에 결국 대다수에게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처음에는 친절하고 낙관적으로 보이지만 종종 추악한 여파를 미친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이 작고 얄팍한 해결책이 실패할 때 개인이 시스템을 탓할 수 없게 만들고, 결국 개인은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된다. 개인은 자신이 일을 다 망쳤다고, 자신이 못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로널드는 이러한 관점이 과로 같은 "스트레스의 사회 원인에서 주의를 돌리게" 하고, 순식간에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이렇게 속삭인다. 문제는 시스템에 있는 게 아냐, 문제는 네 안에 있어.
잔혹한 낙관주의는 보통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례를 가져다가 그것이 평범한 일인 양 행세한다. 막 실직해서 어떻게 하면 다음 주 화요일에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명상을 통해 평정심을 찾기가 더 쉽다. 완전히 소진되고 스트레스에 휩싸여 또다시 스트레스로 가득할 다음 몇 시간을 버티게 해줄 위안이 절박하지 않다면, 다음번의 햄버거와 페이스북 알림,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기가 더 쉽다.
미 상원에서 증언할 때 트리스탄은 이렇게 말했다. "자제력을 키우려고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화면 반대쪽에서는 우리의 자제력을 꺾으려고 노력하는 천여 명의 엔지니어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니르가 온전히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실이다. 그 자신이 이러한 설계자 중 한 명인데도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나는 그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조언에 찬성한다. 정말로 우려되는 지금 당장 핸드폰을 꺼내서 알림을 꺼야 한다. 정말로 자신의 내적 트리거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나머지 조언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서 출발해, 우리의 주의력을 침해하도 습격하도록 설계한 환경에서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꽤 쉬운"일이 아니다.
지나치게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해 사람들을 실패로 이끄는 잔혹한 낙관주의의 대안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비관주의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낙관주의다. 진정성 있는 낙관주의는 우리의 목표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모두와 협력해 그 장애물을 하나씩 해체할 계획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