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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뇌 과학의 모든 역사 - 현재편 Mattew Cobb

by 강대원 2024. 6. 18.

10. 기억 - 1950년대부터 오늘날

돌아온 국재화 논쟁

 

 

   19세기 중반 기억의 신경 기제에 관한 연구에서 지배적이었던 견해 중 하나는 칼 래슐리(Karl Lashley)가 동물실험에서 수술적 처치에 의해 발생한 학습 장애가 피질의 손장 정도와 비례하여 나타난다는 사실을 통해 밝힌 의견이었다. 그는 이러한 결과를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했다. 첫째 세포들은 모두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 뇌 전체가 기억의 형성과 회상에 기여하는 '양작용설'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래슐리는 19세기의 풀루랑스와 마찬가지로 뇌의 활동은 전체적으로 바라보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겼다. 

    1950년에 래슐리는 자신이 기억에 관해 평생 연구한 내용들을 정리하여 '엔그램을 찾아서'(In search of the Engram) 라는 제목으로 케임브리지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기억이 뇌 전역에 고루 퍼져 있다고 주장했다. (기억의 물리적 흔적이라는 의미의 ''엔그램'(engram)은 1904년 독일의 동물학자 리하르트 제몬(Richard Semon) 이 만든 용어이며 영어로는 1921년 그의 저서 <<므네메>>(The Mneme) 의 번역판에서 처음 등장했다.)일생토록 엔그램을 찾아 헤맨 성과를 검토한 그는 그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며 다음과 같이 씁쓸한 결론을 내렸다.

   

     일련의 실험 결과, 어떤 성질이 기억에 적용되지 않으며 어떤 영역이 기억을 관장하지 않는지에 관한 정보만을 잔뜩 얻었다. 실험은 엔그램의 실질적인 본질에 대해 그 무엇도 직접적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기억 흔적의 국재화를 뒷받침할 근거들을 검토하다 보면 이따금씩 학습이란 그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기억이 뇌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는 래슐리의 견해는 펜필드가 1951년 학회에서 처음 보고한 기묘한 발견으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명백하게 부정되었다. 펜필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의식적인 주의를 주며 "동시에 이를 측두피질에 기록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의 환자들이 겪었던 기이한 경험을 설명했다. 그가 여기서 말한 기록은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며 뇌의 중간 부분의 피질 어딘가에 저장되어 복잡한 신경섬유 다발을 통해 피질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다 자극이 주어지면 이러한 감각들로 표상되는 신경충동이 "그 같은 패턴을 생성했던 측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다시 말해 경험이 처음 기록되었던 신경망과 동일한 망을 타고 거꾸로 재생된다는 것이다. 마치 펜필드가 엔그램을 활성화시킨 듯했다. 

   펜필드가 자극을 가했던 영역의 세포 수와 관계없이(사실은 적어도 수백만 개의 세포가 포함되어 있다.) 결과는 결과였다. 뇌 깊숙한 곳에 측두엽의 아주 특정적인 부위와 연결된 기억은 바로 그 영역을 전기적으로 자극함으로써 불어일으킬 수가 있었다. 

   우리의 일상적인 기억은 어떤 사건을 초 단위로 그대로 재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상당히 모호하며, 뇌가 만들어낸 것이다 보니 가짜 기억이나 맥락상 추측하여 채워넣은 요소들도 포함되어 있다. 펜필드가 불러일으킨 경험은 단순히 헨그램의 활성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뇌 기능의 다른 양상들과 관련된 또 다른 요소들을 끼워넣음으로써 환자들이 보고한 괴상하고 몽환적인 특성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한 가지는 분명했는데, 전극이 상기시켰던 그 기억들이 전혀 특별한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1951년에 펜필드는 자신이 자극을 가했던 영역을 '기억피질'(Memory cortex) 이라고 묘사하며 이곳이 바로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라고 제안했지만 1958년에는 기억이 사실 그가 자극을 가했던 곳에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음을 인정했다. 

    1937년, 펜필드는 조금 더 단순하게 뇌 수술을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자극을 가했던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번에는 의식이 있는 상태의 인간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 달랐다. 이러한 결과들을 종합하기 위해 펜필드는 의학 전문 삽화가 호텐스 캔들리(Hortense Cantlie) 에게 그림을 의뢰했다. 그 결과 완성된 작품은 신체의 각 부위를 뇌의 표상과 비례하는 크기로 나타낸 괴기스러운 형상이었다. 펜필드가 '호문쿨루스'(homunculus) 라고 불렀던 이 그림은 뇌가 어떤 시각으로 신체를 바라보는지를 시사했다. 일상 속 경험을 통해 예상했던 바와 같이 혀, 손, 얼굴은 특히 잘 표상되어 있다. 그밖에 생식기나 직장 등 매우 민감한 다른 신체 부위들은 그려지지 않았다. 

 

    1950년에 펜필드는 뇌의 감각영역 (왼쪽)과 운동 영역 (오른쪽)을 나누어 횡단면으로 나타낸 훨씬 정교한 그림을 선보였다. 이는 감각피질과 운동피질이 신체에 대해 서로 다른 표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사소한 예를 들자면, 치아와 잇몸은 감각피질에는 잘 표상되어 있지만 운동피질에서는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운동피질에선느 손이 지배적인 반면, 감각피질에서는 얼굴 하단부가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뇌 전역에서 신체 분위에 대한 표상이 이렇듯 불균등하게 나타난 것은 진화 및 생태학적으로 생겨난 결과로서, 다른 영장류에게서는 다른 형태의 패턴이 관찰된다. 

      펜필드의 호문쿨루스는 환자들의 반응을 평균 낸 정보를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개인별로는 뇌 영역과 신체 부위 사이의 연관성이 그림에 묘사된 것과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필드의 그림은 뇌가 신체에 대한 정밀한 지도와 더불어 매우 특징적인 사건을 저장하고 다시 불러오기 위해 극히 세부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보이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대부분 과학자들의 눈에는 뇌 기능이 고도로 국재화 있는 듯 비쳤다.

     1949년, 캐나다의 심리학자 도널드 헵(Donald Hebb)은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현대의 생물학적 기틀을 닦아준 핵심 요소들이 담긴 <<행동의 조직>>(The Organization of Behaviour) 을 발표했다. 그는 마음은 그저 뇌 활동의 산물이라는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출발했다.

  헵의 책은 학습, 지각, 정신질환을 비롯하여 인간의 뇌에 관한 모든 연구 분야를 탐구함으로써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도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가 제고한 통찰 중 하나가 바로 세포 수준에서 학습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개념이었다. 헵의 주장에 의하면 기억의 구조는 복합한 '삼차원의 격자 형태로 뭉친 세포군'(조금 덜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망 또는 네크워크를 가리킨다.)과 그 세포들이 연결된 방식의 두 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헵이 기억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가설이라며 설명한 바는 다음과 같다. "세포 A의 축삭이 세포 B를 흥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으면서 반복적으로 또는 지속적으로 세포 B를 발화시키는데 가담할 경우, B 을 발화시키는 세포 중의 하나로서 A 의 효율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세포 A 나 B, 아니면 두 세포 모두에게서 일종의 성장과정 또는 대사의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헵의 주장은 곧 뉴런들이 함께 활성화될 때 그 사이의 시냅스가 발달하고 점차 강력해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쉽게 말해 '같이 발화(fire) 하는 세포들은 서로 연결(wire) 된다.') 헵도 시인했다시피 이러한 개념은 사실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이지만 현대 신경해부학과 신경생리학을 고려, 이를 재구성하여 전보다 훨씬 더 정밀한 형태로 정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헵은 수많은 세포군의 복잡한 성질이 "각 시냅스 단위에서 신경충동이 도착하는 시간의 편차가 상당하고 개별적인 신경섬유에서는 반응성에 지속적인 변형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같은 세포군일지라도 다른 상황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공간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서로 다른 자극이나 기억에 대해 각기 다른 활동 패턴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가리켰다. 즉 헵이 생각한 엔그램을 구성하는 격자 형태의 세포군은 사차원이었다. 

    또한 헵은 실제 신경세포군의 경우 어떠한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도 자발적인 활동을 보인다는 사실도 강조했는데, 이는 뇌가 지속적으로 배경 소음으로부터 신호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으 뜻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 세포군이 신경계가 필요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겠금 복잡하고 비선형적인 조건부 연결들로 조직되어 있다고 말했다.

     결국 헵은 그전까지 학습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과 달리 '궁극적으로 우리의 목표는 어떻게 모든 행동이 똑같은 신경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지 밝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학습된 행동과 본능적인 행동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통념을 일축했다. 

 

뇌 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환자

 

   헵의 책이 출간되고 10년 사이, 기억과 관련된 뇌의 기본적인 처리 과정이 특정한 구조물과 연합되어 있을 가능성을 가리키는 극적인 증가가 나타났다. 이는 어떤 남자에게 전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어느 비극적인 사견에서 비롯되었는데, 과학계에서는 그를 단순히 그의 이니셜인 H.M. 으로 칭했다. 그러다 2008년에 그가 사망하자 그의 정체가 알려졌고 그의 모든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졌다. 그의 이름은 헨리 몰레이슨 (Henry Molaison) 이며, 그는 뇌 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환자로 기록되었다. 

    1935년 아홉살이었던 헨리는 자전거에 치이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마도 그때의 사고 여파로 그는 뇌전증 발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청년으로 성장할 무렵에는 증ㅇ세가 너무나도 심각해져서 헨리는 다니던 기계 공장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약물치료도 전혀 효과가 없어 수술만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펜필드만큼이나 수술에 공을 들인 어느 의사 덕분에 그가 받은 정신외과술은 제한된 영역만을 아주 정교하게 적출하여 뇌전증 증세를 완화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많은 의사들은 훨씬 더 조악한 기법을 사용했으며 조현병과 같은 중증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뇌어 엽(lobe) 전체를 통으로 들어내는 일도 허다했다. 

    미국의 외과의였던 윌리엄 스코빌(William Scoville)은 뇌전증에 대한 치료 경험이 부족했음에도 1953년 9월 1일, 당시 27세였던 헨리 몰레이슨의 수술을 집도했다. 스코빌은 헨리의 양 측두엽을 절제했는데, 눈 위로 두개골에 약 2.5센티미터 넓이의 구멍을 뚫고 각 반구에서 약 8센티미터 가량의 깊이로 뇌를 파냈으며, 적출된 부위에는 양측의 해마 대부분과 편도체 그리고 내후각 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H.M.은 회복하기 시작했다.

    다만 헨리는 영원히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 사실 그로서는 1953년 그날 이후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다른 정신 능력들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었지만 헨리에게는 극심한 기억 장애가 생기고 말았다. 2008년 사망할 때까지 헨리는 고작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하며 영원히 현재만을 살았다. 

   잔인한 말이지만 헨리 몰레이슨 개인에게는 커다란 불행이었던 사건이 과학계에 있어서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동안 헨리는 쾌할한 모습으로 뇌 기능에 관한 유일무이한 장기 연구에 참가했다. 물론 그는 이 같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기에 검사를 실시할 때마다 매번 모든 것을 새롭게 설명해주어야 했다. 

    H.M. 의 행동에 관해 브렌다 밀너가 스코빌과 함께 발표한 첫 번재 보고서는 뇌 과학의 고전이 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H.M. 을 대상으로 한 심리학적 연구부터 뇌의 사후 분석 및 삼차원적 구조 복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연구가 쏟아졌다. 그리고 한격같이 헨리가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하게 된 원인으로 해마 손상으로 꼽았다. 이는 기억이 해마에 저장되어 있다는 뜻이라기보다 뇌기 기억을 형성하는 데 해마라는 구조물이 반드시 필요함을 의미했다. 

실수로 발견한 머릿속 지도

 

   1947년 3월 심리학자 에드워드 톨먼 (Edward Tolman)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 속에 광범위한 주제들로 강의를 진행하며 동물의 학습에 대한 자신의 연구들을 소개했다. 쥐의 미로 학습 경험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던 톨먼은 쥐의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생각했다. 

     

    우리는 중앙 본부가 구닥다리 전화교환국보다는 지도 관제실에 훨씬 가깝다고 단언한다. 내부로 들어온 자극들은 단순히 외부로 내보내는 반은 스위치들과 일대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신경충동들이 들어오면 일반적으로 중안관제실에서 이를 검토하고 갈고 닦아 환경에 대한 잠정적인 인지지도를 만들어낸다고 보는 편이 옳다. 노선과 경로와 환경 속 여러 관계들을 나타내는 이 잠정적인 지도는 최종적으로 해당 실험 동물이 어떤 반응을 표출할지 결정하게 된다.

 

    예컨데 실험 쥐가 빈 미로를 여러 차례 탐색하도록 놓아둔 다음 미로의 끝에 보상을 제시할 경우, 이 쥐는 해당 미로를 돌아다녀본 경험이 적은 쥐에 비해 훨씬 더 빨리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은 동안에도 주변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미로를 기억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쥐가 우리 안의 어느 특정 장소에서 전기충격으 당했다면 이후부터는 그곳을 피하게 될 것이다. 톨먼의 설명은 곧 쥐가 뇌 안에 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어떻게 쥐는 뉴런 속에 외부 세계를 표상하고 있었다. 

   톨먼의 주장이 옳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첫 번째 증거는 1960년대 후반 영국 유니버시트 칼리지 런던에서 일하던 존 오키프(John O'Keef) 가 쥐 움직이는 동안 일어나는 시상 내 세포 활동을 연구하면서 발견했다. 시상 내에는 쥐가 머리를 움직일 대 매우 강한 반응을 보인 세포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자신이 실수로 쥐의 해마에 전극을 삽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키프의 연구는 해마가 일화기억을 부호화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을 곧이곧대로 묘사한 지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표상 방식을 전문 용어로 동형(isomorphic)구조라고 한다. 장소 세포(place cell;동물이 공간 내에서 이동을 하며 탐색할 때 특정 위치를 암호화하여 장소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세포)라고 불리는 세포들로 구성된 이 지도에는 한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 가는 방법에 곤한 정보도 담겨 있어 쥐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향하는 길을 찾고, 각기 다른 장소에서 무엇을 맞닥뜨릴지 에상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이 지도는 톨먼이 영리하게 직감했듯 외부 세계를 단순히 일대일로 옮겨놓은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다중 감각 양상을 수반하며 연합과 예측에 기반한 인지지도(cognitive map)다. 서로 다른 생태에 속하는 종은 이 해마 내부의 지도 또한 다른 형태를 띤다. 

   쥐가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고 나면 자는 동안 뇌가 기억을 응고화하는 과정에서 쥐의 머릿속 지도상 해당 장소에 상응하는 해마 세포들이 재활성화된다. 만약 미로에서 막다른 갈래처럼 미처 탐색하지 못했던 장소가 보상과 연합된다면 마치 쥐가 그곳에 가는 것을 예상하기라도 하듯 쥐의 뇌에서 그 장소에 상응하는 장소 세포가 활성화되는데, 현재 일부 연구자들은 이렇듯 특정 상황을 예측하는 기능이야말로 장소 세포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간의 뇌도 마찬가지로 휴식 상황에 놓이면 해마를 중심으로 비공간적 학습고 관련된 사건들을 되풀이하는 활동을 하는데, 이 덕분에 이전에 쌓아온 경험에서 새로운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이처럼 흥미로운 결과들은 모두 해마가 의사결정을 하거나 하나의 과제에서 다른 과제로 일반화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유형의 정보들을 통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한편 최근 독일에서 학습이 이루어지는 동안 조직들의 미세 구조 단위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밝히는 새로운 뇌 영상 기법을 활용해 인간의 공간 과제 학습을 연구한 결과는 해마가 공간 학습 과정에서 예상했던 것만큼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음을 시사했다. 공간 학습과 관련된 핵심 변화는 해마가 아닌 후두정엽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들은 빠르게 나타나 열두시간 동안 그 효과가 지속되었으며, 뇌에서 기억과 관련된 기능적 활동과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이 모든 결과는 해마가 엔그램 '그 자체'를 담고 있지 않으며 우리의 기억을 형성하는 대ㅔ는 뇌의 여러 영역들이 관여한다는 견해에 힘을 실어주었다. 

   과학자들이 학습과 관련된 변화가 국재화되어 있다는 증거와 여러 영역에서 관찰된다는 증거를 모두 발견하면서, 기억의 형성에 뇌의 여러 영역이 관여한다는 생각들이 반복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러 연구에서 뇌 기능의 국재화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기는 했으나 뇌가 세포 혹은 회로 수준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리고 세포망에서 어떤 종류의 계산이 이루어지는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많은 것을 알아내지 못햇다. 과학자들은 개별 세포들의 기능이나 세포 집단들의 활동을 규명하여 이를 바탕으로 기능의 흐름을 나타낸 정밀한 도식을 작성하기 보다는 주로 세부적인 영역별 해부도에 의존하여 구성 요소들의 특성을 표현한 도식을 만듦으로써 수백만 개의 세포들로 구성된 여러 영역들을 일반적인 기능들과 짝짓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1957년 워싱턴 D.C. 외곽 베데스다 소재의 미국 국립정신보건원에 근무하던 에릭 캔들(Eric Kandel)은 고양이의 해마에서 뉴런의 전기생리적 활동을 연구하면서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던 세포에서 변화의 핵심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척추 동물의 뇌보다 훨씬 더 단순한 체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52년 앨런 호지킨과 앤드루 헉슬리는 20세기 초 번스타인이 처음 제안한 이해 줄곡 확장 및 발달시킨 이론에 마침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뉴런이 어떻게 메시지를 보내는지, 즉 활동전위의 생리를 밝혀냈다. 뉴런의 세포막 투과성이 변화하여 나트륨과 칼륨 이온의 농도가 달라짐에 다라 탈분극의 물질이 세포를 타고 빠르게 전해지는 과정에서 활동전위가 세포에서 세포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세포막에 존재하는 이온통로 (ion channel) 라는 작은 구멍들로 인해 뉴런의 세포막이 투과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올바른 가설을 세웠다. 

   캔들은 1959년, 캘리포니아 해변에 서식하는 군소류의 거대한 바다 민달팽이를 통해 세포 수준에서의 학습과 기억의 근거를 탐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군소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수는 전 세계에서도 아주 소수에 불과했는데, 캔들이 이를 연구하기로 결정했을 대 그 역시 달팽이를 해부해본 경험도, 달팽이의 뉴런 활동을 기록해  적도 없는 상태였으며, 심지어 이 녀석이 학습을 할 수 있는지조차도 확신이 없었다. 

    캔들은 쉽게 측정할 수 잇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몸을 가볍게 건드리면 기본적인 보호 반사의 일환으로 아가미가 수축하는, 이른바 아가미 도피 반사가 그 대상이었다. 캔들의 연구팀은 이러한 반사가 습관화(자극이 반복됨에 따라 반응이 감소하는 연상)과 민감화(가볍게 건드리는 자극이 짧은 전기충격과 연합될 경우 오히려 반응이 증가하는 현상)라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학습과 단기기억을 보여줄 수 있음을 입증했으며, 궁극적으로 군소가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고전적 조건화 체제에서 학습이 가능함을 밝혔다. 

    캔들과 그의 동료들은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이 같은 행동들에 관여하는 신경 회로를 규명하고, 학습이 뉴런들이 이루고 있는 작은 회로의 시냅스 강도를 변화시킨다고 주장했던 헵의 신경생리학 가설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단기기억에서는 이와 같은 변화로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증가하며, 자극들 사이의 반복적인 연합에 따라 형성되는 장기기억의 경우에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증가함과 더불어 두 세포 사이의 새로운 시냅스 연결까지 자라나게 된다. 헵이 예상했던 대로 엔그램이란 결국 시냅스 활동에서의 변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1980년대 초, 캔들의 연구팀은 세포 내 분자들의 복잡한 연쇄반응들을 묘사하고 해당 체계의 구성 요소들을 만들어낸 유전자를 규명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생물학의 대변혁을 초래했던 분자 혁명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다른 연구자들고 함께 뉴런 내에서 기억을 생성하는 데 관여하는 분자들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고리형 AMP 와 다양한 효소 그리고 고리형 AMP 유전자의 발현 유무를 효과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유기체가 학습한 내용을 기억할 것인지 결정하게 해주는 CREB 단백질이었다. 이러한 분자들을 일반적으로 이차 전령이라고 부르는데, 신경전달 물질이나 호르몬이 전해준 메시지를 중계하며 학습이 일어나면 세포 내에서 빠르게 발생하는 극미한 움직임과 상호작용함으로써 뉴런이 새롭게 성장하여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기억의 메커니즘

 

   1960년대 및 1970년대, 뇌의 추출물이나 RNA 혹은 단백질을 주입함으로써 학습된 행동이 이 동물에서 저 동물로 전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들이 등장했다. 가령 스웨덴의 생화학자 홀게르 하이덴(Holger Hyden)은 학습 과정에서 생성되는 특정한 형태의 RNA 가 전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햇고, 이후 다수의 연구가 단백질 합성을 차단하거나 RNA 분자에 영향을 주는 분자들에 의해 학습이 억제될 수 있음을 밝히면서 그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언론 매체에서도 엔그램이 어쩌면 단일한 분자로 구성되어 하나의 개체에서 다른 개체로 옮겨질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인간도 간편하게 알약 하나를 삼킴으로써 학습이 가능하게 될지 모른다는 발상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습의 전이에 있어 행동과 생화학이 관여하는 바가 당초 제기되었던 것보다 훨씬 불분명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그러던 1966년, 각기 다른 연구실 여덟 곳 소속의 연구자 스물세 명이 RNA 에 의한 학습 전이를 끝내 반복 검증하지 못했다고 명시한 짧은 논문이 <사이언스>에 등장했다. 엔그램을 핵산 (염기, 당, 인산으로 이루저니 뉴클레오타이드가 긴 사슬 모양으로 종합된 고분자 물질. 유전이나 단백질 합성을 지배하는 중요한 물질로, 생물의 증식을 비롯한 생명 활동 유지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으로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그렇게 생명이 끊기고 말았다. 

