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노트

눈부신 안부 - 백수린

by 강대원 2024. 11. 17.

  "지난 일 년 동안 네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변화가 생겼을 거라는 걸 이모도 안다.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거도"

   이모가 말하는 변화라는 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등교한 언니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가스 폭발 사고로 갑자기 사라져버린 일을 가리키는지, 언니를 잃은 고통으로 엄마 아빠의 사이가 멀어져버린 일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어 버린 일을 가리키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아니면 그 모든 것에 대해서였을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조금씩 나이질 거야. 한 번에 괜찮아질 리는 없지만, 천천히 회복되고 있나보고 싶은 날도 찾아올 거야. 그러니까 이모는 네가 씩씩하게, 이곳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 가끔은 엄마도 도우면서."

   "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억하렴. 그러다 힘들면 꼭 이모한테 말해야 한다. 혼자 젊어지려고 하면 안 돼. 아무리 네가 의젓하고 씩씩한 아이라도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알았지?"

 

    언니를 잃은 이후 나는 가족 중 누구든 눈 깜짝할 사이 내 앞에서 없어져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시달리고 있었고, 동시에 언제 사라져버리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무엇이든 다 해 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그 시절 나는 엄마에게 무척 많은 거짓말을 했지만 그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당시 내가 한 거짓말은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 것들이었으니까.

  

    내가 그해 받는 선물 중에 가장 근사한 것은 이모가 준 선물이다.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가 담긴 시디. 클래식 시디를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선물로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은 마치 어른이 어른에게 주는 선물 같았기 때문에 미키마우스 슬리퍼를 보며 시무룩했던 마음이 금새 풀렸다.

   "마리아 칼라스가 누구에요?"

    나는 시디에 적힌 글자를 읽으며 이모에게 물었다.

    "그리스계 미국 이민자 출신의 성악가란다."

    거실 소파에 잠옷 차림으로 앉아 있던 이모는 마리아 칼라스라는 오페라 가수에 대해서 몇 가지를 더 알려주었다. 나는 그녀가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세계적인 가수라는 사실보다는 뚱뚱한 외모와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스스로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끌렸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걸터앉은 채 이모가 써준 카드를 다시 읽었다. 

     

      사랑하는 해미야.

      이모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울고 싶었을 때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큰 위로가 되었어. 너에게도 울고 싶거나, 위로받고 싶은 날들이 있을 것 같아 이것을 선물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에는 더 좋은 일이 가득하길 이모가 기도할께. 

 

   "우리 엄망게 게히른투모어가 있대"

   나는 한수가 말한 문장에서 '게히른투모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레나를 쳐다보았다. 레나도 그 말은 한국어로 알지 못하는지 함참 고민한 끝에 찝찝한 얼굴로 통역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나는 집에 가서 사전을 찾아봐야지 하고 생각하며 가방에서 펜과 노트를 꺼냈다. 레나가 불러주는 대로 노트 한 귀퉁이에 스펠링을 적고 있는데 한수가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기억을 다 잃어버리거나 세상에서 없어져버리기 전에,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을 찾아주려는거야."

 

    바보 같은 한수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틀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괴로워졌다. '엄마가 기억을 잃어버리거나 세상에서 없어져 버리기 전에.' 한수의 말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언니 생각이 났다. 세상에서 없어져버린 사람이란 나에게는 언니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니까. 큰 병을 앓은 엄마를 잃을까봐 슬퍼하는 한수 몰래 이런 생각을 해서 죄책감이 일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한수에게 조금 질투가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곧 세상에서 없어져버린다는 걸 미리 알고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언니가 그 겨울 예고없이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릴 것을 알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언니의 티셔츠를 훔쳐 입고 소풍을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언니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 일부러 언니를 이름으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엄마가 언니에게 시킨 심부름을 내게 떠념겨도 짜증을 내지 않고 다 해주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언니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없는데 한수에게는 남아 있다는 사실에 불쑥 화가 났다. 너무 불공평해. 불현듯 나는 줄곧 내가 그렇게 생각해왔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자 서글퍼졌다. 열네 살에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나처럼 고통스럽지 않길 바라는 대신 다른 사람도 적어도 나만큼은 고통스러웠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인간이 나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이모 소용 없는 줄 알면서도 뭔가를 하려는 바보 같은 마음은 대체 왜 생기는 걸까요?"

     나는 내 하얀 운동화 위로 녹아서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시무룩이 바라보다가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간절하니까 그런게 아닐까?"

     "간절하니까?"

     "응."

     그리고 이모는 말했다.

     "만약에 네가 무인도에 혼자 갇혀 있다고 생각해봐. 밤이 되었는데 저멀리 수평선 가까이에서 불빛이 보이고. 그러면 너는 너무 멀어서 네가 보이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하지 않을까? 단 하나밖에 없는 성냥이라도 그어서 신호를 보내려고 하겠지. 간절하다는 건 그런 거니까."

