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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원더풀 사이언스 - 진화생물학

by 강대원 2024. 8. 11.
진화생물학 : 모든 몸들의 이론 (Evolutionary Biology : The Theory of Every Body)

 

자연의 장난감 

 

   러시아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간결하게 이렇게 말했다. "진화의 빛을 배면 생물학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 주위에서 보는 생명,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생명은 우리보다 앞선 형태의 생명체가 진화해온 것이고, 우리보다 앞선 생명체들도 그보다 앞선 생명체들이 진화한 결과이다. 새로운 종들은 그 범위와 능력이 거의 전능에 가까운, 어떠한 자격도 보완물도 안전장치도 변호자도 필요 없는 자연선택이라는 위대한 힘을 통해 진화해온 생명체들이다.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3천만에서 1억 개에 달하는 생물조으이 기원일 분 아니라 처음 생명체가 출현한 후 수십억 년 동안 나타났다 사라져버린 수억 중에 이르는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진화란 생명을 정의하는 한 측면이라고 생각하는 생물학자들이 많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 과학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생명이란 먹고 번식하고 질퍽거리며 진화하는 것."

   MIT의 물리학자 로버트 제프는 이렇게 말한다."사람들은 과학의 기본 법칙은 물리학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또 한 가지 기본 법칙이 생명과학에서 나옵니다. 생명과학이 제시하는 이 법칙은 물리학의 신전에서 나온 것만큼이나 심오하고 파급력이 크며 보편적입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완벽한 자연의 원리로 어디에나 적용되는 놀라운 이론입니다. 그런데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정은 커녕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슬픈 일이니까요."

 

진화론이 단지 이론일 뿐?

 

   옥스포드 대학교의 진화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살롱 닷컴(salon.com) 기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진화의 증거애 대해 다음과 같은 근사한 답변을 했다. "진화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진화의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말도 되지 않는 소리죠. 진화의 증거를 찾는 일은 탐정이 범죄가 벌어진 뒤에 사건 현장을 찾아 남아 있는 단서를 이용해 범죄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밝혀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화가 남긴 단서는 범죄 현장에 남아 있는 단서보다 수십억 배는 많지요."

   그는 동물계와 식물계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분포 상태와 유전자의 다양한 물리적, 생화학적 특성들을 분석해보면 그런 단서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가설과 이론 사이

 

   과학에서 이론을 나태내는 'theory'는 결코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에서 아직 실험해보지 않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해줄 증거가 좀 더 필요한 생각은 가설, 즉 'hypothesis'라고 부른다.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어떤 현상을 관찰하고 그 현상이 일어난 원인과 원리를 나름대로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가설이다. 이런 가설은 동일한 경우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벌써 발견했던 사실을 더 확장한 단순한 추론의 결과물일 수도 있도 태양계 전부를 밝게 비출 수 있는 굉장한 추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나고 굉장한 추론을 담고 있다 해도 이론이 아닌 가설일 뿐이다. 단지 당신의 가설일 뿐인 것이다. 자신의 가설이 옳은지를 알아보려면 실험을 고안하거나 실험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결과가 나왔으면 나온 결과를 분석해 통계를 내야 한다. 이제 결과가 나왔다. 나온 결과가 처음에 세운 가설과 일치한다면 그 사실을 발표하고 의기양양해도 된다. 그러나 자신이 세운 가설과 검증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처음에 세운 가설을 포기하고 자신이 관찰한 현상을 설명해줄 새로운 가설을 세워야 한다. 과학 논문을 검토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바로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쳐 증명할 수 있고 반박할 수 없는 사실만이 남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이름을 건 이론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나 판 구조론, 혹은 다윈의 진화론 같은 과학 이론은 수많은 관찰이나 발견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일관성 있는 일련의 원리 혹은 공식적인 견해를 뜻한다. 일관성 있는 수많은 발겨은 과학 연구 및 실험의 산물이다. 일관성 있는 발견이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증명이 됐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규정해도 좋을 정도로 확실해진 가설들을 말한다. 

   그토록 많은 지구 생명체가 똑같이 여섯 개의 다리에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몸, 단단한 외골격 코트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윤느 현재 살아 있는 3천만 종이 넘는 곤충들 모두가 4억년 전쯤은 데본기 어느 시기에 살았던 어느 고대 종이 획득한 생존의 성공 조건들을 물려받은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곤충 종모다 저마다 뚜렷하게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공통 조상이었던 곤충이 활동 영역을 넓히고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곤충들은 저마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진화했다. 곤충의 다야성에 초점을 맞추건, 곤충의 공통 특징에 초점을 맞추건 두 경우 모두 진화의 증거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진화론의 의미이다. 

