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 그리고 내게는 공허가 가득 차 있네 (Physics : And Nothing's plenty for Me)
콜로라도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 스티븐 폴록(Steven Pollock)이 쓴 유명한 교재에는 물리학은 가장 겸손한 학문 가운데 하나로 그저 '세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세상에 있는 존재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일 뿐이라고 나와 있다. 또한 물리학에서는 짧게 말할수록 좋다. 물리학은 환원주의에 푹 빠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환원주의를 '단순화'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환원주의의 진정한 뜻은 '복잡한 무언가를 구성 성분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법은 과학자라면 누구나 하는 방법이지만 물리학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각 구성 성분들이 쿼크로 쪼개질 때까지 잘게 부순다. 물리는 기본적인 물질과 힘을 연구하는 가장 기초적인 과학이기에 수많은 기본적인 질문에 매달린다.
물리학은 까다롭긴 하지만 중심탑과 같은 과학으로, 다른 학문들은 물리학을 토대로 쌓여 올라간다. 리처드 파인만이 문명 재건 계획 때 밝힌 것처럼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학문인 물리학의 영역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원자이다.
원자를 볼 수 있다면
모든 것, 아무리 간단하더라도 우리가 물질이라 이름 붙이는 모든 것들은 모두 원자로 되어 있다. 물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라 해도 계속 쪼개다보면 결국 마지막은 원자로 발가벗겨진다. 예를 들면 '생각'도 그렇다. 당신의 뇌에서 나와서 사라지는 생각은 정말로 덧없고 물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뇌 세포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려면 뇌에서 화학물질이 흘러가야 하는데, 이 화학물질 역시 원자로 되어 있다.
기원전 400년쯤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물질은 보이지도 나누어지지도 않는, 크기와 모양 및 상태가 다양한 입자로 되어 있으며, 이 입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해 모든 물질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이 입자들에 '부서지지 않는' 혹은 '깨지지 않는'이라는 의미의 '아토모스(atomos)' 라는 이름을 붙였다. 데모크리토스가 제시한 이른 시기의 원자설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는 그토록 영리했음에도 정말로 멋진 생각들을 간단히 폐기처분해버리는 버릇이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엿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상은 분해되는 입자가 아니라 흙, 불, 공기, 물이라는 네 가지 기본 원소 혹은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명백히 그릇된 주장이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과 잘 어울렸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진리라고 인정받았으며, 지금도 점성술을 추종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고 있다.
초기 원자 모형은 우리의 태양계처럼 핵이 태양처럼 가운데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마치 행성처럼 돌고 있는 모습이었다. '원자력으로 빛을 밝힌 세계 최초의 도시'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다호 주 아르코(Arco) 시의 공식 문양과 비슷하게 생긴, 가운데 있는 원반 주위를 세 개 내지 네 개의 타원 궤도가 감싸는 원자 모형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원자는 태양계와도, 유치한 모양의 도시 상징과도 비슷하지 않다. 원자는 일반적인 공간 시각적 이미지로는 도저히 그 모양을 묘사할 방법이 없다. 그저 단순히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기 때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치자면 세포나 세균도 육안으로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세균이나 세포는 괜찮은 현미경만 있으면 생긴 모습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브라이언 그린이 쉽게 설명해주었듯이, 원자는 너무나 작아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지배되는 위태로운 영역에 속해 있다.
전자구름이라는 개념은 사실 전자가 있을 수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확률 분포를 묘사하기 위한 방식으로, 전자의 잠재적인 위치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핵 속의 양성자 수와 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수가 각각 한 개밖에 없는 가장 간단한 원자인 수소 원자만 해도 전자가 있을 수 있는 위치는 아주 많기 때문에 전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을 모두 표시하면 수소 원자를 완전히 둘러싼 구름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 분포라는 근사한 이미지를 머릿 속에 담아두기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지른 실수를 기억할 필요가 잇다. 물질은 여러 가지 특성들이 균일하게 섞여 있는 상태가 아니다. 원자들은 자주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곤 한다. 원자는 가장 바깥쪽 궤도를 도는 전자들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서로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는 가장 변경에 있는 전자 하나를 교묘하게 공유함으로써 물이라는 분자로 결합할 수 있다. 분자를 이룬다고 해서 한 원자가 다른 원자의 광할한 진공 속으로 파고드는 일은 없다. 원자들은 여전히 핵 속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들어 있고 핵 바깥쪽으로 거대한 텅 빈 공간이 있으며 핵과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자가 돌고 있는 분리된 개체로 존재한다. 텅빈 공간 대부분은 아주 신성한 공간이다.
