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참아야 하는 의무
지구 생명의 역사는 생명체와 그 환경의 상호작용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 지구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물리적 형태와 특성은 환경에 의해 규정된다. 지구 탄생 이후 전체적인 시간을 고려할 때 그 반대 영향, 즉 생물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20세기에 들어서 오직 하나의 생물종(種), 즉 인간만이 자신이 속한 세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위력을 획득했다.
지난 25년간 이 위력은 불안감을 심어줄만큼 크게 증가했을 뿐 아니라 그 본질에도 변화가 생겼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공격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위험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유독물질로 공기, 토양, 하천, 바다 등을 오염시킨 일이었다. 이런 피해를 입은 자연은 원상태로 회복이 불가능한데, 그 오염으로 인한 해악은 생명체를 유지하는 외부 세계뿐 아니라 생물의 세포와 조직에도 스며들어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불러온다. 보편적인 환경오염에서 화학물질은 세상의 근원-생명의 본질마저도 변화시키는 방사낭의 사악하고 비밀스러운 동반자 구실을 한다. 핵폭발을 통해 공기 중으로 유출되는 스트론튬90은 빗물에 섞이거나 낙진 형태로 토양에 스며들어 밭에서 자라는 건초, 옥수수, 밀 등에 침투한다. 그 뒤 그것을 먹은 인간의 뼈 속에 축적되어 그가 죽을 때까지 체내에 남아 있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농경지, 숲, 정원 등에 뿌려진 화학약품들은 토양 속에 머물다가 생체기관 속으로 흡수되면서 각각의 생명체를 독극물 중독과 죽음의 사슬로 연결한다, 그것들은 비밀스럽게 지하수로 침투한 뒤 대기와 햇빛의 조화로 식물을 죽이고 가축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또 예전에는 깨끗했지만 이제는 오염된 우물물을 마신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감춘 채 해를 입히곤 한다.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해악을 깨닫지 못한다."
생명체가 화학물질에 적응하려면 자연의 척도에 따라 시간이 필요한다. 이는 그저 인간이 생각하는 면 년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몇 세대에 이르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설령 기적이 일어나 이런 물질에 쉽게 적응한다고 해도, 실험실에서 계속 새로운 화학물질들이 꼬리를 물고 쏫아져 나올 것이므로 별 성과가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만 매년 500여 종의 화학물질이 등장해 사용된다. 이 놀라운 수치가 암시하는 것은 인간과 동물이 매년 500여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인데, 이는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원시 농업 시대에 곤충은 농부들에게 별로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곤충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농업이 본격화하고 대규모 농지에 단일 작물을 제배를 선호하게 되면서부터다. 이런 방식으로 농사를 짓게되면 특정 곤충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단일 작물 경적은 자연의 기본 원칙이라기보다 기술자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자연은 자연계에 다양성을 선사했는데 인간은 이를 단순화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특정 영역 내의 생물에 대해 자연이 행사하는 내재적 견제와 균형 체계를 흐트러뜨리려 애쓰는 것이다. 자연의 견제와 각각의 생물들은 저마다 적합한 넓이의 주거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사회생물학 용어로 "니치" 참조) 하지만 단일 작물을 재배할 경우 (예를 들어 밀과 다른 작물을 섞어 키우는 대신 밀만 재배하는 경우) 에는 다른 작물 때문에 널리 퍼져나갈 수 없던 해충이 급증하게 마련이다.
자연에 닥친 위험을 인식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전문가의 시대라고 하지만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만 위험을 인식할 뿐, 그 문제들이 모두 적용되는 훨씬 더 광범위한 상황은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한다. 공업화 시대라서 그런지 어떤 대가를 치르는 이윤을 올리기만 하면 별다른 제제가 가해지지 않는다. 살충제 남용이 빚어낸 문제의 확실한 증거를 목격한 일반 시민들이 항의하면, 책임자들은 진실만이 담긴 보잘것없는 진정제를 처방하곤 한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위안을, 그대로 받이들일 수 없는 사실에 입혀진 당의(糖衣)를 한시라도 빨리 제거해야 한다. 해충박멸업자들이 야기한 위험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바로 일반 시민들이다. 지금과 같은 방제법을 계속 고집할지 결정을 내리려면 현재 벌어지는 상황과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장 로스탕(Jean Rostand)은 이렇게 말했다.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3장 죽음의 비술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류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 동안 위험한 화학물질과 접촉하게 되었다. 인류가 화학물질을 사용한 지 20여 년이 채 안되는 동안 유기합성 살충제는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스며들고 있다. 대부분의 강과 하천은 물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 흐르는 지하수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다. 12년 전 살포된 화학물질이 지금까지 토양 속에 남아 있거나 물고기, 새, 파충류, 가축, 야생동물들의 몸 속에 들어가 축적된 일도 있다. 과학자들이 동물실험을 통해 밝혀낸 결과에 따르면 그 어떤 생물도 이런 오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고 한다. 화학물질은 멀리 떨어진 산 속 호수에 사는 물고기, 땅속의 지렁이, 새가 낳은 알과 인간에게서 발견된다. 또 연령에 상관없이 대다수 사람들의 몸 속에서도 화학물질을 찾아볼 수 있는데, 모유에서는 물론 태아의 조직에서도 발견될 정도다.
합성 화학 살충제 산업의 급작스러운 부상과 놀랄 만한 확장이 문제의 원인이다. 이 산업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다. 화학전에 사용할 약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몇 종류의 물질은 곤충에 치명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발견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약제를 시험하는 데 곤충류가 자주 사용된 이유 때문이다.
그 결과 합성 살충제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구성 분자를 조작하거나 원자를 대체하거나 그 배열을 바꾸는 등 인위적 과정을 거치면서 전쟁 전 사용되던 단순한 무기 화합물 살충제와는 전혀 다른 살충제가 등장한 것이다. 새로운 살충제는 비소, 구리, 납, 망간, 아연, 그 밖의 광물들과 말린 국화에서 추출한 제충국, 담배와 비슷한 식물에서 추출한 황산니코틴, 동인도제도의 콩과식물에서 추출한 로테논 등 자연발생적인 무기질과 식물 성분을 기본으로 만들어진다.
제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무기 화합물 계열의 살충제가 유기탄소계 살충제로 바뀌었지만 구식 살충제 중 아직도 사용되는 것이 있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비소인데, 상당수의 제초제와 살충제의 기본 요소로 사용된다. 비소는 독성이 강한 광물로 여러 금속의 원석에 널리 포함되어 있고 화산, 바다, 온천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비소와 인간의 관계는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지는데, 그 기원은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소 혼합물은 아무런 맛이 없기 때문에 로마 시대 보르자 가문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좋은 독살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굴뚝의 숯검정에서 발견된 비소는 발암물질로 판명된 첫 번째 물질로, 200년 전 영국 의사에 의해 암과의 연관성이 규명되었다. 한 지역에서는 마을 사람 전체가 만성 비소 중독에 걸렸다는 기록이 발견되기도 했다. 환경이 비로소 오염되면 말, 젖소, 염소, 돼지, 사슴, 물고기, 꿀벌 등 모두 병에 걸려 결국 죽음을 맞고 만다.
오늘날의 살충제 역시 치명적이긴 마찬가지다. 살충제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DDT 로 대표되는 염화탄화수소(탄화수소의 염소치환체) 계열이고 도 다른 그룹은 말라티온과 파라티온으로 대표되는 유기인산 계열이다. 이 모든 화학물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생명계의 뼈대라 할 수 있는 탄소 원자를 기본으로 하고, 그렇기 때문에 '유기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탄소로 어떤 물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봐야 한다 유기물은 모든 생명체의 기본적인 작용과 연관되어 있지만 특별한 변형 과정을 거치게 되면 죽음을 초래하는 유독물질로 바뀌기도 한다.
탄소는 여러 개가 모여 사슬 모양이 고리 모양 등 다양한 배열을 만들어내거나 다른 원자와 결합하는 데서 거의 무한한 능력을 발휘한다. 사실 박테리아에서 흰긴수염고래에 이르는 생명체의 놀라운 다양성은 탄소의 특징에 기인한다. 복잡한 단백질 분자의 기본 역시 탄소이며, 지방, 탄소화물, 효소, 비타민 등에도 탄소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수많은 무생물에도 탄소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탄소를 생명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많은 없다.
어떤 유기 화합물은 탄소와 수소의 단순한 화합물이다. 그중 가장 단순한 것은 물속에서 유기체가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해될 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메탄가스이다. 대기와 적당한 비율로 섞이면 메탄은 석탄 탄광에서 발생하는 무서운 '탄갱 폭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탄소 하나와 수소 네 개로 이루어진 메탄의 구조는 아름다울 정도로 단순하다. 화학자들은 메탄의 분자 구조에서 수소를 한 개 또는 전부를 떼어내고 다른 물질로 대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수소 하나를 염소로 대치하면 메틸클로라이드, 즉 염화메틸이 만들어진다. 수소 원자를 세 개 떼어내고 그 자리를 모두 염소로 대치하면 마취용 클로로폼이 만들어진다. 수소 원자 네 개를 모두 염소로 대체하면 드라이클리닝에 흔히 사용되는 액체인 사염화탄소가 만들어진다.
DDT (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리클로로에테인) 는 1874년 독일 화학자에 의해 처음 합성되었지만 살충제로서 효능이 발견된 것은 1939년이다. 그 즉시 DDT 는 질병을 옮기고 한밤중에 식량을 축내는 해충들에 대항해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 수단으로 인증받았다. 발견자인 스위스의 파울 뮐러(Paul mulller)는 노벨상을 받았다.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서인지 사람들은 DDT를 별 해가 없는 물질로 여긴다. DDT의 무해성에 관한 신화는 전쟁 중 수천만 명의 군인, 피난민, 포로들의 몸에서 이를 박멸하는 데 처음 사용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뿌려진 데다 즉각적으로 어떤 나쁜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다른 염화수소 계열의 물질과 달리 DDT 는 피부 속으로 스며들지 않는 분말 형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DDT 는 지방 성분에 녹으면 상당한 독성을 발휘한다. 소화기관이나 폐를 통해 천천히 흡수되는 이 물질은 일단 몸속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부신, 고환, 갑상선 등 지방이 풍부한 신체 장기에 축적된다. (DDT 자체가 지용성이기 때문이다.) 또 상대적으로 많은 양이 간, 신장 그리고 장기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보호막인 장간막에도 쌓인다.