   1973년, 노르웨이 오슬로의 연구자 팀 블리스(Tim Bliss) 와 테리에 뢰모 (Terje Lomo)는 매우 빠른 일련의 전기자극을 이용해 토끼의 해마로 향하는 신경 경로를 자극하여 해당 경로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했다. 해당 경로에 자극을 가하여 실행활에서 경험하는 강한 자극을 효과적으로 모방함에 따라 발생한 이 증강 효과(potentiation effect)는 자극이 주어진 경로의 시냅스에 수 시간 동안 유지되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 뒤 블리스와 뢰모 둘 다 한동안 이 분야에서 손을 뗏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그들을 이어 훗날 장기 증강(Long-term potentiation) 혹은 줄여서 LTP 라고 알려지게 된 이 효괄르 연구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분야에 대한 논문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연구자들은 실험에서 관찰한 LTP 효과와 실제 기억 사이의 연결고리를 확신할 수 없었따. 이러한 문제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명쾌하게 풀리지 않고 있는데, 2006년도에도 블리스는 "이 과정에 대한 설득력 있는 생리적 모형"이라고만 표현했을 뿐,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LTP 와 그에 '부적'으로 상응하는 장기 억압(long-term depression)이 쥐의 기억을 비활성화 및 재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최근 연구 결과들은 기억과의 인과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LTP 그 자체가 기억이라는 뜻은 아니다. LTP 의 정확한 생화학 기제가 계속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것과 더불어 LTP 는 반복적인 자극을 필요로 하는 데 반해 실제 생활에서는 단 한번의 사건만으로도 학습이 일어날 수 있다는 문제는 일부 과학자들에게 LTP 만으로 정말 뇌가 기억을 부호화하는 방식을 완전히 표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켰다.

    펜필드는 환자들의 뇌를 자극하자 발생했던 괴이한 기억들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면서, 학습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경로가 활성화될 가능성을 제시햇다. 이 문제도 이제 최신 신경과학 장비를 활용해 입증되었다. 바로 광유전학기술이다. 이 기법은 게로 미센뵈크(Gero Misenbuck), 칼 다이서로스(Karl Deisseroth), 에드 보이든(Ed Boyden) 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이 20세기 초반 개발한 것으로 현재 동물의 뇌와 뉴런에 관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빛 탐지 분자를 부호화하는 유전자를 원하는 세포에 삽입한 뒤, 빛을 이용ㅎ해 해당 분자를 활성화해 유전자를 삽입한 세포를 반응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광유전학 기법으로 뉴런을 정확하게 식별하고 자극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학습에 관여하는 세포들이 LTP 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일부 변화 양상들을 보이는데다 기억 회상 시에도 동일한 세포들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이 세포들만이 엔그램을 구성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며 수많은 뉴런들이 이에 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냥 일반적으로 엔그램 세포라고 알려져 있다. 

    1982년에는 DNA 이중나선의 공동 발견자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이 뉴런에서 신호를 받는 부위인 가지돌기에서 작게 뻗어 나온 가지돌기 가시 (dendritic spine)라는 구조물이 학습 과정에서 자신의 형태를 바꿈으로써 시냅스 활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을 제기햇다. 가지돌기  가시가 중요하다는 입장에서는 역할을 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가지돌기 가시가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크릭의 주장이 옳았지만 사실 정확한 작용 기제는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단순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장기 기억이 형성될 때면 연결이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 2015년에 발표된 어떤 연구에서는 광유전학을 활용하여 학습에 의해 생겨난 가시의 크기를 줄이자 특정 과제에 대해 학습되었던 기억이 저해되었고, 이는 곧 가지돌기 가시가 엔그램 형성의 핵심 요소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으니, 뉴런 스스로는 신경전달물질에 반응하는 별세포(많은 돌기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 별처럼 보이는 세포를 통틀어 이르는 말)라는 다른 세포들이 시냅의 가소성을 촉진하여 기억을 증진시키는 듯했다. 해마 내의 별세포의 활성화가 차단될 경우 기억이 손상되었다. 

   국재화 대 분포화의 논쟁은 뇌 과학사 내내 치열했지만, 개별 세포들이 기억 형성 및 회상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잇는지 여부를 떠나 현재 기억이라는 것은 단일한 장소에 존재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기억은 대체로 장소, 시간, 냄새, 빛 등을 수반하는 다중 양상을 띠고 있으며 복잡한 신경망을 통해 피질 전역에 고루 분포한다.

   2009년, MIT 의 시나 조슬린(Sheena Josselyn)연구팀은 생쥐의 편도체에서 학습 과제를 수행하는 중 높은 수준의 CREB 단백질을 발현시켰던 세포들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했다. 그 결과 생쥐는 자신이 학습한 것을 잊어버렸다. 엔그램이 삭제된 것이다. 광유전학이 발달함에 다라 연구자들은 생쥐릐 기억을 더욱 깊이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MIT 의 도네가와 스스무(Tonegawa Susumu) 연구팀에선느 쥐의 해마에 거짓 기억을 심어 쥐가 우리의 특정 장소에 가면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음에도 마치 그곳에서 전기충격이라도 당한 양 얼어붙게 만들었다. 또 반대로 혐오스러운 기억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바꾸어 이전에 전기충격을 입었던 장소에 이끌리게 만들기도 했다. 엔그램의 의미를 바꾼것이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광유전학 기법으로 후각 신경구와 보상 및 회피에 관여하는 중추를 동시에 활성화시킴으로써 완전히 백지에서부터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그 결과 쥐는 생전 처음 접해보는 냄새에 관한 것들을 기억하는 보습을 보였다. 이 모든 정밀한 작업들은 자칫 각각의 실험에서 조작을 가했던 특정 요소들만이 기억 형성에 관여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실제 이 세포 하나하나의 기저에는 신경망의 활동에 기여해 행동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세포들이 존재한다. 

    기억에 정밀하게 형성되고, 변형되고, 삭제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모든 연구 결과들은 유전적 조작을 가한 생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기억 형성 과정에 대한 통찰이 임상 환경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에 심리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이러한 기법들은 인간의 기억을 바꾸는 데는 쓸 수가 없다. 2014년에는 관객들조차 무엇이 진실인지 끝까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공상과학 영화 <인셉션>에서 영감을 받아 <거짓 기억의 시작>(Inception of False Memory) 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출판되기도 했다.

   세포 수준에서 기억의 근거를 밝히는 연구 결과들은 앞서 수많은 심리학 연구들이 입증했던 바를 재조명한다. 바로 기억은 변하기 쉬운 성질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기억이란 단순히 진행 중인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구성된 결과이며, 따라서 거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은 물질적인 근거에 기반한다. 엔그램을 이루는 요소들도 발견되었고, 이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기록된 메모리와도 다르다. 생물학적인 기억인 풍부하되 신뢰할 수 없으며 서로 간의 연결이 매우 높아 하나가 아닌 다양한 경로로 접근이 일어난다.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펜필드의 실험들은 외부 사건에 의해서든 전극의 전기적 자극에 의해서든 매우 특정하고 하찮아 보이는 순간들을 회상하게 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엔그램의 몇 가지 아주 기본적인 비밀들은 밝혀졌으나 기억을 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우리의 뇌는 이따금씩 정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컴퓨터와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기억을 저장하고 회상하는 방식을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기게가 아니다. 아니, 그보다는 우리가 기존에 개발했거나 현재 예상할 수 있는 형태의 기계 중에는 그 어떤 것과도 같지 않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기억은 특정한 뉴런들에 의해 저장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뇌가 어떻게 외부 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확히 무엇을 기억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11. 회로 - 1950년대부터 오늘날

     1958년 초, 미국 브라운대학교 소속이었던 30대 초반 스웨덴 연구자와 캐나다 연구자 두 명이 고양이의 피질에 있는 세포들이 시각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이들은 마취된 고양이가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동안 전극을 통해 단일한 뇌세포의 활동을 기록했다. 그리고 철제 디스크를 부착한 현미경 슬라이드 글라스를 이용해 밝은 배경 위로 어두운 무늬를 만들어가면서 고양이 망막에 다양한 형태의 빛을 비추었다. 전극이 삽입된 세포의 전기적 반응은 너무 약했고 미약하게나마 지지ㄱ거리는 소리로 변화되어 실험실의 스피커를 울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슬라이드 글라스 중 하나를 검안경 위에 끼워 넣자 갑자기 세포가 살아나기라도 한 듯 따발총처럼 신경충동을 발화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발화 반응이 우리가 비추고 있던 작고 불투명한 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해당 세포는 우리가 슬라이드 글라스를 슬롯에 삽입하면서 그 가장자리가 가느다랗게 움직이는 그림자를 드리운 데 대해 반응한 것이다. 이 흐릿한 선이 특정한 범위의 방향 및 각도로 훑고 지나갈 때에만 세로가 반응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까지 또 얼마간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자극의 각도를 몇 도만 바꾸어도 반응의 강도는 훨씬 약해졌으며, 최적의 각도에서 직각으로 틀자 아예 반응이 사라졌다. 해당 세포는 우리가 제시한 검고 하얀 점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이 세포는 움직이는 수직선이라는 매우 특정한 자극에만 활성화되었고, 정적인 선이나 수평선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데이비드 허블(David Hubel) 과 토르스튼 위즐(Torsten Wisel)은 완전히 우연한 계기로 단일세포가 때로는 주변 환경을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게 표상한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감각자극이 뇌에서 어떻게 처리되는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바꾸는 데 이바지했다.

    아울러 고양이의 뇌에서 뇌에서 전극을 아래로 이동시키면서 관찰한 결과, 시각피질이 기둥과 층 형태로 조직되어 있어 각 기둥은 특정한 사물(선, 점 등)에, 각 층은 해당 사물의 정향에 대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기본 요소들이 다음 단계의 뇌세포로 정보를 보내고, 그곳에서 시각 세계에 대한 보다 복잡적인 표상이 생성되는 듯했다.

    로렌테 데 노는 1938년에 시각피질의 신경해부학적 구조가 기둥 형태로 조직되어 있으며 뇌의 피질에서부터 서로 연결된 세포 집단들이 길게 이어진 듯 보인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기둥형 구조가 뇌의 기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어지만 말이다. 그리고 허블과 위즐이 실험을 진행하기 1년 전에 버넌 마운트캐슬(Vernon Mountcastle)이 고양이의 피질에서 신체 여러 부위를 통해 주어진 동일한 유형의 자극(이를테면 촉각)에 반응하는 세포들은 수직으로 조직되어 있는 반면 피질의 같은 층에 위치한 세포들은 같은 신체 영역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각기 다른 감각자극들에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처럼 세포의 반응이 고도로 국재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뇌가 선이나 움직이는 물체와 같은 환경적 요소들을 정밀하게 식별하고 난 뒤에 어떠한 방식으로 이들을 조합함으로써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한다는 것을 시사했다. 각각의 감각 양상(후각, 청각)들을 처리하기 위한 뇌 영역들이 이미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만 그 밖에도 상당 수준의 통합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사이에 고양이의 뇌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이 같은 구조 중 상당수가 실제 경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례로 케임브리지의 생리학자 콜린 블레이크모어(Colin Blakemore)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진행한 실험 결과, 세로 줄무의로만 구성된 환경에서 길러진 고양이는 가로 줄무늬를 탐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가로 줄무늬에 반응하는 뇌세포들이 발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새끼고양이들이 그 뒤로도 계속해서 가로 줄무늬만 가득한 환경에서 생활할 경우 성체가 되고 나서도 세로 줄무늬에는 영영 제대로 반응할 수가 없었다. 이른바 '결정적 시기'에 뇌가 필요한 자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도 이와 유사하다.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다가 성인이 되어 치료를 받은 이들을 연구한 결과 이들이 얼굴을 보는 방법을 별도로 익혀야 했으며 심지어 삼각형과 같이 단순한 도형들을 알아보는 방법도 배워야 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적절한 시기를 놓친 탓에 인식능력이 영영 정상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뇌의 시각처리 체계 구조가 발견되면서 뇌가 계산을 수행한다는 견해는 더욱 공고해졌지만 발달 과정에서 몇몇 효과가 관찰됨에 따라 뇌가 처음부터 설계된 대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즉 어느 정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는 경험과 환경을 탐색하면서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할머니 세포'를 둘러싼 논란들

 

   우리가 알아보는 모든 사물이 정향이나 맥락이 어찌 되었든 간에 특정 세포 혹은 세포 집단의 활동에 의해 표상된다는 주장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어리석은지 한마디로 강조하고자 '할머니 세포'(grandmother cell)라는 용어와 함께 자주 언급되곤 한다. 이야기의 터무니없는 결말을 따른다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앉아 있는 할머니, 물구나무 서 있는 할머니, 우쿠렐레를 연주하는 할머니 그리고 그 밖의 할머니를 알아보는데 필요한 무한한 경우의 수를 온갖 방식으로 조합한 세포들이 전부 존재해야만 한다. 거기에 할머니 외에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추가한다고 하면 우리의 지각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뇌에 무한한 수의 세포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틀렸다.

   폴란드의 신경심리학자 예르지 코노르스키(Jerzy Konorski)는 허블과 위즐이 발견한 뇌의 정밀한 세부 특징 탐지기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보았다. 이에 코노르스키는 1967년 <<뇌의 통합적 활동>>(Integrative Activity of the Brain) 이라는 책을 펴내며 뇌에는 고양이나 염소 그리고 각기 다른 서체로 적힌 동일한 단어와 같이 매우 정밀한 자극들을 식별할 수 있는 일명 '영지 뉴런'(gnostic neuron)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옥스퍼드대학교의 연구자들이 원숭이의 뇌에서 온갖 각도의 얼굴에만 반응하는 세포를 발견하면서 상황은 더욱 희한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케임브리지의 과학자들은 곧 이 결과를 양으로까지 확장시켜 같은 종의 양들을 찍은 사진에만 반응하는 세포, 뿔의 크기에만 반응하는 세포, 인간이나 개처럼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자극의 사진에만 반응하는 세포들을 발견했다. 케임브리지 연구팀은 "양은 상사 반전된 얼굴에는 반응하지 않았는데, 원숭이와 달리 일반적으로 다른 양들이 위아래가 뒤집어진 채로 있는 모습을 볼 일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합당한 결과로 보인다"며 건조한 주석 한마디를 달았다. 

   우리 뇌에는 정밀하게 특정한 자극에만 집중된 할머니 세포들이 존재하고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면 이 세포들이 반응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연구진은 보다 신중을 기했는데, 환자들에게 제시한 사진의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었으므로  혹 어떤 세포들이 애니스턴이나 베리나 클린턴에 지속적으로 반응한다고 하더라도 이 인물들의 사진만이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해당 세포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자극이라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속 연구에서 연구팀은 자신들이 발견한 세포들이 개념을 표상하기 때문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사진과 문구에 동시에 활성화되었던 것이며 기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자들이 인증했듯 단일세포가 어떤 시각 자극에 반응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이 세포가 해당 시각 자극을 인식하는 데 관여하는 유일한 세포라는 의미는 아니며, 그저 관련 신경망에 포함되어 있는 세포들 중 연구자가 활동을 기록한 세포였을 뿐임을 가리켰다. 이에 연구자들은 각 자극마다 수백만 개의 뉴런들이 활성화될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시각적인 이미지나 개념의 특정 측면에 반응하고, 전체적인 연결망에는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전혀 다른 자극을 통해서도 같은 측면에 의해 활성화될 수 있었다

   시각을 처리하기 위해 할당된 상위 수준의 회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1992년에 데이비드 밀너(David Milner) 와 멜빈 구데일(Melvyn Goodale)이 포유류의 뇌에는 각기 다른 기능을 산출하는 두 개의 서로 분리된 시각 처리 경로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집중 조명되었다. 뇌의 뒤편에 위한 시간 피질에서 초기 처리가 끝난 시각 정보는 두 개의 경로로 나뉘어 이동하는데, 그중 하나는 뇌의 상측부로 향하는 '어디'경로 ('where' pathway) 또는 배측 경로(dorsal stream)로 탐지된 사물의 공간적 위치 정보를 부호화하여 이를 운동 통제에 관여하는 영역으로 보내주는 것으로 보내주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다른 하나는 피질의 보다 깊은 하단부로 향하는 복측 경로 (ventral stream)로 '무엇' 경로 ('what' pathway)라고 불리기도 한다. 복측 경로는 지금 보고 있는 사물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데 관여하며 기억과 사회적 행동에 연관된 뇌 영역으로 향하게 된다. 이 두 개의 경로에도 접점은 존재한다.

 

 

    '어디'와 '무엇'. 배측과 복측. 눈에 비치는 사물을 식별하는 역할과 움직임을 탐지하는 역할 등 두 경로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뇌의 기능적 국재화의 복잡한 성질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비단 자극의 물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대상을 향해 손을 뻗거나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것처럼 유기체가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해야 하는 일부 양상들까지도 기능의 국제화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호연결의 수가 증가하고 각기 다른 감각 양상들이 서로 유사한 신경 회로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기능이 완전히 국재화되어 있다는 견해는 조금씩 힘을 잃었다. 또한 정확히 무엇이 국재화되어 있는가에 관한 문제도 점차 혼란에 휩싸였다. 아니, 더욱 풍부해졌다고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케임브리지의 생리학자 호레이스 발로는 1972년 단일세포의 활동과 감각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섯 가지 법칙'이라고 명명한 정리를 소개했다. 이 '법칙'이라는 것들고 사실은 신경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해 사유하고 이로부터 후속 실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명제 또는 가설이었다. 발로의 접근법과 '법칙'이라는 용어는 명시적으로는 프랜시스 크릭이 1957년 강연에서 소개되었으며, 이후 분자생물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도운 단백질 합성의 유전적 근거에 대한 가설에서 차용한 것이었다. 

   발로는 우선 신경계의 작용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세포 각각의 활동뿐만 아니라 그 세포가 신경망에서 하나의 마디로서 후생하는 역할에 대한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하여 이를 첫 번째 법칙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망이 기능할 수 있게 하는 원리로 "감각 경로의 상위로 향할수록 물리자극에 대한 정보를 운반하는 활동 뉴런의 수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발로는 뉴런들이 주변 환경의 세부 특징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진화를 거치면서 선택된 방식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유전과 환경적 요인이 모두 관여하고 있다고 강조하였으며, 뉴런이 발화하는 빈도는 '주관적 확실성'에 대한 척도로 볼 수 있다고 역설했다. 뉴런의 발화 빈도가 높을록 해당 뉴런의 활동을 야기한 원인도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또 발로는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신경 활동 내에서 상징적 관념으로서 사물이 표상된다고 주장했다. 

   발로는 우선 신경계의 작용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세포 각각의 활동뿐만 아니라 그 세포가 신경망에서 하나의 마디로수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하여 이를 첫 번째 법칙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망이 기능할 수 있게 하는 원리로 "감각 경로의 상위로 향할수록 물리적 자극에 대한 정보를 운반하는 활동 뉴런의 수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의식이 있단느 것이 어떤 느낌인지 설명하는 문제에 있어 발로는 "이러한 활동을 '지켜보거나' 제어하는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신경계가 어떻게 행동을 제어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 머릿속에 신경 회로에서 산출된 정보를 관찰하는 호문쿨루스 따위가 앉아 있다는 개념을 받이들일 필요는 없다. 이를 두고 발로의 네 번째 법칙은 "상위의 뉴런이 활동하면서 단순하게 직접적으로 지각의 구성 성분들을 발생시킨다."고 표현했다. 망 내 뉴런의 활동이 인간을 비롯한 유기체의 행동과 지각을 결정하는 것이다.

   발로의 다섯 가지 법칙은 전반적으로 제 역할을 잘 해 왔다. 특히 추기경 세포에 대한 발상은 표상의 상위 단계에는 관여하는 세포의 수 및 활동의 빈도가 감소하지만 시스템의 전반적인 활동이나 자극의 표상의 측면에서 중요도는 더욱 높아지는 양상을 지칭하는 '스파스 코딩'(sparse coding) 이라는 용어로 재탄생했다. 

 

커넥톰의 탄생과 뇌 회로도 완성을 위한 분투

 

   2005년에 접어들면서 연구자 두 명이 각각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망의 기본 요소 및 연결성 구조를 종합적으로 묘사'하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바로 커넥톰이라는 용어로, 게놈(genome)과 게노믹스(genomics;유전체학)가 생겨남에 따라 과학자들이 유행하던 단어 끝에 '-옴(-ome)'과 '-오믹스(-omics'를 붙여 파생어를 만들고는 일상 용어로서 사용하던 와중에 생겨난 단어들 중 하나였다. 쉽게말해 '-옴' 은 특정한 생물학적 현상의 모든 사례들을 한데 엮은 집단이고, '-오믹스'는 그 특정한 '-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을 비롯한 큰 동물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커넥톰이라는 용어가 개별적인 세포와 그 사이의 시냅스에 기반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커넥톰을 가리키기보다는, 크릭과 존스가 자극을 받았던 마카크원숭이 연구에서처럼 뇌 영역간의 대규모 연결서을 나타낸 지도를 가리키는 다소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곤한다. 이 같은 지도에는 뇌 영역 간의 거시적 연결(macro conntion), 여러 유형의 뉴런들 사이를 잇는 중시적 연결(mesoconnection), 각 뉴런들 사이의 미시적 연결 (microconnection) 긜고 시냅스에 존재하는 나노 연결 (nanoconnection)등 총 네 단계의 연결이 존재한다. 

  포유류의 뇌에서 미시 및 나노 연결에 기반한 커넥톰을 완성하기까지는 아직도 너무나 갈 길이 멀다. 최근 쥐의 뇌에서 뉴런 다섯 개를 집중적으로 살펴본 어느 뇌 영상 연구에서는 이 뉴런들이 뇌의 구석구석을 관통하며 매우 복잡하게 이어진 나머지 총 길이가 30센치미터도 넘는다는 사실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제아무리 적은 수일지라도 단순한 중계 역할에 그치지 않고 뇌의 여러 영역들과 상호작용하는 뉴런들의 기능을 분석하는 일은 기술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상당히 어려운 도전 과제다. 