대부분의 경우 원자들은 다른 원자와 결합해 안정된 분자를 만든 뒤에도 자신만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지한다.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에너지를 받아 물 분자를 비롯한 여러 가지 화합물로 합쳐질 수는 있지만 합쳐진 다음에도 자신만의 수소 원자핵과 산소 원자핵을 그대로 간직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자유롭게 원자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텅 빈 공간을 채우다
원자핵은 전체 원자 부피의 1조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원자 질량의 99.9퍼센트를 차지하는 무거운 소립자들인 양성자와 중성자가 들어 있다. 원소는 화학적인 방법으로나 물리적인 방법으로 분해하려 해도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물질이다. 원자들은 모두 100억분의 1미터 정도로 종류에 상관없이 크기가 비슷하지만 원자핵 속에 갇혀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수가 달라 질량이 달라진다. 우리에게 친숙한 원자들은 대부분 핵 속에 들어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수가 같다. 탄소는 한 다스 크기로 양성자가 6개, 중성자가 6개 들어 있으며 질소는 양성자 7개, 중성자 7개가 들어 있다. 산소는 양성자 8개, 중성자 8개이다.
양성자가 원소 번호를 결정하는 특권을 갖게 된 이유는 전하 때문이다. 양성자는 전하를 띠지만 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는다. 중성자는 문자 그대로 전기적으로 중성 상태이다. 양성자는 양의 전하를 딘 소립자이며 또 다른 원자 구성 성분인 전자는 음의 전하를 띠고 있다. 전자는 양성자에 비해 천 배는 더 가볍지만 전자의 전하는 거대한 양성자의 전하에 조금도 밀리지 않고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 두 입자의 전하량이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양성자와 전자는 거시적인 세상에서 다른 성을 가진 개체들이 결합하는 것처럼 서로 멋지게 결합할 수 있다.
우리가 완전히 충전된 (Charged) 건전지라고 말할 때는 건전지에 에너지가 가득 차 있어, 디지털 카메라에 넣어 멋진 사신을 수백 장 찍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양성자와 전자가 전하를 띠었다고 말할 때는 중성자에는 없는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는 뜻이 아니다. 전하의 정의는 거의 순환적인데, 한 입자에 전하를 띤 다른 입자를 밀어내거나 끌어당길 능력이 있을 때 전하를 띠었다고 간주된다.
전하가 서로에게 반응하는 이유는 자연의 네 가지 기본 힘 가운데 하나인 전자기력(elctromagnetic force) 때문이다. 아마도 우주에는 각각 전자기력, 중력(gravity), 강한 핵력(strong force), 약한 핵력(wek force)이라고 부르는 네 가지 기본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힘(force)라는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너무나도 많이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특별히 정의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뜻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네 가지 힘이 있다네
중력은 네 가지 기본 힘 가운데 가장 약한 힘이다.
전하를 띤 소립자들은 중력보다 1조에 1조를 곱하고 또 1조를 곱한 것보다 큰 10^40배의 힘을 가진 전자기력의 지배를 받게 된다. 소립자들이 띠고 있는 전하의 종류에 따라 전자기력은 소립자들을 서로 밀어내게도 혹은 서로 끌어당기게도 만들 것이다. 이 경우 중력이 작용할 여지는 눈곱만큼도 되지 않는다.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네 가지 기본 힘이 사실은 강력한 단 하나의 힘의 네 화신이며, 우리 우주가 뜨겁고 꽉 차 있던 탄생 초기에는 네 힘이 한 몸으로서 행동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과학자들은 지금은 여러 개로 갈라진 힘들에 숨어 있는 공통성을 찾아내 네 가지 힘을 하나의 방정식으로 묶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의 이런 소망은 대통일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네 힘들을 깔끔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소립자들 사이에 어떤 협약이 맺어지건 간에 소립자들이 유기적 조직체를 구성할 때면 네 가지 힘 가운데 하나 이상의 힘이 작용한다. 공을 위로 던져보자. 공이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게 만드는 힘은 중력이다. 그러나 처음에 공을 날아오르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공을 던지는 투수인 당신은, 뉴턴 물리학의 언어로 표현해서, 수축된 근육의 힘을 정지되어 있는 물체에 작용해서 움직이게 한 것이다.