염화탄화수소 계열의 또 다른 물질인 클로르데인은 DDT의 모든 해악에 몇 가지 자체적인 문제까지 더해진 경우다. 클로르데인 잔류물은 토양과 음식물을 비롯해 그것이 살포된 대상의 표면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휘발성이 있기 때문에 흡입을 통해 쉽게 중독되는데, 이때 이 물질을 다루거나 여기에 노출된 사람은 큰 위험에 놓인다. 클로르데인은 피부를 통해 흡수되고, 증기 형태로 들이마실 경우 소화관을 통해 스며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체에 침투한다. 다른 염화탄화수소 계열 물질과 마찬가지로 이 성분 역시 우리 몸속에 오랫동안 남아있게 된다. 동물실험에 따르면 클로르데인이 2.5ppm 정도 함유된 식품을 섭취할 경우 지방질 속에는 75ppm 이라는 엄청난 양이 축적된다고 한다.
클로르데인 대체물질 중 하나인 헵타클로르는 별도로 제조되어 판매된다. 이 물질은 지방에 축적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만일 0.1ppm 에 해당하는 헵타클로르를 음식물로 섭취하면 몸속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 축적된다. 게다가 이 물질은 헵타클로르에폭사이드라는 또 다른 물질로 쉽게 바뀌는데, 토양은 물론 식물과 동물의 세포조직에서도 이런 전이가 이루어진다. 조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만들어진 에폭사이드는 헵타클로르(클로르데인보다 4배나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보다 4배나 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독일 화학자 오토 딜스(Otto Diels) 의 이름을 딴 디엘드린은 흡입했을 때에는 DDT 보다 5배 정도 유독하지만 용액이 직접 피부에 닿을 경우에는 그 독성이 40배로 강해진다. 이 물질은 순식간에 신경 체계에 영향을 미쳐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끔찍한 결과를 나타낸다. 디엘드린에 중독되면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다른 염화탄화수소류와 마찬가지로 간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 약효가 오래가고 해충을 죽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야생동물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데도 디엘드린은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된다.
독자적으로 존재하지만 디엘드린으로 쉽게 변하는 알드린은 신비에 싸인 물질이다. 알드린이 뿌려진 밭에서 뽑아낸 홍당무에서 디엘드린이 검출되었다. 이런 변화는 생체 조직과 토양에서도 발견된다. 놀라운 연금술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화학자들도 곧잘 실수를 하게된다. 밭에 살포한 알드린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유독 성분이 모두 사려졌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화학물질은 디엘드린 상태로 남아있고, 이를 검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분석 실험이 필요하다.
디엘드린처럼 알드린 역시 독성이 심각한 물질이다. 간과 신장 기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아스피린 정제 분량만으로 메추라기 400마리 이상을 죽일 수 있다. 이 물질에 중독된 사례들이 기록에 남아 있는데 그 대부분은 공장에서 사용하다가 생긴 일이었다.
알드린도 다른 살충제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치사량에 조금 못 미치는 알드린을 먹은 꿩은 알을 거의 낳지 못했고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곧 죽었다. 이런 일은 새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알드린에 노출된 쥐 역시 새끼를 배지 못했고 그나마 어렵게 태어난 새끼들도 허약해서 오래 살지 못했다. 또 알드린 처치를 받은 어미가 낳은 강아지는 3일 이내에 죽고 말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부모 세대의 중독은 그다음 세대에도 고통을 전해준다. 이런 결과가 인간에데고 나타날지 여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비행기를 사용해 이런 유독물질을 근교 농촌과 농장 일대에 무차별적으로 살포하고 있다.
엔드린은 염화탄화수소 중에 가장 독성이 강하다. 화학적으로는 디엘드린에 가깝지만, 살짝 꼬여 있는 분자 구조로 인해 그 독성은 54배나 강하다. 살충제 중 가장 강력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엔드린에 비하면 DDT는 독성이 없어 보일 정도다. 엔드린은 DDT 보다 포유류의 경우 15배, 어류에서는 30배, 조류에서는 300배나 강한 독성을 나타낸다.
유기인산계 살충제는 특별한 방식으로 생물체에 작용한다. 이들은 우리 몸에서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효소를 파괴한다. 곤충이든 온혈동물이든 이 살충제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경계다. 일상적인 조건에서는 신경세포 사이에 자극이 전해지려면 아세틸콜린 이라는 '화학전달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세틸콜린은 필요한 기능을 수행한 뒤 즉시 사라져버린다. 사실 덧없다고 느껴질 만큼 아세틸콜린 분비가 금방 끝나버리기 때문에, 의학 연구원들조차 특별한 시료 처리 과정 없이는 아세틸콜린을 채취하기가 쉽지 않다. 화학전달체의 이런 특징은 우리 뭄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만일 아세틸콜린이 신경을 자극한 뒤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면 자극은 신경과 신경 사이의 연결망을 계속 오가게 되고 방출되는 화학물질의 강도도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몸 전체의 움직임이 조화를 잃어 몸이 떨리고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발작이 계속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보호제 구실을 하는 물질이 체내에서 공급된다. 콜린에스테라제라는 이 효소는 화학전달체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면 즉시 이를 파괴해버린다. 이 효소 덕에 우리 멈은 정확히 균형을 이루며 신체 작용이 위험하지 않도록 아세틸콜린 방출을 조절한다. 그러나 유기인산계 살충제가 체내로 들어오면 이 보호 효소가 파괴되고, 따라서 화학전달체 방출이 증가한다. 유기인산계 화학물질은 독버섯에서 발견되는 유독성 알칼로이드인 무스카린과 비슷하다.
살충제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콜린에스테라제 농도가 낮아지는데, 이후에는 살충제를 아주 조금만 흡수해도 급성중독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방제 작업을 실시학나 자주 살충제에 노출되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혈액 검사를 받아야 한다.
유기인산계 살충제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동시에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살충제가 바로 파라티온이다. 파리타온 살충제를 흡입한 꿀벌은 '심하게 동요해 호전적 성질을 띠며' 미친 듯이 뭔가 청소하는 듯 행동하다가 30분쯤 지나면 결국 죽고 만다. 살충제 흡입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 확인해보려던 한 화학자가 0.00424 온스에 이르는 극소량을 마셨다. 그런데 바로 온몸이 마비되는 바람에 가까운 곳에 놓았던 해독제를 마시시 못해 죽고 말았다. 핀란드에서는 파라티온이 자살 수단 1위라고 한다.
또 다른 유기인산계 살충제인 말라티온은 DDT 만큼이나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살충제로, 정원용, 실내용, 모기 퇴치용으로 사용된다. 말라티온은 같은 계열의 살충제 중 독성이 가장 약하다고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이 별 걱정없이 사용해따. 여기에 광고까지 가세해 사람들은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말라티온을 뿌려댓다.
그렇지만 말라티온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일로, 이 살충제를 사용한 지 몇 년이 지날 때까지 그 해악은 드러나지 않는다. 놀라운 보호 능력을 갖춘 포유동물의 간 덕분에 말라티온의 독성이 상대적으로 무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간에서 작용하는 효소 중 한 가지가 말라티온의 해독 작용을 주도한다. 이 효소가 파괴되거나 그 작용이 방해를 받는 사람의 경우에는 말라티온에 의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화학물질의 위험한 상호작용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험실에서 놀라운 결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그중 살충제가 아닌 다른 물질과 혼합될 경우에도 유기인산계 살충제의 독성이 증가한다는 보고에 특히 관심이 쏠린다. 예를 들면 말라티온은 특정 가소성 물질과 혼합될 경우 다른 살충제와 섞였을 때보다 훨씬 강한 독성 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되면 살충제의 독성을 해독하는 간 효소의 활동이 무력화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마법사 메데아는 남편 이아손의 애정을 가로챈 연적의 등장에 분노를 느낀 나머지, 이 새 신부에게 마법의 약물이 묻은 웨딩드레스를 선물한다. 이 옷을 입은 신부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이런 간접 살인은 오늘날의 침투성 살충제와 흡사하다. 이 물질은 실물이나 동물체에 흡수되면 메데아의 옷처엄 강한 독성을 발휘한다. 즉 독이 들어 있는 수액이나 혈액을 곤충이 빨아먹음으로써 박멸될 수 있는 것이다.
응용곤충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연에서 힌트를 얻어 침투성 살충제를 꿈꾸기 시작했다. 셀렌산나트륨 성분이 함유된 토양에서 자라는 밀은 진딧물이나 응애의 공격에 면역이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암석과 토양에 함유되어 있는 셀레늄은 침투성 살충제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침투성 살충제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화학물질이 식물이나 동물의 조직 속으로 침투해 서서히 독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능력을 지닌 몇몇 염화탄화수소계 화학물질과 유기인산계 화학물질은 인위적으로 합성된 것이지만, 자연계에 존재하는 천연물질 중에도 이런 특징을 지닌 것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침투성 살충제는 유기인산계인데, 잔류농약 문제가 비교적 덜 심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침투성 살충제는 미묘한 구실을 한다. 이 살충제에 씨앗을 담그거나 탄소와 결합한 살충제를 도포하면 여기에서 싹튼 식물에 영향을 미쳐서 진딧물이나 그 밖의 식물 수액을 먹는 곤충에 대해서 독성을 지니게 된다.
