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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원더풀 사이언스 - 화학

by 강대원 2024. 8. 5.
화학 : 불, 얼음, 스파이 그리고 생명 (Chemistry : Fire, Ice, Spies, and Life)

   MIT의 재료공학과 교수인 도널드 사도웨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그저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탄소 화합물일 뿐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죠. 우리들은 강철을 두른 레이디얼 타이어의 탄소 섬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요." 

   MIT 화학과 교수 릭 댄하이저는 말한다. "화학은 핵심 학문이지 중심 과학입니다. 그러나 화학의 공로는 그 사실을 좀더 분명히 알 필요가 있는 생물학자들, 물리학자들, 의학 연구자들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사람들에게조차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학자들은 자신들이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의 후손임을, 주머니 속에서 성냥을 찾지 못해도 내부에는 언제나 뜨거운 불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적당해야 합니다 

 

   신화와 판타지에 나오는 몇몇 인물 중에는 화학의 특별한 비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 있다. 골디락스도 그중 한명으로, 화학을 중간에; 선 회색분자라기보다는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칼을 한 골디락스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골디락스는 극단적인 것은 싫어한다. 너무 뜨거우면 혓바닥을 데어버리고 너무 차가우면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다. 골디락스가 좋아하는 것은 '딱 알맞은' 상태, 조화를 이루는 타협과 절충이다. 마찬가지로 화학이 다루는 세계도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고 않는 분자의 세계이다.

   로얼드 호프만은 말한다. "화학은 태양 표면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요. 태양 표면은 원자와 원자가 충격을 받아 나누어지면서 만들어진 이온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물질은 온도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라는 세 가지 상태로 존재하고 태양이나 불을 땔 때 나오는 에너지로 한 분자의 원자 배열을 바꾸어 다른 분자로 만들 수 있다. "이 세상에 115개의 원소만 있다면, 115개의 원자가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의 전부라면 얼마나 재미없겠습니까. 이야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겟죠."호프만의 말이다. "하지만 우리 세상은 그렇게 지루한 세상이 아닙니다. 115가지 원소로 거의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한 분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분자의 종류는 적어도 10만개 정도 됩니다. 포도주의 향기를 결정하는 휘발성 분자는 900가지 정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화학은 분자에 관한 학문입니다. 우리도 분자이지요. 화학은 정말로 인간적인 학문입니다." 

   태양 표면에 모여 있는 원자들과 우리 딸의 얼굴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려 할 때  반드시 거챠야 하는 통과의례는 어떤 것일까?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할 때의 그 본드(결합)이지요" 라고 도널드 사도웨이가 말한다. "화학은 결합을 깨거나 결합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화학은 분자에 대한 학문이며, 결합의 형성과 해체에 관한 학문이다. 화학결합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자기력이다. 내부에서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는 양성자와 전자의 선천적인 인력과 어느 때에는 이쪽 양성자를 향해 있다가도 이내 다른 양성자 쪽으로 돌아설 수 있는 음의 전하를 띤 전자의 변덕 덕분이다. 화학은 전자의 이 같은 변덕을 이용해 원소 주기율표에 나열된 100여 가지의 원소들을 수십만 가지 방법으로 재배열하고 결합을 끊었다가 다시 이으면서 점차 더 많은 분자들을 만들어나간다. 로얼드 호프만은 화학을 '상상의 과학(the imagined science'이라고 말했고 위대한 19세기 프랑스 화학자 클로드 베르톨레는 '화학은 예술'이라고 찬탄했다. MIT 화학과 교수 스티븐 립파드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과학은 아마도 화학이 유일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연구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우리들은 이전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새로운 분자를 만들어냅니다."

 