   어느 포유류를 대상으로 하건 시냅스 수준에서 완전한 커넥톰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진행되고 있지 않다.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너마도 크기 때문이다. 지금껏 집중적으로 연구한 생쥐의 뇌만 해도 총 737여개로 추산되는 뇌 영역들 중에서 고작 4퍼센트에 해당하는 영역에서만 세포의 수가 파악되고 있으며, 그마저도 연구마다 측정값이 천차만별이어서 많게는 13배까지도 차이를 보인다. 그러니 9백억 개의 뉴런과 1백조 개에 달하는 시냅스 및 그 에 딸린 수입억 개의 교세포를 지닌 인간의 뇌의 경우 더욱이 시냅스 수준에서 뇌 지도를 만든다는 발상이 현실화되기란 요원해 보인다. 

    2013에는 예쁜고마선충을 주로 연구하던 중진 신경과학자 코리 배그먼 (Cori Bargmann)이 다름과 같은 결론이 담긴 짧은 논문을 썼다.

     

     커넥톰을 밝히는 일이란 게놈을 서열화하는 작업과 유사하다. 일단 게놈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자 이제 게놈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재능이나 커넥톰의 겨우 모두 구조가 기능의 전부는 아니었다. 구조는 그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고, 문제의 규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그럴듯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매루 정밀하고 정교하게 검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단순한 회로에서조차 각각의 뉴런과 화학적 시냅스와 더불더 두 개의 세포를 직접 연결함으로써 전기적 신호가 지날 수 있게 해 주는 (이로 인해 전기적 시냅스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1950년대에 처음 해부학적으로 규명된데 이어 1960년대에 그 기능이 밝혀졌다.) 간극 연접(gap junction) 을 통해 다른 여러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아울러 뉴런은 여러 종류의 신경전달물질을 시냅스로 분비할 수 있다. 단순히 두 뉴런 사이의 공간을 표면적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그 시냅스가 흥분성인지 억제성인지, 여기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은 몇 가지나 있는지 등 해당 시냅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우리 뇌에서 가장 단순한 영역에서도 이와 동일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2018년, 소리가 뇌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그 중에서 특히 주파수의 소리가 어떻게 인접한 구조물에서 표상될 수 있는지(이러한 양상을 일컬어 토노토피(tonotopy)라고 한다.) 에 관심을 가졌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신경과학자 소피 스캇(Sophie Scott)은 지포자기한 듯한 모습으로 인한 청각계의 첫 단계를 나타낸 상위 회로도 사진 하나를 트위터에 올렸다.

 

     커넥톰 연구는 뉴런이 단방향성 전달 양상을 보이는 개별적인 단위라고 주장한 카할의 신경세포설의 최신판으로 시작되었지만 과학자들은 이 문제가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고 있다. 신경계에는 별세포 또는 별아교세포라는 교세포가 시냅스 주변을 감싸고 있다. 이 세포들이 뉴런이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데,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 결과 쥐의 뇌에서 별세포들이 칼슘이나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고 뇌 활동에 변화를 주어 결국 뉴런의 활동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더욱이 우리는 20년 이상 전부터 뉴런의 활동이 때로는 순방향과 더불어 역방향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1997년에는 캘리포니아의 연구자들이 따로 분리한 해마 세포의 단순한 신경망을 연구하다가 세포에서 신호를 내보내는 시냅스에서의 활동 억제가 다시 뉴런 쪽으로 전파되어 먼저 신호가 들어온 스탭스에 영향을 준 뒤 종국에는 네트워크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발견한 바 있다. 활동전위가 일반적으로 축삭을 따라 한쪽 방향으로만 전달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세포는 컴퓨터의 전자부품이 아니기 때문에 회로도만으로도는 전체 신경망에서 세포들이 제각기 어떻게 가능하는지 밝힐 수 없다.

    이 같은 발견에 따라 일부 연구자들은 신경세포실이 뇌의 복잡성을 이해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뉴런 집단의 활동에서 발생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집단적 특성, 전문용어로 통합적 창발성(integrative emergent)이 상당히 중요한 역5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의 라파엘 유스테도 신경세포설을 능가하는 이론은 아직 없을지 모르나 적어도 현재 이를 보완하고자하는 노력은 이루어지고 있다며 유사한 주장을 했다. 가량 한 무리의 억제성 뉴런들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단위로 기능하도록 만들어진 것처럼 간극 연접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유스테의 표현처럼, 뇌의 많은 부분이 망으로 조직되어 있는 듯하며, 일부 억제성 뉴런에서 나타나는, 단순히 시냅스로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기보다 조직에 직접 신경전달물질을 퍼뜨리는 능력은 "꼭 흥분성 세포 위로 '억제의 장막'을 넓게 드리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유스테는 나이가 하나의 세포 수준에서는 볼 수 없지만 뉴런이 망으로 활동하면서 출현한 기능들의 구체적 시례들을 언급했는데, 그중 하나가 쥐가 가상의 미로를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뇌세포 활동을 보고한 2012년 연구 사례였다. 이때 신경망의 활동 패턴은 쥐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개별적인 세포들의 활동은 그렇지 못했다.

 

 

뇌 지도에 담길 미래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묹 중 하느는 가장 단순한 신경 회로의 활동조차 상당히 복잡한 성질을 띤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모두 갑각류의 위장 연구에 쏟아 부은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 소속의  이브 매더 (Eve Marder) 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위장이라는 구조물은 세 개의 회로로 조직된 약 서른개의 뉴런들이 만들어내는 두 가지 리듬을 이용해 음식물을 분쇄한다. 각각의 회로에는 감각 정보가 입력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외부에서나 그 어떤 개별 뉴런에서도 구체적으로 지정하지 않은 리듬으로 반복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중앙 패턴 발생기(central pattern generator)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구성 요소들의 집합이 존재한다. 

   하지만 매더의 연구팀은 갑각류의 구위 신경절 (stomagogastric ganglion)이라고 불리는 신경다발에 관여하는 서른여 개 뉴런들의 커넥톰을 명확히 규명했음에도 이 시스템의 아주 작은 부분조차 어떻게 기능하는지 완벽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매더의 연구는 신경 활동이 신경전달물질과 함께 분비되며 상대적으로 느리게 작용하는 미니 호르몬으로 인접한 뉴런들의 활도을 변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신경펩티드(neuropeptide) 및 여러 가지 합성 물질인 신경조절물질(neuromodulator)에 의해 변화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이에 더해 각 뉴런의 활동은 자신의 정체성 (위치와 기능을 결정해주는 유전자에 따른 특성) 뿐만 아니라 과거에 행했던 활동에도 영향을 받는다. 같은 뉴런이 서로 다른 개체 내에서 보이는 활동의 패턴도 매우 다를 수 있는데, 세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성과 기능이 변화하므로 각 뉴런의 가소성이 매우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초파리의 운동 탐지를 담당하는 신경학적 기질의 커넥톰이 보고되었으며 그 중 어떤 시냅스가 흥분성이고 어떤 시샙스가 억제성인지까지 세세하게 밝혀졌다. 그렇지만 이러한 발견으로도 두 모형 중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커넥톰만으로는 신경계가 어덯게 작용하는지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예쁜꼬마선충의 신경계 내 302개의 뉴런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먹이를 찾고 섭취하며 알을 낳는 등의 다양한 행동에 관여하는 뉴런을 규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 선충의 회로도가 단순히 해부학적 묘사에 그친 탓에 이로부터 곧바로 그 세포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서술하기는 불가능했다. 신경 회로의 여러 대안적인 기능 발현을 예측하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세포 사이의 화학적, 전기적 연결을 이해해야만 한다.

 

예쁜고마선충의 신경다발 지도

 

   미래에는 이 같은 연구를 통해 어쩌면 포유류 뇌의 일부 영역에 대한 기능 지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일 막스 클랑크 연구소의 연구진이 최근 쥐 뇌의 작은 부분들을 재구성했던 연구도 인공지능과 더불어 데이터 주석화 (annotation;인공지능이 데이터를 학습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원자료를 분류하고 레이블링하는 작업)를 도와줄 학생 보조를 백 명이나 동원하여 커넥톰 자료에서 억제성 및 흥분성 뉴런 하위 유형을 규명했다. 연구진이 발견한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했다. 이들이 연구한 뇌 영역은 고작 한 면이 10분의 1밀리미터도 채 되지 않은 작은 부분이었다. 

   단순한 신경계조차도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이해하기란 엄청나게 어려운 도전 과제이다. 매더의 연구팀은 정확히 동일한 회로도를 갖춘 것 같은 종의 게일지라도 패턴 발생기가 산성 변화에 대해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똑같은 커넥톰을 가지고 똑같은 발달 상태에 있는 예쁜꼬마선충도 굶주림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내는 전기적 시냅스의 활동이 개체마다 다르게 변화함으로써 행동사의 가소성과 제각기 다른 반응을 낳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15년에는 빈의 마누엘 짐머(Manuel Zimmer)가 이끄는 다국적 연구팀이 선충의 머리 부위에 있는 130여 개의 감각 및 운동 세포들의 활동을 직접적으로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선충의 마음은 밝혀내지 못했지만 신경 활동의 물결이 신경계를 한바탕 휩쓸어 다른 뉴런 집단들까지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를 두고 논문에서는 어떤 행동의 내적 표상은 실제 그 행동의 실행과 분리되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라고 표현했다. 다시 말해 선충이 움직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더기의 뇌를 구성하는 1만 개의 뉴런

 

   우리가 지도라고 지칭하는 것은 단순한 그림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능을 탐구하는 모두각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초파리 유충의 뇌에서 '어디'아 '어떻게'를 동시에 살펴볼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구더기의 뇌를 구성하는 1만 개의 뉴런의 커넥톰이 70퍼센트 완성되었다. 현재까지 믿기 어렵게도  무려 2미터에 달하는 뉴런들과 136만 개의 시냅스에 대한 정보를 밝혀내었으며, 프로젝트가 완성된다면 아마도 2백만 개 가량의 시냅스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뉴런과 시냅스들은 겨우 이 i 자 위에 찍힌 점 크기의 구조물 안에 빽빽이 채워져 있다. 세포들이 유전적으로 규명된 방식 덕분에 자넬리아 연구 캠퍼스의 마르타 즐라티치(Marta Zlatic) 연구팀은 '어디'를 나타내는 이 임시 지도를 활용하여 '어떻게', 즉 구더기의 뇌가 핵심 행동들을 통제하는 신경적 근거를 연구하여 해당 신경계 내 각 구성 요소들의 기능을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 각 세포의 활동이 정확히 어떻게 구더기의 활동에 변화를 주늕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도 통찰을 얻을 수 있는데ㅔ, 이에 구더기에게 여러 방식으로 자극이 주어짐에 따라 구더기 뇌의 연결망들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보이기 위해 단일세포 전사체 데이터의 수집도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에는 현재 초파리 커넥톰 연구의 상당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자넬리아 연구 캠퍼스의 설립자 제리 루빈(Jerry Rubin) 이 구더기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성체의 뇌를 이해하는 데도 앞으로 20년 정도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는 "이 비밀을 풀고 나면 이로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여정에서 5분의 1은 지나왔다고 말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단일한 커넥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통찰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도 제법 있는데, 요컨데 이 같은 연구의 이점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둘 이상의 커넥톰이 필요하다. 초파리 연구 결과, 발달 사에서 나타난 임의의 효과들이 각 초파리의 시각계 회로에 작은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각 개체들이 사물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해주었다. 개체 간의 차이만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에 어떤 지도 내에서 무엇이 일반적이고 무엇이 특별한 것인지 구별하기 위해서는 진화론 및 비교생물학 접근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프랑스의 신경과학자 질 로랑(Gilles Laurent)도 2016년, 다양한 동물들에게서 공통적인 기제와 알고리즘을 밝히기 위해 커넥토믹스에 종간 비교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3년, 조슈아 모건(Joshua Morgan) 과 제프 릭트먼은 '커넥토믹스에 반대하는 10대 논거'를 살펴보았는데 그중 상당수가 앞서 소개된 것들이이었다. 각각의 논거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본질저긍로 같았으며 제법 타당했다. 뇌 기능을 설명할 이론이 회로도로부터 간단하게 '뿅' 생겨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밀한 신경해부학이 정교한 전기생리적 측정법과 함께 이를 위한 체계를 마련해줌으로써 본명 뇌기능에 관한 우리의 이해도를 한층 발전시켜줄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콜린스도, 모건이나 릭트먼도 깨닫지 못했지만 이는 라이프니츠의 방앗간 논증이 컴퓨텅 시대에 맞게 현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논증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비판의 문제점은 물론 단순히 구성 성분과 그 사이의 관계를 관찰한다고 해서 전체 시스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구성 성분들 간의 관계의 본질과 이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밝힘으로써 실제로 그 시스템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설명하기 위한 기본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라이프니츠 논재으이 본래 표적이었던 의식에 대해 설명해줄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이는 곧 지도가 아무리 기능적인 측면을 잘 묘사한다고 할지라도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각 구성 성분들이 상호작용한느 방식을 해석하려면 시스템의 일부만이라도 그 작용 기제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필요하다. 

   할마너 세포의 잠재적 발견이 마주한 '그래서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그저 라이프니츠 방앗간 논증의 또 다른 형태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더 정교한 문제다. 데이비드 마(David Marr) 는 단순히 뇌 활동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묘사하는 데서부터 전체적인 모형에 이를 짜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연구 문제의 초점을 옮겼다. 아울러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뇌의 핵심 능력들을 따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일의 어려움을 알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그 일을 해 보는 것이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2. 컴퓨터 - 1950년대부터 오늘날

     컴퓨터 시대 초창기, 과학자들은 이 새로운 기계와 뇌 사이의 유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에 영감을 얻어 이 기계를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중 일부는 생물하적인 요소는 무시한 채 그저 컴퓨터를 가능한 한 똑똑하게 만드는 데만 집중했고, 이것이 우리가 현재 인공지능(Aritificial intelligence;AI 라는 용어는 존 메카시(John McCathy)rk 1956년에 처음 만들었다.)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분야로 성장했다. 하지만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측면에서 가장 큰 수확을 거두었던 접근법은 엄청나게 지능적인 기계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대신 상호연결을 지배하는 규칙을 탐구함으로써 뇌의 기능을 모델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른바 신경대수학(neural algebra) 이다. 

   신경계를 시뮬레이션하려는 초기 시도는 1956년 IBM 의 연구원들이 신경세포군이 뇌의 기본적인 기능의 단위라는 헵의 가설을 검증하려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은 IBM 의 첫 상업용 컴퓨터인 701을 이용했는데, 이 컴퓨터는 거대한 유닌 11개로 구성된 밸브 기반 기계로서 말 그대로 방 하나를 가득 매울 정도로 컸다. (겨우 19대만이 판매되었다.) 연구진은 뉴런 512개로 구성된 연결망을 시뮬레이션했는데, 처음에는 각각 따로 분리되어 있던 구성 성분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헵이 주장한 대로 자발적으로 하나의 물결처럼 동기화된 활동을 보이는 집단을 형성했다. 상당히 조악한 모델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결과는 신경계 회로의 일부 양상들이 단순히 매우 기초적인 규칙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시사했다.

   처음으로 컴퓨터 모델링을 이용하여 뇌기능의 작용 기제를 박힐 실마리를 얻고자 했던 이들 중 한 명은 위너의 제자이자 피츠, 맥컬록, 레트빈과도 가까운 사이였던 수학자 올리버 셀프리지(Oliver Selfridge)였다. 1958년, 셀프리지는 기계 기반의 패턴 인식을 연구하면서 개발한 팬더모니엄(Pandemonium)이라는 계층 처리 체계를 발표했다. 이 모형은 선 등의 세부 특징들을 기준에 정해져 있던 내적 형판과 비교함으로써 환경 속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인식하는 단순 유닛(데이터 도깨비)을 만드는 데서 출발했다. 이후 이러한 데이터 도깨비들은 한 층 위의 '연산 도깨비들'에게 자신이 탐지한 것을 알린다. 셀프리지는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다음 단계에서는 연산 도깨비 혹은 하위 도깨비들이 데이터를 가지고 다소 복잡한 연산을 거친 뒤 그 결과를 다음 단계인 인지 도깨비에게 넘겨 증거들의 경중을 따지게 한다. 각각의 인지 도깨비는 비명소리를 연산 처리하며, 가장 상위의 도깨비인 의사결정 도깨비는 모든 비명소리 중에서 단순히 가장 시끄러운 것을 선택한다.   

  

   그로부터 도출된 마지막 결과로 의사결정 도깨비가 예컨데 글자 같은 복잡한 세부 특징을 인식하게 된다. 

    언뜻 보면 이는 기존에 스미 등의 연구자들이 감각 처리를 계층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것을 그저 전기적 요소로 대체한 것에 불과한 듯하지만 팬더모니엄은 달랐다. 진행을 거듭하면서 학습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자신이 사물을 얼마나 정확하게 분류했는지 지속적으로 알아차렸으며, 분류가 정확한 도깨비만이 자리를 유지하는, 이른바 도깨비의 '자연선택' 방식과 더불어 프로그램의 반복적인 시행을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스템이 점차 정확해질 수 있었다. 

    같은 시기 또 다른 미국의 과학자 프랭크 로젠블랫(Frank Rosenblatt)은 이와 유사하지만 살짝 다른 모형인 퍼셉트론(Perceptron)을 발표했다. 이또한 패턴 인식에 촛점을 맞추고 있었으며, 유연한 계층적 연결이라는 동일한 발상을 따랐다. 이 같은 접근법은 이후 연결주의(connectionism) (인공신경망으 사용하여 인지적 능력을 설명하려고 하는 심리철학의 이론) 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로젠블랫은 뇌와 컴퓨터는 공통적으로 의사결정과 통제라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두 기능 모두 기계와 뇌 안에 존재하는 논리 규칙을 바탕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뇌는 여기에 더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두 가지 기능을 더 수행한다. 바로 환경에 대한 해석과 예측이다. 

  사실 퍼셉트론도 펜더모니엄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글자들을 인식하는 법을 학습한 것뿐이었다. 퍼셉트론의 경우에는 이 인식 가능한 글자의 크기가 0.5 미터이긴 했지만 말이다. 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퍼셉트론이 뇌처럼 다양한 계산들을 동시에 해내는 병렬처리 방식을 따름으로써 사전에 판형이 제공되지 않더라도 패턴 인식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로젠블랫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뇌 기능의 이론적 설명을 찾아내느 데 관심이 있었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자 전문가들은 퍼셉트론도 처음에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대단치많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공지능의 선구자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는 1969년에 동료 시모어 패퍼트(Seymour papert)와 함께 퍼센트론 모형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쓴 책을 출간했다. 이들은 퍼셉트론의 인식 능력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며 퍼셉트론이 인공지능으로서도 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측면에서도 그 이상의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퍼셉트론은 구조상 자신이 학습한 것에 대한 내적 표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비판과 더불어 이러한 모형의 발전이 더뎌지자 미국에서 연결주의적 접근법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끊어졌고 이 분야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후 학습의 전이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한 로젠블랫은 1971년, 자신의 마흔세 번째 생일에 보트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팬더모니엄과 퍼셉트론 모두 생물학적 패턴 인식 시스템에 적용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두 프로그램 다 뇌에 대한 연구자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인긴이나 기계의 지각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상당량의 가소성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이 둘은 기계나 유압식 체계에 빗대어 생각을 전개했던 기존의 모형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뇌 안의 얼굴 인식 네트워크

 

   발로와 달리 마는 단일한 뉴런의 활동이 회로의 기능 및 지각의 작용 기제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는 다소 가시 돋힌 문체로 자신의 새로운 방법론이 왜 타당한지 그 근거를 설명했다. 

   

     뉴런만을 연구함으로써 지각을 이해하려 하는 것은 깃털만을 연구함으로써 새의 비행을 이해하려 하는 것과 같다. 그냥 불가능한 일이다. 새의 비행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항공역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깃털의 구조 및 저마다 다른 날개 형태가 지니는 의미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정한 기능이 뇌(혹은 컴퓨터) 에서 어떻게 실행되는지 이해하기 위한 마의 접근법에서는 먼저 문제를 세 부분으로 나눈다. 첫째, 해결해야 할 문제를 논리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이 같은 이론적 접근방식은 해당 문제를 어떻게 실험 및 모델링을 통해 탐구할 것인지 기본 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둘째, 시스템이 하나의 상태에서 다음 상태로 넘어갈 수 있ㄷ록 알고리즘을 서술하는 것과 더불어 시스템의 입력과 출력이 표상되는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 단계가 물리적으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뇌 활동의 경우에는 신경계 내에서 이러한 알고리즘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해석해야 한다. 마는 기계든 뇌든 세상을 볼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존재하는 제약은 기본적으로 유사할 것이며, 따라서 생물의 육신이냐 실리콘이냐에 따라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사용하는 알고리즘 자체는 모두 유사하리라고 가정했다. 또한 그는 기계의 시각에 관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 머릿속에 있는 시각계도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는 허블과 위즐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모서리처럼 단순한 것들이 어떻게 식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전개했지만, 그의 접근법에는 펜더모니엄이나 퍼셉트론 같이 그저 선 조각들을 한데 이어 붙여 형판에 맞추어보는 계층적 모형보다 훨씬 더 풍부한 연산체계가 관여되어 있었다. 1976년 콜드스프링하버에서 개최된 학회에서 마는 "이 윤곽은 탐지되는 것이 아니라 구축되는 것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멀리는 헬름홀츠 시대부터 이어져온 이러한 견해는 뇌가 단순히 수동적인 관찰자로서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지각에는 이 같은 자극들을 조합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이는 어떤 시각 모형에서든 필수적인데, 기계(혹은 망막)가 그저 주어진 그림의 각 지점별 명암도를 식별하기만 해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고, 카메라는 세상을 보지 못한다. 