제초제는 오직 식물에게만 독성이 있고 동물에게는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데, 불행히도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잡초 제거제는 식물 뿐만 아니라 동물의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화학 성분이 들어 있다. 생물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다양하다. 어떤 것인 일반적인 독물처럼 작용하고 또 어떤 것은 채네 물질대사에 강력한 자극을 주어 체온을 급상승시키기도 한다. 또 다른 것은 독자적으로 또는 다른 화학물질과 만나 악성종양을 만들며 유전물질에 영향을 미쳐 돌연변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제초제 역시 살충제처럼 심각한 위험을 지닌 화학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에 동물에는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부주의하게 사용할 경우 엄청난 재앙을 맞게 된다.
4장 지표수와 지하수
자연수야말로 우리의 자연자원 중 가장 귀중한 것이 되고 말았다. 지표의 가장 넓은 부분이 넘실거리는 바다일 정도로 물이 풍부한대도 사람들은 물 부족을 이야기한다. 이상한 모순이지만 이렇게 풍부한 바닷물은 염분이 많기 때문에 농사지을 때나 공장 가동할 때 또는 인간이 마시기에 부적합하다. 따라서 지구상의 많은 사람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겪는다. 인간이 자신의 기원을 망각하고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순간, 물은 다른 자원과 더불어 무관심의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
살충제로 인한 수질오염은 전체 환경의 오염이라는 넓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수질을 오염시키는 원인은 원자로, 실험실, 병원에서 배출되는 방사성폐기물은 물론, 핵폭발 낙진, 도시와 마을에서 흘려보낸 생활 폐수, 공장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 등 다양하다. 여기에 농작물과 정원, 숲과 밭에 뿌려진 살충제가 더해진다. 이 엄청난 화학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심각한 상호작용과 변형,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별로 없다.
수질오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하수의 광범위한 오염이다. 어디에서든 물에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은 결국 모든 수자원을 위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연의 구성 요소들이 각기 폐쇄적으로 분리되어 작동한다면 이렇게 지구상의 수자원 전체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없을 것이다. 땅에 떨어진 비는 토양과 암석에 난 구멍과 틈을 따라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마침내 모든 틈을 물로 채운다. 그러다 언덕 밑에 이르러서는 다시 솟아오르고 골짜기 밑으로 더 깊에 가라앉아 지표 밑을 따라 어두운 바다로 흐른다. 지하수는 느리게는 1년에 50피트 (약 15미터), 빠르게는 하루에 0.1마일 (약 161미터) 정도의 속도로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수로를 다라 흐르다가 지표 위샘으로 분출하거나 우물에 고여 들어 솟아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냇물이나 강으로 유입된다. 비가 강으로 직접 내리거나 지면을 따라 바로 시냇물로 흘러드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흐르는 물은 대부분 지하수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수 오염은 모든 물의 오염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하수와 지표수가 살충제와 다른 화학물질에 오염되었기 때문에 발암물질까지도 공공용수에 섞여 들어갔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W.C 휴퍼 박사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앞으로는 오염된 물을 마셔 암에 걸리는 일이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1950대 초 네덜란드에서 발표된 한 연구는 오염된 상수원이 암을 일으킨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강에서 식수를 공급받는 도시들보다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더 높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발암물질인 비소가 수질오염을 일으켜 암을 광범위하게 퍼뜨린 역사적 사례가 두 건 있다. 한 건은 광산의 광물 찌꺼기에 포함된 비소였고, 또 다른 한 건은 비소 함량이 높은 암석이 문제를 일으킨 경우였다. 비소 성분의 살충제를 과다 사용할 경우 이런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 살충제가 뿌려진 토양에 비소가 남아 있다가 비가 내리면 이 비소 성분이 씻겨 내려가 땅속을 흐르는 지하수 뿐만 아니라 시냇물, 강, 저수지 등으로 이동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오염되고 있는지 좀더 확실하게 살피려면 지구상의 또 다른 자원인 토양에 관해 알아봐야 한다.
5장 토양의 세계
대륙의 표면을 덮고 있는 얇은 층인 토양은 인간을 비롯한 지상 모든 생물의 생존을 결정한다. 토양이 없다면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식물이 없으면 동물 역시 살아남을 수 없다.
농업에 기반을 둔 우리 생활이 토양에 의존하는 것처럼, 토양 역시 생물체들에 의존한다. 토양이 만들어지고 그 본질을 유지하는 데는 식물과 동물이 중요한 몫을 담당한다. 영겁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생물과 무생물이 벌인 놀라운 상호작용으로 탄생한 생명체들이 토양을 만들어냈다. 화산이 이글거리는 불길과 더불어 용암을 분출했을 때, 물이 가장 단단한 바위인 화강암을 비솧해 대륙의 일부분을 씻어 내렸을 때, 서리와 얼음이 날카로운 끌처럼 바위를 쪼개고 부수었을 때 토양의 모태가 만들어졌다. 그 다음에 생물들이 등장해 창조적인 마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치 죽은 듯 잠잠하던 이 모태가 조금씩 토양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부서진 지의류 조각과 자그만 곤충 껍질, 바다에서 출현하기 시작한 동물군의 잔해들로 형성된 토양을 뚫고 이끼가 자라기 시작했다.
생물은 토양뿐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놀랄 정도로 풍부하고 다양한 다른 생물을 만들어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토양은 불모의 상태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유기체의 존재와 그들의 활동 덕에 지구를 덮고 있는 푸른 외투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토양은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순환 속에서 계속 변화를 겪고 있다. 바위 부스러기, 유기체의 부식물,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섞여 있는 질소와 다른 기체 등 새로운 물질이 토양을 구성하는데 일조한다. 동시에 토양을 구성하는 어떤 물질은 일시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위해 쓰인 뒤 사라지기도 한다. 미묘하지만 중요한 구실을 하는 화학적 변화가 끊임없이 진행되면서, 토양은 대기와 물에서 추출한 원소들을 식물이 사용하기 적합하게 바꾸기고 한다. 이런 변화에서 능동적인 구실을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들이다.
박테리아, 균류, 해조류는 유기물을 썩게 만들어 동식물의 유체를 원래의 구성 원소인 무기물로 환원시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런 미생물이 없다면 토양과 대기와 살아 있는 생물들을 통한 탄소와 질소의 순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질소 부족으로 굶주려 죽을 것이다. 다른 유기체들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는 바위를 부식시키면서 아연, 망간, 황 등의 무기물을 식물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시킨다.
화학물질은 생명들에게 중요한 화학적 변이와 변형 과정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식물이 대기 중에 있는 질소를 고정해 질소를 합성하는 질소동화가 그 좋은 예다. 제초제인 2,4-D 는 질소동화작용을 일시적으로 방해한다. 최근 플로리다 주에서 실시한 한 실험에 따르면 린데인, 헵타클로르, BHC (벤젠헥사클로라이드) 등이 살포된 지 2주 만에 질소동화작용의 속도가 감소했다고 한다. BHC 와 DDT 는 살포된 지 1년이 지나도록 상당히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또 BHC, 알드린, 린데인, 헵타클로르, DDD는 콩과식물 뿌리에서 자라는 뿌리혹박테리아의 성장을 방해한다.
이런 문제는 자연계가 추구하는 생물종들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깨뜨리기도 한다. 다른 종들이 살충제 때문에 급속하게 감솧하거나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방해를 받을 때 토양 속에 사는 특정 유기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러한 변화는 토양의 대사 활동을 변형시키고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또 잠재적으로 위험성을 지녔지만 자연의 힘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던 해로운 유기제가 갑자기 활성화해 각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토양에 뿌려지는 살충제에 관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독성이 몇 달 또는 심지어 몇 년까지도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알드린은 살포된지 4년이 지나도록 검출되는데, 그 자체로 남아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디엘드린으로 변형된다. 흰개미를 없애기 위해 사용한 톡사펜 성분이 살포 후 10년이 지나 그 모래토양에서 검출된 적도 있다. 벤젠헥사클로라이드는 최소한 11년간 토양 속에 남아 있다. 헵타클로르 또는 이보다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은 적어도 9년간 영향을 미친다. 클로르데인은 살포된지 12년이 지나도 살표량의 15퍼센트 가량이 토양에 그대로 남아 있다.
살충제를 아주 조금 사용한다고 해도 몇 년간 반복되면 엄청난 양이 토양 속에 쌓이게 된다. 염화탄화수소는 지속력이 강하고 잔류성이 높기 때문에 이전 살포 때 남아 있던 양에 새롭게 살포된 양이 계속 축적된다.
토양의 영구적인 오염을 초래하는 고전적인 주범은 바로 비소이다. 1940년대 이후 담배 농사에 사용되던 비소는 상당 부분 다른 유기화학 살충제로 대체되었지만, 1932년에서 1952년 사이 미국에서 재배된 담배에 포함된 비소의 양은 오히려 300퍼센터나 증가했다.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 문제를 만나게 된다. 토양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식물 조직이 오염된 토양에서 흡수한 살충제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 양은 토양과 작물의 특성, 사용된 살충제의 특징과 농축도에 따라 각기 다르다. 유기물을 많이 함유한 토양은 유독 성분을 비교적 잘 배출하지만 당근은 다른 작물보다 유독 성분을 더 많이 흡수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기 대문에 린데인을 뿌릴 경우 당근이 토양보다 훨씬 더 높은 농축도를 나타낸다. 앞으로는 농작물을 심기 전에 살충제 사용을 위한 토양 분석이 필요한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충제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농작물이 토양 속에 남아 있던 농약을 빨아들여 시장에 내다 팔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살충제 사용이 멈추지 않고 화학 잔류물이 토양 속에 계속 축적되면서, 우리가 심각한 문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1960년 시러큐스 대학에서 만난 일단의 과학자들도 이런 사실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들은 화학물질이나 방사능물질처럼 '잠재적으로 위험을 지니며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수단'의 사용에 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인간이 행하는 몇몇 잘못된 시도는 토양의 생산성을 파괴할 것이며, 결국 절족동물이 이 땅의 주인이 될 것이다."