시행착오가 새로운 물질을 만든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대부분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며 앞으로 어떤 것을 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다루고 있는 한 줌의 원소들의 존재만 알뿐 그 밖에 게임의 법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코넬 대학교 화학 교수 프랭크 디살보의 말이다.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재료 화학자라 해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만들 수 있게 될 만큼 주기율표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앞으로도 천 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할 겁니다."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결합, 혹은 분자와 다른 분자를 연결하는 결합의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같은 탄소 원자의 결합이라도 다이아몬드는 여성들의 영원한 최고의 친구가 되고 음식을 구성하는 탄수화물 사슬은 간단한 신진대사 작용에도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것이고 연필 끝의 흑연은 가볍게 종이 위를 스치는 것만으로도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분자를 이루는 결합은 쉽게 흔들리고 뒤섞인다. 결합은 규칙이 그렇듯이 깨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화학결합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간단하지만 결코 가장 단순하지 않은 결합이 바로 공유결합이다. 공유결합은 두 원자가 한 이불을 함께 덮듯이 한 쌍 이상의 전자를 공유하는 결합 방법이다. 공유결합은 자신들의 요구를 비슷하게 조절할 수 있는 두 원자, 다시 말해서 최외곽 전자에 더 많은 전자가 있을 필요는 없지만 여분의 전자가 들어올 여유 공간은 있는 전자들끼리 맺는 게약이다. 두 원자 모두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의 수와 핵 속에 들어 있는 양성자의 숫자가 같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두 원자는 각각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전자가 돌고 있는 궤도, 다시 말해 전자껍질은 양성자의 수와 상관없이 특정한 수의 전자가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전자껍질은 수납장과 같아서 꽉 채워져 있을 때 가장 행복해한다. 

  "두 원자가 함게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첫째로 공유 전자가 양의 전하를 띠고 있는 양쪽 원자핵을 모두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핵들이 지나칠 정도로 서로 너무 가까이 있는 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원자가 타협을 본 거리가리의 화학결합의 범위가 되며, 두 원자를 잇는 스프링처럼 활동합니다." 그러니까 공유결합으로 묶인 원자들은 스프링처럼 통통 튀면서 가까이 다가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공유결합을 하는 원자들은 보통 같은 원소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원소들이 서로 결합해 화합물이라고 하는 분자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전자가 한 개뿐인 수소는 최대 여덟 개가 들어갈 수 있는 최외각 껍질에 전자가 일곱 개만 들어 있는 염소와 결합할 수 있다. 수소와 염소는 한 쌍의 전자를 공유함으로써 무색의 유독성 기체이자 플라스틱과 여러 산업용 연료로 쓰이는 염화수소(HCL) 를 만들어낸다. 질소의 최외각 전자 껍질에 들어 있는 전자는 다섯 개이고 산소의 최외각 전자 껍질에 들어 있는 전자는 여섯 개이다. 질소와 산소 모두 최외곽 전자 껍질이 수용할 수 있는 전자의 수는 여덟 개이다. 질소와 산소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자를 공유함으로써 여러 가지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질소 원자 한 개가 산소 원자 한 개와 결합하면 일산화질소(NO)가 만들어진다. 질소 원자 두개가 산소 원자 한개를 만나 친밀해지면 달콤한 냄새가 나는 정신 활성 가스인 아산화질소(NO2) 가 생긴다. 우리가 먹는 탄수화물은 탄소, 수소, 산소 원자가 공유결합하고 있는데, 각 원자가 어떤 비율로 어떻게 결합해 있는가에 따라 복잡하고 영양분이 풍부한 녹말이 될지, 달콤한 당분이 될지가 결정된다. 

  일산화질소는 특히 헤모글로빈 분자 가운데 박혀 있는 철 원자의 전자를 뺏는 데 능숙하다고 알려져 있다. 일산화질소에게 전자를 뺏긴 헤모글로빈은 몸속에 산소를 운반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너무 많은 일산화질소를 들이마시게 되면 산소 결핍으로 죽을 수 있다. 

   질소는 질소 원자끼리 결합했을 때 아주 강력한 안정감을 갖는다. 전자를 공유할 산소나 수소 같은 원자가 없을 때면 질소 원자들은 각각 세 개의 원자를 내어놓아 두 질소 원자의 최외각 전자껍질을 세 쌍의 전자가 공유하게 함으로써 막강한 결속력을 가진다. 두 개의 질소 원자가 만들어낸 삼중 공유결합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깨지지 않는 최강의 안정 물질로, 다른 물질과는 전혀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액화 질소는 혈책이나, 정자, 수정된 배아,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 생체 증거물 같은 생체 물질을 장기간 저장할 매질로 사용된다. 

 

분자의 접착제 

 

   분자의 정확한 의미는 '전자를 함께 나누는 공유결합으로 묶인 원자들의 집단'이다. 염화나트륨, 브롬화마그네슘, 염화칼슘 등은 분자가 아니라 이온화합물이다. 이들은 이온결합의 산물로, 우리에게 조미료, 수정 렌즈, 달걀 껍데기, 소화제 알카셀처, 여러 가지 가정용 세제, 놀라운 정신과 치료제 등에 선사해준 것은 이온결합이다. 이온결합(Ion bond)은 똑같은 결합(bond)이라도 공유결합(covalent bond)과는 다르다. 