    네 가지 현태로 변한 앞다리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박쥐의 날개, 지느러미 발처럼 생긴 펭귄의 날개, 도마뱀의 앞다리 그리고 인간의 팔, 겉에서 보면 이 네 가지는 전혀 다른 기관처럼 생겼고 하는 일도 날기, 헤엄치기, 돌진하기, 핸드프리 가전제품 구입하기 등으로 모두 다르다. 그러나 표피 밑에 숨어 있는 뼈는 네 동물 모두 상완골, 요골, 척골, 완공리나느 네 개의 뼈로 이루어진 동일한 모양을 하고 있다. 배아의 발생 단계는 네 동물의 앞다리가 발생할적으로도 같은 기관임을 보다 분명하게 입증해준다. 알 속에 들어 있는 도마뱀과 펭귄의 배아와 박쥐와 사람의 자궁 속에 들어 있는 배아를 저속 촬영한 화면을 비교해보면 네 동물의 사지 모두가 발생하는 부위가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구조적인 동시에 발생학적인 유사점은 우리들 모두가 바다에서 육지로 용감하게 기어 나온 다리가 네 개였던 최초의 척추동물의 후손임을 말해준다. 최초의 육상 척추동물이 확립한 기본 골격 구조는 육상 생활에 더없이 적합했기 때문에 그 뒤로도 육상 척추동물은 앞 다리의 형태를 상완골, 요골, 척골, 완골이라는 4조 일체 구조에서 바꾸지 않고 있다. 또한 우리가 택한 4개의 팔다리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과학 이론은 단순한 짐작이, 그저 짐작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며, '사실'과 높은 확률 값을 가진 탄탄한 발견을 포괄적으로 종합한 것이다. 과학 이론은 또한 예언하는 힘을 갖추었다. 과학 이론의 규칙과 감독 아래서 우리는 세상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새로운 생각을 제기해볼 수 있고 그 생각을 실험해볼 수 있다. 

 

세상이 완벽했다면 세상은 없었다

 

   세포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분열을 담당하는 유전자는 자연이 선사한 특성 중에서도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특징이다. 5억 년이라는 진화의 시간 동안 세포를 둘로 갈라지게 하는 유전자의 명령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 과학은 DNA 염기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특성을 멋진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세포 분열을 감독하는 효모의 유전자를 연구하면서 암세포 자체가 알려주는 것보다 암세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진화론이 실제보다 기반이 약한 것처럼 보이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진화생물학자들이 세부 사항을 놓고 벌이는 격렬한 논쟁 때문이다. 하지만 근ㄴ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진화의 본질, 다시 말해서 현존하는 생물종은 이전에 살았던 생물종이 진화한 형태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또한 150년 전 찰스 다윈과 알프레드 윌리스가 명확하게 밝혀낸 진화의 원동력인 자연선택에 대해서도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편차와 무작윌르 놀라운 선물로 바꾸어주는 힘이다. 자연선택은 열역학 제 2법칙의 나태함을 움켜지고 망치로 두드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낡고 닳아빠진다는 경향을 뒤집고 목적을 지닌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엔트로피를 무릎 꿇린다.  

   요기 베라(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명포수) 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말을 남겼다. "세상이 완벽했다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DNA 의 복제 프로그램에 열역학적인 치명적인 버그(bug) 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벌레(bug) 상태로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원핵생물도 진핵생물도 아닌, 지금은 뜨거운 온천물에서나 간신히 볼 수 있는 세균 중의 세균인 단세포 고(古) 세균으로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변이와 DNA 교차 때문에 생긴 유전자풀의 차이는 자연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자연은 이제 과도하게 늘어난 자손들을 놓고 선택을 해야 했다. 솎아내기가 시작된 것이다. 원시 생명체 사회에서 어느 한 개체가 자신의 동포들보다 몸집이 훨씬 커지고 먹이도 많이 섭취할 수 있는 형태의 신진대사가 가능한 변이를 일으켰다고 생각해 보자. 이 독특한 미생물은 통통한 지방산 세포막으로 감쌀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탐욕스럽게 먹어치웠다. 이 식욕이 왕성한 젊은 세균은 곧 스스로 포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중 많은 수가 자신을 만든 세균의 특징을 이어받아 얌전한 다른 단세포 세균들을 먹어 치웠다. 이 세균들의 세대가 수천에 수백을 곱하고 또 수백을 곱한 만큼 지나가자 또 다시 행복한 실수가 벌어졌다. 이번 실수는 세균의 세포막의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저질렀다. 그 결과 세균들은 이웃 세균들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며, 옆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활동이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지 등을 알 수 있게 됐다. 자신들이 어떤 능력을 갖게 됐는지도 깨닫기 전에 이 고대 도청 장치는 수많은 도창자를 낳아 비사회적이고 협동이라고는 전혀 모드던 지독한 단세포 나르시시즘 사회에 일대 변활르 일으켜 단세포 생물들이 서로 협동하고 관계를 맺는 다세포적인 나르시시즘 사회로 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숭고한 혁신이 있었기 때문에 봉건주의, 군주제, 민주주의, 금권 정치,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치 단체들이 뒤를 이어 나타날 수 있었다.

 

나뭇잎을 닮은 개구리는 어떻게 나타나나

 

   솔로몬 제도의 잎개구리(leaf frog)는 나뭇잎과 정말 믿기 어려울 만큼 똑같이 생겼다. 