   그간 컴퓨터의 얼굴 인식과 그 밖의 장면 분석(scene analysis) 접근법에서 어마어마한 발전이 있어다고는 하나 기계 시각은 여전히 지금 우리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뒤쳐져 있다. 우리가 보는 장면에 대한 일종의 상징적인 표상이 뇌에 존재할 것이라는 점에는 다들 동의하지만 그러한 일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어느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인간이 할머니를 비롯하여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는 방식에는 마카크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뇌 안에 일종의 얼굴 인식 네트워크가 분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듯하다. 이는 스마트폰이 소유자의 얼굴을 인식하거나 보안기관에서 용의자들의 사진을 추리는 등 전적으로 고정된 얼굴 모습에 눈 사이의 거리나 얼굴형과 같이 다양한 생체 인식 랜드마크를 비교분석하는 데만 특화된 얼굴 인식 알고리즘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생물학적 시각계에서의 얼굴 인식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추상적이며, 궁극적으로 얼굴 부분 부분의 해부학적 특징 및 관계성이 아닌 허블과 위즐이 규명했던 선, 방울 모양 등의 구성 성분들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이 각각의 요소들은 일반적으로 마가 상상했던 바와 같이 복잡한 계층적 체계로 조직되는데, 얼굴뿐 아니라 환경 속에서 존재하는 다른 세부 특징에도 이 같은 방식 똑같이 적용된다. 

   얼굴의 지각에 관여하는 세포의 수는 수백만 개에 이르는데다 무엇보다 발로가 언급한 것처럼 원숭이의 머릿속에는 이 개별적인 세포들로부터 산출되는 결과를 지켜보는 미니 원숭이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개별적인 어느 세포 하나 또는 이 세포들의 작은 집단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이 어떠한 방식을 거쳐 지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시지각의 신경 기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강력한 결과를 발견했다. 2019년 여름, 몇 주 간격으로 컬럼비아대학교의 라파엘 유스테 연구팀과 스탠퍼드대학교의 칼 다이서로스 연구팀이 복잡한 광유전학 기법을 이용해 쥐의 내에서 시지각이 일어날 때의 활동 패턴을 재현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 같은 패턴이 활성화되면 쥐는 실제 시지각 자극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마치 눈으로 보는 듯 그에 들어맞는 행동을 보였다. 

 

 

딥러닝 네트워크와 인간의 능력 차이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자 신경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펜더모니엄과 퍼셉트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 새로운 계산과학적 접근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병렬 분산 처리(parallel distributed processing;PDP) 라고 부렸던 이 방법은 행동에 대한 혁신적인 컴퓨터 모델과 더불어 이라한 모델들이 심리학적, 신경생물학적으로 무엇에 해당하는지에 관해 서술한 두 권 분량의 책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이후 매우 큰 영향력을 떨쳤다. 이 같은 접근법이 발달하게 된 것은 데이비드 러멜하트(David Rumelhart), 제임스 맥클러랜드(James McClelland) 그리고 현재 구글의 책임연구원인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0 을 비롯한 수많은 연구자들의 연구 덕분이며, 물론 프랜시스 크릭의 공도 컸다. 이는 곧 뉴럴네트워크와 딥러닝(deep learning) 으로 이어져 계산신경생물학과 인공지능의 판도를 바꾸었고 정기적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한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주어진 과제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PDP 네트워크의 능력은 상당 부분 피드백루프의 형태로 정보가 층 사이를 양방향으로 오가는 백프로퍼게이션(back propagation;오차역전과 오류역전파라기도 한다.) 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덕분에 에 프로그램은 스스로 행동을 개선하여 빠르게 정확한 출력값을 내놓을 수 있었다. 

    2012년에는 이보다 더 예사롭지 않은 결과가 보고되었는데, 구글이 10억 개의 연결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1천 대의 기계에서 3일동안 가동시키며 각기 다른 유튜브 비디오에서 추출한 1천만 개의 이미지를 살피도록 한 연구였다. 사전에 지정한 템플릿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어떤 특별한 결과를 기대하지도 않은 탐색적 시도였다. 그런데 프로세서가 세차게 가동한지 몇 시간이 지나자 이 프로그램은 고양이의 얼굴에 반응하는 유닛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가상의 고양이를 위한 가상의 할머니 세포였다. 이는 프로젝트가 위도한 결과가 아니었다. 고양이를 찾으라는 지시를 받아서 고양이를 보고 이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지들은 일차원 데이터스트림으로 제시되었고, 프로그램은 단순히 유튜브 훈련용 데이터세트에서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일련의 데이터를 인식하도록 학습 중이었다. 즉 고양이였다. 이 일련의 데이터에는 눈이나 세모 모양 귀처럼 고양이 얼굴의 구성 성분에 상응하는 요소들이 있었으며 이는 모든 비디오에서 되풀이하여 제시되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해당 분야의 최신 기술이 적용되었다. 바로 딥러닝 네트워크였다. 딥러닝은 컴퓨터 기술의 약진을 이루어낸 수많은 비범한 연구 겨과의 배후에 있던 시스템으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데이터세트에 담긴 대상들을 식별하는데 뛰어나며, 그중에서도 특히 고양이 따위의 자연물 식별에 매우 능하다. 최근 들어 실제 뇌가 조직되어 있는 방식을 그대로 따르게 되면서 이러한 네트워크는 더욱 강화되었다. 사물을 기억할 수 있는 모듈이 도입된 것이다.

    최근 동물과 딥러닝 네트워크가 각각 시각적으로 제시된 사물을 어떻게 식별하는지 비교한 결과, 많은 생물학자들이 가정이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기계, 원숭이, 인간이 ㅁ두 개나 곰과 같은 자연물 그림을 식별해낼수 있었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은 동물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의 오류를 범했는데, 이는 곧 프로그램이 이미지를 처리하는 방식이 동물과 다음을 의미했다. 나아가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거승로 무넺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계와 동물의 이미지 처리 기계 사이에 뭔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인공지능 분야의 연구자 대부분이 생물학에서 영감을 받았다(혹은 도전 과제를 이끌어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유형의 모델들이 실제 생물학적 처리 과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 사례는 드물다. 그중 하나가 학습이다. 가장 큰 효과를 보였던 프로그램 상당수가 연속적 추정치(successive predictions) 의 정확도 차이를 구하는 시간차 학습(temporal difference learning) 을 이용해 뛰어난 성과를 이루어냈다. (바로 이 알고리즘이 최근 바둑에서 인간을 이겼던 프로그램의 바탕이다. 2003년 연구에서는 인간이 학습하는 동안 도파민을 생성하는 뉴런의 활동이 정확히 시간차 모형의 예측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자연 학습에 이러한 유형의 과정이 관여하고 있다는 강력한 근거를 제공했다. 

   프로그램이 일반적으로 오랜 학습 시간과 다량의 훈련용 데이터세트를 필요로 하는 데 반해 동물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학습할 수 있으며 때로는 단 하나의 예시를 바탕으로도 학습이 일어날 수 있다. 이 같은 관찰 결과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을 개선할 방법에 대한 잠재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동물들은 신경계가 특정한 자극에 반응하도록 사전에 준비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예컨데 새로운 음식을 먹고 탈이 나게 되어 있었던 쥐는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그 음식을 피하도록 학습할 것이다. 하지만 쥐에게 전기충격을 가하거나 새로운 소리와 메스꺼움을 연합시키려고 할 겨우 이와 동일한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같은 선험성은 꽤나 명백한 진화론적 이유로 인해 미각과 메스꺼움 사이의 연결에만 관여한다. 이처럼 사전에 존재하는 구조를 인공지는 네트워크모델에 구축한다면 수행 능력을 한층 더 개선할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2017년 12월, 구글의 인공지능 연구자 알리 라히미 (Ali Rahimi)는 알고르짐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이 연금술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이 분야는 "적하숭배(cargo cult) 관행이 들끓고" (적하숭배 : 주로 외부 세계와 철저히 고립된 소규모의 전통사회 집단에서 발생하는데, 서구 문명과의 접촉으로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전통적인 사회와 문화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그 해결책으로 백인들이 처음 가져왔던 놀라운 물건들[1]을 얻고 지상낙원이 도래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있으며 "민간전승과 마법 주문"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2019년에는 <와이어드(wired)> 와 뉴럴네트워크에 관한 인터뷰를 한 제프리 힌튼은 "그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정말 하나도 모릅니다."라며 유쾌하게 인정하기도 햇다. 뇌의 작용 기제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찾고자 뉴럴네트워크에 기대를 걸고 있는 신경과학자가 있다면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많은 컴퓨터 과학자들 여깃 자신들이 개발한 복한 시스템을 설명할 이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

 

   크릭은 뇌가 밟아온 진화의 역사가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때그때 그럭저럭 적합한 일련의 단계를 거쳐 만들어졌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여겼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잘 굴러가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뇌는 사전에 철저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 결과 우리는 뇌가 "심오한 일반 원리"를 담고 있는지 확실히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목적 달성을 위해 겉만 번지르르한 요령만 선소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 우리에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논리 원칙을 찾는 일이 아니라 "그 장치를 세밀하게 탐구"하는 일이었다. 그는 과학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기존의 생각들을 검증하기 위해 뇌 안을 들여야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4년 뒤 크릭은 뇌의 연결 지도를 발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1994년, 짐 바우어 (Jim Bower)와 데이비드 비먼(David Beeman)은 일종의 설명서 겸 'GENESIS(GEneral NEural SImulation system)'이라는깜찍한 이름의 뉴럴네트워크 시뮬레이터를 프로그램하기 위한 지침서를 펴냈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연구자들은 구체화 (Compartmentalized) 된 뉴런 및 각 구획의 시냅스들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으며, 현실적인 시냅스 전위와 더불ㄹ어 호지킨과 헉슬리의 연구 결과와 일관된 방식으로 가능하는 이온통로들의 저마 다른 밀집도를 시뮬레이션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후 이러한 가상 뉴런들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신경해부학에 따라 실제 신경망과 연관 지어 살펴볼 수도 있었다. 

   이같은 비교적 현대식의 시뮬레이션 환경은 과학 연구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투입되었던 사업계획 중 하나인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의 밑거름이 되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해당 프로그램 가동에 적합한 고성능 컴퓨터가 주어질 경우 2020년이면 "완전한 인간 뇌를 세포 수준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며 연구 성과를 제한하는 유일한 요인이 기술임을 암시했다. 이처럼 지나친 야망에 더해 계획에 따른 결과값 상당수가 생물학적으로 어떠한 연관성을 지니는지가 불확실한 탓에 유럽의 신경과학자들 다수가 전례 없는 막대한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에 관여하기를 거부했다. 

   더 큰 문제는 프로젝트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산과학적 측면을 편애하고 막상 뇌를 설명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인지 및 신경생물학적 과제들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면서 발생했다. 이후 운영상의 다양한 문제들은 해결이 되었지만 다수의 신경과학자들은 여전히 컴퓨터과학적인 측면에서 내놓는 결과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 프로젝트에 쓴 어마어마한 금액은 결국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해 그 어떤 대단한 통찰도 주지 못할 것이라며 불신을 거두지 않았다.

    2015년에는 마크람이 이끌던 또 하나의 시뮬레이션 프로젝트인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요 결과가 긴 논문 세 편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쥐의 뒷다리 움직임을 통제하는 운동피질 일부에서 떼어낸 길이 2밀리미터, 지금 0.5밀리미터의 작은 원통 모양의 뇌 조직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쓰인 논문이었다. 즉 표본은 쥐의 뇌에서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이로부터 뉴런 약 천 개의 삼차원적 구조가 확인되었으며, 연구진은 다시 그 결과를 이용해 3.700만 개의 가상 시냅스에 연결된 207개 유형의 가상 뉴런 3만 1천여 개(이는 실제 이 정도 크기의 죄의 뇌에 존재하는 뉴런 및 시냅스 수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이다.)를 해당 뇌 영역을 나타내는 모델에 채워 넣었다. 논문의 저자들도 인정했듯 이 모델에는 "간극 연결, 수용기, 교세포, 혈관 구조, 신경조절물질, 가소성, 항상성 같은 미소 회로 구조 및 기능에 대한 중요한 세부 사항들이 상당수" 빠져 있었다. 이렇듯 모델에서 누락된 요소들의 수와 더불어 모델링의 대상이 된 쥐의 뇌 영역의 크기를 보면 신경과학자들이 왜들 그토록 이러한 접근법을 돈 낭비라고 여기며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언론의 과장된 기사들에 화를 내는지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수많은 핵심 특징들을 의도적으로 빠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은 동기화된 활동을 보이거나 여러 상태를 오가는 등 얼추 실제 뉴런들의 행동을 흉내 냈다. 연구진이 앞서 빠뜨린 세포나 기능들은 물론 이 작은 영역에 존재하는 모든 뉴런과 모든 시냅스를 시뮬레이션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제작한 모델은 얼토당토않은 오류를 뱉어내는 대신 기본적으로 실제 뇌 조직에서 관찰된 바와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했다.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는 철저하게 상향식 접근법을 따른다. 뇌의 작용 기제에 대한 전체적인 이론 따위는 없다. 뇌의 일부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시뮬레이션 내의 구성 요소들을 제거하고 행동에 변활르 가하는 등의 조작이 전체 시스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봄으로써 기능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 휴먼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이었다. 뇌의 작용 기제를 설명하는 이론이 만약 존재할 수 있다면 차후에 저절로 발생할 것이라고 여겼다.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의 크리스 엘리아스미스(Chris Eliasmith)연구팀은 이와 반대로 하향식 접근법을 취했다. 이들은 2012년에 250만 개의 뉴런들이 담긴 모델로 로봇 팔에 부착된 형태를 띤 "Sapun (Semantic Pointer Architecture Unified Network;의미 포인트 구조 통합 네트워크)을 발표했다. 'Spaun' 은 일반적인 시뮤레이션이 아니라 여러 문자들이 제시되면 그중의 하나를 따라 그린다는 아주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도록 고안되었다. 따라서 이 도전에는 문자 인식, 기억, 그리고 원하는 문자를 따라 그릴 수도 있도록 팔을 제어하는 까다로운 문제가 결합되어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신경과학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인지 및 이론신경과학을 연구하던 이들은 점차 뇌가 베이지안 논리 (Bayesian logic)을 따라 작용한다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토머스 베이즈는 18세기 영국 성직자이자 통계학자로 사전 지식이나 가설에 근거한 기댓값이라는 측면에서 확률을 연구한 인물이다. 1980년,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그레고리 (Richard Gregory)가 처음으로 이 같은 접근법을 지지하며 착시로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뇌가 스스로 환경에 대한 가설을 세운다는 헬름홀츠의 관점과도 연결되는 이 견해는 심리적 과정과 직관적인 관련이 있다. 예컨데 여러 개의 대안을 놓고 따져볼 때 우리는 강력한 근거에 초점을 맞추고 약한 근거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베이지안 과정의 핵심이다. 

   21세기 초, 영국의 신경과학자 칼 프린스턴(Karl Frinston) 은 베이지안 접근법을 활용해 헬름홀츠의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 복잡한 수학적 모형을 사용하여 자유 에너지 원리 (free-energy principle) 라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새넌의 정보이론에서 신호의 예측 오차와 관련된 측면을 바탕으로 이론을 전개한 프린스턴은 이 원리가 뇌의 작용 기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꿀 것이라며, 뇌가 이 같은 체제를 구현하는 것으로 본다면 (...) 뇌의 해부학 및 생리학의 거의 모든 양상이 이해되기 시작한다."고 분명하게 주장했다. 그는 특히 피드포워드와 피드백, 그리고 측면 연결들에 대한 상대적 가중치와 더불어 뇌의 계층적 구조가 베이지안 확율과 연관된 반복된 계산의 수행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뇌는 오차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으며, "생물학적 해위 주체자들은 세상과 교류할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베이지안 지각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프린스턴의 주장이었다. 

   프린스턴의 견해는 통제에 관여하는 피드백루프에 내포되어 있는 지각과 예측의 근간을 이루는 연산 과정이 모든 생물체에게 존재하는 단순한 물리적 원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시사했다. 이러한 발상의 시작은 1943년, 뇌를 "외부 사건을 본뜨거나 재현하는 능력을 갖춘 계산 기계"라고 보았던 크레이크의 대한히 영향력 있고 효과적이었던 제안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에든버러대학교의 철학자 앤디 클라크(Andy Clark) 는 뇌를 "예측 기계"로 묘사하며 프린스턴을 비롯한 연구자들의 통찰을 이용하여 뇌와 인공지능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발전시켰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서식스의 심리학자 아닐 세스(Anil Seth)  가 데카르트를 따라 인간을 '동물 기계'라고 칭하며 이 기계 내부의 베이지안 기능에서 비롯한 과정으로 인간의 자기성(selfhood)을 이해하고자 했다.

    우리의 지각이 프린스턴의 모형 및 일반적인 베이지안 접근법에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주변 처리(peripheral processing)를 수행할 때 발생하는 일종의 하향식 영향을 받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적 증거가 있다. 우리의 뇌에는 상위 뇌 영역으로부터 다시 초기 V1 영역(primary visual cortex;일차 시각피질)으로 향하는 신경절이 존재하는데, 이 신경들이 경두개 자기자극법(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의 자극에 의해 불활성화 및 부반응 상태가 되지 인간 피실험자들은 시각피질의 또 다른 영역인 V5 영역 (medical temporal area;중측두 영역)에 전기자극이 주어질 경우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착시적 불빛 (phosphene;안내섬광)을 지각하지 못했다. V1 뉴런의 활동을 바꿈으로써 뇌의 다른 영역에서 비롯된 지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뇌는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으로 기능할 수 있다. 외부 세상에서 받아들인 단순한 정보 (선, 모서리 등)들을 그저 수동적으로 취하바여 지각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최근 과학자들은 원숭이 실험을 통해 전두엽 내 뉴런 활동이 사전 지식에 의해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정확히 어떤 세포 집단이 이를 처리하고 있으며 어떻게 이 같은 추론을 할 수 있었는지를 밝히는 대신 사전 지식으로 인해 최적의 반응에 대한 암묵적인 표상을 지니고 있는 뉴런 집단의 특정한 통계적 특성 (저차원 만곡 다양체;low-dimensional curved manifolds)이 변화했다는 사실만을 보였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시스템 모델을 활용하여 이 같은 특성이 다양한 조건하에서 어떻게 변화할지를 예측할 수는 있었지만 실제 동물을 통해 검증하는 단계가 남아 있다.

    단일 세포의 정밀한 활동에 대한 이론과 신경생물학적 증거 사이의 간극은 일부 곤충에게서 볼 수 있는 비행 중 짝이나 먹이를 낚아채는 능력과 같이 베이지안 계산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한 뇌의 예측 시스템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낚아채는 움직임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각자와 목표물의 위치 및 움지임을 탐지하는 과정과 더불어 처음 두 개체 간의 상대적 위치에 대한 측정과 미래의 상대적 위치에 대한 예측 등 적어도 두 가지 유형의 계산이 수반되어야 한다. 

    곤충의 뇌에서 정확히 어떠한 유형의 단순 예측이 이루어지는지 규명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곧 인간 뇌의 복잡한 기능을 설명하는 데 베이지안 이론을 적용하는 접근방식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지각을 설명할 베이지안 예측과 같은 무엇인가가 신경계 내에 실재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이러한 가정을 뇌 전체에 대한 이론적 설명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는 발상은 아직까지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얼마나 멋들어지고 매력적인 이론이건 간에 그 이론의 타당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은 언제나 실험적 증거의 유무이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진보

 

   '뇌는 컴퓨터다'라는 보편적인 견해는 지난 1세기 동안 여느 전자 기계와 마찬가지로 전기를 이용해 뇌의 활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1920년대에는 연구자들이 뇌에 전기자극을 가하여 정서의 해부학적, 생리학적 기제를 탐구하기도 했다. 미국의 생리학자 월터 캐넌은 정서가 내장이나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아닌 뇌의 활동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혔다. 인간에게 아드레날린을 주입할 경우, 심박의 증가와 같이 정서와 연관된 일반적인 생리학적 내장 반응들은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정작 정사 경험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캐넌은 정서 반응의 조율은 시상사하부에서 이루어지지만 그에 대한 통제는 피질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스위스의 연구자 발터 헤스(Walter Hess)는 이러한 접근법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고양이의 시상하부에 전기자극을 가하면 고양이가 침을 뱉고 털을 곤두세우고 동공이 확장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며 아무런 위험이 없음에도 이따금씩 앞발로 공격 행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정서가 뇌의 특정 영역에 대한 전기적 자극에 의해 방출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기초적인 생리 반응들에 관여하는 자율신경 중추들이 운동피질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뇌 자극술의 잠재적으로 덜 무해한 사용법은 미국 국방부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최근 관심을 보이고 있는 연구를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DARPA는 2017년 비침습적 방법을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군이들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목표 하에 '표적 신경 가소성 훈련(targeted neroplasticity training)' 에 관한 대규모 연구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DARPA의 지원을 받아 외상 후 스트레스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 피험자 뇌의 현재 상태를 목표 상태와 비교한 뒤 관련 영역을 자극함으로써 자동적으로 피험자의 기분을 바꾸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또한 뇌가 어떻게 기계를 제어할 수 있을지 보여주는 놀랍고 매우 긍정적인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일례로 2012년 미국 브라운 대학교의 존 도너휴(John Donohgue) 연구팀은 운동피질에 이식된 전극을 활용하여 수년 전 뇌졸증을 앓았던 58세 여성과 66세 남성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이후로 도너휴와 동료들은 척추 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된 환자들의 뇌와 팔에 전극을 이식하고 있다. 환자는 자신의 뇌에서 흘러나온 신호가 근육의 전기자극으로 변환됨에 따라 로봇 팔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의 과정에서 로봇이나 인간의 팔에서 피드백이 제공되지 않는다. 이러한 피드백 현상을 가리켜 고유 수용성 감각(proprioception) 이라고 하는데, 예컨데 우리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꽉 쥐고 있는가에 관한 정보를 알려 줌으로써 우리가 자신의 신체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적인 요소다. 하지만 이 기능도 머지않아 도입될 예정이다. 최근 연구자들은 손이 절단된 환자를 위해 팔에 이식된 전극으로 제어 가능한 생체공학적인 손을 개발했으며, 이 장치가 피부의 신경을 자극함으로써 이 환자는 진동, 고통, 움직임 등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각기 다른 미묘한 감각들을 최대 119가지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침습적인 절차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 교토의 크리스티안 페날로샤(Christian Penaloza) 와 니시오 슈이치(Shuichi Nishio)는 2018년, 건강한 사람들의 겨우 뇌파 측정용 캡을 쓰고 자신의 두피 근육에서 나오는 신호를 이용해 다른 일을 하면서도 제3의 로봇 팔을 제어하는 법을 학습했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니까 가령 피험자가 두 손으로 판자를 기울여 판자 위에 놓여 있던 공이 다른 위치로 굴러가게 하는 것과 동시에 로봇 팔에게는 입 가까이로 음료수를 가져오라고 지시할 수가 있었다. 