  이온결합은 반드시 다른 원소와 결합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온 결합이라는 용어에 잘 나타나 있다. 이온결합은 이온 사이의 결합이다, 다시 말해 전하를 띤 원자들 간의 결합이다. 이온결합은 양성자보다 전자가 한두 개 더 많아서 음의 전하를 띠게 된 원자와, 양성자보다 전자가 한두 개 정도 적은 양의 전하를 띤 원자가 서로를 끌어당기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결합이다. 

  전자를 잃어버리는 쪽은 여러 개의 전자가 들어갈 수 있는 최외각 전자껍질에 전자가 한 개 내지 두 개밖에 들어 있지 않다. 게다가 이 최외곽 전자껍질과 양의 전하를 띤 원자핵 사이에는 몇 겹의 전자껍질 층이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최외각 전자껍질의 씁쓸한 전자들은 슬쩍 빗나간 주먹만 맞아도, 강한 바람만 한 번 불어도 아차 하는 사이에 안녕 하고 홀연히 원자를 떠나간다.

   반대로 전자를 얻어 (-) 이온이 되는 원자는 최외각 전자껍질이 거의 다 찼는데 전자 한두 개 정도 들어올 공간이 비어 있는 경우다. 비어 있는 공간은 공유결합으로 채울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원자는 전자를 어디서 한둘만 더 구해 홀로 완전무결한 원자가 되려는 더 큰 욕망을 품고 있다. 

   두 이온이 결합할 때 서로에게 작용하는 힘은 두 가지이다. 이온들이 결합할 때는 다른 전하를 띤 입자들은 서로를 끌어당기고 같은 전하를 띤 입자들은 서로를 끌어당기고 같은 전하를 띤 입자들은 서로를 밀어낸다. 그 때문에 이온결합을 하는 나트륨 이온과 염화 이온은 규칙적이고도 일정한 배열을 갖게 된다. 이런 반복적이고 질서정연한 3차원 구조를 우리는 '결정(crystal)'이라고 부른다. 즉 소금 결정이다. 

   원자들은 또한 금속결합이라는 형태로도 결합한다. 금속결합은 수많은 원자들이 가장 사회주의적으로 전자를 공유하는 형태로 구리선, 결혼반지를 만든 금, 염소와 결합하기 전인 말랑말랑한 나트륨 같은 금속에서 볼 수 있다. 금속결합으로 짝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의 최외곽 전자는 '전자 바다(electron sea)'라고 하는 곳을 마음대로 떠돌아다닌다. 이 원자에서 저 원자로 마음대로 움직이는 전자의 유동성이 금속을 전류가 흐를 수 있는 전도체로 만드는 것이다. 

   원자나 이온을 한데 묶는 결합은 아주 단단한 접착제와 같아서 일반적인 상태라면 로얼드 호프만의 말처럼 "원자들은 서로 뭉쳐서 집단으로 이동한다." 원자들은 공유결합을 통해 분자로, 혹은 이온결합을 통해 결정으로, 혹은 전자를 공동으로 나누어 가진 금속의 형태로 함께 움직인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결합으로는 수소결합이 있다. 수소 결합(hydrogen bond) 이라는 이름은 안타깝게도 '수소폭탄(hydrogen bomb)'이나 수소와 산소가 결합한 물(H2O)이나 수소와 염소가 결합한 염화수소(HCl)처럼 수소가 다른 원자와 결합하는 경우를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의 결합은 수소결합보다 훨씬 막강한 공유결합이다. 수소결합은 그보다 물 분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결합이다. 

   물 분자를 이루고 있는 수소 귀와 산소 머리를 묶어주는 전자쌍은 공평하고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지 않다. 두 원소가 공유하고 있는 전자는 수소의 원자핵 가까이 있을 때보다 산소의 원자핵 가까이 있을 때가 더 많다. 그 때문에 미키 마우스 본자의 귀가 된 수소 원자는 약한 (+) 전하를 띠게 된다. 수소의 양성자가 띠고 있는 전하를 상쇄키켜줄 전자가 너무나 자주 바깥출입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산소 원자는 여분의 전자가 마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얼굴의 아래쪽 절반은 약한 (-) 전하를 띠게 된다. 

  수소 결합의 세기는 공유결합 세기의 10분의 1 정도로 작지만 덕분에 신축성이 있다. 식물이 물을 흡수하고, 거대한 삼나무 꼭대기 잎들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수소결합 덕분이다. 