6장 지구의 녹색 외투
물, 토양, 그리고 지구의 녹색 외투라 할 수 있는 식물들 덕분에 지상에서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다. 현대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우리의 식량을 만들어주는 식물이 없다면, 인간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물에 대해 우리는 정말로 편협한 태도로를 보이고 있다. 즉각적인 이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식물을 잘 키우고 보살핀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별로 바람직하지 않거나 고나심 없는 거라면 즉시 이 식물을 없애버린다. 인간이나 가축에게 해를 끼치는 식물뿐 아니라 먹을거리를 제공해주는 식물이라고 해도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 볼 때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다면 바로 제거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별로 원치 않는 식물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거되는 식물이 있다.
식물과 대지, 식물과 식물, 식물과 동물 사이에는 절대 끊을 수 없는 친물하고 필수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식물 역시 생명계를 구성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부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관계를 교란하는 선택을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한참 후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려 깊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번창하는 '잡초 제거제'산업을 보면 이런 겸손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제초제의 치솟은 판매량과 급증하는 사용량이 오늘날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마구 없애버리는 식물들은 사실 건강한 토양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흔히 '잡초'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자연적 식물 군락은 토양 상태를 나타내주는 지표 구실을 한다. 그런데 화학 제초제를 사용하면 이런 유용한 기능이 상실되게 마련이다.
그 밖에 다른 몇 가지 성과들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생물학적 방제법은 원치 않는 식색을 조절하는 데 괄목한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는 자연이 이미 대면한 것이고 또 자연은 그런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잘 해결했다. 인간이 자연을 관찰하고 열심히 따라할 정도로 영리하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7장 불필요한 파괴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대지뿐 아니라 다른 생물들까지도 마구잡이로 살상했다. 최근 몇 세기 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서부 평원에 사는 버팔로의 도살, 시장에 내바 팔려는 사냥꾼들의 바닷새 남획, 깃털을 얻기 위한 해오라기 포획 등의 사례가 보여주듯 어두운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여기에 무차별적을 대지에 뿌려지는 살충제에 의한 새, 포유류, 물고기, 모든 종류의 야생동물 살해하는 새로운 국면의 위험이 추가되고 있다.
살충제는 대부분 비선택적이다. 없애려는 특정한 종만을 제거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맹독성이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살충제와 접촉하는 모든 생물, 가족들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 농부가 키우는 가축, 들판에서 뛰노는 토끼, 하늘 높이 날아가는 종달새가 모두 위험에 빠진다. 이런 동물은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사실 동물들과 그 주변 환경의 존재 덕에 인간의 삶이 더욱 즐거워진다. 그러나 인간은 그 보답으로 갑작스럽고 무미무시한 죽음을 선사한다. 셸던의 자연 관찰자들은 죽음에 이른 종달새의 증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근육 조절이 안 되어 날거나 설 수 없음에도 새들은 옆으로 드러누워 계속 날개짓을 해댔다. 발톱을 오그리고 부리는 반쯤 벌린 채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이보다 더 불쌍한 것은 얼룩다람쥐였다. "죽음에 이른 얼룩다람쥐의 모습은 특별하다. 몸을 웅크린 채 앞발로 가슴을 잡고 있었다.....머리와 목은 축 늘어졌고 입에는 더러운 흙이 들어 있었는데, 불쌍한 다람쥐가 죽어가면서 땅을 물어뜯기라도 할 듯 몸부림쳤음을 알려준다."
살아 있는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묵인하는 우리가 과연 인간으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 있을까?
8장 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
봄을 알리는 철새들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때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가득 찼던 아침을 맞는 것은 이색한 고요함뿐이다. 노래하던 새들은 갑작스럽게 사라졌고, 그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던 화려한 생기와 아름다움과 감흥도 우리가 모르는 사리에 너무도 빨라 사라져버렷다. 아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마을은 그런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파라티온이 살포된 캘리포니아 주의 과수원에서는 한 달 전에 살충제를 뿌린 나뭇잎을 손질하던 인부들이 쓰러져 쇼크 상태에 빠졌으나 능숙한 응급 치료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인디애나 주의 숲이나 들판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강가를 탐험하는 아이들이 아직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훼손되지 않는 자연을 찾아다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들이 오염 지역에 발을 들이는 것은 누가 막을 것인가? 잠시도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고 김시하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산책을 즐기는 사람을 발견하면 "지금 발을 내딛는 지역은 모든 초목이 치명적인 약품에 뒤덮인, 극히 위험한 지역"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하지만 이런 무서울 정도의 위험 속에서도 농부들은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는 채 찌르레기와 전쟁을 벌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냥 넘기고 말았다. 즉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잔물결이 일듯이, 유독물질의 연쇄 작용을 일으켜 죽음의 물결을 퍼트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한쪽 접시에는 딱정벌레들이 갉아먹는 나뭇잎을 올려놓고, 다른 족 접시에는 유독성 살충제가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몽둥이에 스러져간 새들의 잔해와 다양한 빛깔의 가련한 깃들들을 올려놓은 채 저울질한 사람은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하늘을 나는 새들의 부드러운 날개가 모두 사라져버린 황폐한 세상이 되더라도 벌레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설령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가 결정을 내릴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우리가 잠시 권력을 맡긴 관리인들이다. 이들은 아름다움과 자연의 질서가 깊고도 엄연한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잠깐 소홀한 틈을 타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9장 죽음의 강
몇몇 하천과 호수에서 일어난 수많은 물고기와 갑각류의 갑작스런 죽음은 해충 퇴치 사업의 비극적이고 놀라운 면모를 드러냈다. 하천의 지류와 강물에 섞여 간접적으로 강어귀로 흘러든, 보이지 않는 살충제의 피해는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측정하기도 쉽지 않지만 결국에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여러 문제가 발생했지만 아직까지는 만족할 만한 해결책이 없다. 우리는 농장과 삼림에 뿌려진 살충제가 상당수, 아니 아마도 모든 주요 강을 따라 바다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화학약품들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또 그 총량은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하며, 지금으로서는 바다로 흘러들어 희석되어야버린 물질을 밝혀낼 수 있는 좋은 검사 방법도 없는 상태다. 이 물질이 이동하면서 그 성분에 모종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변화한 화학물질이 원래의 물질보다 독성이 더 강한지, 아니면 약한지 아직 모른다. 아직 밝혀지지 않는 또 다른 문제는 여러 화학물질 간의 상호작용이다. 특히 이런 화학물질이 각종 무기물과 쉽게 혼합되는 바닷속으로 유입될 경우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정작 연구를 위한 기금은 애처로울 정도로 적다.
근해 어업과 원양 어업을 통해 수많은 사람은 매우 중요한 천연자원을 공급받는다. 이러한 자원들이 물속으로 흘러든 화학약품 때문에 위협받는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 강력한 독성을 지닌 약재를 만드는 데 매년 지출하는 비용의 아주 일부분이라도 건설적인 연구비로 전환할 수 있다면 이런 화학물질들을 더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고 또 그런 독극물이 수로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쯤이면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하게 될까?
10장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
농지와 숲을 대상으로 시작된 화학물질의 공중 살포 범위가 점차 확대되었고, 그 양도 급속도로 증가하여 이제는 한 영국 생태학자의 말처럼 '놀아운 죽음의 비'가 지구 표면에 내리고 있다. 또 독득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미묘하게 변화했다. 한때 독극물은 해골과 엇갈린 뼈가 그려진 용기에 담겨 있었고, "부득이하게 사용할 때에는 극도로 주의해야 하며 사용 목적 이외의 대상에는 절대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도 함께 표기되곤 햇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새로운 유기 살충제가 개발되고 비행기들이 남아돌자, 이런 경고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히고 말았다. 현재 사용되는 독극물은 예전 그 어떤 것보다 위험한데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다. 그리고 구체 목표인 곤충이나 식물뿐만이 아니라 화학약품이 뿌려진 지역에 사는 인간마저도 예기치 못한 재앙처럼 독극물과 접촉하게 되었다. 숲과 경작기만이 아니라 마을과 도시에도 유독물질이 살포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 방제의 효율성과 경제성은 지난 몇 년간 널리 알려져왔다. 흙을 쌓아 올리는 불개미의 습성을 고려해 각각의 흙무더기마다 화학약품을 살포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수월하다. 이런 방제에 필요한 비용은 1에이커당 1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흙무더기가 너무 많다면 기계적 방식을 도입할 수 있는데, 먼저 보습으로 땅을 갈아엎은 뒤 화학물질을 뿌리는 방식이 미시시피 주 농업시험장에서 개발되었다. 이 방법으로 불개미의 90~95퍼센터를 방제할 수 있다. 비용은 1에이커당 0.23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농부부의 대량 방제 사업은 1에이커당 3.5달라가량으로, 가장 비씨고 가장 피해가 크며 그 효과는 제일 작다.
11장 보르자 가문의 꿈을 넘어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은 살충제의 대규모 살포만은 아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소규모이지만 매일 또는 매년 지속적으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일이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침내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위험한 화학물질과 접촉하다 보면 결국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그 양이 미미해도 거듭되다 보면 몸 속에 화학물질이 축척되어 마침내 중독을 일으킨다.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된 사람을 제외하고 이런 오염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평범한 시민이라면 우아한 판매 기술과 얼굴 없는 설득자에게 속아 넘어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의 물질을 인식할 수 없게 된다. 아마 자신이 이런 물질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식품에 멋대로 유독물질을 뿌린 뒤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살피는 현 제도를 보면 "수염을 초록색으로 물들일 궁리를 하면서 그 수염을 가리기 위해 언제나 커다란 부채를 사용"하는 루이스 캐럴 (Lewis Carroll) 의 소설 속 백기사가 떠오른다. 살충제 문제의 궁극적인 해답은 덜 위험한 화학물질을 사용해서 위험을 대폭 줄이는 것뿐이다. 이미 그런 화학 물질 몇 가지가 선보였다. 피레트린, 로테논, 라이아니아 등 자연계의 식물들에서 추출한 물질이 여기에 포함된다. 최근에 피레트린 합성 대체물이 개발되었으니 약품 부족을 주장할 수도 없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살충제, 공팡이 제거제, 잡초 제거제 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구매자는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어떤 것이 위험하고 어떤 것이 비교적 안전한지 알 수 없다.