   의안을 뇌와 연결하는 데 성공한 첫 번째 사례는 2000년에 보고되었다. 비디오카메라에 연결된 전극이 시각장애와 환자들의 시각피질에 삽입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환자들이 직접 상을 볼 수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대신 전극들은 환자들에게서 빛을 느끼는 감각을 활성화시켰고 한참 동안의 훈련을 거친 환자들은 이 전기 활동을 해석하여 사물을 탐지하거나 큰 글자들을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 20여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망막이나 뇌 이식이 실제 시각과 같은 감각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청각의 경우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1961년에 첫 번째 와우 이식술이 이루어진 이후 이러한 접근법은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되어 전 세계 수십만 명의 환자들이 이 기술의 혜택을 보았으며, 청각장애인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되면서 보인 정서적 반응들이 담긴 가슴 따뜻한 영상들도 많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들이 인공 시각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실제 사람들의 삶을 바꿨다고 해도, 이식술이 아직은 모든 범위의 소리를 들을수 있게  해주지는 못한다. 

    최근 각기 다른 여러 연구팀 산하 연구자들이 아주 까다로운 분야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바로 뇌의 활동으로부터 직접 합성 음성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술은 "마음을 읽는" 과정을 수반하지 않는데, 실제로는 우리가 말을 할 때의 근육 통제와 관련된 신경 활동 패턴을 그로부터 생성된 소리와 연합하는 법을 컴퓨터가 학습하는 것뿐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말에 관련된 신경 활동을 인공 목소리로 변환해준다는 목표는 지금으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이 모든 발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 결과들이 뇌가 실제 컴퓨터임을 시사한다거나 우리가 뇌의 작용 원리를 전부 깨쳤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연구들은 우리 뇌가 가지고 있는 가소성을 조명해준다. 

    이 같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와 함게 살아가는 이들에게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테즈메이니아대학교의 생명윤리학자 프레드릭 길버트(Frederic Gilbert)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뇌전증 발작이 임박했을 때 미리 알고 그에 맞추어 약물을 복용할 수 있도록 뇌에 전극을 심은 여섯 명의 환자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들에게 취해진 조치가 무해한 의학적 중재법이라고는 하지만 그중 6번 환자는 처음 장치를 접하고는 "외계인 같다"로 말하는 등 특히 극단적으로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환자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다. "이걸 사용하는 데 차츰 자신감이 붙고 익숙해지면서 어느샌가 일상의 일부가 되어 매일 낮 매일 밤 곁에 있고 (...) 어디에든 따라다니고 나의 일부가 되더니 (...) 그게 내가 되어서 (...) 이 장치를 통해 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어요"라는 것이 그가 이 장치를 사용하면서 느낀 경험담이었다. 

   이 이야기가 어쩐지 찜찜하게 느껴진다면 다음에 일어난 일을 한번 살펴보자. 이후 6번 환자의 뇌에 장치를 이식해준 업체가 갑작스레 파산하며 환자에게서 장치를 떼어내야만 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이 불쌍한 여성은 깊은 상실감을 겪게 되었고,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어"라고 말했다. 경제체제 탓에 그는 자신에 주어졌던 무언가를 다시 빼앗겼다. 길버트는 6번 환자가 이식된 장치와 상호작용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고 그가 짧은 시간 동안 언뜻 마주했던 새로운 세계는 어떠했으며 변화를 주도했던 이에게 닥친 잔혹한 현실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암울하게 요약했다. "그 장치는 단순한 보조 도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업체에서는 이 새로운 사람의 존재를 소유했던 것이다"라고 말이다. 사설업체에서 우리 뇌에 장착할 인터페이스의 자금을 대는 미래 사회에서는 우리가 어쩌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과학 연구가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으며 흥미로운 발견과 치료적 가능성이 예상치 못한 심오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뇌 과학의 역사를 보면 명백하게 알 수 있다. 과학과 문환느 서로 깊이 얽혀있는데, 특히 과학적 발견이 우리의 지각과 정서에 영향을 줄 경우 그러한 경향성이 더욱 두드러지며 그중 일부가 지금껏 문화적으로 가장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했다.

 

13. 화학 - 1950년대부터 오늘날

     1943년 4월 19일, 바젤에 위치한 제약회사 산도스에서 일하던 스위스의 화학자 엘베르트 호프만(Albert Hoffmann)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던 길이었다. 그가 훗날 회상한 바에 따르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미묘하게 흔들리고 마치 굴곡진 거울에 비추듯 뒤틀려 보였다."고 한다. 집으로 되돌아간 그는 극힘한 불안감을 경험했고 이는 끝내 아주 기이한 감각으로 바뀌어, "만화경처럼 기상천외한 사이 마구 말려들어 번갈아 나타나더니 온갖 색상으로 얼룩지고 원과 나선형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오색 빛깔의 분수로 폭발하고는 재정렬되어 다시 끊임없는 유동성의 물결로 뒤섞였다." 자전거에 오르지 전 호프만은 자신이 5년 전 제작했고 무해하다고 생각한 분자 합성물을 다량 섭취했다. 바로 LSD 였다. 

   매우 중대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진 호프만의 이 발견(LSD 중독자들은 매년 이 날을 자전거의 날로 기념한다.)은 이후 20년간 뇌 화학에 관한 우리의 상식을 바꾼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호프만은 처음  LSD  를 합성할 때만 해도 강력한 향정신성 약물을 만들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그는 그저 호흡을 돕는 합성 물질을 발견하려고 했을 뿐이다. 

   1940년대 후반, 프랑스의 제약회사 론플랑은 군의관이었던 앙리 라보리 (Henri Laborit) 와 함께 항스타민제 (알레르기 반응을 줄여주는 성분)를 개발 중이었다. 그중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합성 물질은 항스타민제로는 매우 약한 효과를 보였으나 강력한 진정 효과를 유발했다.  그 무렵 비슷한 향정신성 효과를 내는 레저핀(reserpine)이라는 약물이 또 다른 우연한 계기로 발견되었다. 레저핀은 본래 혈압을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전통 의학에서 쓰이던 제품을 활용하여 개발되었지만 신경 이완이라는 심리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53년에는 제약회사 시바(CIBA) 의 직원이 레저핀의 효괄르 지칭하는 훨씬 단순한 용어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바로 신경안정제이다.

   이들의 발견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접근방식이 기존의 정신분석학적 접근법에서 오늘날의 의학 및 화학적 관점으로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신약 개발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약의 출시는 어김없이 기대와 열광을 동반했지만 그때마다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견되면서 이내 다시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약물들은 건강한 뇌와 병든 뇌에서 여러 기능들의 화학적 기제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방은 제시해주었다.

   1952년, 런던에 있는 국립병원에서 일하던 험프리 오즈먼드(Humphry Osmond)와 존 스미시스(John Smythies) 는 페요테(작고 가시가 없는 선인장의 일종)의 유효성분인 메스칼린이 조현병의 일부 증상들을 비슷하게 재현한다고 보고하며 이 물질이 부신에 분비되는 노르아드레날린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오즈먼드와 스마시스는 이를 지칭하는 '환각제'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로부터 2년 뒤, 이들은 아드레날린이 자연적으로 산화된 형태의 하나인 아드레노크로뮴이 조현병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계에서 오스몬드와 스미시스는 캐나다 서스캐처원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 환각성 물질을 사용하는 방식을 개척했다. 의학적 전통에 따라 오스몬드는 아드레노크로뮴을 자신에게 투여하고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했다. 그는 결과를 보고한 논문을 <정신과학저널)에 발표했다.

   

      눈을 감자 발게 채색된 점 문양들이 나타났다. 메스칼린을 투여했을 때 보았던 것보다는 색이 선명하지 않았지만 종류는 비슷했다. 점 문양들은 점차 분해되어 물고기 같은 형태가 되었다. 마치 해저나 수족관 속에 들어와 형형색색의 화려한 물고기 떼에 둘러싸인 듯했다. 한 순간 나는 내가 이 물 속의 말미잘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지만 전혀 즐겁지는 않았다.  또 다른 경험에서 오즈먼드는 아주 불쾌한 환각을 느꼈고, 이에 연구자들은 고도로 통제된 상황 외에는 아드레노크로뮴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신경계에서 새롭게 규명된 화학 성분에 집중했다. 1955년에는 버니드 '스티브' 브로디(Bernard 'Steve' Brodie) 와 동료들이 레저핀과 LSD 가 모두 세로토닌 수치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는데, 세로토닌이란 소화기관이나 자궁과 같은 민무늬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능 미상의 물질로 그보다 2년 앞서 베티 트와로그(Betty Twarog)가 뇌에서 처음 발견했다. 브로디의 연구는 레저핀이 세로토닌 수치를 증가시키는 반면  LSD는 그 수치를 감소시킨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아울러 브로디 연구팀은 곧 세로토닌이 뇌 기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으며, 레저핀이 노르아드레날린과 도파민 등 신경 활동에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겨지는 뇌 내 두 가지 물질의 수치에 변화를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스위스의 연구자들은 클로르프로마진의 구조를 출발점으로 삼아 조현병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을 찾고자 했다. 하지마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지던 이 접근법은 예상했던 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이미프라민이라는 약물의 경우 실제로 향정신성 효과가 매우 크게 나타났지만 환자들을 진정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강력한 흥분제 역할을 했다. 이는 조증 환자들에게는 쓸모가 없었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한편 이프로니아지드(iproniazid) 라는 또 다른 약물이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이 또한 항우울제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효과를 찾아낸 연구자들은 이프로니아지드를 가리켜 '정신 활력제(psychic energizer)'라고 불렀다. 이프로니아지드는 이 같은 효과로 인해 우울증 치료제로 널리 쓰이다가 간 손상 부작용이 발견되면서 사용이 중단되었다. 

    1960년대 초가 되지 불안을 감소시켜주는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계 약물 (리브륨(Librium), 발륨(Valium) 등)들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중 첫번째인 리브륨의 향정신성 효과 역시 우연히 발견되었다. 호프만 라로슈 제약회사의 연구자들은 화학첨가제를 이용해 마땅히 쓸데가 없어 보이는 어떤 합성 물질을 안정화 처리한 뒤 따로 보관했다. 그로부터 2년이 자난 어느 날 선반에서 이 약물을 꺼내 보니 지금과 같은 형태로 향정신성 ㅎ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들은 대중성이 매우 뛰어났으며, 지금도 단기적인 불안 감소르 위해 널리 처방되고 있다. 

   이처럼 철저히 우연에 기댔던 제약회사들의 신약 개발과 유일하게 달랐던 사례는 조증 상태를 치료하는 데 리튬염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이었다. 브로민화 리튬(lithium bromide) 은 19세기 및 20세기 초부터 뇌전증 치료제로 쓰이곤 했지만 유효량을 사용할 시 동시에 독성도 나타나는 바람에 쓰밍새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던 1948년, 존 케이드(Johnm Cade)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의사가 기니피그에게 리튬을 투여하자 이 실험ㅅ동물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는 중증 조증을 알고 있던 열 명의 환자들에게 이 합성 물질을 시험해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5년간 만성 조증 흥분 상태에 있던 51세 남성 W.B 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미에 지저분하고 파괴적인 데가 여기저기 말썽을 일으키고 다니며 참견하기 좋아했던 탓에 오래전부터 병동에서 가장 골치 아픈 환자였다. 그가 보인 반응은 매우 만족스러웠고 (...) 그는 곧 기쁜 모습으로 전에 다니던 직장으로 돌아갔다. 

 

   리튬이 투약 환자들의 외현적인 증상들만을 억누른 것은 아니므로 이를 진정제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치료제도 아니었다. 환자가 약을 중단하면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리튬은 특허로 등록되지도 못했고 제약산업의 관심도 뜨뜻미지근했다. 그러다 1970년대에 이르러 허가 여부에 관계없이 리튬을 처방한느 혁명적인 정신과의사들로 구성된 일명 '리튬 치하 운동 (lithium underground)'이 등장했고 그제서야 미국에서 기분에 영향을 주는 약물로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리튬이 어떻게 그토록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신약물들은 전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었는데, 극심한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으 주는 등의 임상적 의의와 뇌 그리고 나아가 마음이 어떠한 원리로 작용하는지에 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통찰을 얻을 가능성이었다. 이에 역사학자 장 크로드 뒤퐁(Jean-Clude Dupont)은 이 같은 결과들이 뇌가 "전기적인 기계일 뿐 아니라 분비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화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창기 기대와는 다리 이 약물들이 마음에 미치는 효과와 생리적인 작용 기제 사이의 연결고리를 확립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이를테면 연구자들은 처음에는 LSD 의 환각성 효과와 일부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환각 증상들이 모두 세로토닌 때문에 발생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은 클로르프로마진이 레저핀과 마찬가지로 환각 증상을 완하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세로토닌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며 불쾌한 정신증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다른 약물들도 세로토닌 수치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곧 기각되었다. 

    1959년 미국 국립정신보건원의 시모어 케티(Seymour Kety) 는 조현병에 관한 생화학 이론들을 정리한 중요한 논문 2부작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케티는 조현병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환자를 대하면 자칫 그 뒤에 자리한 다양한 범위의 문제들이 가려질 위험이 있다고 조언한 뒤, 타락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잠재적 원인들에 대한 증거들을 골고루 따져보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세로토닌의 잠재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가장 걸리적거리는 문제는 바로 "세로토닌이 중추신경 기느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모호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뇌 내 화학작용이 어떤 일을 수행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기에 이상이 발생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조금식 비밀이 풀리기 시작한 뇌 화학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다.

 


신경전달물질, 뇌의 풍부한 화학적 세상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분명한 것들이 1950년대나 1960년대만 해도 전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었다. 심지어 다양한 활성 물질들을 공통 기능별로 묶어 분류하는 방식의 일환으로 사용하게 된 신경전달물질이라는 용어 자체도 1961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파민에 대한 연구로 2000년 노벨상을 수상한 아비드 칼슨 (Arvid Carlsson) 의 말에 의하면 1960년대 초에는 뇌 안에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견해에 상당히 회의적인 반응이 따랐다. 이와 관련해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약리학 교수였던 아널드 버젠 (Arnold Burgen)은 1964년, 시냅스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판단하는 글을 <네이처>에 발표했다.

    

   시냅스의 생리학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더 큰 실망이 안겨주는 것은 포유류의 신경계 내에서 아세틸콜린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화학적 전달물질의 본질도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 그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다른 영역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일차 감각계의 구심성 섬유와 척수 억제 체제의 시냅스 전파 후 연결에서 관찰되는 화학적 전달물질조차 모른 채 우리는 완전한 어둠 속에 갇혀 있다. 

 

   그렇지만 이후 10년간 신경전달물질이 기능하는 정확한 방식이 밝혀지면서 버젠의 실망감도 곧 누그러졌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물질들이 발견되었으며, 이들은 최초로 규명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에 더해 아미노산 계열(GABA 등) 과 펩티드 계열(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등)과 모노아민 계열(노르아드레날린, 도파핀, 세로토닌) 이라는 세 개의 주요 유형으로 묶었다.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은 일부 뉴런들에 의해 생성된 산화질소라는 가스가 조직들 사이로 확산됨에 따라 신경 활동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베테랑 신경전달물질 전문가 솔로몬 스나이더( Solomon Snyder) 에 따르면 뇌 안에는 최대 2백 가지 펩티드 들이 신경전달물질로서 작용하고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이 같은 새로운 신경전달물질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 핵심 요인 중 하나는 형광이나 방사능물질을 사용하여 이들의 모습을 시각화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수르이 등장이었는데, 이에 장 클로드 뒤퐁은 "뇌에서 아민에 의한 신경전달이 이러우진다는 사실을 마침내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약리학도 전기생리학도 아닌 조직화학 덕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50년대에 최초로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시냅스의 상을 손에 넣게 된 버나드 카츠는 활동전위의 바탕이 되는 칼슘 유입 과정에 이어 시냅스 전 뉴런에 달린 소낭들이 신경전달물질이 되는 칼슘 유입 과정에 이어 시냅스 전 뉴런에 달린 소낭들이 신경전달물질을 시냅스로 방출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GABA 와 같은 일부 신경전달물질들이 억제성 기능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 세기 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혔던 억제의 본질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었다. 

    신경전달물질에 대한 시냅스 후 반응에 관여하는 수용기 상당수의 정체도 곧 밝혀졌다. 이 수용기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는데, 일부는 즉각적인 활동전위의 전달을 야기했으며, 그 외 나머지는 시냅스 후 뉴런의 이차 전령 분자들로 하여금 연쇄적인 활동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조금 더 느리게 반응했다. 

    뇌의 풍부한 화학적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데, 뇌의 활동에는 신경전달물질의 고동치는 활동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느리게 작용하는 신경호르몬의 효과도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아미노산의 짧은 사슬 형태인 펩티드로 구성된 이 물질들은 혈류나 세포 내 공간들로 방출되어 신체, 특히 뇌 안에서 신호 전달 분자로 활동한다. 이에 관한 상당수의 연구들은 에든버러대학교의 신경생리학자 개러스 랭 (Gareth Leng) 이 '뇌의 심장'이라고 지칭했던 시상하부와 여기에서 생선된 호르몬이 스트레스 반응과 생식을 비롯한 복잡한 생리학적 행동 반응들을 협응시키는 과정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60년대에는 랩틴(Leptin) 과 그렐린(ghrelin) 이라는 신경펩티드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섭식행동 미 포만감을 느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즉 신경호르몬은 대부분 행동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필수 생기 과정들에 대한 장기적인 통제에 관여한다. 

    이러한 물질들은 행동에 관여하는 뇌의 회로에 영향을 준다 새끼들을 데로 와서 보금자리를 만들도록 암컷 쥐의 반응을 바꾸는 것처럼 일시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수컷 쥐가 보다 수컷다운 행동들을 하도록 뇌를 변화시키는 것처럼 영구적일 수도 있다. 신경펩티드들이 분배되는 방식은 신경전달물질의 활동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신경호르몬을 담고 있는 소낭들은 시냅스뿐만 아니라 뉴런 전체에 존재할 수 있다. 특히 가지돌기에 다수 분포하는데, 이들은 반복적인 자극이 주어지는 동안 신경계 일부의 기능을 재편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뇌 기능의 이 같은 양상은 매우 복잡한데, 뇌 전체 부피의 약 20퍼센트에 달하는 세포 내 공간을 통해 무려 백 가지 이상의 신경펩티드가 확산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분자들은 한 번에 방출되는 수의 규모가 신경 전달물질 분자들의 수보다 훨씬 크며, 그 과정은 수일 동안 지속될 수 있다. 각각의 펩티드 체계는 동물의 몸에 가해지는 내외부의 조건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뇌의 활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제어하는 자체적인 피드백루프도 갖추고 있다. 비교연구 결과, 이 같은 연결망이 전회의 시간을 아주 오래전까지 거슬러 대략 5억 3천만 년 전 일어났던 캄브리아기 대폭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나타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신경펩티드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발견 중 하나는 1973년 스나이더 연구팀의 박사 후 과정 연구자였던 캔더스 퍼트(Canas Pert)가 아편 수용기에 대해 밝힌 내용이다. 본래 이 연구는 도심지역 및 베트남에서 전투 중이던 군 징집병들의 헤로인 사용 증가세에 대처하기 위해 기획된 미국의 어느 프로그램에서 자금을 지원했는데, 이 같은 수용기의 존재는 어째서 포유류가 그토록 아편계 약물에 관심을 가지는지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애초에 뇌에는 어째서 그러한 수용기가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분명 뇌에서 자연발생하는 물질 중에 해당 수용기와 결합할 수 있는 일종의 아편과 같은 물질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마침내 1975년, 에버딘대학교의 존 휴스(John Hughes) 와 한스 코스터리츠(Hans Kosterlitz) 는 돼지의 뇌에서 잠재적으로 아편계 활동을 일으킬 수 있는 엔도르핀이라는 두 가지 펩티드의 존재를 발견했다. 그로부터 몇 달뒤, 스나이더 연구팀도 쥐에게서 동일한 두 종류의 엔도르핀을 밝혀냈으며, 나아가 이 물질들이 작용하는 위치를 정서적 반응에 관여하는 뇌 영역으로 특정함으로써 아편계 약물의 향정신성 효과를 설명해주었다. 이 엔드로핀은 현재 부상을 당하거나 격렬한 운동 끝에 생성되어 일명 '러너스하이(runner's high)'에 기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정신질환을 대하는 새로운 접근법의 등장

 

   1990년대에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볼프람 슐츠(Wolfram Schultz)가 진행했던 일련의 연구들은 도파민에 의해 활성화되는 뉴런들의 연결망이 동물 체내의 보상 체내의 보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현재는 이러한 뉴런들이 예상 조건과 실제 조건 사이의 차이를 측정하는 데 도움을 주며 작용 기제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이 알려져있다. 이 뉴런들은 혐오성 자극의 부호화를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만약 혐오성 자극을 비롯하여 예상했던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도파민 뉴런은 이를 신호화하여 알리는 데 관여한다. 또한 사건의 순서를 인식하고 이에 맞추어 시냅스에서의 활동을 증강시키거나 억제시킴으로써 학습의 밑거름이 되는 자극과 보상 혹은 처벌 사이의 시간적 관계도 탐지한다. 