   그러나 물의 수소결합은 느슨해서 더 빽빽한 물질이 들어오면 서로 뒤섞이기 위해 맞잡은 손을 놓는다. 물을 흔히 만능 용매(universal solvent) 라고 부르는데, 물에 녹지 않는 물질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반 데르 발스의 힘도 분자를 결합시키는 또 다른 힘이다. 이 이름은 이 힘을 발견하고 수학적으로 증명한 19세기 네덜란드 물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사실 반 데르 발스의 힘은 결합시키는 힘 가운데 가장 약한 힘으로 수소결합의 4분의 1 크기밖에 안된다. 그러나 약한 것이 도리어 장점이어서, 반 데르 발스의 힘은 수많은 금속과 액체에 필수적이며, 우리의 생존을 결정한느 물질들의 특성을 결정한다.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점토는 규소, 알루미늄, 산소, 수소, 칼륨, 질소, 철 등 다양한 원자들의 얇은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코발트, 구리, 망간, 아연 등이 한데 섞여 있다. 각각의 층을 이루는 원자들이야 견고한 공유결합이나 이온결합으로 결합되어 있지만 층과 층 사이는 반 데르 발스의 힘이 유일한 접착제이다. 도자기를 빚을 때 약간의 실수로도 점토가 쉽게 허물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표준 규격 시험을 통과한 평범한 연필도 반 데르 발스의 힘을 설명하는 좋은 예이다. 연필 속에 들어 있는 흑연은 캐러멜로 만든 얇은 층이 가득 차 있는 버터핑거 막대 사탕처럼 탄소 원자 층이 끝에서 끝까지 셀 수 도 없이 늘어선 물질이다. 하나의 흑연 층 속에 들어 있는 탄소 원자는 서로서로 팔을 엮어 공유결합을 함으로써 단단하게 묶여 있지만 층과 층 사이를 이루는 것은 오직 반 데르 발스의 힘뿐이다. 연필로 타원을 그릴 수 있는 이유는 종이 위에 연필을 대고 힘을 주는 순간 흑연 층 한 두개가 커다란 종이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탄소는 생명체의 만능 청테이프

 

   생명과 세상을 이루는 물질들이 그 형태를 이루고 우리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이처럼 다재다능한 결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온결합으로 탄생한 고체는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그 결합을 깰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온결합 고체가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고 그 강함도 얼마든지 부서질 수 있다. 사람이 힘껏 누르면 이온결합 고체도 완강하게 버티긴 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구부러질 것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조직들은 대부분 이온결합이 아니라 공유결합으로 만들어진 화합물로 되어 있다.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우리 몸에서 탄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건조 무게의 3분의 2가량 된다. 물이 우주의 만능 용매제라면 탄소는 생명체의 만능 청테이프이다. 세포는 물론이고 세포소기관까지 어느 것 하나 탄소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계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 형태가 무엇이든지 모두 탄소를 갖고 있다. 화학자의 절반 정도가 유기화학 분야에 있는 것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기화학(organic chemistry)은 순수한 유기농 자연 식품(organic food)과는 관계가 없느며 탄소를 포함한 화합물에 대해서 연구하는 분야이다. 

   생명체가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화합물로 이루어져 있는 이유는 탄소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적합한 분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탄소는 융통성과 친화력을 두루 갖춘 강하고 뛰어난 지략가이다. 최외각 전자껍질에 있는 여덟 개의 전자 자리 중 네 개를 채우고 네 개를 비워놓는 탄소는 분명히 분자결합의 최상의 파트너이다. 탄소는 누구와도 손잡기를 거부한 헬륨, 네온을 비롯한 여섯 개의 고귀한 원소들을 제외하고는 원소 주기율표에 나와 있는 나머지 모든 원소와 행복하게 손을 잡을 수 있다. 더구나 탄소는 탄소 사슬, 탄소 고리, 탄소 가지, 널찍한 탄소 평면, 통통 튀는 탄소 공 등 아주 다양한 형태로 결합하면서 다른 원소들은 꿈도 꾸지도 못할 만큼 다양한 형태의 결합을 끝도 없이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분자는 안정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분자의 안정성에 대한 요구는 지금보다 훨씬 혹독했던 생명체 탄생 무렵의 지구에서 더욱 절실했을 것이다. 또한 탄소는 특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쉽게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고리를 만들기 때문에 탄소 분자는 고리나 직선 혹은 나선형을 가지리지 않고 마음대로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저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몸을 구성하는 탄소 화합물을 밝혀내기 전부터 어떤 탄소 덩어리는 우리를 사로잡아왔다. 바로 다이아몬드다. 시커멓고, 무디고, 연한 흑연에서부터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투명하고, 별빛을 담고 있는 보석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탄소의 다재다능한 결합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흑연을 구성하는 탄소는 탄소 원자 한 개당 세 개의 탄소 원자와 결합하며 네 원자 모두 같은 2차원 평면 위에 있다. 네 개의 탄소 원자 가운데 위나 아래로 구부러져 입체 구조를 만드는 원자가 단 한 개도 없기 때문에 흑연 한 층 한 개와 다른 흑연 층 한 개를 연결하는 힘은 약한 반 데르 발스의 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힘을 줘도 층과 층이 미끄러지면서 분리된다. 