덜 위험한 농약을 만들어내는 것뿐 아니라 비화학적 방법을 개발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특정 곤충에게 병을 유발하는 박테리아를 응용하는 방법은 이미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도되었는데 이런 연구가 좀 더 활발해져야 한다. 농작물에 해로운 잔류물을 남기지 않는 해충 방제법도 연구되고 있다. 이런 방법에 대규모 전환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저 안심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오래전 이탈리아 보르자 가의 초대를 받은 손님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보르자 가에서는 손님을 초대해놓고 독살해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12장 인간이 치러야 할 대가
산업이 발저나면서 등장한 화학물질이 우리 환경을 삼켜버리면서 전혀 새로운 공중보건 문제가 대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천연두, 콜레라, 페스트 등이 나라 전체를 휩쓸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했다. 오늘날 우리의 고나심사는 곳곳에 편재하는 병원균이 아니다. 위생, 더 나은 생활환경, 신약 덕에 전염병은 비교적 잘 통제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은 근대적 생활방식을 수용하면서 인간 스스로 초래한 새로운 형태의 환경 오염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환경 문제는 복합적이다. 다양한 형태의 방사능, 끝없이 흘러나오는 살충제 등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화학물지은 세상 전역에 퍼져 있고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또 개별적/집합적으로 작용한다. 형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는 위험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지금까지 경함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위험한 물질들에 평생 노출될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책임 있는 공중보건 담당자는 화학물질의 영향은 오랜 기간 축적되며, 개인에 대한 위험은 전 생에게 걸쳐 노출된 화학물질 총랴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위험을 쉽게 무시하고 만다. 앞으로 재앙을 일으킬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 확실치 않은 위험은 그저 무시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청성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는 질병에만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적은 눈에 잘 띄지 않은 채 슬그머니 나타나는 법이다."고 현명한 의사인 르네 뒤보스(Rene Deubos) 박사는 말했다.
미시간 주의 울새나 미러미시 강의 연어와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주변 환경과 상호연관적/상호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이 뿌린 화학물질 대문에 개울가의 날도래가 중독되고, 연어 역시 수가 점점 줄어 멸종에 이른다. 인간이 뿌린 화학무질 때문에 각다귀가 중독되고, 이 물질이 먹이사슬을 따라 전달된 경과 호숫가의 새들이 희생된다. 느릅나무에 살충제를 뿌리면 이듬해 봄에는 아무런 새소리도 듣지 못하게 된다. 새들에게 직접 살충제를 뿌린 것은 아니지만 유독물질이 느릅나무 잎-지렁이-울새의 경로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문제를 자주 관찰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일컫는, 생명의 연결망 또는 죽음의 연결고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몸 속에도 생태계가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는 아주 사소한 원인으로 엄청난 결과가 생겨난다. 원인과 결과가 별 관계 없는 듯 보일 때가 많다. 상처 난 곳에서 한참 떨어진 어떤 곳에서 병의 징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떤 지점, 설령 그것이 분자 하나라 할지라도 여기에 변화가 생기면 결국 전체 시스템에 영향을 미쳐서 상관없이 보이는 기관이나 조직에 변화를 불러온다."는 의학 연구도 등장했다. 우리 몸의 신비하고 놀라운 기능에 관심을 갖고 실핀다면 그 인과관계는 절대 단순하지 않을뿐더라, 그 관계를 쉽게 설명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원인과 결과는 시간적/공간적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질병과 사망의 원인을 찾아니려면 언뜻 보기에는 아무 연관이 없는 사실들, 각기 다른 학문 영역에서 축적된 연구 결과들을 하나로 잇는 참을성을 발휘해야 한다.
사람들은 즉각적인 일에만 관심을 보인다. 문제가 즉시 드러나지 않고 그 형태도 명확하지 않으면 그저 무시하고 그 위험을 부정해버린다. 연구자들조차 아주 미미한 증세만으로는 원인을 추적하기 힘들다. 확실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병의 원인을 찾기가 힘들다는 사실은 현대의학이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염화탄화수소계 살충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간에 미치는 영향이다. 인간의 신체기관 중 간은 가장 독특한 기관이다. 그런 융통성 있고 필수 불가결한 기능을 다라갈 만한 기관은 없다. 많은 생리적 작용을 지배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아주 정미한 손상만으로도 심각한 결과가 발생한다 간은 지방 소화를 위한 담즙을 분비할 뿐 아니라 특별한 장소로 인해 소관으로부터 직접 혈액을 공급받는 혈액순환의 통로가 되기도 하며, 또 주요 음식물의 물질대사에도 깊이 관여한다 간은 당분은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했다가 정상적인 혈ㄹ당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양을 포도당의 형태로 혈액 속으로 방출한다. 혈장 내 콜레스테롤 농도와 성 호르몬을 적절한 수준으로 제어하기도 한다. 간은 다양한 비타민을 저장하는데, 그 중에는 간이 적절한 기능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비타민도 있다.
간이 제 기능을 못해서 유독물질에 대해 무기력해지면 우리 몸 전체는 무장해제된 것이나 다름없다. 유독물질 중 몇 가지는 물질대사의 부산물인데, 간은 재빠르고 효율적으로 이 물질에서 질소를 제거해 무해하게 만든다. 또 외부에서 들어온 유독물질을 해독하기도 한다. 말라티온과 메톡시클로를 '무해한' 살충제라고 말하는 것은 간의 효소가 이들의 부낮 구조를 바꿔놓아서 그 독성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간은 우리가 유독물질에 노출될 때마다 이런 방식으로 해독에 나선다.
이렇게 외부에서 침입해오는 유독물질과 내부에서 만들어진 유독물질에 대한 우리 몸의 방어선이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살충제로 손상된 간은 유독물질을 잘 분해하지 못할뿐더러 그 활동 전체가 위축된다. 또 그런 유독 화학물질이 미치는 영향력이 광범위한 데다 다양한 증상이 즉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진자 원인을 찾기도 힘들어진다.
중욯나 살충제인 염화탄화수소계와 유기인산계 화학물지은 약간 방법적 차이는 있지만 신경계에 직접 손상을 가한다. 각종 동물실험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관찰에서 이 점은 확실히 증명되었다. 널리 사용되는 유기 사풍제의 첫 번째 주자인 DDT 는 주로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쳐서 소뇌와 대뇌 운동피질을 손상시킨다. 독물한 교과서에 따르면 대량의 DDT 에 노출되면 찌르는 듯 피부가 아프고 가려우며, 또 몸이 떨리고 경련이 일어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작용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고 여겨지던 살충제 그룹 사이에도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 유기인산계 물질은 신경 보호 효소인 콜린에스트라제에 문제를 일으키는데, 간에 손상을 입히는 염화탄화수소류 살충제가 미리 작용한 상태에서는 그 독성이 더욱 커진다. 간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콜린에스타라제가 평소치 이하로 떨어진다. 여기에 유기인산계가 추가되면 그때는 격심한 증상이 나타난다 앞서 확인하 바와 같이 유기인산게 살충제가 물질끼리 상호작용을 일으키면 독성은 100배나 더 강해진다. 유기인산계 살충제는 다양한 약물이나 합성물질, 식품첨가제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합성물질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지 생각하면 그 결과를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무해하다고 생각되는 화학물질이 다른 물질을 만나 급격하게 변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 가장 적절한 사례는 메톡시클로르라는 DDT 의 친척뻘 되는 화학물질이다. (사실 메톡시클로르는 사람들의 말처럼 무해하지 않다. 최근의 동물실험에서는 멕톡시클로르가 가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뇌하수체 호르몬의 일부를 차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살펴보면 메톡시클로르의 엄청난 생물학적 위력을 떠올릴 수 있다. 다른 연구들에 따르면 시장에도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메톡시클로르만 사용할 때에는 다량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고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만일 간이 다른 원인 때문에 손상되면 결국 DDT 와 비슷한 영향을 미쳐서 신경계에 손상을 입히게 된다. 이러한 간 손상의 증상은 너무나 경미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한다. 다른 살충제나 사염화탄소를 함유하고 있는 세척제, 흔히 복용하는 진정제 등에도 모두 염화탄화수소류가 포함되어 잇어 간에 손상을 입히기도 한다.
신경ㄱ켸 손상은 증상이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유독물질에 노출된 지 한참 후에야 결과가 나타난다. 메톡시클로르와 다른 살충제들은 뇌나 신경계에 장기적인 손상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시 문제를 일이큰다는 디엘르린도 '기억력 감퇴, 불면증, 악몽'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의학 연구에 따르면 린데린은 뇌와 간 조직에 축적되어 '중추신경계에 심오하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하지만 벤젠헬사클로라이드 형태의 이 화학물지은 가정, 사무실, 식당 등에서 사용하는 훈증제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13장 작은 창을 통해서
생물학자 조지 왈드 (George Wald)는 눈의 시각 색소에 관한 독특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사용한 적이 있다. "멀리 떨어진 아주 작은 창문을 통해서는 오직 한 줄기 빛만을 볼 수 있다. 창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의 시야는 점점 더 넓어지고 결국 이 창을 통해 전 우주를 다 볼 수 있게 된다."
우리 몸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몸의 세포 하나, 그 다음엔 세포 속의 미세한 구조들, 그리고 마침내 그 구조 속의 분자들로 우리 관심이 옮겨가게 된다. 우연히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 외부의 화학물질이 미치는 심각하고 광대한 영향도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의 의학 연구는 생명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각 세포들의 기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몸의 에너지 생성 메커니즘은 건강뿐 아니라 생명 유지에도 바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기관이나 기능보다 중요하다. 세포 속에서 에너지 생성이 순조롭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몸은 없애려고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이런 시스템에 직접 영향을 미쳐 아름다울 정도로 정교한 신체 기능을 교란한다.