   1997년에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앨런 레시너(Alan Leshner)가 도파민 체계를 가리켜 "사실상 모든 중독성 약물들이 뇌 안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어떤 단일한 경로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공통된 효과를 낸다."고 주장하며 <중독은 뇌 질환이다(Addition is a Brain Diesease)>라고 대담한 이름을 붙인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만약 중독이 정말 뇌 질환에 의한 것이라면 자신에게 중독성 약물을 투여하는 행위와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치료해주지 않고 가두기어 놓기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치료는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들어야 했으며, 레시너는 생화학적 문제가 바로 그 대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코틴, 코카인, 암페타민과 같은 많은 오락성 약물들이 동일한 뇌 영역의 도파민 농도에 변화를 주기는 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경로를 통해 다른 뉴런에 의해 이러한 기능을 수행한다. 예컨데 아편계 약물은 도파민의 활동을 억제하는 반면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도파민성 뉴런들의 발화를 증가시키는 식이다.

   신경전달물질들은 시냅스로 방출되고 나면 시냅스 후 세포의 수용기와 결합하는데, 신경 신호의 전달 과정은 이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 전 세포로 다시 흡수되면서 끝나게 된다. 바로 이 '재흡수(reuptake)' 과정의 발견으로 인해 뇌 안의 세로토닌 수치를 증가시킬 수 있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SRI)'라는 약물이 개발될 수 있었다. 이같은 약물들은 뇌 내 세로토닌 수치를 증가시킴으로써 우울증 증상을 완화시킨다. 

   SSRI 가 우리의 문화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여전히 아무런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제시한 우울증에 대한 설명을 대중이 받아들였다는 부분이다. 낮은 세로토닌 농도가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가설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인물로는 주로 두 명의 연구자가 언급되곤 하지만 실상은 둘 다 이와 비슷한 말조차 꺼낸 적도 없다. 1965년에는 조지프 쉴드크로트(Joseph Schildkraut) 가 낮은 세로토닌 수치를 탓하는 대신 모노아민 계열로 분류되는 화확물질들이 우울증과 다른 장애들의 원인을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을 요약하여 발표했다. 모노아민 계열이 우울증에 미치는 영향은 2년 뒤 영국의 의학연구협회 소속이었던 정신과의사 알렉 코펜(Alec Coppen) 에 의해 검토되었지만 그는 이에 대해 다양한 범위의 장애에 세 가지 물질들이 모두 관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 주장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모노아민 결핍이 장애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지속적으로 세로토닌 장애를 겪는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우울 삽화를 더욱 빈번하게 경험한다고 보고하며 이것이곧 세로토닌 문제가 우울증의 선행 요인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미묘한 견해는 순식간에 더욱 단정적으로 변했으며, 1980년대에 이르자 낮은 세로토닌 수치가 직접적으로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관념이 단단히 뿌리내려 일명 '우울증의 화학적 불균형 이론(Chemical imbalance theory)'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개념은 곧 양극성장애, ADHD, 불안 등 다른 정신건강 문제를 설명하는 데까지 확장되었고, 이제 와 몇몇 정신과의사들이 자신들은 결코 이 이론을 진짐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현재는 대중들의 통념, 약품 광고 그리고 언론인들의 마음속에까지도 깊이 자리잡게 되었다. 

   화학적 불균형 이론이 이토록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추정해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것이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바와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증상에 압도되는 느낌이라고 보고하며 절망적인 느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감각이 마치 일종의 거대한 회색 담요처럼 마음을 온통 뒤덮고 있는 듯하다고 이야기한다. 

    우울증에 대한 단일한 설명과 단일한 치료제가 있을 리는 만무하며, 이는 다른 정신건강 문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현재 주요 제약 회사에서 정신건강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을 개발하는 데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대형 제약회사들은 1950년대에 놀라운 행운의 물결을 탔지만 이미 오래전 일일 뿐이다. 2012년에는 세계적인 제약 산업의 주역이었던 정신과 의사 H. 크리스천 피비거(H. Christian Fibiger) 가 "정신 약리학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결과가 말해주듯 대규모의 실험들은 모두 실패했음이 명백하다. 2010년, 세계 2대 제약회사 글락소스 미스클라인과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정신질환 치료 목적의 신약 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을 설명하는 유전자가 있을까

 

   정신건강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하고 식별 가능한 주요 유전 성분의 예 같은 것은 없다. 조현병과 자폐증은 둘 다 유전적 소인이 강하지만 우울증이 그런 것처럼 딱히 이를 유발하는 대표 유전자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각기 아주 미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십 혹은 수백 개의 유전자들이 이 같은 장애의 소인에 기여하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 장애의 유전적 근거를 좇는 시도는 적어도 한 사례에 있어서만큼은 막다른 길에 부딪히는 것으로 끝이 났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연구자들은 세로토닌 수용체(serotonin transporter)의 활동을 지정해 주는 'SLC6A4' 라는 이름의 유전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유전자의 변형체들은 우울증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이는 SSRI  모형과도 맞아떨어졌다. 이에 수백 편의 논문들이 발표되었고 하나같이 'SLC6A4' 가 다른 다수의 유전자들과 함께 우울증을 이해할 열쇠를 쥐고 있으며 특히 불안과의 연결고리를 풀어줄 수 있다는 과학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데 일조했다. 그러던 2019년, 연구자들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료와 더불어, 뭔가 하나라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걸리길 바라는 심정으로 끝도 없이 파고드는 대신 연구를 진행하기 전에 예상되는 결과를 미리 보고하는 등 철저한 통계 기법을 활용해 이 모든 유전자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결론은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이 전부 허사였다는 것이었다.  'SLC6A4'를 비롯해 우울증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여겨졌던 유전자 18개가 실제 그 같은 기능을 한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어떤 경우이든 유전자는 우리 뇌에 영향을 미치는 마법의 힘이 아니다. 유전자는 어찌 되었든 단순한 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단백질을 결정하는 역할을 할 따름이다. 어떤 특정한 현상이 뼛속 깊이 박혀 있어 태생 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이러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며, 만약 정말 강력한 유전 성분이 존재한다치더라도 이 유전자 역시 궁극적으로 특정한 때에 우리의 뇌 안 특정한 영역에서 단백질 유형의 형태로서 발현되고 난 뒤에는 다시 무수히 많은 환경적 요인들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아주 단순한 신경계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지식으로 인간 뇌의 유전적 구조와 이들 각각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관한 비밀을 푼다는 것은 앞으로 수 세기는 더 전념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14. 국재화 - 1950년대부터 오늘날

     뇌 영상 기법의 발달 초기에는 해부학에 초점에 맞춰져 있었다. 가령 컴퓨터의 도움으로 얻어진 X-레이 컴퓨터단층촬영(computed tomography;CT)기술은 1970년에 널리 보급되어 환자의 머리를 둘러싼 다수의 X-레이 영상을 촬영하는 데 활용되었다. CT 스캐너는 영국의 전기공학자 고드프리 하운스필드(Godfrey Hounsfiled)가 1960년에 발명했다. 스캐너너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71년, 전두엽 종양이 의심되는 환자의 뇌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는데, 마침내 수술을 집도하고 난 뒤 의사는 환자의 뇌에서 발견한 종양이 "영상에서 보았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고 이야기했다.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계산들을 수행하는 데 점차 컴퓨터의 활용성이 높아지면서 이 새로운 접근법은 신체적인 뇌 질환의 진단을 빠르게 바꾸었고, 하운스필드와 코맥은 이처럼 중요한 발견을 한 공을 인정받아 1979년에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CT 스캔은 단순한 X-레이 촬영과 마찬가지로 개략적인 수준에서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기능에 대한 정보는 직접적으로 제공해 주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는 1970년 대 중반 마커스 레이클(Marcus Raichle), 마이클 펠프스(Michael Phelps) 그리고 미셸 터포고시안(Michel Ter-Progossian)의 연구로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positron emission tomography;PET) 기술이 등장하면서 극복되었다. 이 기법은 방사성 산소 동위원소로 만들어진 물 들의 약한 방사선 추적자를 주입하여 뇌의 특정 영역의 대사 활동을 측정한다. PET 에서 쓰이는 동위원소들은 빠르게 붕괴하여 감마선을 방출하는데, 바로 이 전자기파가 탐지되는 것이다. 이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뇌의 정상적인 대사 활동으로 빠르게 통합되는 성질을 띠는 덕분에 1988년 레이클과 동료들은 PET 를 활용하여 피험자들이 단어를 들을 때 국재화된 뇌 활동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렇지만 PET 스캔도 여전히 뇌 구조와 미묘한 심리 기능들 사이의 명확한 연결고리를 확립하기에는 너무 느렸으며, 무엇보다도 방사성 동위원소를 주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관계로 그 매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뇌 영상 기법,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agnetic Reonanace Imaging;fMRI)이 등장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되었는데, 이는 강력한 자기장 내에서 원자들의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로서 현재 뇌 영상 분야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것이 그로부터 1년 뒤, 세 군데의 연구팀에서 거의 동시에 피험자가 MRI 스캐너 안에서 단순한 심리 과제들을 수행하는 동안 헤모글로빈과 탈산소헤모글로빈 내 철 원자들의 활동을 관찰함으로써 뇌의 특정 영역에서의 혈중 산소화 농도를 측정한 기법이었다. 

    fMRI는 서로 다른 영역들 간 혈중 산호헤모글로빈과 탈산소헤모글로빈이 보이는 자기반응(magnetic response) 의 차이를 탐지하여 이를 뇌 그림 밝은 색을 표시해준다. 이러한 영상들을 가리켜 피험자가 특정한 심적 활동에 몰두할 때 뇌가 '빛을 발하는 모습(lighting up)'을 보여준다는 표현이 쓰이곤 한다. 따라서 fMRI 는 뇌가 기본적인 생리, 즉 신체 기관의 일부로서 수행하는 기능에 대한 단순한 측정치를 보고하는 것으로, fMRI 에서 얻어진 영상 결과들은 결코 뉴런들의 실제 활동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fMRI 스캔으로 바라본 뇌는 컴퓨터도, 신경망도 아닌, 일종의 분비샘이었다. 

    어쩌면 장말 레이클이 몇 년 앞서 선언한 대로 인지과정들이 뇌의 아주 특정한 영역들에 국재화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는 듯했다.  fMRI 혁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지막 단계는 fMRI 가 뇌의 신경 활동을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던 과학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단일 뉴런 기록과 fMRI 반응 측정을 동시에 진행한느 일이었다. 이는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어려운 도전이었는데, 특히 스캐너의 자기장 안에 전극을 집어넣으려면 진기 활동을 일으켜 이 전극들이 기록하는 뉴런의 반응을 식별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2001년, BOLD  대발견이 일어난 지 10년 되는 해에 니코스 로고세티스(Nikos Logothesis)와 동료들은 fMRI 가 실제로 신경 활동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논문을 출간했다. 

 

더 선명한 뇌 촬영은 가능한가

 

  fMRI 의 한계는 물리학이나 빈약한 공학과 연관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스캐너를 아무리 정교하게 개선하고 성능을 향상시킨다고 해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잇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뇌의 회로와 기능적 구조는 물론 이러한 구조를 무시한 채 진행된 부적절한 실험 절차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유의 비판은 이를테면 어떤 정서를 느낄 때 뇌의 특정 부위가 '빛난다'고 주장하는 fMRI 연구에 주로 해당되는 이야기다. fMRI 연구자 러셀 폴드랙 (Russel P:oldrack) 이 지적했듯 "이처럼 일대일 대응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뇌 영역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맥락에서 활성화된다. 혹시라도 정말 그 같은 단단한 연결고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저 상관관계일 뿐이다. 어떤 영역이 어느 특정한 생각이나 경험을 담당하는 유일한 장소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해당 영역에 병변이 있는 환자들을 연구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 영역에 자극을 가해 변화를 관찰해야만 한다. 

    그러던 중 2009년, <사회신경과학에서의 부두적인 상관관계(Voodoo Correlation in Social Neuroscience)> 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이 무명의 심리학 학술지에 등장하면서 fMRI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돌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논문에서는 기존의 많은 연구가 정밀하게 밝혀낸 뇌 영역들의 활동과 특정한 행동과 감정 사이에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높은" 상관관계를 관찰한 것에 대해 집중조명했다. 

    일부 fMRI 연구자들은 이 같은 문제들을 인식하고 있음을 해맑게 보여주었다. 부두 사건이 터지고 몇 달 후, 국제기능매핑학회의 회장이 연례 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며 해당 연도 학회에서 발표된 것 중에서 특히 흥미롭다고 여겨지는 연구에 대해 언급했다. 이 연구가 바로 크레이그 베넷(Craig Bennett)과 그의 동료들이 죽은 연어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실험이었다. 

   물고기였던 피험체가 여러 가진에 대한 질문을 받는 동안 fMRI 스캔을 실시한 결과, 이 죽은 연어의 27세제곱밀리미터 크기의 뇌 영역에서 몇 군데 유의한 반응이 관찰되었다. fMRI의 전통적인 해석 방식에 따르자면, 죽은 물고기는 뇌의 매우 특정한 영역에서 주어진 사진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이 풍자적인 연구에서 잘 짚어낸 핵심은 결국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고 복잡한 통계적 방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실험이 엄격하게 설계된다고 한들 fMRI 가 정확히 무엇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는가를 둘러싼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연구에서 발견한 바를 가지고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뇌 영상 연구는 별로 없는데, 연구에서 얻은 데이타가 이에 관한 정보를 별로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같은 연구들의 의의를 향한 대중들의 인식과 실제 연구에 관여한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식 사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한다.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이 발견한 바를 뇌 기능에 대한 종합적인 틀 안으로로 통합시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에 적합한 데이터도, 적절한 이론적 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드러나는 안이한 fMRI 데이터 해석 방식에 대한 짜증과 더불어 방법론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이 기법을 사용하는 측과 그렇지 않은 신경과학자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생겼다. 이를테면 초파리 유충 뇌의 커넥톰을 확립하려는 시도에서 선두적 위치에 있는 알베르트 가르도나는 fMRI 관련 문제를 언급한 트위터 글에 대해 "fMRI 를 다룬 신경과학 발표는 딱 한 번 들어봤는데 딱히 약을 판다는 느낌은 없었다."라는 글을 남겼다. 또 몇 달 뒤 인간유전학계의 주요 학자인 대니얼 맥아더(Daniel MacArthur) 는 "뭐든 'fMRI'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불신하도록 조건화가 일어나버렸다"는 트위터 글을 올렸으며, 2019년에는 더블린 출신의 케빈 미첼이 뇌 구조에 관한 fMRI 연구의 해상도가 본질적으로 낮다는 점을 강조하며, "뇌 영상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로, 그냥 다 쓰레기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fMRI 가 포착하는 뇌 활동의 단위가 지나치게 성긴 탓에 실제 활동이 발생하는 규모, 그러니까 신경망 내의 개별 세포 및 시냅스의 활도잉 발생하는 규모, 그러니까 신경망 내의 개별 세포 및 시냅스의 활동은 뇌 영상에서 절망적일 정도로 뭉개져 표현되고 만다. 더구나 fMRI 는 초 단위의 활동 변화를 측정하는 데 비해 뉴런이 정보를 전송하는 속도는 밀리초 단위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fMRI 가 뇌의 작용 기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양상 중 하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바로 활동과 억제 간의 차이 말이다. fMRI 는 단일세포들 혹은 세포들의 연결망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밝혀줄 수가 없다. 신경절 수준에서조차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한 의미 있는 정보를 주지 못하며, 그저 아주 대략적인 수준에서 어디가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거나 적은 활돵이 일어나는 장소인지만을 알려줄 뿐이다. 

    일부 fMRI 연구자들은 이러한 유의 비판에 개의치 않았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앨런 튜링 연구소 소속이었던 올리비아 게스트(Olivia Guest) 와 브래들리 러브(Bradley Love)는 2017년, 뉴럴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시각적 사물의 유사점과 차이점들이 fMRI 데이터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았다. 그들이 사용한 딥러닝 네크워크는 시각 처리 경로의 초기 단계에서 기록한 fMRI 데이터에서는 신호를 잘 식별해냈지만 뇌의 상위 단계 영역에서는 정확한 사물에 대한 반응을 분명하게 포착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게스트와 러브는 상위 단계에서는 표상이 훨씬 더 확산적이고 상징적인 경향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게스트와 러브는 세포 수준에서의 활동 같은 것에는 일절 관심을 거두고 지각의 유물론에 기반한 설명을 제시했다. 

 

    fMRI 의 성공은 어쩌면 뇌에서 수행하는 연산의 본질에 관심을 둘 때는 fMRI 가 적용되는 분석 수준이 선호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비유를 하자면, 양자물리학에 바탕을 둔 거시경제학 이론을 만들 수는 있지만 지독하게 번거로운 데 비해 돈이나 공급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담고 있는 이 이론보다 그다지 더 나은 예측이나 설명을 제시히주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분명 매력이야 있지만 환원주의가 언제나 가장 좋은 길은 것은 아니다. 

  

   물론 게스트와 러브가 옳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들이 틀렸다고 여길만한 아주 명확한 이유가 하나 있다. 발로가 주장한 것처럼 뇌의 기능적 단위는 뉴런이다. 뉴런 각각은 하나의 마디로서 조직되고 전체 연결망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뇌의 작용 기제가 아무리 수수께끼 같다고 한들 결국 뉴런들의 발화로 환원될 수 있다. 이 뉴런들은 이후 한데 결합하여 협응적인 기능 활동들을 보임으로써 심리적 현상들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여러 개별 뉴런들로 구성된 집단 수준에서의 활동이나 각 뉴런들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연산이 궁극적으로 세포들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싹 무시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설명하는 데 환원주의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함은 8백억 개 뉴런들 각각의 개별 활동을 바통으로 이론을 만들었다기보다는 감각 현상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집단적인 뉴런들의 활동 패턴으로 설명될 수 잇는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선 각 세포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정보를 가지고 집단 수준에서 분석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인 것이다. 

   바로 여기서 fMRI 의 근본적인 약점이 두드러진다. 실제 뇌의 연산 활동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하기에는 fMRI 로 부터 얻어지는 데이터의 해상도가 지나치게 낮다. 따라서 시간적, 공간적, 기능적으로 이보다 훨씬 더 정밀한 뇌 영상 기법이 개발될 필요가 있으며, 더욱 상세한 커넥톰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fMRI와 같은 영상 기법들과 관련하여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주장이 하나 있는데, 기법들이 남성과 여성의 뇌의 해부학적, 기능적 차이를 밝혀주며 이를 통해 행동상의 차이를 설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뇌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 말은 진실이다. 전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뇌가 독립된 두 개의 집단으로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는 가정을 할 만한 근거는 매우 많다. 남성과 여성은 일반적으로 현대사회에서 상당히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진화적으로 볼 때 동성 내에서와 이성 사이에 작용하는 성선택 기제에 의해 과거 우리의 주요 특징들이 형성되었다면, 번식 과정에서의 서로 다른 역할, 특히 모성적인 행동은 인간 사회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요인들이 남성과 여성 사이의 해부학적, 기능적, 행동적 차이를 만드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과연 그 해부학적 차이가 무엇인지, 우리가 탐지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행동에 있어 그 차이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다. 

 

 

혼란 속의 국재화 이론

 

  일각에서는 fMRI해석을 두고 '신골상학' 혹은 '내적 골상학'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가끔 몇몇 fMRI 연구에서 지나치게 부풀려진 주장을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 같은 비판은 틀렸으며 부당하기까지 하다. fMRI는 영역별 활동 변화를 규명하고 이 변화들을 행동이나 심리적 변화와 관련지어 분석하는 강력한 비침습적 기법의 대명사다. 뇌 영상 연구는 뇌의 역동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정신적인 처리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각 영역들 간의 연결성이 중요함을 조명했다고 할 수 있다. 나가 얼굴 인식 영역에 관한 낸시 캔위셔의 fMRI 연구는 도리스 차오가 해당 영역의 단일세포 활동에 대한 연구를 하는 데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인간의 뇌에는 실제로 얼굴 인식 영역이 존재하며, fMRI 는 이를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모든 엄청난 독창성과 놀라울 정도의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전체 뇌 활동의 모형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는 fMRI 연구가 뇌의 작용 기제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바가 없다. 다만 여기에도 한 가지 잠재적인 예외가 있다. 2001년, 마커스 레;이클 연구팀은 PET 스캔을 활용하여 피험자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와 비교할 때 주의 집중을 요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활동 수준이 감소하는 영역들을 양 반구 대칭으로 전 피질에 걸쳐 뇌 여러 군데에서 찾아냈다. 이 영역들은 이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아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 때 나타나는 인간 뇌의 내재적인 활동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기능들의 위치를 특정 구조물로 특정하거나 나아가 어떤 개념들이 뇌 특정 영역의 활동으로 표상된다고 제안하는 것만으로는 뉴런들의 총체가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어떻게 지각이나 행동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해주지 못했을뿐더러 앞으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도는 그 대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으며, fMRI 데이터도 기껏해야 이러한 지도에 불과하다. '어디' 는 '어떻게'가 아니다. 

    기능을 특정한 구조물에 국재화시키려는 접근방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에 놓은 더 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신경해부학적으로 볼 때, 뇌의 각기 다른 영역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며 저마다 특정한 감각 양상과 연결되어 있다거나 특정한 유형의 세포를 가지고 있는 등 전문화되어 있다는 근거가 분명히 존재한다. 병변을 가지고 있는 환자나 동물 연구에서도 흔히 어떤 영역이 특정한 능력이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을 가리키는 결과가 관찰되며, 이는 곧 국재화를 지지하는 핵심 증거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뇌 영역의 위치와 기능을 규명하는 데 쓰이는 방식의 바팅이 되는 논리 상당 부분은 엉터리이며, 뇌는 손상을 입더라도 특히 젊을 때는 다시 회복할 수 있다. 