 

   개구리들은 다양한 포식자들의 무시무시한 위협을 받으며 산다. 조류, 뱀, 거북, 포유류, 다른 개구리, 전갈, 타란튤라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천적들이 가하는 위협이 개구리의 모양과 다리 형태를 결정짓는 크나큰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곤충들은 덧없이 짧은 자신들의 삶을 놀라울 정도로 왕성한 번식력으로 보완한다.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곤충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하는 종은 흔히 독일바퀴라고 부르는 블라텔라 게르마니카(Blatella germanica) 이다. 다행히 일찍 사람들 발에 밟혀 죽지 앟고 1년 정도 되는 수명을 모두 채운다면 암컷 바퀴는 대력 4천만의 자손을 낳을 수 있다. 독일바퀴가 암갈색인 이유는 도시 생활ㄹ에 적응된 결과물로 곤충들은 자신의 환경에 딱 맞는 옷을 입는 능력이 있다. 자바 섬에 서식하는 잎벌레는 진짜 잎의 것처럼 보이는 주맥은 물론 옆으로 뻗어 있는 잎맥도 있으며 심지어 곤충이 뜯어먹은 것처럼 보이는 작은 구멍이나 찢긴 부분까지도 흉내 내고 있다. 대벌레는 나뭇가지처럼 보일 뿐 아니라 진짜 나뭇가지처럼 행동한다. 대벌레는 나뭇가지처럼 보일 뿐 아니라 진짜 나뭇가지처럼 행동한다. 

   곤충들과 그들의 절지동물 친척들의 생존 전략을 모두 모으면 생명체가 택할 수 있는 모든 전략과 모든 무기가 총망라된다. 모방, 교란, 나를 먹으면 죽는다거나 소화 불량에 걸릴 수 있다는 위협 등등, 절지동물들은 언제 어느 때라도 독극물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채찍전갈은 두 가지 강력한 물질이 혼합된 칵테일을 공격자를 향해 재빨리 쏠 수 있다. 전갈의 독 속에는 제아무리 딱딱한 껍데기라도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지용성 카프릴산과 그 밑에 있는 조직에 끔찍한 고통을 줄 수용성 아세트산이 섞여 있다. 대벌레도 방어적인 위장술을 화학 대포로 지원하고 있다. 이 무기는 동물들이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개박하에 들어 있는 활성 성분과 비슷한 강력한 화학물질인 테르펜(terpene) 증기를 뿜어낸다. 대벌레가 뿜어내는 화학 증기를 얼굴에 맞은 큰어치는 다시는 나뭇가지라면 가까이 가지 않는 소심한 어치가 된다. 노래기 중에는 프로게스테론과 비슷한 화학물질을 몸속에 잔뜩 가지고 있어서 적의 생식력을 오랫동안 억제하는 방어 전략에 이용하기도 한다. 

   곤충들에게는 우리 인류가 기록하고 실험해온 시간보다도 훨씬 많은 방어 물질을 만들어낼 수단과 동기가 있었다. 곤충들은 또한 우리가 화학 무기를 그들에게 겨눌 때 위기에서 벗어날 번뜩이는 기지도 갖추고 있다. 

   문제가 되는 해충이 무엇이건 간에 살충제에 대한 내성이 진화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화론의 알고리듬에 확신이 생긴다. 한 개체군 안에서 유전자가 무작위로 변이되는 것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속도가 빠른 종일 경우에는 더욱 높은 빈도로 일어난다. 그런 변이의 대부분은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장점은 커녕 커다란 단점으로 작용해 자연선택을 받지 못하거나 빠른 속도로 유전자풀에서 제거된다. 그러나 독성물질에 대한 내성 같은 굉장히 유용한 변이는 그 종이 보편적으로 갖게 되는 새로운 형질이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유전자 변이는 또한 종 다양성을 만든다. 한 동물의 기본적인 발달 과정을 제어하는 주요 유전자가 변이를 일이키면 변이를 일으킨 개체들이 완전히 다른 종처럼 보이거나 행동할 정도로 아주 커다란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바닷물이 상승해 육지가 섬으로 바뀐다거나 하는 일로 변이를 일으킨 개체와 그 자손들이 변이를 일으키지 않은 개체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으로 변한다. 

 

땅 위에 사는 고래

 

   진화의 증거는 우리들 속에서, 밑에서, 위에서,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과학자들은 화석으로 발견된 생물 종의 수는 현재까지 지구에서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전체 생물 종의 천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리차드 도킨스는 "물론 화석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상한 일이 아니죠.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어쨌든 화석을 발하는 것 자체가 행운이니까요."라고 말한다. 사체 한 구가 모든 장애를 넘어 불후의 명성을 얻으려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 먼저 그 사체는 죽은 유기체라면 대부분 겪는 운명을 피해갈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재활용 프로그램으로 무장하고 있는 자연에 맞서 자신의 몸을 지키려면 일단 아주 빨리 덮어버릴 두툼한 침전물 층이 있어야 한다. 두툼한 퇴적층은 사체가 부패되는 것을, 적어도 뼈나 이빨, 껍데기, 엄니, 나무 기둥처럼 딱딱한 부분이 부패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시간이 흐르면 모래나 침니 같은 퇴적물은 단단하게 굳어 암석이 되고, 그 속에 묻혀 있던 뼈나 유기체는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원래 있던 유기체 분자 대신 광물 입자가 채워지면서 딱딱하게 굳는다.