   반면 다이아몬드를 구성하는 탄소 원자는 모든 방향에서 결합이 일어난다. 한 개의 탄소 원자는 자신이 결합할 수 있는 최대 수인 네 개의 탄소 원자와 결합함으로써 3차원 구조를 만든다. 오른쪽, 왼쪽, 위, 아래, 어디를 보아도 탄소결합이 보인다. 워낙 단단하게 서로 뭉쳐 균등한 결정 상태를 이루기 때문에 빛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나 시야를 흐리게 하는 요소가 없고,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영롱한 빛을 내뿜을 수 있다. 최근까지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공장은 지표면에서 수 킬로미터를 파고 내려가야 하는 맨틀이 유일했다. 다이아몬드가 되려면 맨틀에 저장된 탄소 덩어리가 수백만 년 혹은 수십억 년 동안 뜨거운 열과 압력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는 때때로 화산이 폭발할 때 지표면 밖으로 튀어나와 재왕의 왕관에 박히거나 '여성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된다. 

   20세기 중반 과학자들은 지구 깊숙이 묻혀 있는 맨틀의 상태를 흉내 내 산업용 인공 다이아몬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보다 최근에 과학자들은 천연 보석과 거의 유사한 상태의 인공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냈다. 

   우리 몸을 연결하는 탄소결합은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탄소결합보다는 덜 열정적이지만 우리를 살아 있게 해준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식이섬유 같은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화합물이다. 우리가 하루 동안 먹는 음식 속에는 평균 300 그램 정도의 탄소 원자가 들어 있다. 양쪽 콩팥 무게를 합한 정도의 양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탄소 원자는 곧바로 몸에 흡수되어 손상된 세포를 치료하거나 호르몬을 합성하는데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탄소 화합물이 분해될 때 나오는 탄소결합이 저장하고 있던 에너지만 쓰고 남은 탄소는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몸 밖으로 배출한다. 그런데 우리게는 쓰레기인 이산화탄소도 다른 생명체에겐 소중한 자원이 된다. 우리는 생각 없이 탄소 순환이 생명의 본질 중 하나일 뿐이라고만 생각하고 너무 함부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탄소결합은 아주 강한 결합으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저장하고 잇으며, 우리는 이를 기반으로 살고 있다. 

 

결합은 생명의 다른 이름

 

   DNA의 이중나선 가닥을 서로 맞물리게 해주는 결합, 각각의 지퍼 이빨이라 할 수 있는 각각의 화학 문자가 한 쌍씩 서로 맞물리게 해 주는 결합은 바로 수소결합이다. 수소 원자가 산소나 질소, 탄소처럼 훨씬 크고 소유욕이 강한 원자와 전자를 공유해 분자를 만들 때 생기는 매력적인 불균형 덕분에 우리들의 DNA 는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할 수 있다. 수소결합은 DNA 가 세포핵 속에서 얌전히 쉬고 있을 때는 DNA 이중나선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하지만, 지나치게 강하지는 않아서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거나 DNA 전부를 복재하려 할 때면 쉽게 떨어뜨릴 수 있다.

   수소결합의 도움으로 단백질은 한쪽에 살짝 주름을 잡거나 안쪽으로 버클을 채우는 방법으로 자신의 모양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 수소결합 덕분에 헤모글로빈 단백질은 자신의 모양이 스파게티 일인분이나 미트볼처럼 보일 때까지 돌돌 말아 우리가 갈망해 마지않는 산소와 결합할 철 덩어리를 붙잡을 수 있다. 면역계가 만들어내는 항체가 우리 몸에 침입한 미생물을 만났을 때 펄럭거리는 네 개의 사슬을 재빨리 범인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입힐 구속복으로 변형시킬 수 잇는 것도 모두 수소결합 덕분이다. 