태양이 강한 중력으로 끌어 당기고 있어도 화로 속으로 끌려가 녹아내리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는 행성들처럼, 커다란 양의 운동량 덕분에 전자는 원자핵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그 둘레를 돌 수 있다. 전자들은 결코 숨을 고르기 위해 쉬는 법이 없다. 전자가 조금이라도 멈출 때가 있다면 전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 혹은 멈추어 있는지 등을 알아낼 수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하이젠베르크가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알아낼 수 없다는 불확정설의 원리를 이야기한 것이다. 전자의 속도는 전자가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느냐에 , 다시 말해 얼마나 흥분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자껍질 속에는 또 다른 전자껍질이 있으며 각 전자껍질마다 들어갈 수 있는 전자의 양은 결정되어 있다. 원자핵과 가자 가까이 있는 전자껍질은 단 두 개의 전자만이 들어갈 수 있으며 그 다음다음 전자껍질에는 전자가 8개까지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전자껍질이 늘어나면 전자의 개수가 18개가 넘기도 한다. 일단 전자껍질에 정원이 차면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 외할아버지가 와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동시에 두 계단 위에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보통의 경우라면 전자도 자신이 속한 전자껍질을 벗어나 다른 전자껍질로 이동할 수 없다. 그런데 전자가 자신의 껍질을 벗어나 빈 자리가 있는 전자껍질로 이동활 때가 있다. 원자가 빛을 받게 되면 내부에서 전자 몇 개가 활성화되는데, 이때 원자핵과 멀리 떨어져 있는 전자껍질에 빈 자리가 있으면 활성화된 전자가 그쪽으로 뛰어오을 수 있다. 전자가 뛰어오른다는 것은 '내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 뒤 내 위에 있는 전자껍질에서 나타난다'라는 의미이다. 전자는 마치 마술사처럼 자신이 있던 전자껍질, 혹은 에너지 수준에서 다른 전자껍질로 뛰어오르는 '양자 도약(quamtum leap)'을 한다. 전자는 두 선을 가르고 있는 장벽을 뚫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원자핵은 모두 음의 전하를 띤 전자구름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원자들끼리는 반발력을 띠게 된다. 전자기력은 강한 핵력 다음으로 센 힘이기 때문에 전자의 반발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전자 때문에 원자들은 모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산카르의 말이다. "전자기력이 우리가 바닥을 통과해 우주로 떨어지지 않게 막아주는 힘이죠."
손가락이나 나무 조각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단단하게 결합한 채 정해진 모양을 유지하고 잇는 이유는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무튼 브라이언 그린은 이렇게 말했다. "당산의 손가락에 있는 원자들이 이 탁자나 의자와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있는지 크게 확대해서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말을 하면서 그린은 탁자와 의자를 만지작거렸다. "가장 바깥쪽에 있는 전자들이 서로를 밀어내는 전자기력이 생길 겁니다. 무언가를 만지거나 부딪힐 때면 언제나 전자기력이 발생하죠."
브라이언 그린은 "우리의 감각을 지배하는 힘은 전자기력입니다."라고 말한다. 먼저 시각, 우리가 광파라고 부르는 전자기파의 한 종류는 우리 망막에 있는 원자들과 접촉함으로써 자신들의 정보를 전달한다. 그리고 청각, 공기를 이루는 원자들이 우리 귀의 이도를 이루는 원자들을 누를 때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서로 간섭하고 있는 전자를 해독해 지금 바흐의 소나타가 연주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미각과 후각은 어떨까? 음식을 이루는 원자들이 우리 혀의 미뢰와 코의 후각 수용체에 있는 원자에 전자를 밀어 넣어야만 우리 뇌가 지금 훈제 치킨을 먹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의 몸, 발밑에 있는 마룻바닥, 얼굴이 묻은 의자, 이제 막 먹고 남은 음식들 같은 물질들의 압도적인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양성자와 중성자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전체 원자 무게의 0.1퍼센트도 차지하지 않는, 안절부절 못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전자이다. 다시 말하면 전자가 전자를 밀어내는 반발력이야말로 우리가 텅 빈 공간 속으로 빠지지 않게 해주는 주역이며, 양성자와 중성자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처럼 한껏 으스대며 호강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주인공이다. 그러나 탁자 같은 사물을 볼 때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원자핵에 들어있는 제왕 입자들이 아니라 원자를 장식하고 있는 전자들이 가볍게 반동하고 있는 것임을 제왕 입자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비록 중력이 우리를 땅에 붙어 있게 하고 지구가 태양을 돌게 하면서 미끄러지게 해주지만, 반발하는 전자가 그 여행을 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전기란 도대체 뭐야
전자의 이동성은 '정전기(static electricity)'의 원인이다. 전자(electron) 라는 단어는 나무 수액이 굳어서 생긴 보석인 '호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왔으며, 이는 호박을 천으로 문지르면 전하를 띠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고 잇었기 때문이다.
전자는 아주 작다. 전자도 질량이 있지만 그 양이 너무나 작기 때문에 질량이 없는 광자처럼 행동할 때도 있다. 더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전자는 기본 입자이다. 더 이상 그보다 작은 입자로는 분해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금속 원자는 자기들끼리 모여 분자를 이룰 때 가장 바깥쪽 껍질에 있는 전자들의 결합 상태가 느슨해져 마음대로 원자들 사이를 이동할 수 있다. 이웃 원자들끼리 전자를 공유하면 원자들 간의 결합이 단단해지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구나 전쟁 무기를 만드는 데 금속을 이용해왔다. 금속 원자의 전자들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은 (+)전기를 찾아다니는 전자들이 쏟아져 들어갈 구멍이 언제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금속은 전자가 그 안에서 활발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뛰어난 전도체이다.