   대부분 화석은 아주 깊은 암석층에 묻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발견되어 분류 작업을 거치기 전에 녹아 없어지거나 지각 변동으로 산산이 부서지거나 화산이 폭발할 때 재가 되어 날아갈 수도 있다. 사람들 눈에 발견되려면 무슨 수를 쓰건 간에 표면으로 올라와야 한다. 화석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방법은 융기하는 지각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 산이나 언덕의 옆면에서 노출되거나 바람이나 물이 힘들게 퇴적층을 깎아서 샌드위치처럼 쌓여 있는 지층들을 드러내야 한다. 고생물학자들은 아주 오래전에 지하 깊숙이 숨어버린 고대 지층을, 주로 지질학적 요소가 기상학적 요소와 우연히 힘을 합쳐 살짝 드러낸 산허리나 협곡으로 화석을 찾아 나선다.

   고생물학자들은 암석의 노출부와 그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화석의 나이를 쉽게 추정할 수 있다. 5만 5천 년 전 이후에 만들어진 비교적 생성 연도가 가까운 화석의 나이는 유기체 속에 남아 있는 탄소14와 탄소12라는 두 가지 탄소 동위원소를 비교해보면 아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탄소12에 비해 탄소14의 양이 더 적을수록 오래된 화석이다. 가이거 계수관(방사능 측정기)을 가지고 자신들이 발굴해낸 보물 속에 들어 있는 불안정한 방사성 동위원소와 여분의 입자를 제거한 안정된 동위원소를 비교해봄으로써 과학자들은 암석과 암석에 묻혀 있던 화석이 얼마나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는지, 땅 속에 묻힌 후 몇 억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지 알아낼 수 있다. 

   2001년 과학자들은 파키스탄 북부에 있는 낮은 산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이 지역은 과거에는 테티스 해(고대에 현재의 지중해 지역에서 히말라야 산맥 등을 지나 동남아사이까지 걸쳐 있던 바다)의 따뜻하고 얕은 물속에 잠겨 있던 곳이다. 이 곳에서 과학자들은 원래는 육지 동물이었지만 이제는 수생 생물이 된 고래의 진화사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거대한 고래 화석 발굴지를 두 곳 찾았다. 비록 고래는 완벽하게 물에 적용한 물고기 같은 유선형 몸을 하고 있어서 허먼 멜빌은 물고기로 여겼지만, 폐로 숨을 쉬고 새끼에게 젖을 먹이며 난소 속에 여포를 만드는 등 여느 포유류와 다름없는 생리적 특징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고래를 오래전부터 5천만여 년 전에 바다로 되돌아간 육지 동물의 후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고래 화석이 그리 많지 않아 고래가 헤엄을 치기 이전의 모습을 그려보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 과학자들은 모비 딕의 선조는 늑대처럼 생긴 용맹하게 달리는 동물이 아니라 돼지처럼 먹는 소목(目) 동물, 그러니까 돼지, 낙타, 소, 하마처럼 발굽이 있는 유체동물이라는 아주 놀라운 증거를 발견했다. 게다가 고대 화석은 고래가 바다를 향해 모험을 떠나기 전부터도 오늘날 고래나 돌고래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귀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이는 고래의 놀라운 청각 능력, 프리윌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동료들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육지에서 이미 획득했음을 말해준다. 

    현재까지 발굴된 말의 화석을 분석해본 결과 가장 앞선 말속(屬)동물은 레브라도 리트리버 정도 크기에 발가락이 네 개인 민첩하게 생긴 에오히푸스(Eohippus) 나 하이라코테리움(Hynacotherium)이다. 이 동물은 5천 3백만 년 전인 에오세 때 북아메리카 대륙의 숲을 돌아다니며 우아하게 새싹이나 딸기, 잎 등으로 만찬을 즐겼다. 에오히푸스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크기뿐 아니라 발가락 개수, 이빨의 융기 형태 등이 계속해서 변하였고 가죽은 화석으로 남지 않으니 앞으로도 확인할 수 없겠지만 분명히 털 색깔도 바뀌었을 것이다. 사바나 정착에 성공한 히파리온(Hipparion) 은 천만 년 전쯤에 베링 육교를 건너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넘어온 후 유라시아 남부와 북쪽까지 빠르게 퍼져갔다. 반면 북아메리카 대륙에 남은 에오히푸스의 후손들은 점차 사라져가는 운명에 처해 5백만 년 전인 플라이오세가 시작될 무렵에 신대륙에 서식하던 말과 동물은 디노히푸스(Dinohippus) 밖에 없었다. 크고 다부진 디노히푸스는 긴 다리에 한 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었고 살집이 없는 발굽은 점점 더 추워지고 건조해지는 기후에 맞춰 점점 더 세력을 확장시켜가고 있는 탁 트인 대초원을 달리는 데 이상적이었다. 게다가 두춤한 에나멜질 이빨은 질긴 관목 풀과 함께 들어온 규소물질을 씹어도 끄덖없을 정도로 점점 더 크고 두툼하게 변해갔을 것이다. 이 후손이 현대 말속인 에쿠우스(Equus)다. 어느 때에 에쿠우스는 자신만큼 튼튼하고 길쭉한 다리를 가진 히파리온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히파리온을 몰아내버리고 말았다. 