   수소결합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면 생명체가 단단하게 굳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막 닭이 낳은 달걀의 투명한 액체 속에는 귀여운 병아리를 보호해줄 섬세한 단백질들이 40여 종 들어 있다. 이 단백질들의 3차원 구조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수소결합이다. 달걀을 삶아 수소결합을 파괴하면 단백질 배열이 파괴되면서 아무렇게나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마구 뒤섞이게 된다. 출렁이고 투명한 액체가 달걀흰자라고 불리는 불투명한 고체로 굳어버리는 순간이다.

   우리 내장 조직을 이루고 있는 층상 구조, 무화과 푸딩 같은 주름이 진 뇌 조직 등은 반 데르 발스의 힘이 없으면 한데 뭉쳐 있지 못한다. 또한 지방질이 결합해 있는 것도 모두 느슨한 풀 덕분이다. 그런 우리의 지방질이 운동으로는 잘 없어지지 않는 까닭은 지방 분자 자체를 결합시키는 힘은 에너지를 많이 저장하고 있는 탄소결합이기 때문이다. 식물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로 셀룰로오스 벽이 갖고 있는 반 데르 발스의 약한 자기력 때문이다. 식물 뿌리와 줄기의 내벽은 약한 전하를 띤다. 그 덕분에 토양에 스며 있는 물 분자를 끌어당겨 위쪽으로 올려보낼 수 있다. 물에 한쪽 끝을 담근 휴지를 타고 물이 올라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일반 반 데르 발스의 힘으로 물 분자를 끌어당기면 그 다음부터는 물 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수소결합이 다른 물 분자들이 지도자를 따라 나아가게 된다. 결합은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모든 결합들, 온갖 결합의 무리들은 각자 맡은 일이 무엇이든 서로 힘을 다해 이 우주가 단 하루라도 더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해준다.

 

변화의 연금술

 

   릭 댄하이저는 '화학은 변화의 과학, 변형의 학문'이라고 말한다. 화학은 연금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화학(化學)이라는 한자에도 변화라는 개념이 담겨 있다. 

   물질이 화학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는 물질의 세 가지 상태 변화이다. 고체인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물이 증발해 수증기가 되며 수증기가 응결해 액체인 비가 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들도 모두 세 가지 상태 가운데 하나이다. 

   고체, 액체, 기체라는 상태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본의 상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조건은 열이다.

   만약 고체에 열을 가하면 분자의 떨림은 훨씬 격렬해진다. 열을 받아 잔뜩 화가 난 분자들은 자신들의 3차원 배열이 갈기갈기 떨어져 나갈 때까지 자신들을 묶고 있는 결합을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이제 분자들에게는 다른 분자를 향해 이동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곳으로 분자들이 밀려온다는 것은 저곳에 공백이 생겼다는 뜻이며 그 말은 곧 고체 상태의 경직된 구조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엿보고 있던 분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겼다는 뜻이다. 마지막까지 고체 구조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분자들까지 결국 포기하고 손을 놓으면 분자는 부피는 일정하지만 모양은 일정하지 않은 액체 상태가 된다. 이 액체 상태의 분자에 더 많은 열을 가하면 분자의 운동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져 분자들은 자신들을 잇는 모든 인력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마음대로 훨훨 날아가는 기체 상태가 된다. 사실 기체 분자 사이에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력은 있다. 팔팔 끓고 있는 주전자의 증기는 기체 물 분자들이 한데 모여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기체는 정해진 부피가 없기 때문에 이내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버린다.

   일반적으로 이온결합 물질인 광물이나 뼈는 액체가 되거나 기체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온과 이온이 결합해 있는 단단한 이온결합 물질은 액화 과정의 첫 번째 단계인 결합이 헐거워지거나 떨어지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금속의 녹는 온도가 높은 이유는 수많은 원자들이 함께 전자를 공유하고 잇는 금속결합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이유는 가능한 한 조밀한 3차원 구조를 이루기 위해 서로서로를 겹치게 쌓아 놓는 구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온결합 물질도 금속결합 물질도 아닌 분자결합으로 이루어진 고체는 쉽게 녹거나 끓는다. 그 중에서도 우리 몸을 이루는 신체 기관처럼, 종류는 다르지만 비교적 가까운 관계에 있는 분자들이 섞여 있는 부드러운 고체는 쉽게 녹거나 끓는다. 그런 분자들은 보통 반 데르 발스의 힘에 의지해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결합이 쉽게 깨진다. 예를 들어 지방이 80퍼센트이고 단백질, 우유, 설탕을 비롯한 여러가지 첨가물의 비율이 20퍼센트 정도 되는 버터는 입안에 넣는 것만으로도 녹아내린다. 