에너지 생성 작업은 특정 기관이 아닌 몸의 모든 세포에서 이루어진다. 마치 활활 타는 불꽃처럼 살아 있ㄴ은 세포는 생명을 지탱하는 에너지를 ㅁ나들기 위해 연료를 태운다. 이 과정에서 세포는 체온 정도의 은근한 열을 방출한다. 따라서 '태운다'는 말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기보다 시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수십억 개의 은근한 작은 불이 깜박거리리며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만일 이 불이 계속 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화학자 유진 라비노비치(Eugene RAbinowitch)는 이렇게 말한다. "심장은 박동을 멈추고, 중력을 거슬러 위를 향해 자라던 식물은 성장을 멈추게 한다. 아메바는 헤엄을 치지 못하고, 신경을 타고 감각이 전해지지도 않을 것이며, 인간의 뇌 속에서 사고가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세포 속에서 물질을 에너지로 변형시키는 과정은 물 흐르듯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자연계의 재생 사이클의 한 부분으로서 마치 쉴 새 없이 굴러가는 바퀴와 비슷하다. 탄수화물 연료는 한 알 한 알, 한 분자 한 분자씩 포도당 형태로 이 바퀴 속으로 들어간다. 계속되는 순환 과정을 거치며 연료 분자는 화학적 분해 작용으로 미세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이 변화는 질서정연하고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각 단계마다 특정한 효소의 감독과 통제를 받는다. 각각의 과정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폐기물 (이산화탄소와 물)이 방출되는데, 변화된 연료 분자는 또다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이 바퀴가 완전히 한 바퀴 돌고 나면 분자는 다시 새로운 분자와 결합하여 새로운 순환을 시작한다.
세포라는 화학공장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은 생명체가 지닌 경이 중 하나이다. 모든 기관이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놀라움은 더 커진다.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세포의 구조를 살펴보려면 현미경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호흡과 산화 과정의 대부분은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 내 미세기관에서 일어난다.
미토콘드리아는 미세한 효소들의 집단으로, 산화 과정에 필요한 각종 효소가 세포벽과 정확하고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만들어내는 '발전소'라 할 수 있다. 산화의 첫 번째이자 가장 예비적인 단계가 세포질 내에서 일어난 뒤 그 연료 분자는 미토콘드리아로 옮겨진다. 산화가 완전히 끝나는 곳이 바로 미토콘드리아인데, 여기서 우리 몸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이런 중요한 목적이 없다면 미토콘드리아 내에서 산화작용이 쉬지 않고 계속 이루어질 필요가 없다. 생화학자들은 산화 과정의 각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를 ATP(아데노신삼인산) 라고 하는데, 인산기를 세 개 갖고 있어서 이렇게 일컫는다. ATP의 인산기 중 하나를 다른 물질로 전이시키면 아에 따라 빠른 속도로 오가는 전자결합에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세 개씩 결합되어 있던 인산기 중에서 마지막 인산기가 떨어져나가면 에너지를 발생한다. 그러면 또 다시 순환이 일어나는데, 이를 '순환 내 순환'이라 한다. 이 에너지가 근육을 수축하는 것이다. ATP가 가진 인산기 세 개 중에서 하나가 빠져나가고 두 개만 남아 있으면 ADP(아데노신이인산) 가 된다. 하지만 이 순환이 계속되면서 또 다른 인산기를 만나 다시 ATP 상태가 된다. 산화 과정을 이해하려면 축전지를 떠울리면 된다. ATP는 축전지가 충전된 상태이고 ADP는 그 축전지가 방전된 상태라 할 수 있다.
ATP 는 미생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는 모든 유기체에서 발견되는 에너지의 보편적 형태이다. ATP는 근육세포에 기계 에너지를, 신경세포에는 전자 에너지를 전달한다. 개구리, 새, 인간 등으로 성장하기 위해 역동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잇는 정자세포와 난자들,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세포들에도 ATP 가 공급된다. ATP 에너지의 일부분은 미토콘드리아에서 소비되지만, 대부분은 세포 내의 각 부분들에 전달되어 다양한 활동의 원동력으로 사용된다. 이런 기능을 위해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근육세포에서는 수축섬유 주변에 모여 있다. 신경세포에서는 다른 세포의 연결되는 부위에 몰려 있어서 자극 전달을 위한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정자세포에서는 머리와 꼬리가 연결되는 부위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유리 상태의 ADP 와 인산기가 결합해서 새로운 ATP를 만들게 되는 과정을 공여 인산화라 한다. 공여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단이 사라져버린다. 호흡은 계속되지만 에너지가 안 만들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열을 내지만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는 엔진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근육이 수축하지 못하고 신경전달계를 통해 자극이 전해지지도 못한다. 정자세포는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갈 수 없으며, 난자는 그 복잡한 분열과 합성 과정을 계속 이어나갈 수 없다. 공여 반응이 얼어나지 않는다면 배아세포부터 다 자란 개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기체에게는 심각한 재난이 닥치게 된다. 세포의 죽음, 더 심하게는 그 개체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산기 공여 과정이 실패하는 경우는 어떤 때일까? 바로 방사능 때문이다. 방사능에 노출된 세포가 죽는 이유는 방사능이 에너지 결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살출제와 제초제로 대표되는 상당수의 화학물질은 산화와 에너지 발생을 분리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페놀계 화학물징른 물질대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쳐 급격한 체온 변화를 일으키고 결국 치명적 위험을 불러온다. 인산기 결합 과정이 실패로 돌아갔는데, '엔진은 계속 돌아가서 과열되는' 현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다이나트로페놀과 펜타클로로페놀은 제초제로 널리 사용되는 페놀계 물질 중 대표적인 예다. 제초제에 포함되어 인신기 결합 과정을 방해하는 또 다른 물질은 2,4-D 이다. 염화탄화수소 계열인 DDT 가 산화와 에너지 발생을 방해한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고, 좀 더 연구가 계속된다면 이 그룹 중 문제가 있는 더 많은 물질이 밝혀질 것이다.
살충제들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은 산화라는 바퀴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쇠 지렛대 구실을 한다. 산화 과정에 관여하는 횻소 활동을 억제하는 살충제는 DDT, 메톡시클로르, 말라티온, 페노티아진 그리고 그 밖에 다양한 다이나이트로 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에너지 생성의 전 과정을 차단하고 세포가 사용할 산소를 빼앗아간다. 이런 손상은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데, 여기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중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점차 감소하는 출산율 역시 생물학적 산화가 방해받고 ATP 가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아서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수정 이전이라 해도 난자에는 ATP 가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정자가 들어와 본격적인 수정이 일어나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정자세포가 난자에 도달해 그 중심부로 돌진해 들어갈 때에도 ATP가 필요한데, 이때 ATP는 정자세포의 꼬리 부분에 몰려 있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주로 발생한다. 일단 수정이 이루어져 세포분열이 시작되면, 배아가 잘 자랄 수 있는지의 여부는 ATP 형태의 에너지 공급에 달려 있다. 발생학자들에 따르면, 세포분열을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상인 개구리 알과 성게를 연구해보면 ATP 보유량이 어느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알들이 세포분열을 중단하고 즉시 죽는다고 한다.
인류 전체를 놓고 볼 때, 개개인의 생명보다 궁극적으로 더욱 소중한 것은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유전형질이다. 영겁처럼 긴 시간동안 진화를 거쳐 만들어진 우리의 유전자는 현재의 모습을 규정할 분 아니라 인간의 미래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유전자는 희망찬 약속이 될 수 있고 커다란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유전자의 변이는 이 시대에 대한 협박, '우리 문명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위협'이다.
방사능의 공격을 받은 세포는 여러 피해를 입게 된다. 정상적 분열 능력이 파괴되며 염색체 구조나 유전자에 직접적인 변활르 초래하여 후손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 돌연변이는 미래 세대에 전혀 새로운 형질을 전해주게 된다. 심한 경우 세포가 즉시 죽기도 하고, 수년 뒤 악성 형질을 지니는 경우도 있다.
페놀계 화학물질의 세례를 받은 식물은 심각한 염색체 파괴, 유전자 변형, 놀라운 돌연변이 등 '돌이킬 수 없는 유전형질 변이'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돌연변이는 유전학적 실험에 자주 사용되는 초파리를 페놀에 노출시켰을 때에도 나타난다. 초파리를 일반적인 살충제나 우레탄에 노출시키면, 심하게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돌연변이를 겪는다. 우레탄은 카라바민산염 계열 화학물질로 살충제와 다른 농약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세포분열을 중단시키는 효과 때문에 카르바민산염 중 두 종류는 저장 중인 감자가 싹을 튀우지 못하도록 하는 데 사용된다. 그 중 하나인 말레산하이드라자이드(maleic hydrazide)는 강력한 돌연변이 유발 물질로 여겨지고 있다.
벤젠헥사클로라이드나 린데인을 처치한 식물은 뿌리 부분에 마치 종양처럼 혹이 생기면서 모양이 흉하게 일그러진다. 염색체 수가 2배로 늘어나고 점점 부풀어올라 세포의 크기가 커지면서 더 이상 세포분열이 불가능할 때까지 기형적 변이가 계속된다.
제초제인 2,4-D 를 식물에 사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염색체가 줄고 굵어지며 덩어러지고 뭉쳐서 세포분열이 심각할 정도로 지체된다.
최근 염색체 변이 연구에 대단한 고나심이 몰리면서 그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1959년 영국과 프랑스 연구팀이 각자 실행한 연구 결과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인간을 괴롭히는 몇 가지 질병은 정상 염색체 수의 손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몇 가지 질병과 이상 증세는 염색체 수가 정상과 다르기 때문에 발생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다운증후군의 경우 염색체가 정상인보다 하나 더 많은 경우에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졋다. 때로는 이 문제의 염색체가 기존 염색체에 달라붙을 때도 있어서 염색체 수가 46개 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여분의 염색체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총 수는 47개다. 이런 경우, 발병 원인은 환자의 앞 세대에서 이미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 만성백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에게서는 정상인과 약간 다른 점이 발견되었다. 이들의 혈액세포에서 일관된 염색체 이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환자들의 피부세포의 염색체를 살펴보면 정상이다. 결국 염색체 문제는 배아세포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생활하는 동안 일부 특정한 세포 (이 경우, 혈액세포의 전구세포)가 손상을 입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염색체의 부분 손실로 세포의 정상 행동을 지시하는 '정보'가 전해지지 않아 병이 생긴 것이다.