반면 건조한 공기는 전자의 이동을 지독하게 막는다. 겨울철에 옷이 달라붙거나 악수를 할 때 정전기가 발생하는 이유는 가열된 방 안이 아주 건조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펫 위를 걷거나 외투를 벗을 때 몸 속에 축적된 전하를 띤 입자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몸 속에 머물게 된다. 몸속에 쌓인 이 입자들은 입고 있는 옷들을 몸 가까이 끌어당기거나 자신에 손을 내밀어준 사람에게 옮겨가 버린다. 금속 반지를 낀 손이라면 더욱더 맹렬하게 옮겨간다. 상대방이 깜짝 놀라는 순간 1조 개가 넘는 전자가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떠남으로써 전자 기증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중성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아간다.
무더운 여름철에 정전기가 잘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한쪽 끝에 약한 (+) 전하를 띠고 있는 수증기 분자가 발이나 카펫에 쌓인 과도한 전자를 가져가버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금속 손잡이가 달린 문에 다가가기 전에 우리 몸은 중성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간다.
전하의 불균형은 하늘에 퍼져 있는 수입억 개의 물방울들이 서로 만나고 부딪혀 전하를 띠게 되면서 발생하며, 대기와 대지는 서로 전하를 교환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번개는 금속 손잡이를 잡을 때 발생하는 방전 현상이 하늘에서 대규모로 발생하는 것이다. 원한다면 '거대한 정전기'라고 불러도 된다.
'힘(force)'이나 '전하(charge)' 라는 용어는 일상적인 의미 외에도 분명한 과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전기(electricity)는 그렇지 않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전기라는 용어는 그저 쉽게 설명하는 말로 남아 있을 뿐이다.
쉼 없이 움직이는 전자
입자의 흐름인 전류는 어떤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흐르며 우리가 돈을 내고 사용해야 한다. 반면 정전기는 일시적이고 조작할 수 없으며, 공짜이긴 하지만 탐탁지 않으며 거절조차 할 수 없다.
수세기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인간의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 전기를 이해하고 길들이려는 노력을 해왔다. 화학전지를 만든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알렉산드르 볼타(Alessandro Volt) 백작(전압의 단위인 볼트v), 열이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한 형태라는 사실을 알려준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코트 줄 (James Prescott Joule) (에너지의 단위인 줄J), 자석과 전기의 척력 연구의 선구인 프랑스의 물리학자 샤를 오귀스탱 드 쿨롱 (Charles Augustin de Coulomb) (전하량의 단위인 쿨롱C), 아주 좋은 증기 기관을 고안하고 특허를 획득한 영국의 공학자이자 발명가인 제임스 와트(James Watt)(전력의 단위인 와트W), 자기력과 전류의 관계를 밝힌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앙드레 마리 앙페르(Andre Marie Ampere)(전류의 단위인 암페어A), 신경과 근육을 수축시키는 힘이 전류라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galvanie' (근육을 전기로 자극하다, 활기를 띠게 하다 등의 의미)라는 동사의 어원이 된 루이지 갈바니 (Luigi Galvani), 전류가 흐를 때 생기는 전류와 전압과 저항의 관계를 밝힌 독일 물리학자 게오르크 지몬 옴(Georg Simon Ohm)(전기 저항의 단위인 옴)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전류란 전하를 띤 입자가 전선 같은 일정한 통로를 따라 예정되어 있는 목표 지점으로 곧바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처음 출발한 전자들이 모두 목표지점까지 곧바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전자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가는 동안 원자와 부딪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를 밖으로 밀어내 앞으로 가게 만들고, 자신이 대신 빈 자리를 차지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밀치고 들어가건 밀려나건 수조 개에 달하는 전자들이 자극을 받은 흥분 상태로 어딘가를 향해 달려간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
전자는 이 우주를 구성하고 바삐 일하는 작은 파편들이다. 그러나 전자는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자는 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 많은 공간이 텅 비어 있지만 우리는 물질과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과 에너지는 같은 행운을 주는 말발굽의 양끝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잘 알려졌으며, 물질은 과학 작가 티모시 페리스의 표현처럼 '얼어 있는 에너지'이다. 우리는 극소량의 물질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
물질은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책임진다. 지구도, 태양도, 당신도, 당신의 연인도 물질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물질은 에너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에너지는 공식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전자가 스스로 움직이는 경우는 없다. 전자에게는 반드시 자극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기 회로 속에 들어 있는 전자를 자극해 당신의 명령을 완수할 수 있도록 맹렬하게 움직이게 해줄 에너지가 필요하다.