   그런데 모든 물질이 열을 받으면 고체에서 액체를 거쳐 기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얼어붙은 이산화탄소, 즉 드라이아이스라고 하는 물질을 생각해 보자. 드라이아이스를 상온에 갖다놓으면 액체 상태는 그대로 건너뛰고 곧바로 하얀 증기를 뿜으며 기체 상태로 돌아간다. 이렇게 액체 상태를 건너뛰는 상태 변화를 '승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유는 이산화탄소를 묶고 있는 결합이 상대적으로 연약하고,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분자들을 연결하는 결합은 쉽게 깨지고, 주변의 공기는 옳다구나 하고 귀한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인다. H2O 의 고체 상태인 얼음도 물이 되는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수증기가 되는 승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냉동실에 넣어둔 얼음이 온도가 변하지 않았는데도 조금씩 줄어드는 현상이 바로 얼음이 승화 된다는 증거이다. 얼음을 둘러싼 공기 속으로 얼음 분자가 곧바로 뛰어들어 수증기가 된 후에 냉장고 표면에서 다시 얼음으로 바뀌는 냉장고 서리가 바로 승화의 예이다. 또는 냉동실 속에 넣어둔 얼음이 줄어들면서 함께 넣어둔 물건이 일종의 얼음 풀로 붙여놓은 듯, 한 덩어리의 얼음 덩어리로 되는 것도 승화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녹거나 얼거나 끓거나 응결되는 모든 것이 물질의 물리적인 상태 변화를 나타내지만 상태가 변한다고 해서 분자 구조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분자의 성질을 바꾸려면 물리 변화가 아니라 화학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을 모두 분리해내 새로운 분자가 되도록 다시 배열해야 한다. 

 

술과 빵과 사과의 과학

 

   인류가 알코올 음료를 마시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 9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질그릇 파편을 화학 분석해 본 결과 중국 북부 허난성의 한 마을인 쟈후에 살았던 사람들이 쌀이나 포도, 꿀을 발효시켜 알코올 음료를 만들어 먹었음을 알아냈다. 

   포도주와 맥주를 비롯한 정신을 지배하는 알코올성 음료는 모두 효모가 축제를 벌이며 먹는 동안 일으킨 화학 변화의 산물이다. 효모는 자신이 찾아낸 분자를 분해시킨 후 그 부품을 이용해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분자를 만들어낸다. 효모는 균류의 일종이다. 사실 대부분의 균류 세계의 일원들은 우리 인류와는 전혀 다른 미각을 가지고 잇는 보편적인데 효모의 미각은 독특하게 도 설탕을 좋아하는 우리의 입맛과 닮았다. 갈아놓은 곡물이나 잘 으께 놓은 포도를 담은 통에 양조용 효모를 첨가하면, 효모는 그 속에 들어있는 단당류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단당류란 더 이상 그보다 간단한 당류로 분해되지 않는 탄수화물을 말한다. 포도당과 과당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분자를 이루고 있는 탄소와 산소, 수소 원자의 개수 등은 서로 같지만 원자들이 만드는 3차원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성질을 띤다. 그러나 효모에게 두 당의 차이점은 아무 의미가 없다. 효모는 단당류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이산화탄소 분자 두 개와 에탄올이라고 하는 에틸알코올 분자 두 개로 분해해서 에너지를 짜낸다. 어떤 술에 거품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때만들어진 이산화탄소 때문이다. 곡물을 으깬 곤죽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밀가루 반죽에 효모(이스트)를 첨가하면 발효가 일어나면서 반죽을 부드럽게 만들어 부풀린다. 에탄올른 술(alchol)을 진정 알코올 음료로 만들어주는 물질로, 분위기를 고취시켜주고 이성을 앗아가는 물질이다. 효모가 없어도 인간의 체세포는 산소가 없을 때면 언제라도 알코올을 만들어낸다. 역도를 올리는 것 같은 근력 운동을 할 때 그렇다. 가끔 헬스장 탈의실에서 술 냄새가 풍기기도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어떤 것을 재료로 만들었느냐에 상관없이 알코올이라면 모두 수산기(-OH)를 가지고 있다. 수소 원자 한개와 산소 원자 한개로 이루어진 수산기는 반응성이 높아서 아주 거대한 분자들을 뚫고 들어가 쉽게 갈라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강력한 세제를 만들 때도 집어넣고 향수, 염료, 약품의 용제로 많이 쓰이며 심지어는 어린이용 시럽 감기약이에도 들어간다. 