 

다이아몬드를 지닌 천상의 루시

 

   화석 자료를 풍부하게 남겨놓은 도 다른 동물 속은 놀랍게도 우리 자신이다. 과학자들은 8천만 년 전에 살았던 뒤쥐를 닮은 원시 영장류 화석을 찾아냈다. 이 원시 영장류는 땅 위에 내려와 있기보다 관목이나 나무 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또한 나무 위에서 살았던 선조들이 원숭이와 유인원으로 분화되기 시작한 5천만 전 화석도 찾아냈다. 이 화석들은 나무뿌리로 덮여 습한 아프리카의 아열대숲에서 형성됐다. 현재 우리는 덴드로피테쿠스(Denropithecus), 프로콘솔(Proconsul), 케냐피테쿠스(Kenyapithecus) 등의 원시 유인원 화석을 찾아냈다. 

   우리에게는 이른바 '잃어버린 고리'라고 하는 '인간스럽다'고 도 할 수 있고 '유인원스럽다'라고 할 수 있는 여러 특징들이 뒤섞인 화석들로 이루어진 튼튼한 사슬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이 조그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인 루시이다. 루시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도널드 요한슨이 루시를 발견한 날 텐트에 비틀즈의 노래 "다이아몬드를 지닌 천상의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라는 곡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루시는 완전한 직립보행을 하고 있었지만 뇌의 크기는 현생 인류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초기 사람과(hominid) 동물로는 최초로 석기 도구를 사용했다고 생각되는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말처럼 억센 이빨을 최초로 가진 호모 에르가스테르(Homo ergaster), 턱이 홀쭉한 호모 루돌펜싯(Homo rudonfensis), 샤워 모자를 쓴 것처럼 두개골이 뒤로 치우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고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초기 현대 호모 사피엔스, 완전한 현생 호모 사피엔스, 진정한 동굴인이자 네안데르탈인이라고 알려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 등이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아주 원시적이고 비위생적이며 그르렁거릴 것'같다고 취급받는 것은 부당하는데 모두 동의한다. 사실 네안데르탈인은 2만 8천년 전쯤 파국적으로 갑작스럽게 멸종해버리기 전까지 적어도 10만년 동안 유럽에서 호모 사피엔스들과 공생해왔다. 네안데르탈인들이 갑자기 멸종해버린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보통 네안데르탈인들은 우리와는 두개골의 모양이 조금 달랐고, 얼굴은 평평하고 눈썹이 툭 튀어나온 데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지능의 산실이라고 생각하는 대뇌의 전두엽이 상당히 작았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호모 사피엔스의 뇌만큼이나 컸다. 네안데르탈인도 호모 사피엔스처럼 석기 도구의 끝을 날카롭게 연마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동굴에 벽화를 그리거나 상아로 여성을 조각하는 등의 예술적, 장식적 취미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아 있는 뼈를 보면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다치거나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등, 여러가지 질병에 보다 취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는 어쩌면 우리 조상이 자신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 네안데르탈인을 경멸해서 멸종시켜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유전자를 분석해본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사랑이 싹텄던 적은 전혀 없는 것 같다. 현생 인류의 유전자풀 속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그 후 지구에는 높은 이마와 1.3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기 스스로 자신들의 이름을 지어낸 오직 한 종의 사람속(homo) 만이 살아남았다. 스스로를 어찌나 현명하게 생각했던지 그 이름도 현명한 자라는 의미의 사피엔스를 두 개나 갖다 붙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다. 

    우리들의 유전자는 파리보다는 쥐와 가깝고 우리의 가까운 친척 종인 침팬지와는 보다 더 가깝다. 인간의 세포에서 이중나선 한 가닥을 빼내 침팬지 세포에서 빼낸 이중나선 한 가닥 옆에 나란히 놓으면 두 나선 가닥은 전체 길이의 2에서 4퍼센트 정도만이 떨어진 채 그대로 있고 나머지 부분은 각각 맞는 염기 짝을 찾아 결합해버릴 것이다. 인간의 DNA 를 구성하고 있는 30억개의 염기 가운데 96퍼센트에 달하는 염기가 침팬지와 같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두 종이 불과 5백만 년 전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그러니까 불과 25만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의 아버지를 25만 번만 되니면 아주 먼 조상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어떤 유인원을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생물의 독특한 분포 상태를 연구하는 생물지리학자도 진화설의 증거를 뭉텅이로 제공한다. 다윈 역시도 자신이 '긴밀하게 관련된' 생명체들이라고 부른, 비슷한 외형과 특성을 가진 종들이 공간적으로 모여 있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시각으 더 발전시켜 생물과 지리적 조건이 일치하는 이유, '긴밀하게 관련된' 생물 종들이 같은 지역에 떼 지어 뭉쳐 사는 이유, 대륙마다 서식하는 생물종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우아하게 설명할 방법을 찾아냈다. 다윈은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모두 아우르며 형성된 끈끈한 유기적인 결합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결합은, 내 생각을 이야기해보라면 단순히 유전이다." 같은 조상을 둔 자손들이 같은 땅에 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수라는 나무는

 