화학에너지, 물리에너지, 열에너지, 중력에너지들은 사실 크게 '위치(잠재)에너지(potential energy)'라고 불리는 저장된 에너지와 '운동에너지'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전기에너지라고 부르는 에너지도 사실은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가 변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원자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물질인 전자와 양성자는 언제나 서로에게 끌린다. 이 둘을 억지로 갈라 놓르면 전자기력은 이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두 입자를 닦달하기 시작한다. 전하의 종류가 같은 입자를 비정상적으로 가까이 붙여놓으면 두 입자는 왠지 구속받고 있다는 갑갑함을 느끼며 서로에게서 멀어지려고 애쓴다. 현대인들이 의지하고 있는 전기력은 수많은 소립자들의 충돌 때문에 생겨난다.
1세기도 전에 마이클 페러데이와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이 지적한 것처럼 전기력과 자기력은 서로 친밀하며 수학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페러데이와 맥스웰은 자연의 기본 힘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를 제일 먼저 시작한 뛰어난 선구자들이었으며, 이들이 시작한 이 사업에는 현재 수천 명이 넘는 이론물리학자들이 뛰어들고 있다. 페러데이는 그 업적을 인정받아 한 가지도 아닌 두 가지 표준 측정 단위에 이름을 남겼다. 정전용량의 단위인 페럿과 전기 분해에 쓰이는 전기량의 단위인 페레더에가 그것이다. 맥스웰로 말하자면,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학)라는 단어 자체가 그가 만들어낸 용어이다.
자기력은 자기장을, 전기력은 전기장을 만든다. 전기장은 자기력의 행동에, 자기장은 전기력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장場field'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멀리까지 힘을 미칠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지구에는 중력장이 있다. 다른 물체를 자신에게 끌어당기는 힘이 미치는 영역인 중력장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수록 약해진다. 마찬가지로 전하를 띤 전자나 양성자의 주위에는 전기장이 둘러싸여 있어서, 그 안에 있는 전할를 띤 입자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낸다. 중력장과 마찬가지로 전하를 띤 입자가 만드는 전기장은 그 입자에서 멀어질수록 약해진다. 또한 막대자석을 한두번쯤 가지고 놀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석을 둘러싼 채 다른 자석을 밀어내거나 달라붙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자석의 신비한 힘은 자석을 이루는 원자의 전자들이 같은 방향으로 회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모든 전자는 원자 주위를 도는 동시에 축을 중심으로 회전을 한다. 물론 양자의 단위인 회전은 디스코 볼이나 행성이 회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도 다른 점은 회전을 시작한 전자가 처음 상태로 되돌아오려면 두 번에; 걸친 완벽한 회전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쨋든 원자핵을 둘러싸고 있는 전자들은 저마다 활발하게 회전하고 있으며 전자의 회전 때문에 그 주위에는 작은 자기장이 생긴다. 그러나 원자 내부에서 회전하고 있는 전자의 회전 방향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에 원자 전체로 보면 전자가 서로가 서로의 자기장을 상쇄시켜 밖에서 감지할 만한 자기장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철이나 코발트, 니켈 같은 일부 금속 원자는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들의 회전 방향이 일시적으로 같아지거나 언제나 같은 경우가 있어 각가의 자기장들이 모두 합쳐져 밖에서 감지할 수 있는 커다란 자기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바로 그것이 자기장을 만들고, 금속을 끓어당기며, 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석이 된다.
전선에 전류를 흐르게 할 때 전자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느냐에 따라 전류는 자석의 자기력을 없앨 수도 있고, 자성이 사라진 자석의 자기력을 되살릴 수도 있고 자성이 없는 금속이 일시적으로 자성을 띠게 할 수도 있다. 전류를 따라 흐르는 전자는 자석이나 자성을 띤 물체의 원자 배열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경우에는 전자들이 모두 비슷한 방향으로 회전하게 만들어 자성을 띠게 만드릭도 하고 어떨 때는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던 전자의 회전 방향을 마구잡이로 뒤섞어놓아 자성을 이렇게 만들기도 한다.
역으로 자석의 회전은 전류가 전선을 따라 세차게 흐르도록 만들 수 있다. 구리선 주위에 자석을 두르고 구리선을 빠르게 회전시키면 자석의 자기장이 구리선의 전자에 영향을 미쳐 구리선의 전자가 껍질에서 껍질로, 원자에서 원자로 이동해간다. 이때 구리선의 한쪽 긑에 양의 전하를 띤 물체를 가져다놓으면 구리선의 전자들은 그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간다. 이런 성질을 이용해 발전소에서는 보통 거대한 자석 속에 거대한 구리 코일을 넣고 석탄 연료로 움직이는 터빈 엔진을 엄청난 속도로 돌려 전류를 생산한다. 구리 코일 안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얻게 된 전자들은 도미노 물결을 타듯이 고압 송전망을 타고 흘러나와 일부는 땅속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고속도로 위에 허수아비처럼 늘어서 있는 고압 전신주 속으로 들어간다.