  뇌 기능을 둘러싼 우리의 온갖 제한적인 지식들은 사실상 "전체를 조각조각 분해해서 이들 각각이 어떤 일을 하고 하나로 합쳐졌을 때는 어떤 일을 할 수있는지 따져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던 스테노의 1665년 제안을 따름으로써 얻어낸 결과물에서 비롯되었다. 이 분해 작업은 수술적, 유전적, 혹은 전극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지만 결국 근본적으로는 전부 동일한 접근법을 취한 것이다. 2017년 프랑스의 신경과학자 이브 프레냑(Yves Frengac)은 멋들어진 말쏨씨로 이 근본적인 문제를 설명했는데, 신경계의 복잡한 성질 탓에 "인과 기제에 의한 설명은 하위 단계의 연산을 수행하는 각각의 구성 요소들을 하나로 조합함으로써 어떻게 상위 단계의 창발적인 행동을 만들어내는지 이해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뇌의 각 구성 단위들의 상호작용에서 어떻게 복합성이 출현하는지 탐구하는 데 중요한 오류가 담긴 가정에 기반한 조악한 모형을 사용하고 있다.

  한 세기가 훌쩍 넘도록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논리적으로 뇌 기능의 소재를 특정 구조물과 연결 지을 수 있을지에 관해 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조명했다. 1877년에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랑게(Freiedrich Lnage) 가 단순한 비유를 써서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 뇌의 어느 부분에 가벼운 부상이 있고 그밖에는 아픈 데가 없는 고양이가 순전히 그 부상으로 인해 쥐 사냥을 그만두는 것을 내게 보여준다면, 나는 우리가 심리학적인 발견을 향해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나는 뇌에서 쥐 사냥에 대한 개념이 자리한 유일한 지점이 발견되었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태엽 하나가 손상되어 엉뚱한 시각을 가리키는 시계가 있다고 해서 바로 그 태엽이 시각을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그레고리는 20세기 중반부터 반세기 내내 이 문제를 반복적으로 제기했다. 1958년, 셀프리지가 펜더모니엄 모형을 선보였던 바로 그 학회에서 그레고리는 특정한 구조물을 적출하거나 병변을 일으켜서 기능을 규명하는 방법은 논리적으로 흠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손상되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는 체계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구성 요소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해당 체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모형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그레고리의 주장에 따르면 "생물학자는 '제조 설명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연구하는 '장치들'의 상당수가 무엇인지에 관한 명확한 개념도 없다. 각 장치들이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지 추측하여 그럴 듯해 보이는 가설들을 검증함으로써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아내야만 한다."

    스테노는 전체를 조각들로 분해하고 각 부분들의 기능을 따로 분리하는 등 우리가 기계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을 통해 우리 자신의 뇌도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에 그레고리는 각각의 부분들을 따로 떼어봄으로써 특정한 기능을 밝혀내는 사례는 드물다는 것을 지적하며 스테노의 제안이 정말 사실일지 의문을 표했다. 

   21세기에는 광유전학, 뇌 영상 기법, 단일세포 기록법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는데, 그중 상당수가 그레고리가 비판했던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특정 세포나 신경망에 직접 조작을 가하여 기능에 변화를 주거나 회복시킨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해당 기능의 소재가 바로 그 구조물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는 단지 그 구조물이 해당 기능을 수행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곳 중 하나임을 가리키며,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큰 규모의 신경망이 관여한다. 배우의 얼굴이나 수식에 반응하는 일명 할머니 세포들은 엄밀히 말해 할머니 세포가 아니라 그저 그 자극이 주어졌을 때 활성화되는 거대한 신경망의 극히 일부일 뿐이며, 과학자는 우연히 그중 한 세포의 활동을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여러 fMRI 연구에서 제시한 기능이 전문화되어 있다는 견해와 기능의 각기 다른 양상들이 뇌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는 인식을 통합하기 위해 칼 프린스턴은 "기능주의와 연결주의 사이의 변증법"이라는 것을 연구함으로써 주어진 행동을 수행하는 동안 뇌의 여러 영역들에서 나타나는 활동 패턴 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그는 이를 가리켜 "기능적 연결주의"라고 칭했는데, 이 같은 접근법은 fMRI 연구자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광역적인 규모에서 여러 뇌 영역들의 활동 간 상관 관계를 상술한 이 수학적 설명 양식이 그보다 정밀한 연구가 이루어진 작은 동물의 뇌에서도 동일하게 성립하는지는 아직 증명이 더 필요하다. 

   기능은 국재화되어 있기도,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기도 하다. 아니, 더 명확히 말하자면 두 가지 용어 모두 오해의 소지가 있다. 국재화는 어느 한 곳으로 정밀하게 이루어지는 겨우가 드물며, 분산된 기능 또한 담당하는 신경망이나 세포가 여기저기 퍼져 있다 뿐이지 특정한 신경망과 세포에 국재화되어 있다. 따라서 뇌 기능은 분리와 통합을 모두 수반한다. 가장 단순한 동물의 뇌조차 단일한 형태가 아니며, 내부 구조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라면 하나의 기능이 어느 하나의 영역으로 정확하게 국재화될 수는 없다. 어떤 기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해당 영역이 기능적 총체 내로 통합되어야만 한다.

 

거울뉴런의 등장과 인간 뇌의 놀라운 가소성

 

  뇌의 각기 다른 부분들이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저마다 특정한 과제를 수행한다는 발상이 어찌나 강력한지 우리는 몇몇 흥미로운 심리적 능력들이 매우 특정하게 국재화되어 있다는 주장에 자꾸만 이끌리곤 한다. 가령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의 두개고 안쪽 깊은 곳에 가장 근본적인 행동들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가 자리하고 있다는 완전히 잘못된 개념이 인간의 뇌에 관한 과학적인 사실로 대중들의 인식에 큰 영향력을 떨쳤다. 지금도 여전히 떠돌아다니고 있는 이 같은 견해는 인간에게는 세 개의 뇌가 있다던 신경학자 폴 맥린(Paul MacLean)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뇌 중의 하나는 기본적으로 파충류의 것과 같고, 두 번째 뇌는 하등 포유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세 번째는 진화 후기에 발달한 것으로서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파충류의 뇌는 선조들의 지식과 선조들의 기억으로 채워져 있으며 조상들의 말을 충실히 따르지만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기에는 썩 좋은 뇌가 아니다. 

 

    신경과학자들이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맥린의 발상은 1960년대 및 1970년대, 당대 가장 영향력 있던 대중과학 작가 두 명이 차용하면서 대중문화 속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특히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 는 1967년 자신의 베스트셀러 작품 <기계 속의 유령(The Ghost in the Machine)>에서 맥린의 연구를 요약하며 원죄에 대한 기독교 교리로부터 프로이트의 유아 성욕 이론까지 온갖 것들을 다 때려넣어 세 개의 뇌 사이의 갈등이 "인간의 역사 속 만연한 편집증적 기질의 생리학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괴상한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1990년에는 77세가 된 맥린이 <<진화적으로 본 삼위일체의 뇌(The Triune Brain in Evolution)>>을 펴내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했다. 이에 <사이언스>에서는 그의 책에 존중을 표하면서도도 그의 근본적인 가설이 "현대의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그로 인해 신경과학자들이 "그의 견해를 무하기에 이르렀다"는 무자비한 평론을 발표했다. 인간의 뇌 기능을 진화적인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했던 맥린의 열망은 가상하나. 그의 근본적인 발상을 결국 아무 근거 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 '파충류의 뇌'는 사실 파충류 뿐만 아니라 어류에서도 발견된다. 또 초기 포유류의 뇌만이 양육 행동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 구조물이 없는 조류도 훌륭한 부모 역할을 수행한다. 끝으로 신피질은 포유류 적응의 산물이 아니다. 이 중 일부 요소들은 조류나 어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도 맥린의 이론과 유사한 연구 결과가 있었는데, 다만 이번에는 훨씬 더 신뢰할 만하고 훨씬 더 흥미로운 연구였다. 1992년,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의 연구자들은 우연히 원숭이의 복측 전운동피질(ventral premotor cortex)에서 일부 뉴런들이 원숭이가 실제 행동을 취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개체가 활동하는 모습을 볼 때에도 발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얼마 안가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라는 재치 있는 이름이 붙은 이 세포들은 곧 어마어마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이 세포들이 언어의 진화에 관여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한 반면, 또 다른 연구자들은 자폐증에서 관찰되는 사회적 상호작용 부족 현상이 거울뉴런의 기능 장애 탓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2006년에는 <뉴욕타임스>에서 거울뉴런이 "마음을 읽는 세포"라고 선언했으며, 어떤 신경과학자는 이 뉴런들의 역할 덕에 인간이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로 "문명화를 조성한 뉴런"이라고 묘사했다. 이들 중 어느 것 하나도 사실이 아니다. 

    거울 기능을 갖춘 뉴런이 마침내 2010년 인간의 뇌에서 발견되었을 때, 예상치 못했던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세포들은 실험에 참가한 신경학적 질환의 환자들이 스스로 행동을 할 때나 타인의 행동을 관찰할 때 발화했지만(일부 뉴런들은 억제 반응을 나타냈는데, 이는 곧 이 세포들의 역할이 관찰 대상의 활동을 흉내 내지 않도록 막는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뜻밖에도 세포들의 위치가 원숭이의 뇌에서 밝혀진 영역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인간의 거울뉴런 중 11퍼센터는 해마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 거울 뉴런들이 운동피질 일부에 존재하며 인지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또 해마가 운동기능에 관여하는 듯 보인다는 사실은 곧 감각과 운동의 구분이 그동안 흔히 관찰된 것만큼 절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편 레서스원숭이의 편도체에서는 거울뉴런과 유사하게 의사결정 시 다른 개체의 행동을 표상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뮬레이션 뉴런(simulation neuron)' 이 발견되었다. 이는 편도체가 공포 외의 다른 반응에도 관여하고 있음을 조명하는데 더해 다른 개체와 그들의 행동에 대한 표상이 여러 다양한 영역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결과였다. 거울뉴런들이 만약 단순히 우리가 화려한 이름을 지어줬기 때문에 억지로 하나로 엮인 것이 아니라 모두 공통적인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국재화되어 있다기보다 뇌 전역에 분포하며 잡다한 기능들을 수행한다.

   어떤 기능을 특정한 구조물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히는 데 이렇듯 예외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복잡한 현실적 문제는 최근 인간의 뇌에서 놀라운 가소성을 나타낸 임상적 사례들이 보고되면서 한층 더 커졌다. 프랑스 마르세유에는 피질이 아주 작고 얇은 세포층으로까지 수축되었으나 거의 평균 수준의 지능을 보이며 공무원이라는 어엿한 직장인 중년 남성이 살고 있으며, 이스라엘에는 뇌의 후엽이 존재하지 않으나 정상적인 후각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중국인 여성은 소뇌가 아예 없는데, 말할 때 발음이 다소 뭉개지고 약간의 정신지체 및 운동협응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증상은 소뇌라는 구조물이 완전히 제거된 동물에게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심각한 문제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수준이었다. 

   최근 동물 연구에서는 더욱 큰 문제가 드러났다. 쥐와 명금이라는 조류의 경우 어떤 학습된 행동들이 뇌의 매우 특정한 영역에서 통제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뇌의 해당 부위를 잠시 동안 불활성화시킴으로써 행동을 막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이 구조물들이 영구적으로 적출되고 나면 이 실험동물들은 기존에 학습했던 능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이토록 놀라운 가소성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우산 잠시 동안 뇌 영역을 불활성화시켰던 실험 중에는 실험동물의 뇌에서 변화가 가해진 영역에 의존하던 구조물들이 주어진 짧은 시간 내에 새로운 상황에 반응하도록 활동 패턴을 바꾸지 못했기에 관련 행동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수술 후 회복 기간이 주어지는 것처럼 이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앞서 뇌졸증 환자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존의 능력들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영역들이 활동 패턴을 바꾸어 해당 행동을 다시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들의 기제에 관한 설명은 곧 뇌의 구조물들이 서로 구분된 각각의 모듈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기계 내의 독립적인 부품들과는 다른 것이다. 뇌는 살아 있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뉴런과 뉴런들의 연결망은 모두 상호연결되어 있으며, 주변의 구조물들의 활동뿐만 아니라 유전자의 발현 패턴까지 바꿈으로써 인접한 영역들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능은 한 군데가 아닌 여러 곳으로 퍼져 있고, 심지어 시냅스 및 복잡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신경조절물질들에 의해 유도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성질이 일부 가소성 사례들의 기저에 깔려 있어 주어진 영역의 기능을 정밀하게 밝히는 일의 어려움을 두드러지게 하는 원인으로 보인다. 

   2019년, 연구자들은 쥐가 물을 마시고 갈증을 충분히 해소하는 동안 34개의 뇌 영역 내 뉴런 2만 4천 개의 활동을 살펴본 결과를 보고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뉴런들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단순한 행동에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갈증과 이러한 감각에 대한 행동적 반응은 쥐의 뇌 전체에 걸쳐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이와 더불어 보통 운동 통제에 관여하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 뇌 영역들이 쥐가 달리거나 수염을 움직일 때 활성화되어 시각피질의 뉴런 활동에 영향을 주었다.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연구자들이 총 42개의 뇌 영역에서 3만 개의 뉴런들을 살펴본 유사한 연구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쥐가 무엇인가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영역의 뉴런들이 활성화된다는 결과를 발견했다. 하지만 쥐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는 뇌의 특정한 영역 내 매우 특정한 세포들만이 반응했다. 실제 여기에 관여하는 회로들은 여전히 수수께끼지만 이러한 결과를 통해 뇌의 복잡한 특성과 함께 기능이 어떻게 국재화된 동시에 광역적으로도 분포된 양상을 보이는지 살짝 엿볼 수 있다.

    끝으로 포유류의 뇌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이 반드시 최선의 방식이거나 유일한 방식은 아닐 수 있는데, 이는 뇌의 구조와 기능들이 반드시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상위 심리 기능들에서 피질이 수행하는 역할은 일부 영역들에 대한 자극이나 적출 그리고 비교연구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증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은 복잡하게 생긴 피질의 주름 덕분에 피질의 복잡성이 심리 기능의 풍부함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가장 상위의 수준을 보인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포유류의 뇌와 달리 피질이 층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조류 역시 여러 측면에서 포유류와 맞먹을 정도로 몇몇 매우 복잡한 심리적 과정들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조류와 포유류의 뇌가 조직되어 있는 방식이 발달 과정상으로는 공통의 뿌리 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치더라도 어쨌든 요는 서로 다른 구조물들이 똑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5. 의식 - 1950년대부터 오늘날

     의식을 향한 관심이 폭발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는 흔히 프랜시스 크릭이 거론되곤 한다. 서덜랜드가 글을 쓸 당시 크릭은 연구자들이 의식의 신경 상관물(neural correlates), 즉 의식에 관련된 현상과 상관관계가 있는 신경 활동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크릭의 지적 욕구가 의식에 관한 현대식 과학 연구의 틀을 조성하는데는 일조했을지는 몰라도 문제 해결에는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초의 집단적인 시도 중 하나는 1953년 8월, 에드거 에이드리언, 도날드 헵, 칼 레슐리, 와일드 펜필드를 비롯한 과학자 스무 명이 캐나다 퀘백의 어느 산장에 모여 '뇌의 기제와 의식(Brain Mechanisms and Consciousness)'을 주제로 열었던 닷새짜리 학술 토론회였다. 이때의 모임에서는 그보다 4년 앞서, 마취시킨 고양이의 뇌간을 자극하자 마치 깨어 있을 때와 같은 EEG 변화 양상이 나타났다는 호레이스 매군(Horace Magoun)의 놀라운 발견 사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 EEG 도 조작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접하고 과학자들은 의식의 본질과 소재를 탐구할 수단을 손에 넣은 듯 여겼다.

    그러나 매군은 개회사에서 동료 연구자들을 향해 "미래의 연구자들은 의식의 신경 기제가 그리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온갖 증거들을 가지고 있어 어쩌면 20세기 중반의 이러한 암중모색의 노력을 되돌아보고는 동정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른다"는 선지적인 경고를 보냈다. 아마 그는 근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식의 신경 기제가 밝혀지기는커녕 최근 <사이언스>가 보여준 낙관성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미래에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어떠한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할 것이다. 그동안 대규모의 기술적 혁신이 이루어졌지만 활동이 국재화되어 있느냐 혹은 널리 분포되어 있느냐라는 문제와 의식의 생리적 근거의 중요성이라는, 퀘백에서 논의된 핵심 문제 두 가지는 여전히 뇌를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기나긴 여정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퀘백 모임에서는 펜필드가 피질에 전기자극을 가할 때 꿈꾸는 듯한 상태와 신체의 움직임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밝힌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기능의 국재화를 지지하는 몇몇 설득력 있는 증거들도 거론되었다. 그렇지만 펜필드가 설명한 것처럼 운동피질이 자극됨에 따라 피험자의 신체가 움직였더라도 피험자는 늘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혹은 의지에 반하여" 이러한 움직임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그가 불러일으킨 아주 정교한 경험들도 "일상적인 경험에서 보거나 느끼는 것"들과는 전혀 닮아 있지 않아 오히려 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는 절대로 의식에 관여하는 뇌 영역이 직접 자극되었을 때 나타난 것으로 예상되는 양상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 같은 결론은 놀라울 것도 없다. 당시 학술 모임에 참가했던 연사들도 대부분이 의식이란 뇌 전역에 걸친 신경 활동이 어떤 식으로 통합하여 생겨난 기능이라고 여겼다. 스탠리 코브(Stanley Cobb) 가 그보다 1년 앞서 설명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마음과 의식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저마다의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들 간의 관계와 통합 그 자체다. 이를 관장하는 중추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의식을 담당하는 어떤 단일한 영역 따위는 없다. 복잡한 일련의 회로 내 신경충동들의 흐름이야말로 마음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EEG 기술과 새로운 수술적 중재법 덕분에 이제 이러한 통합의 중심을 밝히는 일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다. 프랑스의 생리학자 알프레드 페사르(Alfred Fessard)의 말처럼 여기서 핵심 문제는 그 통합 과정이 얼마나 국재화되어 있느냐라는 것으로,  이를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지 분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지, 다시 말해 뇌의 한정된 좁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특정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다양하게 위치한 신경 구조물들로써 이를 규명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퀘백에서의 논의가 계속 이어지면서 의식의 상태와 그 소재를 측정하는 도구로써 EEG  를 활용할 수 있다고 기대했던 들뜬 분위기도 점차 지나친 거품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결국 펜필드는 신경활동이 어ㄸ허게 생각으로 바뀔 수 있는지에 관해 자신이 완전히 무지했음을 인정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학술 모임을 마무리했다. "이것이 본질적인 문제다. 생리학과 심리학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인생은 너무 짧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남아 있다. 그것은 헵이 제시한 어떤 과학적인 접근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40년 뒤 그와는 별개로 크릭이 동일한 주장을 제기하면서 그의 견해도 대단히 영향력 있는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인간이 알고, 느끼고, 행하는 것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양상을 설명하기에 완전히 적합한 이론을 만들어내려 노력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이 같은 문제에서 우리가 어쩌면 설명할 수 잇을지도 모르는 일부 양상을 설명하고자 노력하며, 그렇게 도출해낸 이론이 행여 전체 체계에 관해 지금까지 모든 특징들 중 몇몇 측면들에 한해서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질까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의식이 신경 활동으로부터 발생한다는 데 모든 이가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1953년 초에는 존 에클스가 <<마음의 신경생리적 기제 (The Neuro physiological Basis of Mind)>>를 출간하며 박사과정 당시 지도 교수였던 셰링턴의 뒤를 이어 마음이란 단순히 뇌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무형의 물질이라고 제안함으로써 3세기 전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개념을 효과적으로 반복하기도 했다. 에클스의 이 같은 견해는 1951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피질 내 빽빽이 들어찬 뉴런들이 어떤 계기로 비물질적 실체에 대한 탐지기가 되었다는 가설과 함께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마음은 대뇌피질의 기능에 대한 이 고유의 탐지기를 통해 효과가 발휘되는 시공간적인 '영향력의 장'을 행사함으로써 뇌와의 소통을 이루어냈다."고 말이다. 

    에클스의 접근법에 다른 과학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가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은 당시가 이 학술지의 전성기가 아니었음을 감안해도 겨우 열 번밖에 인용되지 않은데다 그마저도 대부분 역사학자들이 인용한 것이었다. 1953년 퀘백 모임을 마치며 허버트 재스퍼(Herbert Jasper) 는 마음과 뇌 활동을 연결 짓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는 "에클스 박사는 육신을 떠나 정신적인 세계에서 설명을 구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처하려고 시도했다"고 쏘아붙였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데다 때때로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와 함께 일하기도 했던 에클스는 평생 이원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견지했으며, 중간에 몇 차례 세부적인 부분들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매번 똑같이 전투적으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곤 했다. 