   생물들의 계통 관계는 계(Kingdom), 문(Phylum), 강(Class), 목(Order), 과(Family), 속(Genus), 종(Species) 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분류가 좁아질수록 그 분류 안의 생물들은 비슷한 특성을 많이 공유한다. 반대로 범주가 넓어질수록 그 수는 많아지고 제멋대로가 된다. 한 분류에 같이 속해 있는 생물들은 그 안에서 아무리 지지고 볶더라도, 다른 단계에 속해 있는 생물들 보다 후러씬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은 같은 소람속에 있으며, 과거에는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 같은 친척들도 있었지만 오늘날은 우리가 유일한 종이다. 우리가 속한 과(科)는 사람과이다. 사람과에는 우리 말고도 대형 유인원인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같은 현행 종이 있으며 유인원의 특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거나 사람의 특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여러 종의 멸종한 생물들이 있다. 사람과는 원숭이, 여수 원숭이, 안경원숭이, 늘보원숭이 같은 200여종의 원송이 종과 함께 영장목에 속한다. 영장목은 4,600여 종 되는 다른 동물들과 함께 온 몸에 덮인 털, 네 부분으로 구분되는 심장과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귀, 젖으로 새끼를 키우는 등의 특징이 있는 동물들의 집단인 포유강에 속한다. 우리가 속한 척색동물문에는 5만 종이 넘는 파충류, 조류, 어류, 양서류 등이 함께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속한 동물계는 막강한 숫자의 절지동물을 비롯해 여러 가지 등뼈가 있는 동물들이 포진해 있다. 절지동물, 복족류(굴류, 문어류), 선충류와 해면동물(산호류, 바도조름류, 해삼류), 어떤 것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입의 모양이 크게 열린 형태나 입수공의 형태를 취하는 여러 강장동물들까지, 26만 종에 달하는 식물계까지는 상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데 생명의 나무(생명수)를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다보면 우리가 암기한 분류법으로는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새로운 무언가가 나온다. 동물계와 생물계라는 왕국 위에는 진핵생물과 완핵생물이라는 두 황제가 있다. 우리 인류도 속해 있는 진핵생물은 이중나선을 핵 안에 담고 있고 세균이 속한 완핵생물은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재빨리 분열될 수 있도록 이중나선을 끈적끈적한 세포 여기저기에 흩어놓았다. 이곳을 넘어 더 높이 올라가면 생명체가 운반하는 유전암호를, 진핵생물과 원핵생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세포 속에는 똑같은 화학적 알파벳이 들어 있으며, 똑같은 핵산 암호가 수십억 가지 다른 방식으로 부르고 있는 노래가 사실은 하나의 대서사시인 셈이다. 

    작가이자 박물학자인 데이브드 쾀멘이 언급한 것처럼, 하나의 범주 안에 또 다른 범주들을 만들어나가고, 다양한 종들의 비슷한 특징을 한데모아 점차적으로 우리 유전자의 화학물질이 공유한 하나의 원형적인 조(趙) 형질을 찾아가는 이런 계통 발생학적인 분류 방법은 우리가 무언가를 분류할 때 일반적으로 택하는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닮았단느 것이 곧 혈연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어떤 대륙에 있는 생명체의 생김새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생명체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지만 혈통학적으로는 아주 먼 관계에 있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선인장 식물들을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즙이 많은 등대풀과 식물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두 과 모두에 밀가루 반죽을 늘러 놓은 것 같은 통통한 식물과 높게 솟은 장대 같은 키 큰 식물들이 있다. 이 두 과에 속한 식물들은 잎에 난 가시도 비슷하고 두툼한 밀랍으로 두른 표피도 비슷하고 텅 빈 목질부가 물로 가득 차 있는 것도 비슷하다. 아프리카 등대풀을 사와서 시가로 선인장이라고 속여도 사가로 선인장에 익숙한 사람들도 그냥 순순히 믿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사실 선인장과 등대풀은 서루 다른 과에 속해 있는 관계가 아주 먼 식물들로 모두 자신들과 아주 가까운 가시가 없는 식물 사촌들이 따로 있다.

    중요한 것은 개미를 먹는 삼총사나 두 대륙의 수분을 가득 머금은 식물들처럼 생김새는 비슷한데 계통학적으로는 거리가 먼 생물들의 예가 다윈의 절대적인 권위를 더욱더 강조해준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예가 멀리 떨어져 있는 생물체들이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문제 해결의 안내자이자 가혹한 채찍을 휘두르는 판단자인 자연선택에 의해 비슷한 도구를 사용하는 비슷한 방법의 해결책을 찾은 진화의 예라 하겠다.사하라 사막 이남에 서식하는 아프리카의 등대풀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소노란( Sonoran) 사막에 서식하는 선인장들은 모두 지구상에서 가장 황량하고 건조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지역에서 자란다. 그렇게 극단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이 취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부피에 비해 가장 적은 표면적을 갖고 싶다면 둥근 형태를 취하면 된다. 둥근 형태를 취하면 따가운 햇갈과 거친 바람에 노출되는 비율을 최소로 줄이면서 짧은 사막의 우기 대 내리는 단비를 표면에 비해 비교적 커다란 내부 탱크에 저장할 수 있다. 둥근 형태를 취하기 싫다면 장대처럼 곧고 높게 자라는 방법도 있다. 그러면 한낮의 태양빛을 가장 적게 받는 상태에서 내부 공간을 저장 창고로 활용할 수 있다. 잎은 전체 표면적을 넓히고 몸속에 자장한 수분을 밖으로 배출할 뿐이니 잎은 최대한 적게 만들고 광합성은 줄기가 하도록 하는 편이 낫다. 두툼한 밀랍으로 덮인 피부는 증산 작용을 억제하고 물을 낮아 헤매는 날카로운 앞니를 가진 설치류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준다. 잎이 변한 날카로운 가시는 물을 찾는 동물들로부터 지켜줄 뿐 아니라 새벽에 맞힌 이슬이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얕은 땅속에 간신히 박혀 있는 뿌리로 곧장 갈 수 있게 해준다. 