천의 얼굴을 한 빛
전류가 흐르려면 입자들을 교환활 통로, 전하의 흐르을 더욱 가속시켜줄 길, 운동에너지의 물결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매개체인 전기 회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자기에너지 즉, 전자기 방사선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어줄 매개체가 필요없다. 전자기에너지의 물결은 진공 속에서도 잘 다닌다.
우리 인류가 의존하는 에너지는 거의 대부분 어마어마한 양의 강렬한 전자기파를 분출하는 태양으로부터 온다. 화석연료들은 태양빛을 가득 머금고 있던 고대 식물들이 3억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깊은 땅속에 묻혀 농축돼온 고밀도의 에너지 캔디라고 할 수 있다. 식무릉ㄴ 태양복사에너지를 사용할 있는 형태로 바꾸는 분자 도구를 가지고 있다. MIT 의 다니엘 노세라는 "신선한 녹색 채소를 먹을 때마다 태양에너지의 광자를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가, 태양빛을 베어 먹는 거지요."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은 태양이 내뿜는 전체 전자기파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전자기파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아주 '어두운' 광선이다. 위스콘신 대학교의 로버트 마티유는 모든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에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파(라디오파), 마이크로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감마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는 짐짓 과장된 말투로 물어본다. "정답은 모두 빛이라는 겁니다."
전자기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직각으로 교차하면서 함께 이동하고 있는 한 쌍의 커다란 장이다. 전자는 전하를 띤 다른 입자들에 영향을 미치는 전기장에 싸여 있다. 금속 전도체를 따라 전자들을 빠르게 흐르게 하면, 급하게 움직이는 전기장 때문에 자전거 핸들을 잡은 손가락 방향으로, 전도체를 감싸는 자기장이 형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기장은 또 다른 전기장을 만들고 이 전기장은 도 다른 자기장을 만든다. 새로 만들어진 전기장이나 자기장이 기존에 있던 전기장이나 자기장과 만나면 파고와 파골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한데 합쳐저서 증폭되기도 하고 감소되기도 하고 상쇄되기도 한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수가 아주, 아주 많아지면 마침내 이 파동들은 한데 모여 전자기 방사선이, 즉 빛이 되는 것이다. 전자는 정해진 노선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전자기장은 답답한 찻길을 마음껏 벗어나 공중으로 날아오라 빛의 전매특허인 우주 최고 속도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움직일 수 있다.
전자기파는 어떤 것이든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지만 저마다 독특한 특성이 있다. 다른 전기장들과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어떤 식으로 퍼져나가느냐에 따라 빛의 파동은 길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나아가거나 짧고 날카로운 핀처럼 뾰족하게 나아갈 수도 있고 아주 짧은 것, 중간 것, 아주 큰 것이 올 수도 있다.
항성계 전체로 봤을 때 태양은 중간 크기에 중간 나이의 별이고 전자기장을 만드는 재료인 중심핵의 압력도 당연히 중간 정도라서 태양빛이 내는 에너지는 중간 정도의 우아하고 아담한 파동의 형태로 우주를 헤쳐 나간다. 이런 파장들 중 우연히 전자기 스펙트럼이 가시광선 영역 안이나 그 근처에 놓이게 되는 것을 우리 인간들이 감지해내는 것이다. 우리의 눈은 주변의 빛에 가장 적합하도록 진화해왔으며, 태양은 우리 인간이 뻔뻔스럽게도 '가시광선'이라고 부르는 빛에 해당하는 파장알 아주 잘 방출하니까, 우리 인간은 이 전체 태양빛의 극히 좁은 영역에 불과한 가시광선만을 볼 수 있도록 진화해왔지만, 이 '볼 수 있는 광선'이라는 뜻의 용어는 심각하게 시야가 좁다. 동물들 중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자외선이나 적외선, 혹은 전파를 볼 수 있는 동물들이 있다. 꿀벌은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다. 독사는 적외선 영역을 볼 수 있어서, 먹잇감과 위협자로부터 오는 열선을 감지해낸다.
각기 다른 파장의 빛은 각기 다른 일을 한다. 아주 긴 라디오파(전파)는 공기 분자에 흡수되거나 공기 분자 때문에 산란되는 일 없이 이동할 수 있으며 가장 긴 것은 동그런 지구를 쉽게 굽어져서 돌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파는 멀리 떨어져 있는 라디오 방송국이나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우리 집이나 자동차에 있는 수신기로 혹은 몇몇 사람들이 틀림없다고 맹세하듯이 치아 속의 충전물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파는 극초단파라는 자신의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마이크로파는 아주 길어서 파장의 길이가 1센티미터에서는 길게는 1미터에 이른다. 마이크로파도 전파처럼 공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전파와 다른 점이라면 일정한 방향을 향해 곧바로 쏘아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팔형 안테나에서 다른 안테나로 곧바로 파장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안성이 높고 비밀을 보장해준다. 레이더는 일정한 방향으로 쏘아 보낸 마이크로파가 단단한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성질을 이용해 아주 정확하게 물체의 위치를 알아내는 장치이다.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레이더는 2킬로미터 밖에 있는 집파리를 정확하게 조준해서 쏠 수 있다.