   와인병을 열어놓으면 공기 중에 떠돌던 호기성 세균(먹고 사는데 산소가 필요한 세균) 이 병 속으로 들어가 효모가 남긴 찌꺼기인 알코올을 먹고 물과 아세트산을 만들어놓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식초가 생기는 것이다. 

   발효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일어나는 화학 변화의 한 단면일 뿐이다. 나트륨과 염소는 함께 섞이는 순간 불꽃을 내며 맹렬하게 반응해 소금을 만들어낸다. 두 이온의 전자들이 소금 결정 속에 자리잡기로 결정하면서 나트륨 원자와 염소 원자 는 자신들의 열정, 자신들의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를 기꺼이 포기해버린다. 두 원소가 자신들의 에너지를 포기하는 과정은 짧은 폭발음과 빛과 열을 발산하는 발영 반응의 형태로 나타난다. 

   새일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계란, 버터, 밀가루, 설탕 같은 첨가물을 넣고 잘 저은 다음 반죽을 케이크 팬에 붓고 오븐에 넣고 구워주는 반죽의 성분은 분자 구조가 재배열되어 가볍고 촉촉하고 탄력 있는 상태로 화학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케이크 반죽이 에너지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케이크를 굽는 반응은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발열 반응과 달리 반죽 속에 열을 가두는 흡열 반응이다. 

    우리가 숨 쉬는 산소, 전체 대기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이 기체는 생명의 수호자이기도 하지만 화학 반응에 열광적이기도 하다. 산소는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물질하고도 결합한다. 산손느 파트너의 전자를 훔쳐 파트너의 성질을 바꾸어놓는데, 산소의 파트너가 된 물질은 표면을 그슬려 전보다 연약한 상태가 된다. 산소라는 영리한 도적이 전자를 훔쳐가는 행위를 산화라고 하는데, 산소 원자와 산소 분자 모두 강력한 산화제로 작용한다. 산화는 강철로 만든 다리가 산소와 반응하여 녹슬어가는 것처럼 서서히 점진적으로 일이난다. 산화반응은 대부분 발열 반응으로 휘발류나 석탄이 타서 열을 내는 것도 산화의 일종이다. 어떤 물질이 연소되려면 자기 스스로 타오르는 발열 반응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흡수해야 한다. 산소와 휘발유가 격렬히 반응하기 위해서는 스파크 플러그를 이용해 불꽃 방전을 일으켜야 한다. 성냥 머리에 묻혀놓은 인이나 황 같은 인화 물질이 마찰될 때 열이 그 후에 일어날 발열 반응의 촉매 역할을 한다. 황과 인의 혼합물이 마찰될 때 발생하는 열은 산화 반응, 이 경우에는 탄소를 기반으로 한 물질인 나무가 산화와 펼치는 격렬한 화학전을 유도한다. 한번 시작된 반응은 격렬하게 빛과 열을 내면서 산소가 탄소를 게걸스럽게 전부 먹어치울 때까지 계속되며, 나무는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변해간다.

   생명체의 화학 반응도 연료를 모으고 불을 붙이는, 흡열 반응과 발열 반응이 모두 존재한다. 생명체는 가만히 앉아 자신에게 필요한 화합물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존재다. 그저 산화알루미늄처럼 완벽한 지질 작용이 자신을 사파이어로 바꾸어줄 때까지 수백만 년을 한가롭게 기다릴 처지가 아니다. 생명체는 평상시에는 결코 서로를 찾지도 않는 분자들을 닦달해서 세포 속에는 엔진이 연소할 수 있도록 불꽃 방전을 일으키는 스파크 점화플러그처럼 정해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효소와 단백질이 잔뜩 들어 있다. 소화 효소는 음식 속에 들어 있는 에너지를 방출시키고, 간 효소는 해독 작용을 하며, 면역계에 속한 효소들은 세균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어런 촉매를 만들려면 연료가 필요하다. 효소의 제작은 흡열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흡열 반응으로 만들어진 효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대로 수백만, 수천만 개의 작은 난로들이 매일같이 꺼지지 않고 불을 피우는 발열 반응을 촉진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