    지구상에서 성공적으로 번식한 절지동물 중에서도 가장 번성한 생명체들인 개미와 흰개미는 딱정벌레나 바퀴 같은 곤충들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해버린 지역에서도 식민지를 건설해 번성한다. 에드워드 O. 윌슨은 개미 혼자만으로도 전 세계 곤충 생물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개미와 흰개미가 놀라운 성공을 거둔 데는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으면서도 모든 개체들의 기능을 한데 모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행동하는 사회적인 능력이 큰 몫을 했다. 

 

필요 없는 뇌는 버린다

 

   우리는 생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미지의 분자 한 개가 최초로 자기 자신을 복헤하게 된 것은 정말로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다.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는 것은 행운에 달린 문제이지만, 바로 그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일 자체는 신중이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살아 있으면 영구히 존재하려 하는 것'이라는 생명의 또 다른 정의는 이미 우연이라는 요소를 배제하고 있다. 

   생명의 시작이 우연이건 필연이건 간에 생명이 만개하여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된 과장은 모두 우연인 것도 무작위적인 것도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자연선택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작위적이지 않은 힘"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선택이 처음부터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다거나 언제나 보다 지적이고 복잡한 유기체로 변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선택은 언제나 생존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생명체를 선택하며 철저한 모더니즘 건축가 아돌프 루스의 말처럼 때로는 장식이 죄악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원색동물인 멍게는 유충 단계에서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포식자이기  때문에 작은 뇌가 먹이를 찾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그러나 일단 성체가 되면 안전한 장소에 몸을 붙이고 죽을 때까지 꼼짝도 않은 채 흘러가는 물속에 들어 있ㄴ은 먹이를 걸러 먹기 때문에 더 이상 쓸모없게 된 뇌는 버린다. "뇌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죠." 옥스퍼드 대학교 화학과 교수 피터 앳킨스의 말이다. "따라서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냥 버리는 게 아주 좋은 전략입니다."

   진화는 조직적이지도 않고 선견지명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진화에게 당신 회사의 연간 임원 회으를 계획하게 할 수도, 아이들의 생일 파타를 기획하게 할 수도 없다. 생물학자들이 즐겨 이야기하듯이 진화는 땜장이, 임기응변의 달인, 응급 장비이다. 진화는 당자으이 시급한 문제만 해결할 뿐 미리 앞을 내다보고 계획하지 않는다. 아주 멋진 작품을 창출해낼 때도 있지만 그저 꿰매거나 풀만 발라놓는 경우도 있다. "흔히 사람들은 생물의 현재 상태가 최적의 상태라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재료 과학자 밥 풀의 말이다. "그라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새물들에게는 자기들만의 역사가 있지요, 자연선택은 생물들이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재료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돌고래가 아가미를 갖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일은 없으며 거북 등껍질에서 티타늄을 발견하는 경우도 없을 겁니다. 완전한 무에서 박쥐를 만들어낼 수도 없지요."

   어째서 우리 인간들은 음식을 먹다 목에 걸려 괴로워하고, 심지어 때로는 목이 막혀 죽기까지 하는 것일까? 이는 우리가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 구강구조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발성기관인 후두가 애초에 자리 잡고 있던 위치를 벗어나 밑으로 내려감으로써 정교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기의 통로가 넓어졌으며 그와 동시에 혀의 위치도 바뀌었다. 침팬지의 혀는 입 안에 모두 들어 있지만 인간은 혀의 뒷부분이 성도의 윗부분을 형성하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꾸고 명확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이 두 가지 변화 때문에 인간이 공기 통로와 음식 통로는 우리들의 조상이나 현대 유인원 친척들에 비해 훨씬 더 가까이 붙어 있게 했고 그 결과 음식물이 자신이 들어가야 할 식도를 벗어나 기도로 떨어지는 아찔하고 당혹스러운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게 됐다. 위험 요소만 생각한다면 우리 유전자풀에서 이런 후두의 변이는 즉각 퇴출되어야겠지만 일장 연설도 하고, 가르치고, 당황스럽게 만들고, 야단 치고, 중상모략하고, 회의 진행을 저지하고, 샤워하면서 음악을 흥얼거릴 수 있는 능력이 더 소중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한 생명체의 모든 특성이 자연선택의 결과물인 것은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쓸모가 없거나 기능이 사라진 형질이라도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해가 없기 대문에 멍게의 뇌와 달리 퇴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예컨데 춥거나 크게 놀랄 때 몸에 돋아나는 소름은 온 몸이 털로 뒤덮여 있던 고대 인류가 추위에 맞서 보안을 유지하거나 적에 맞서 자신의 몸을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털을 세웠던 흔적이다. 이 소름은 실제 털이 난 것과 달리 보온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다. 한쪽 성에게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다른 성에게는 도대체 왜 있는지 모르는 기관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남성의 젖꼭지가 그런데, 이는 포유류의 배아가 자동동체 상태로 발생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포유류 수컷에게도 암컷과 같은 수의 젖꼭지가 달려 있다. 