스펙트럼에서 이렇게 파장이 긴 파동과는 정반대되는 곳에 있는 단파 중에;는 원자의 지름과 거의 비슷한 천만분의 1밀리미터 길이의 파장을 가진 X선이 있다. 매우 활동적인 X선은 우리 몸의 대부분을 그대로 통과하지만 뼈처럼 밀도가 높은 조직을 만나면 흡수되고 만다. 꽤 오래 전부터 인류는 의학, 치의학, 생물학, 천문학에서 X선을 활용해오고 있으면서도 지금도 여전히 1892년에 X선을 발견한 빌헬름 뢴트겐(Wilhelm Roentgen)이 붙인 '미지의 광선'이라는 뜻의 X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잇다. 그는 발견은 했지만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그렇게 불렀을 뿐이지만, X선이 전자기파라는 사실이 완전히 밝혀진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X 선을 지나쳐 가면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짧은 파장인 감마선의 영역에 도달한다.태양이 지구로 보내는 감마선의 에너지는 두툼한 지구 대기를 통과하는 동안 거의 다 흡수되고 마는데도 지표면에 도달한 약간의 감마선도 인류의 건강과 제반 시설에 큰 해를 미칠 수 있다. 지표면에서 10킬로미터 내지 12킬로미터 상공을 나는 대륙 간 장기 여객선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많은 양의 감마선이 몸 속에 쌓일 수도 있다. 또한 지구에서 2만 5천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이 폭발해 초신성이 되면 막대한 양의 감마선이 지구로 불어와 지구 전체의 통신망을 교란시킬 수 있다.
내가 죽으면 내 원자들은 어디로 갈까
물리학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보존 법칙은 '열역학 제 1법칙'이라고 알려져 있는 '에너지 보전 법칙'이다. 열역학은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 그리고 열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닫힌(물질)계 속에서는 열을 비롯한 모든 에너지의 총량이 항상 보존된다는 것이다. 닫힌계에서는 에너지가 결코 새로 만들어지거나 복제되거나 다른 차원에서 유입되지 않는다. 에너지는 파괴되지도 수정되지도 조기 퇴직을 강요당하지도 않는다. 에너지는 오직 소유주가 바뀌거나 다른 형태로 변신할 뿐이다.
열역학 1법칙은 우주 전역에 적용되는 법칙이다. 지금 우리 우주가 갖고 있는 것들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 우주가 갖고 있게 될 것들이다. 우리 우주의 에너지는 137억 년 전 빅뱅과 함께 생겨난 것으로, 최초의 에너지이자 최후의 에너지이며, 이 에너지가 우리가 유일한 희망이자 재산인 것이다.
우주는 닫힌계이기 때문에 우주에 있는 전체 에너지는 보존된다. 더 만들어지지도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는다. 원자 속에 들어 있는 에너지, 원자들을 결합시키는 에너지는 없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 우리를 구성하는 질량과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바뀔 수는 있지만 언제나 이 우주에 남아 빅뱅 이후 시작된 생명과 빛의 고리를 이어나갈 것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줄이 열역학 1법칙에 대하 말한 것이 생각난다. "파괴되는 것도 없고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없이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우주는 원할화고 조화롭게....가장 완벽한 균형을 유지한 채 움직이고 있다."
쏟은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열역학 법칙은 모두 네 개이다. 그중 한 법칙은 제 1법칙보다 나중에 나왔음에도 '열역학 제0법칙'이라는 재미있는 이론으로 불리고 있지만 열역학 법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실히 제 1법칙과 제 2법칙이다.
로버트 하젠과 제임스 트레필이 쓴 것처럼 열역한 제1법칙이 '영혼의 불명성을 나타내는 자연의 법칙'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소식'이라면 열역학 2법칙은 어째서 몸이 늙어갈 수밖에 없는지를 알려주는 '나쁜 소식'이라 하겠다. 열역학 제2법칙은 아무리 기를 쓰고 자신이 직접 치우거나 전문 청소업체를 불러와 집을 치워도 휴가철에 두 주일만 비우면 먼지들이 집안 곳곳을 점령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차가운 음료수도, 뜨거운 음료수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미적지근한 음료수가 되는 이유도 열역학 제2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열역학 제 2법칙은 아무리 철저하게 일정을 짜두고 보고서를 세 번 이상 검토해도 우리들의 생활은 어느 정도 혼란스럽고 꼬이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법칙이다.