이와 관련한 연구들이 시작되면서 염색체 손상으로 인한 질병의 목록도 이후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인 클라인펠터증후군은 성염색체 중 하나가 중복되어 생기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남성이지만 X 염색체를 2개 갖고 있어서 (남성의 정상 염색체 XY 대신 XXY 염색체를 갖고 있다) 불임은 물론 키가 지나치게 크고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이와 반대로 성염색체가 하나밖에 없는 경우는 (XX 나 XY 대신 XO) 여성이지만 2차 성징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X 염색체는 다양한 특징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담겨 있기 때문에 이 병에 걸리면 여러 가지 신체적 문제(가끔 정신적 문제)가 나타난다. 이 병은 터너증후군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가지 모두 그 원인이 제대로 알려지기 이전부터 의학 문헌에 등장하곤 했다.
원형질에서부터 진화를 시작해 오늘날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지난 20억 년 동안 유전형질은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져왔고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때까지 우리 것이다. 그런 유전형질에 대한 위협을 줄일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원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유전형질 보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화학물질 제조업자들은 법률에 다라 제조물의 독성 여부를 검사받아야 한다. 그러나 화학물질이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검사가 이루어지지지 않고 있으며, 그런 검사를 요구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제대로 응하지 않을 것이다.
14장 네 명 중 한명
생물들이 암과 벌인 싸움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서 그 기원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암과 벌인 전쟁이 태양, 폭풍, 토양 등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것만은 틀림없다.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 중 몇 가지는 생명에 위협이 되는데, 생물들은 이런 요소들에 적응을 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없어지든지 선택해야 한다. 태양의 자외선은 악성질환을 일으킨다. 또 특정 암석이 내뿜는 방사능, 토양이나 바위에서 씻겨 내린 비소 성분 등은 음식이나 식수를 오염시키기도 한다.
생명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는 부적절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생명체가 등장하고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생물이 생겨났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흐르는 시간, 즉 자연의 시간 동안 생명체는 각종 파괴적인 세력에 적응해갔는데,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은 사라지고 저항력이 강한 것만이 살아남았다. 이런 자연적 발암물질들은 여전히 악정질환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 수가 적고 생명체 역시 오랫동안 이런 상황에 적용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인간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생물체 중에서 유독 혼자만 암 유발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 인간이 만들어낸 발암물질들은 지난 몇 세기 동안 우리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방향족 탄화수소류의 일종인 매연이다. 산업 시대의 여명이 밝으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고 그 변화에 점점 더 가속이 붙었다. 생물학적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보유한 새로운 화학물질과 물리적 동인들이 자연환경을 대신하게 되었다. 인간은 이런 발암물질을 막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인간의 생물학적 유전형질이 서서히 진보해온 것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놀라운 물질들은 인체의 방어벽을 쉽게 뚫을 수 있었다.
초기에 발암물질로 추정된 살충물질 중 하나가 바로 비소였다. 비소는 제초제로 사용되는 비산나트륨과 살충제로 쓰이는 비산칼륨을 비롯한 각종 화학물질에 들어 있다. 인간과 동물에 암을 유발하는 비소의 위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루 오래전부터였다.
각다귀와 진드기를 없애는 데 쓰이는 새로운 유기 살충제들에도 발암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관련 안전 수칙이 법으로 제정되어 있지만, 변화는 사왕을 적절히 규제할 법률 제정이 느릿느릿 진행되는 몇 년 동안 사람들은 발암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야 해싿. 약간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는 오늘날 일반들에게 '안전하다'고 이야기되는 물질이 내일은 극도로 유해한 물질로 판명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흥미로운 사례다.
살충제 중 발암물질로 알려진 것은 진드기 제거제만이 아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실 실험에 따르면 DDT 는 간에 종양을 일으키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카르바민산염 그룹에 속한 제초제 IPC 와 CIPC 는 피부에 종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졋다. 종양 중 몇 가지는 악성이었다. 이 물질들은 종양 발생을 유도하고, 이 종양은 주변에 펴져 있는 다른 화학물질에 의해 악성종양으로 전이해갔다.
제초제인 아미노트라이아졸은 실험동물에 갑상선암을 일으켰다.
이 새로운 염호탄화수소 살충제와 제초제가 어떤 효과를 내는지 알려면 상다안 시간이 지나야 한다. 대부분의 악성질환은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징후가 나타나려면 그 희생자의 생애 상당 부분을 관찰해야 한다. 1920년대 초반 도로표지ㅂ판에 형광 도료를 칠하던 여성 근로자들은 페인트 붓을 입에 댈 때마다 도료에 ㅗ함되어 있는 라듐을 조금씩 흡수하게 되었다. 그 중 몇 명에게서 15년 이상 지난 뒤 골육종이 발견되었다. 작업장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될 경우 그 잠복기는 15~30년 또는 그 이상이다.
세포분열이라는 정상적이고 필수적인 과정이 이렇게 기괴하고 파괴적ㅇ으로 변하는 이유를 밝히려면 많은 과학자의 노력과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던 세포분열 과정이 왜 갑자기 거칠고 조절할 수 없는 암세로 증식으로 변질되는 것일까?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다. 암세포는 증식 과정에서 다양한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데, 암의 발생 형태가 다 다르고 암세포의 성장과 퇴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제각각인 걸 보면 그 원인 역시 틀림없이 다양할 것이다. 모든 문제는 세포가 입은 사소한 피해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서 진행되는 연구 중 어떤 것은 암 연구를 겨냥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연관될 수도 있는데, 이런 작은 빛이 모여서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발고 환한 빛이 될 것이다.
암세포의 기원에 관한 매우 인상적인 이론 중 하나는 독일 막스 클랑크 연구소의 생화학자 오토 바르부르크(Otto Warburg) 박사가 전개한 것이다.
바르부르크 박사는 방사능이나 화학 발암물질이 정상세포의 호흡 작용을 방해하여 세포에서 에너지 생성이 저해된다고생각했다. 적은 양의 화학물질이라도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 심각한 해를 입게 된다.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다. 호흡에 치명적인 독소 때문에 세포가 죽기도 하지만, 간신히 살아남은 세포들은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애쓴다. 손상을 입은 세포는 많은 양의 ATP를 만들어내는 효율적인 회로를 작동할 수 없어 원시적이고 덜 효과적인 발효를 통해 에너지를 만들려 노력하는데, 이 노력은 장시간 계속된다. 발효는 세포분열 과정 내내 계속되고 그 이후 만들어진 세포들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호흡하게 된다. 일단 변칙적 방식으로 홓습하게 된 세포는 1년 이나 10년 또는 몇 십 년이 지나도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없다. 잃어버린 에너지를 되찾으려 힘겹게 노력하는 살아남은 세포는 더 많은 발효를 통해 에너지 손실을 보충하려 한다. 다윈의 말처럼 상황에 가장 적합하거나 잘 적응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마침내 발효로 만들어지는 에너지의 양이 호흡으로 만들어지는 에너지와 같아지는 순간에 도달한다. 바로 이 시점에 정상 체세포에서 암세포가 만들어진다는 의견이다.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전이되는 또 다른 방식은 염색체 이상이다. 이 분야의 매우 유능한 연구자들은 염색체에 손상을 입히고 세포분열을 방해하며 돌연변이를 초래하는 인자들을 의심의 눈으로 조사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돌연변이는 암을 유발한 위험이 있다고 한다. 돌연변이는 일반적으로 배아세포에서 나타나서 앞으로 태어날 세대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여겨지지만, 체세포에서도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돌연변이 때문에 암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바앗능이나 화학물질의 영향을 받은 세포는 세포분열을 관할하는 신체의 조절 기능에 이사이 생기는 돌연변이를 일으킨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돌연변이 현상이 나타난 세포는 통제불능 상태에 놓이고 조절 불가능할 정도로 세포 수가 급증하게 된다.
염색체 이상으로 암이 발생하는 과정을 처음으로 추적한 사람은 뉴욕 슬론-케터링 연구소의 알베르트 레벤 (Albert Leven) 과 존 J. 비젤이었다. 악성종양이 먼저 생기는지 염색체 이상이 먼저 발생하는지에 관해서 이 연구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염색체 이상이 악성종양을 일으킨다."고 단언한다. 이들은 염색체에 중요한 손상이 생기고 그 결과 세포가 불안정해져서 많은 세포 세대가 시행착오를 겪에 된다고 생각했다. 이 기간 (오랜 잠복기)에 돌연변이가 계속되다 보니 세포가 통제를 받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증식해 암이 된다는 것이다.
염색체 불안정론을 주장한 선구자 오이빈 빙에는 염색체 증가가 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벤젠헥사클로라이드와 그 유사물질인 린데인이 실험 대상 식물의 염색체를 2배로 증가시키고,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재생불량성빈혈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세포분열을 방해하고 염색체를 파괴하며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다른 살충제 역시 동일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방사능이나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때 일어나는 질환 중 백혈병이 가장 흔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물리적 또는 화학적 돌연변이 유발물질이 공격하는 주요 대상은 활발하게 분열하는 세포들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신체조직이 포함되지만 그중 조혈조직이 특히 중요한 목푝 된다. 골수에서는 1초당 1000만개의 새로운 적혈구세포가 만들어져 혈류 속으로 방출된다. 백혈구는 림프관과 골수세포 등 다양한 장소에서 만들어지는데 그 수량 역시 엄청나다.