    때로 생물들은 개체의 수명을 늘리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가끔은 수명을 단축시키기까지 하는 허식적이고, 과장되고, 우습고, 눈에 잘 띄는 형질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성선택(sexual slection)이라는 진화의 또 다른 강력한 엔진 때문이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선택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포식자에게 벗어나는 기술이나 눈에 띄지 않도록 주변 환경에 묻혀 들어가는 기술을 망치는 형질이라도, 개체의 성적 매력을 한껏 부각시켜 짝짓기가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성선택 현상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수컷 공작의 꼬리이다. 암컷 공작은 새들의 세계에서는 최고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수하고 촌스럽게 생겼는데도 배우자를 선택하는 눈은 기가 막힐 만큼 높다. 암컷들이 수 세대에 걸쳐 화려한 꼬리 깃털을 가진 수컷을 선호한 탓에 공작 수컷의 꼬리 깃털은 지나치게 화려하지는 쪽으로 진화했으며, 그 결과 나무의 가장 낮은 가지에나 간신히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거추장스러워졌다. 이런 형질은 나무타기의 명수인 표범과 같은 곳에서 사는 새들에게는 무척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진화의 가혹한 시련에서 이겨내려면 동물들은 짝짓기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과 경쟁하는 다른 구혼자들도 물리쳐야 한다. 짝짓기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수컷 사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경쟁자들이 모두 나가떨어지고 혼자서 모든 암컷을 차지할 마지막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서로의 뿔을 들이받으며 지낸다. 

 

생명은 머추지 않는다

 

   우리는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행동했는지 모른다. 최초의 생명체들은 RNA 로 이루어졌거나 단백질로 이루어졌을 수도 있고 아직은 발견되지 않은 아무도 모르는 분자로 이루어졌었는지도 모른다. 45억년 전 지구가 탄생한 이래 정확히 언제 생명체가 탄생했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생명체는 아주 이른 지구 역사 초기부터 있었는지도 모른다. 1950년대에 시키고 대학교의 헤롤드 유리와 스탠리 밀러는 실험실에서 원시 지구 환경을 조성해 단백질의 원료인 아미노산을 합성해냄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누군가 밀러에게 물었다. 아미노산이 생명체로 탄생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추측하는가? 밀러는 이렇게 대답했다. "10년은 너무 짧을 테니 100년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1만 년이나 10만 년도 괜찮을 것 같군요. 백만년도 부족하다면 결국은 어떻게 해도 안 될 겁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추측'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최기 생명체들의 화석 증거는 안타깝게도 사실상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처음 자신들을 복제하개 시작한 생명체의 모태를 이룬 분자들이 어떤 물질을 포함학 있었건 간에 단단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퇴적물 속에 흔적을 전혀 남길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생명체는 탄생했고 한 가지 점만은 분명하다. 생명은 너무나도 살아 있음을 사랑하기에 일단 삶의 첫 발을 내디딘 후로는 한 번도 사는 것을 멈춘 적이 없다. 수십억 년 전 최초의 세포가 탄생한 이후 생명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왔다. 생명의 암호, DNA 와 RNA 라는 형태로 핵 속에 적혀 있는 글귀들은 만물의 암호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누구나 이 암호를 가지고 있다. '나는 핵산과 관계없다.' 고 말할 수 있는 생명체는 하나도 없다. 생명이 한 번 이상 탄생했다면, 즉 생명의 기원이 여러 계통이었다면 현재 존재하는 생명체의 유전암호를 전달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해수면 2.5킬로미터 아래의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열수공에 서식하는 생명체들의 세포 속에서도 우리는 DNA 을 발견한다. 그뿐인가. 백만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극지방의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세균의 세포 속에서도 DNA를 본다. 종이 탄생하고 증식하며 분화되고 사라져가는 동안에도 DNA는 변함없이 살아남아왔다. 앞으로도 DNA 는 그저 계속해서 많게 혹은 적게 자신을 복제해나갈 것이며 어느 곳에서든 어느 세포에서든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록펠러 대학교의 세포 생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쿤터 블로벨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생명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한다. "생명의 연속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스무 살이라니, 서른 살이라느니, 마흔 살이라니 하는 말들은 모두 잘못된 겁니다. 우리들의 나이는 35억 살입니다. 우리들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사실에 경악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떤 관점으로 보면 오히려 그 편이 나을 수도 있죠. 사실 우리는 35억년 전에 살았던 세포의 후손이니까요"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가장 처음에 탄생한 세포까지 이어지는 생명의 줄은 어마어마하게 깁니다. 이 실은 우리 개개인이 모두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질 겁니다. 이것이 생명의 연속성입니다.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겠죠. 우리 모두는 이 영속성을 이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이라는 개념은 이런 생물학적 사실을 반영하는 시적 표현이지 않을까요."       블로벨은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내 조상이 누구인지, 내 후손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다면 거울은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세포를 가르고 그 속을 들여야봐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