열역학 제 2법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열은 자발적으로 온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온도가 높은 분자는 온도가 낮은 분자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입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조금 넘겨주고 좀더 얌전한 입자로 바뀐다. 분자 운동이 활발한 여름철 공기 입자가 아이스크림 결정이라는 단단한 물질에 부딪히면 분자의 열을 받은 아이스크림 결정은 마구 흔들리면서 부서지기 시작한다. 겨울철에 마시는 뜨거운 커피 속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분자들은 자신들 위에 있는 차가운 공기 분자들에;게 가지고 있던 열을 나누어준다. 커피의 열을 받은 공기 분자들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위를 향해 올라가고 열을 건네준 표면의 커피 분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어떠한 경우든 에너지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느려 터진 차가운 분자들이 빠르고 뜨거운 분자들의 강력한 공격을 꼼짝않고 그대로 버티고 서야 한다.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열을 옮기는 자연의 취향은 점진적인 평준화와 균일화를 택하기 때문에 분산된느 에너지는 원래보다 더 흐트러져 있으며 덜 조직적이다. 레모네이드 위에 떠 있는 육면체 얼음이 녹을 때 육면체라는 원래의 모양을 유지하지 않는 것도 그런 예이다. 열이 차가운 곳으로 흘러가려는 본성을 막고 일정한 구조와 온도 기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얼음을 냉동실에 넣으면 육면체 모양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냉장고나 냉동실의 냉각 장치는 전기로 작동한다.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해보자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1그램의 손실도 없이 공급한 연료가 완전히 에너지로 바뀌는 열효율 100퍼센트인 열기관은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에로나르도 다 빈치 이후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외부에서 주기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주지 않아도 영원토록 제 할 일을 하는 영구기관은 만들 수 없엇다. 아무리 열역학 제 2법칙을 이겨보려고 노력해도 승자는 언제나 열역할 제 2법칙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소기관처럼 아주 작은 열기관도 열효율 100퍼센트는 커녕 5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식물들도 대부분 자신들이 받은 태양에너지의 5퍼센트 정도만을 화학에너지로 바꿀 수 잇을 뿐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열역학 제 법칙의 세 번째 핵심 내용이자 가장 우울한 내용이 될 지도 모를 소식은 '모든 닫힌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라는 것이다.
어지럽히는 쉽고 정돈하기는 어렵다
'엔트로피'는 널리 알려진 용어로 카오스라는 말과 거의 비슷하게 취급받고 있지만 사실 엔트로피와 카오스는 각기 다른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들이다. 물리학과 수학에서 말하는 카오스는 기후나 한 국가의 경제처럼 얼핏 보기에는 무작위적이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 안에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는 용어이고 그에 반해 엔트로피는 하나의 물질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에너지가 '일을 하는데 쓰이지 못했ㄴ은지'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닫힌계에서는 엔트로피가 서서히 증가하기 때문에 질서도 서서히 붕괴된다. 이것은 냉정하고 가혹하지만, 미적지근하고 느슨하기도 한 확률적인 진리이다.
슬프게도 열역할 제 2법칙은 압도적인 확률로 이루어진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질서 정연한 물리계란 예측 가능한 규칙이 적용되는 세계다. 질서에는 제한과 규칙이 있찌만 무질서에는 어떠한 제한과 규칙도 없다.
열역할 제 2법칙의 핵심은 하나의 물질계 속에 들어 있는 에너지의 양은 변하지 않더라도 에너지의 질은 계속해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휘발유 속에 들어 있는 에너지는 유용하지만, 자동차 배기관에서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지는 배기가스에 들어 있는 에너지는 그렇지 않다. 열역학 제 2법칙을 아주 암울하게 해석하면 우주도 차츰 모든 반짝임과 나선과 가능성을 잃어간다는 음울한 전망을 할 수 있다. 현재는 한 별이 폭발하면 주변에서 많은 에너지를 지나고 잇는 구름과 물질을 끌어들이고, 이 물질들이 새로운 아기별이 되어 다시 별의 일생이 시작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우주가 더욱 팽창해서, 물질들 사이의 거리가 훨씬 멀어진 미래의 우주에서는 폭발할 만한 에너지를 지닌 별도 사라지고, 다음 세대의 별들에게 빛을 물려줄 씨앗마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우주의 운명이 결국 어떻게 끝나든지 간에 아직 우주에서 즐겁게 놀 수 있ㄴ느 날이 절릴 정도로 많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천재적인 이 우주는 천성적인 게으름(증가하는 엔트로피)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사랑하는 우주가 새로운 형태의 빛과 물질 만들기를 그만둘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형태도 없는 것에서 우리가 원자라고 부르는 영광의 구름이 생겨났으며 먼지와 재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과정을 거쳐 별이 태어났다. 원자들은 자신들의 영역에만 머물 생각이, 외로운 원소를 남을 생각이 전혀 없다. 원자들은 활발하게 다른 원자들과 손을 맞잡아 이 세상이 분자들로 넘쳐나게 만들며, 화학은 당상하게 열역학 법칙을 면전에서 비웃으며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