암을 유발하는 다른 돌연변이 물질은 우레탄이다. 임신한 쥐에게 이 물질을 주입하면 이미 쥐뿐 아니라 새끼 쥐에도 암이 생긴다. 새끼 쥐는 태어난 후에는 우레탄에 노출되지 않았으므로, 결국 화학물질이 태반을 통해 새끼에게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레탄이나 그 밖에 관련 화학물질에 노출된다면 태아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휴퍼 박사는 경고한다.
카르바민산염 계열 물질인 우레탄은 IPC 와 CIPC 등의 제초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암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카르바민산염 계열의 화학물질은 살충제, 제초제, 곰팡이 제거제 뿐 아니라, 가소제, 의약, 옷, 절연제 들에 널리 사용된다.
우리의 미래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행할 당시 전염병이 심각하게 퍼진 상황보다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더 낙관적이다. 그때 온갖 병원체가 가득한 것처럼 오늘날 세상에는 발암 물질이 가득하다. 그 당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병원균을 퍼뜨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오느날 대부분의 발암물질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바로 인간이다. 그러므로 원하지만 한다면 그 위험물질의 상당수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우리 환경에 등장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먼저 좀 더 편하고 손쉬운 생활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둘째 화학물질의 제조와 판매를 경제와 산업의 한 부분으로 편입하는 과정을 통해서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화학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일은 비현실적인 목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생활에 필수적인 성분이 아니다. 이런 물질들을 제거하면 전체 발암물질의 양이 훨씬 줄어들고, 그 결과 4명 중 1명에게서 암이 발생할 가능성 역시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음식과 식수와 공기 속의 위험물질은 수년간 지속적으로 계속 흡수되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요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학 전문가들은 암 발생의 환경 요인을 규명해 그 인자들을 제거하거나 효과를 줄이면 악성종이 감소할 수 있다는 휴퍼 박사의 의견에 동조한다 이미 암에 걸렸거나 암에 걸린 징후가 나타난 사람들을 위한 치료법 개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위한 암의 예방책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15장 자연의 반격
자기만족을 위해 자연을 일정한 틀에 꿰맞추려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다가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결정적인 역설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이 만든 틀에 순응하지 않는다. 곤충은 자신에 대한 화학적 공격을 우회적으로 피해가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네들란드의 생물학자 C.J 브리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바로 곤충의 세계다. 이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곤충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일어난다. 곤충의 신비를 깊숙이 꿰뚫어보는 사람은 그 경이에 숨이 막힐 것이다. 곤충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자연의 균형이란 삶이 단순하던 옛날이나 가능한 것으로, 이제는 완전히 잊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넘겨버리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나, 이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물론 먼 옛날 홍적세와는 다르겠지만 자연의 균형은 오늘날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중력의 법칙을 무시할 수 없듯이 위험한 상황에 놓인 우리 역시 복잡하고 정확하며 고도로 잘 짜인 생물계를 무시할 수 없다. 자연의 균형이 현재 모습 그대로 유지되는 '불변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균형이란 유동적이고 계속 변화하며 조절과 조정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인간 역시 자연이 이루는 균형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가끔씩 인간이 이런 상태를 자의적으로 바꾸곤 한다. 그 결과 인간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문제가 생긴다.
16장 밀려오는 비상사태
만일 다윈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적자생존에 관한 자신의 이론이 인상적으로 증명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놀랄 것이다. 화학 방제가 대세인 상황에서 약한 곤충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곤충을 제거하려는 인간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많은 지역에서 가장 강하고 환경에 잘 걱응하는 종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다윈도 살충제 내성을 획득하는 곤충들처럼 '자연 선택'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사례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신체구조나 행동, 생리학적 특성과 개체군의 다양성 등을 고려할 때 화학물질의 공격에 가장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살충제로는 약한 곤충만을 없앨 뿐이다. 살아남은 곤충에게는 위험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형질이 전해진다. 이들이 퍼뜨린 후손은 선조로부터 '강인함'을 물려받았다. 이들을 없애기 위해 더욱 강력한 살충제를 사용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몇 세대가 지나면 강한 종과 약한 종이 고루 섞여 나타나는 대신 외부 자극에 강한 내성을 지닌 곤총만이 남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희망에 차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만일 곤충이 화학물질에 내성을 지닌다면 인간 역시 그런 내성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백 또는 수천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내성이란 개인별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다른 생명체보다 유독물질에 영향을 덜 받는 능력을 타고났다면 살아남아서 후손을 낳을 가능성도 더욱 커진다. 내성이란 수많은 세대를 거치고 오랜 시간이 흐려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100년 동안 세대가 평균 세 번 바뀐다. 하지만 곤충의 경우에는 며칠 또는 몇 주 단위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다.
해충 문제를 전적으로 다룬 1952년 농무부 <연감>은 해충이 점점 더 내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해충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는 살충제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 시도되지 않은 유일한 화학물질이 곤충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없애는 것이라면,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충고를 한지 7년만인 1959년, 코네티컷 주의 한 곤충학자는 <농식품화학 저널(Journal of Agricultural food Chemistry)>에서, 한두 곤충에 새로운 살충제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아마도 시도할 수 잇는 마지막 화학물질일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브리에르 박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가 위험한 길을 탐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방제법에 관해 열심히 연구를 해야겠지만 이 방제법이 생물학적 관점이어야지 화학적 관점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목적은 폭력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주의 깊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올바른 방향을 향하는 것이다.....더욱 숭고한 목표와 깊은 통찰력이 필요해졌지만, 많은 연구자들에게서는 이런 점을 발견할 수 없다. 생명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 경외감을 잃어서는 안된다.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 살충제 같은 무기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면 야만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과학적 자만심의 자리 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
17장 가지 않은 길
우리는 지금 두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에 등장하는 갈림길과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결과가 마찬가지이지는 않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온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한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는 '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그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동안 무분별하고 놀라운 위험을 강요당해왔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지금까지 충분히 인내해온 우리가 마지막으로 '알 권리'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그때야말로 독극물로 세상을 가득 채우려는 사람들의 충고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또 다른 어떤 길이 열려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화학 방제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한다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선택이 존재한다. 어떤 것은 이미 사용되었고 화려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아직 실험 중인 것도 있다. 또 상상력 풍부한 과학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가 실험으로 옮겨질 날만을 기다리는 방법들도 있다. 이것들 모두에는 공통점이 있다. 방제 대상이 되는 유기체와 이 유기체가 속한 전체 생명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생물학적 해결법이라는 점이다. 곤충학자, 병리학자, 유전학자, 생리학자, 생화학자, 생태학자 등 광범위한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생물 방제라는 새로운 분야를 위해 지식과 창의적인 영감을 쏟아붇고 있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생물학자 칼 P. 스원슨 (Carl P. Swanson)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과학은 강에 비유할 수 있다. 분명치 않지만 신중한 근원을 지니고 있다. 빠르게 흐르기도 하지만 넓게 퍼져 흐르기도 한다. 가뭄이 들 때도 있고 홍수가 난 듯 넘쳐흐를 때도 있다. 과학이라는 강은 많은 연구자의 노고로 쉬지 않고 계속 흐를 수 있으며 다양한 사고의 유입으로 더욱 풍부해진다. 서서히 진보하는 개념들과 종합적인 사고로 더 깊고 넓게 흐르는 것이다."
근대적 의미의 생물학적 방제라는 분야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한 세기 전 농부들의 골칫거리였던 해충을 없애기 위해 천적을 도입한 것이 첫 번째 시도였다. 시작 당시에는 성공 여부가 불명확했다.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는 듯 또는 아예 흐르지 않는 듯 보였지만 놀라운 성공에 자극받아 때때로 맹렬히 흘러가기도 했다. 하지만 1940년대 들어 놀라운 새 화학물질에 현혹된 응용곤충학자들이 생물학적 방제에 등을 돌리고 '화학 방제'에 발을 들여놓은 동안은 심각한 가뭄이 들어 강이 제대로 흐르지 못한 시기라 볼 수 있다. 화학 방제법으로 해충 없는 세상이라는 목표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부주의하고 거리낌 없는 화학물질 사용은 해충이 끼치는 피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험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사실이 확실해지고 이와 관련한 새로운 사고의 물줄기가 공급되면서 생물 방제라는 과학의 강은 다시 굽이칠 수 있게 되었다.
숲속의 자연 생태계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영구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삼림학자들은 다양한 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화학 살충제 사용은 잘해야 임시변통일 뿐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없다. 숲속 개울은 헤엄치는 물고기를 죽이고 모든 곤충에게 심각한 질병을 불러일으키며 자연의 기능을 완전히 파괴할 뿐이다. 이런 폭력적인 수단에 대해 루페르츠 호펜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화학물질은 숲속에 사는 생물들의 공생관계를 완전히 굘란할 뿐이며 해충으로 말미암은 재앙은 점점 더 짧은 주기로 되풀이된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최후의 자연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이런 부자연스러운 기만은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새롭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창의적인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들, 그 생명체의 밀고 밀리는 관계, 전진과 후퇴이다. 생물들이 지닌 힘을 고려하고 그 생명력을 호의적인 방향으로 인도해갈 때, 곤충과 인간이 이해할만한 화해를 이루게 될 것이다.
유독물질 사용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는 현 상황에 대해 근원적인 고찰을 해야 할 것이다. 동굴 속 원시인이 사용하던 곤봉처럼 조악한 화학물질의 세례는 생태계라는 유기적 그물을 위협하고 있다. 생태계는 한편으로 너무나 연약해서 쉽게 파괴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을만큼 튼튼하고 회복력이 강해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역습해온다. 아무런 '고결한 목적'도 없고 겸손하지도 않은 화학 방제 책임자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자연의 위대한 능력을 계속 무시해왔다.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네안데르탈인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으로, 자연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응용곤충학자들의 사고와 실행방식을 보면 마치 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그렇게 원시적 수준의 과학이 현대적이고 끔찍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 곤충을 향해 겨누었다고 생가가는 무기가 사실은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말로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