   에클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위대한 학자 한 명인 와일더 펜필드도 끝내 그와 유사한 견해를 취하게 되었다. 학자로서 그의 모든 인생은 "가장 상위 중추들의 할동과 심적 상태는 동일한 하나의 것이거나 혹은 같은 대상의 앞뒷면과 같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펜필드는 죽기 얼마 전인 1975년, "뇌 활동만을 기반으로 마음을 설명하려는 다년간의 분투 끝에 나는 비로소 우리의 존재가 두 개의 근본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설을 받아들이면 문제가 보다 단순해진다는(그리고 훨씬 쉽게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펜필드가 댔던 변명은 "뇌를 자극하는 전극을 활용하고, 의식이 살아 있는 환자들을 연구하고, 뇌전증 발작을 분석하는 등의 새로운 방법에도 불구하고 뇌 혼자서 마음이 하는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음을 가리키는 강력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뇌가 나뉘면 마음도 분리될까

 

  20세기 중반 미국 정신의학계를 지배했던 정신외과술에 대한 인기는 가여운 헨리 몰레이슨의 사례와 같은 파극적인 결과만을 초래한 것이 아니었다. 일부 환자들의 경우에는 삶을 피폐하게 했던 뇌전증 증상이 뇌의 두 반구 사이를 이어주는 어떤 구조물을 잘라내어 좌우반구를 분리함으로써 나아지기도 했다. 바로 뇌량이었다.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보통 외관상 아무런 부작용 없이 크게 호전되었고, 이예 뇌량은 단순히 구조적인 요소의 일종이라는 가정을 낳게 되었다. 그런데 로저 스페리 (Roger Sperry) 가 1950년대에 진행한 동물실험에서 이 부분이 잘릴 시 뭔가 굉장히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56년, 스페리의 제자였던 로널드 마이어스(Ronald Myers)는 고양이의 시각적 학습을 연구하며 시야의 왼편에 속하는 망막 신호들은 뇌의 우반구로, 시야의 오른편에 속하는 신호들은 뇌의 좌반구로 보내짐으로써 시각 자극을 뇌의 어느 한쪽에만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기존에 잘 알려진 사실을 다시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마이어스는 고양이가 뇌량이 제거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정상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떤 아주 특별한 절차의 검사를 실시하지 않는 한 말이다. 고양이에게 좌측 시야에 주어진 자극을 바탕으로 어떤 과제를 수행하도록 훈련시킨 뒤 우측 시야에 자극을 제시하여 학습한 결과를 검사하자 고양이는 마치 아무런 훈련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했다. 정상적인 고양이와 달리 이 고양이의 좌우반구는 우반구가 무엇을 학습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뇌량은 두 반구 사이에서 온갖 학습의 전이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릭 이 구조물이 잘려나가 스페리가 '분리 뇌(split-brain)' 라는 극적인 이름을 붙여주었던 동물에게서는 이 같은 전이가 일어날 수 없었다. 1961년에 스페리는 자신이 발견한 바를 "분리 뇌 고양이나 원숭이는 여러 측면에서 볼 때 함께 혹은 교차로 쓰일 수 있는 두 개의 개별적인 뇌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다"라고 요약했다.

    이는 정말 굉장한 발견이었다. 지각 및 학습과 관련된 뇌 활동은 어느 특정한 곳에 구체적으로 국재화되어 있는 것도, 뇌 전역의 활동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각하고 학습하는 능력은 각 반구에 동등하게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었으며, 뇌는 하나로서, 또 두 개의 개별적인 신경중추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분리 뇌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경험일 것이다. 언어적인 능력을 가진 좌반구는 수술 이전의 삶이 어떻게 달랐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무엇을 상실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는 듯했다. 우반구는 일반적으로 말하기에 일정 통제력이 없으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단언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이러한 환자들에게는 각기 다른 관점과 능력을 가진 두 개의 마음이 존재하고 이들 각각이 전혀 이상하다는 느낌 없이 자신의 몫에 만족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 같은 연구는 온전한 피험자들에 대한 심리적인 탐구와 더불어 우리의 뇌는 양측이 각기 다른 능력과 사고방식들을 가지고 있어 서로 대단히 차별화된다는 흔하디흔한 엉터리 견해를 낳게 되었다. 이는 보통 '좌뇌'와 '우뇌'라는 부정확한 용어로써 표현되곤 한다. 이는 매우 큰 오해이다. 분리 뇌 환자들에게 두 개의 마음이 존재하는 것은 수술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이것이 곧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두 개의 마음이 있다거나 두 개의 서로 다른 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우리가 모두 자신의 성격과 관련하여 둘 중 우세한 반구를 가지고 있으며 '우뇌'는 보다 '창의적'이고 '좌뇌'는 훨씬 논리적이라는 속설이 돌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특성이 성적 선호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좌반구가 언어를 통제하고 후반구가 정서적 반응들을 담당하는 경형성 (이는 우리의 영장류 친척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을 보이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뇌의 양측의 기능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주체할 수 없는 뇌전증 증세를 완화시키고자 어린 시절 뇌의 한쪽 반구 전체를 적출한 소수의 환자들을 통해 더욱 확실히 드러났다. 놀랍게도 이제 성인이 된 이들은 정상 수준의 인지와 행동을 보였으며,  fMRI 를 이용해 남아 있는 뇌 반구의 연결성을 측정한 결과에서도 정상처럼 보였다.

    뇌는 두 개의 분리된 반구로서가 아니라 통합된 하나의 전체로서 작용한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방식을 통해 의식은 본질적으로 일원화되어 있는데, 다만 분리 뇌 환자의 경우에는 이것이 둘로 나뉘어 가자니가 연구팀이 보여준 것과 같은 기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두 반구 사이의 이러한 차이점들은 마음이 뇌의 구조에서 생겨난다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준다. 뇌가 어떤 방식을 통해 무형의 마음을 '탐지'한다면 에클스의 주장을 비롯하여 마음과 뇌 사이를 연결 짓는 비유물론적 설명이라면 전부 뇌가 둘로 분리되었을 때 어떻게 두 반구가 각기 이처럼 다른 마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의식을 만드는 뇌 부위 연구에 몰두한 신경과학자들

 

  크릭은 열심히 과학적 탐구를 수행하고 세심한 실험을 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 뇌의 모든 행동 양상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가 첫 번째 공격으로 요새가 함락될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함락 예상 시간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일이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계속 공격을 밀어붙인다면 언젠가는 이해하는 경지에 다다를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 언젠가는 어쩌면 21세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가 말한 21세기는 이제 5분의 1이 지났다.

   각성에 관여하는 신경 상관물의 정체와 위치에 대한 크릭의 구체적인 제안 중 어느 것도 세월의 힘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코흐와 함께 집필하여 2004년 죽음을 앞에 두고 마무리 지은 마지막 논문에서 크릭은 이러한 상관물 일부가 대뇌피질 아래, 피질과 해마 등 이와 인접한 영역에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대상핵(claustrum)이라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얇은 층에 위치한다고 주장했다. 크릭과 코흐는 대상핵이 그 복잡한 특성으로 인해 의식의 바탕을 이루는 통합 과정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대상핵이 의식 상태의 일부 양상에 관여한다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현재 코흐는 이 구조물이 의식 신경 상관물의 소재가 아님을 인정한다.

   아마도 의식의 국재화에서 가장 정확하게 합의가 이루어진 바로는, 의식 수준은 대부분 뇌간과 기저전뇌(basal forebrain)에 의해 결정되는 한편 의식을 통해 지각되는 내용은 피질이나 시상 등에서 처리된다고 여겨진다. 이는 그 자체로서 많은 정보를 주어 유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뇌는 대뇌피질보다 훨씬 더 많은 뉴런들로 빽빽하게 이루어진 구조물인데 일반적으로 의식의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는 듯 보이는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의식의 중심으로 처음에는 전두 피질에 관심을 가졌다가 이제는 후두 피질의 '핫 존(hot zone)'에 집중학 있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이에 반대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러 연구자들이 정말 많은 영역들을 주요한 영역으로 꼽았지만 지금까지는 그중 어느 것도 실험연구에 기반한 통렬한 비판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자들을 괴롭히는 한 가지 문제는 실험에서 다른 관련 없는 측면에 의해 흐려지지 않고 의식 활동을 측정하는 신뢰할 수 있는 도구를 고안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방법은 '무보고(no-report)' (피험자의 자기 보고 혹은 의식적 반응에 의존하는 대신 생리적 지표 등으로 확인할 있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측정 방법) 측정치를 활용하는 것이겠지만 이는 상당히 어려운데다, 실험 결과의 의의를 논할 때 흔히 아주 엄밀한 방법론적 세부 사항들에 대해 지루하게 대안적인 해석들을 나열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이러한 연구는 비단 학문적인 관심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 (의식은 있지만 전신마비로 인해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 이나 혼수상태처럼 언어적으로 소통할 수는 없지만 가령 테니스 치는 상상을 해보라는 등의 지시를 받으면 뇌가 뚜렷하게 반응을 보이는 상태의 환자들에게서 fMRI 나 EEG 반응을 살펴본 연구도 보고되고 있다. 최근 들어 EEG 기능을 복잡하게 수학적으로 모델링하여 큰 성과를 이루었으며, fMRI 측정치를 통해 건강한 사람이나 최소한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뇌가 전혀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구별해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의식의 상관물로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측정치는 따로 없다. 물론 의식 또한 물리적인 현상이기에 이러한 기법들을 통해 결국은 그 같은 측정 방법도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인위적으로 의식을 조정할 수 있을까

 

   의식의 신경 상관물을 찾는 일은 크릭의 시각계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따름으로써 가장 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의식과의 상관관계를 체화하고 있는 뉴런들의 부분집합을 밝히겠다는 크릭의 목표는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극히 일부 뉴런들과 일부 잠재적 시각 자극 유형에서는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크릭과 코흐가 1998년 "제한된 특정한 시각적 상황에서 특정 뉴런들이 NCG(의식의 신경 상관물)를 체화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는 모든 시각 자극 유형, 아니면 적어도 충분히 많은 수의 대표적인 표본에 대한 NCG의 위치를 밝혀야 한다."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이 목표를 이루기까지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2008년, 이차크 프리드 연구팀은 깨어 있는 환자들에게 의식적으로 식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만큰 짧은 시간 동안 그림들을 제시하고 그동안 내측두엽(medial temporal lobe) 세포들에서 일어난 반응에 대해 보고했다. 이 세포들의 반응은 환자가 그림을 알아보는 능력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예컨데 어떤 환자의 세포 하나는 가수 엘비스 프레스리 사진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제시되자 이에 강한 반응을 보였지만 제시 시간이 짧아 인식이 불가능할 때는 단 한 차례의 스파이크도 보이지 않았다. 이보다 더 최근에 진행했던 연구에서 프리드와 코흐는 각각의 눈에 제시된 그림으로부터 양안 지각(binocular perception) 을 만들어내는 데 관여하는 뉴런들을 살펴보았다. 가령 배우 아네트 베닝(Annette Bening)또는 뱀 그림 중 하나의 그림을 실험자가 임의로 번갈아 양쪽 눈에 동시에 제시하는 조건과 각각의 눈에 다른 그림을 동시에 제시하여 양 눈의 지각이 결합을 일으키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레 두 단안 이미지가 교차 지각되는 조건을 비교하는 실험을 통해 연구진은 여러분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머릿 속에서 일어나고 이 ㅆ는 비의식적 과정에 관여하는 신경 상관물을 발견햇다. 일부 세포들은 환자들이 자신이 본 이미지를 보고하는 것보다 최대 2초 앞서 반응하기도 했다.    

     이 연구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크릭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지각할 때 뇌의 활동 양상 중에는 지각이라는 전반적이니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것도 있을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의식의 일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헬름홀츠가 최초로 제시한 이 같은 통찰로 인해 신경과학에서 무의식이라는 용어가 신비로운 프로이트식 개념이 아닌 의식적인 경험에서 접근이 불가능한 과정을 지칭하는 용어로 다시금 존중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연구에서 주요 대상은 영장류의 시각피질로, 특히 시각 처리 과정 중 가장 초기 단계의 활동에서 어떠한 요소들이 의식의 일부이며 또 어떠한 것들이 의식에  관여하지 않는지 판단하고자 시도하는 데 초점이 맞추져 있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의식에 근본적이 도전장을 던진 것은 1980년대 및 1990년대 철학계를 흥분시키는 데 기여했던 원로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Benjamin Ribet)의 연구들이었다. 리벳의 연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리키는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무너뜨리는 데 쓰이곤 한다. 이후 수많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반복 검증했던 아주 복잡한 어떤 실험에서, 리벳은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피험자의 EEG 기록이 실제로 그 같은 행동을 수행하기로 피험자가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시간적으로 약간 앞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많은 과학자들과 일부 철학자들은 이 같은 결과가 정신적인 호문클루스라는 형태로 의식과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착각에 불과함을 가리킨다고 여겼다. 리벳 연구팀은 손가락을 움직이겠다는 결정에 대한 의식적인 감각은 이미 신경계가 내린 결정을 깨닫는 과정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우리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의식이 그 즉시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곧이어 "이해가 이루어지는"신경 활동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어 어떠한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한다고 너무나도 굳게 믿은 나머지 그 외의 대안적인 개념은 고려조차 할 수 없다고 여긴다. 또 다른 사람들은 리벳의 연구에서 제시한 엄격한 해석이 우리가 도덕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으며 수많은 징벌적인 법률 체계가 근거 없는 행위임을 시사한다는 이류로 이에 깊은 거부감을 느낀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불공평하고 무의해 보였던 것이다. 만약 이 같은 해석이 옳고 자유의지라는 것이 정말 우리의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관점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 같은 착각을 느끼는지, 이 같은 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 머릿속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과거 우리의 진화 과정 중 대체 어느 시점에서 이러한 착각이 처음 발생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의식을 향한 과학적 접근

 

  1995년,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는 주의, 통제, 유형화 등과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것과 관련된 "쉬운 문제"(신경과학자들이라면 대체 이 중 어느 것이 '쉬운' 문제라는 것이냐며 트집을 잡을지도 모른다)와 애초에 어째서 우리가 어떤 것들을 경험하는가와 관련된 "어려운 문제"(경험이 신체를 바탕으로 생겨난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대한 타당한 설명은 찾지 못했다. 애초에 신체적인 과정은 무슨 연유로 우리에게 풍부한 내적 세계를 선사하는가? 객관적으로 불합리해 보이지만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를 구별 지음으로써 의식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에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차머스가 딱히 지난 300년 동안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강조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색다른 시선으로 문제를 대할 수 있게 해준 영리한 시도는 의식과 관련된 문제들을 명확하게 구분되는 요소들로 나누었다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크릭이 경고했던 바와 같이 철학자들이 과학자와는 다른 규칙을 가지고 연구에 임하고 있었음을 드러냈다. 차머스는 의식에 대한 비유물론적 설명을 받아들인 몇몇 현대 철학자들 중 한 명으로 의식이 우주의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며 이를 이해하려면 새로운 물리법칙을 만들어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논리적으로 배재할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답을 찾을 수 없어 곤혹스러움에 절망하고 뭔가 새로운 발상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 말고는 이러한 견해를 지지할 그 어떤 근거도 없다. 

   의식에 관한 문제를 대하는 과학적인 접근법에 영향을 주었던 또 다른 철학적 사유는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이 1974년 발표한 논문 <박쥐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떠할까?(What Is It like to be a Bat)>(그가 만들어낸 문제는 아니다.)를 통해 제시되었다. 네이글은 생상한 주관적 경험(예큰데 빨간 열매를 볼 때 경험하는 감각 등을 가리키는데, 이를 철학적 용어로 '감각질(qualia)' 이라고 한다)이 내가 나로서 (혹은 박쥐가 박쥐로서) 고유하게 느끼는 본질적인 감각이며, 박쥐가 되었던 다른 인간이 되었든 다른 개체가 그 자신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감각이 어떠한지 내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물음이 인상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네이글의 주장은 이 모든 것이 이토록 복잡하니 겁을 집어먹고 두 손 들자는 것 말고는 과학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다. 최근 네이글은 "주요 개념들에서 적어도 상대성이론만큼 급진적인 혁명"이 있어야 연구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 예측했는데, 그가 말한 혁명이란 물론 비유물론적인 것이었다.

  지난 30년간 과학자들은 의식에 관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했다. 그렇지만 어려운 문제는 특히 여전히 어렵고, 자연히 주어진 것이므로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던다던 리벳의 견해(일부 철학자들 역시 이러한 입장을 취했다.) 와 같은 것들을 빼면 별로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엄격한 유물론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했던 이들에게 신체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 사이의 격차는 18세기 라이프니츠, 혹은 그보다 150년 뒤 뒤아 레몽과 틴들에게 그랬던 것만큼이나 무시무시하게 크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해서 그 둘을 이어줄 방법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은 헵이 처음 제시하고 크릭이 뒤를 이었던, 정밀하고 해결 가능한 문제들에 먼저 집중함으로써 의식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통찰을 아무도 망각했던 듯하다. 이 분야에서 이루어진 이론 연구 상당수가 돌연 방향을 바꾸어 온갖 추측의 영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어느 한 가지 다루기 쉬운 양상을 설명하기보다는 의식에 관한 여럿 혹은 대부분의 양상들을 단숨에 묘사해줄 수 있는 이론들을 찾느라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의식을 이론화하는 방법은 물론 매우 다양하지만 현재는 주요 과학적 접근법이라고 할 만한 이론이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둘 다 아직 그다지 정설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프랑스의 신경과학자 스타니스라스 드엔(Stanislas Dehaene)과 장 피에르 샹제(Jaen-pierre Changeux)는 버나드 바스(Bernard Baas) 의 견해를 이어받아, 특히 뇌 전역에 축삭이 퍼져 있는 뉴런들의 활동을 통해 복수의 뇌 체계에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식이 발생한다고 설명하는 '전역 작업 공간 이론(global workspace theory)'을 개발했다 드앤이 무심코 오래된 비유를 사용해 표현했듯, "의식이란 피질의 뉴런들이 밀접되어 있는 배전반 내에서 정보가 유연하게 순환하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었다. 

   또 다른 접근법은 '통합 정보 이론(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으로, 줄리오 토노니 (Giulio Tononi) 와 제럴드 에덜먼(Gerald Edelman) 그리고 크리스토퍼 코흐를 비롯한 다수의 공동 연구자들이 개발한 이론이었다. 이는 경험의 필수 속성들과 관련하여 수학적으로 나타낸 공리들과 더불어 해당 공리들이 신체의 물질로 어떻게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는가에 관한 여러 가정을 수반하는 복잡한 수학적 접근법이다. 통합 정보 이론에 따르면 의식이란 단순히 이러한 연결망에 관여하는 정보의 통합이며, 연결성의 정도를 통해 의식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를 측정해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의식과 이론의 핵심인 정보의 통합 사이의 연결고리는 불분명하다. 

   현재 이 분야에 전념학 있는 과학자들 중에는 셰링턴이나 에클스, 또 펜필드를 따라 드러내놓고 이원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몇몇은 마음과 뇌라는 문제에서 17세기에 처음으로 분명하게 제기되었던 다른 해결 방법들, 특히 모든 물질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의식을 갖추고 있을지ㅣ 모른다는 범심론(토노리는 자신의 이론이 범심론의 일부 '직관'들의 타당서을 입증한닥 주장했는데, 한편 또 다른 연구자들은 최소 단세포 동물 이상의 살아 있는 생물만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를 선호했다.) 도 기끼어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이론은 인간이나 동물의 마음의 존재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설명도 필요치 않다는 점에서 큰 이점이 있지만 결국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으며, 통합 정보 이론이 목적론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코흐의 주장처럼 종종 검증이 불가능한 신비주의적인 신념들을 낳는다. 심지어 코흐는 물질에는 의식을 갖고자 하는 일종의 강한 욕구가 있다고 주장하며 열과적으로 예수회의 신비주의자 테야르 드 샤르뎅(Teilhard de Chardin)을 언급했다. 

    의식에 관한 심리학 이론들도 여럿 있는데, 뇌가 세상을 해석하고 이에 작용하는 방식과 관련되어 근본적인 기계론적 문제보다는 주로 의식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 대중이 특히 흥미롭게 여길 만한 의식 이론으로는 뇌의 신경 내 미세소관에서 이루어지는 양자 효과들이 의식 경험의 핵심이라는 수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의 이론(인간의 미세소관이 어째서 선충과는 다른 양자 효과를 보이는지는 분명치 않다.) 처럼 양자 영역을 들먹이는 이론들이 있다. 최근에는 가지나가도 조금 더 일반적인 틀에 가깝기는 하지만 어쨋든 이처럼 양자의 길로 들어서, 의식이 그저 무엇이 살아 있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심오한 문제를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든 문제일 뿐이며  양자 개념의 상보성이 모호하게나마 여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는 이론을 내놓았다. 설명되지 않은 생물학적 현사들에 양자를 이용하여 접근하는 방식이 일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대상이 다 신비로운 것들이라면 분명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가정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양자역학이 의식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

    절망적인 사실은 많은 이론가들이 경쟁 이론들과 아무리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한들 이들을 서로 연결 지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양한 이론들이 따로따로 제 갈 길만을 가는 이 놀라운 상황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나는데,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이들을 엮어줄 결정적인 실험적 근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이론 중 어느 하나가 옳다거나 적어도 가장 가능성이 높으므로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버려야 한다고 과학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실험 결과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는 의식의 신경 상관물들이 마침내 발견되고 이론가들이 보다 정밀하고 국재화된 예측을 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된 후에야 가능해질 것이다.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또 다른 진로도 존재한다. 전역 작업 공간 이론과 통합 정보 이론은 기계가 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가능성에 상반되는 견해를 보인다. 전역 작업 공간 이론에서는 이론의 핵심이 되는 정보의 전역적 분포를 그대로 모사하는 회로만 갖춘다면 기계 또한 의식을 가질 수 있음을 분명하게 시사한다. 반면 통합 정보 이론의 한 가지 해석에 따르면 뇌처럼 복잡한 조직을 지닌 것만이 의식을 가능케 할 정도의 통합 정보를 담을 수 있다. 그러니까 정말로 의식을 갖춘 기계가 등장한다면 어쩌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있을 것이다.

    의식 그리고 으식이 뇌 기능으로부터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데 앞으로 더욱 큰 진전을 이루려면 헵과 크릭이 강력하게 제안했던 실험적 접근법에 다시금 집중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한마디 더 제안을 덧붙이자면, 과학자들은 어쩌면 철학적인 문제는 철학자들 손에 맡겨두는 편이 좋을 수 있다. 의식의 가장 복잡한 측면을 이론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걱정을 하기보다는 실험적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을 연구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접근법이 될 것이다. 

   퍼트리샤 처칠런드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뇌 활동이 어떻게 의식이 되는지 보여줄 수 있는 단일한 실험이나 단일한 이론이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유럽의 사상가들은 아주 조금씩 생각이 심장이 아닌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때도 어느 한 순간에 뇌 중심적 사고로 바뀐 것이 아니었으며, 미래에도 어느 한 순간에 신경망 중심적 통찰이 이루어질 리 없다. 대신 증거들이 느리지만 차곡차곡 쌓이면서 점진적으로 가닥이 잡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되었든 1870년대 사상가들을 물들였던 비관주의로 다시 물러설 이유는 없다. 우리는 이 골칫덩어리 문제를 해결하고 말 것이다. 결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