 

     "엄마, 만약에 사람들이 꼭 한번 다시 만나고픈 사람을 누구든 딱 한 명만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보통은 첫사랑을 가장 보고 싶어할까?"

     리모콘으로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던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가 갑자기 그런 걸 왜 묻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까를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다행이 그 순간 해나가 "저리 가, 저리 가" 잠꼬대를 하며 엄마 품에 파고들었고,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해나의 등을 토닥이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그리고 조금의 간격을 두고 말했다. 슬픈 미소를 지으며.

    "글쎄,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엄마가 꼭 한번 다시 보고픈 건 첫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일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바보 멍충이일까? 

 

    처음에 나는 일기 속 대화 상대가 일기장일 거라 짐작했다. 독일로 오기 전 엄마는 내게 '안네의 일기'를 사줬고, 나는 그 책에서 "사랑하는 키티에게. 어제까지는 당신에게 편지를 쓸 틈이 없었어요. 목요일은 종일 친구와 함께 보냈고, 금요일에는 집에 손님이 방문하셨거든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오늘이 되었군요."라는 식으로 쓰인 일기들을 읽었으니까. 하지만 선자 이모의 일기를 읽어나갈수록 나는 이모가 말을 거는 상대가 첫사랑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같이 슬픈 연서였으니까. 그리고 그 행간에 잔잔히 흐르던 걱정과 애달픔을 느낀 사람이라면 누구든, 선자 이모가 첫사랑의 이름을 듣는다면 동요할 수밖에 없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숨기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게 사랑일 테니까. 봄볕이 나뭇가지에 하는 일이 그러하듯 거부하려 해도 저절로 꽃망울을 터뜨리게 하는 것이 사랑일 테니까. 무엇이든 움켜쥐고 흔드는 바람처럼 우리의 존재를 송두리째 떨게 하는 것이 사랑일 테니까.

 

    홀로 또는 누군가와 함께 시내를 걷다보면 이따금씩 동맹이를 던지듯 우리를 향해 "곤니치와" "니하오" 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한번은 엄마, 해나와 함께 걷던 중에 해나가 물었다. 

     "엄마, 우린 일본 사람도 중국 사람도 아닌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말을 거는 거야?"

     주말이라 장을 보고 돌아오다가 브레첼을 사는 가판대 앞을 지날 때였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가지 색깔로 똑같이 칠해버리려하거든."

     "그건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이번엔 내가 물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니까."

 

     마침내 우리 가족도 행복에 거의 가까워져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언니가 떠오르면 죄책감이 느껴질 만큼의 행복이었다. 죄책감이 가슴을 쿡쿡 찌를 때마다 속으로 언니에게 말을 걸어야 했을 만큼의 행복.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엄마에게 들키면 어떻게 하나 그렇게 걱정하던 한수가 나에게 일기장 원본을 통째로 보내온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아빠와는 오래전에 헤어졌는데 엄마마저 영원히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서 누구보다도 간절해졌을 열여섯 살 소년의 마음을 상상하자 견딜 수 없이 괴롭고 참담해졌다. 한수의 소포를 받은 1998년 11월의 어느 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동이 틀때까지 일기장을 읽었다. 한수와 레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해주길 바랐고, 나는 정말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제때 찾지 못했다. 

 

    한인 교민 부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 그중엔 독일에서 나고 자라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꽤 많았다. 길을 가다 독일인으로부터 "너 독일어를 꽤 잘하는구나"같은 칭찬을 들으면 방어적으로 "당연하지. 난 독일인이니까"라고 하던 한수 같은 이민 2세들. 그 아이들은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한국 음식만큼은 무척 좋아했다. 

    "넌 좋겠다. 너에겐 나라가 하나라."

    언젠가 레나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넌 독일 사람이잖아."

     그 당시 나는 겉보기엔 거의 백인처럼 보이고 완벽한 독일어를 구사하는 레나 역시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느낄 수 있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레나의 마음에 공감하기보다는 레나가 나에게 그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는 생각에 쓸쓸해졌다. 내가 레나의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은 한국에 되돌아온 이후였다. 그때 나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도 마치 독일 사람들 틈에서 그랬듯 종종 홀로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있는 것처럼 느꼈으니까.

     뿌리가 끊어진 사람들. 파독간호사에 대한 논문과 유튜브 영상을 찾아 읽고 보기 시작하면서, 내 눈에 자주 띈 것은 '뿌리가 끊어진 병(Entwuzelungskrankheit)' 이라는 표현이었다. 한 영상 속에서 금테 안경을 쓴 어느 한국인은 처음엔 한국어로 말을 시작했다가 중반부터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독일어로 바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독일에 와서 독일 말을 하고 문화를 받아들이고 독일 남자와 결혼해 독일 국적 아이들을 낳고 살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나에게 어느 나라 출신인지를 가장 먼저 물어요. 나는 아무리 이곳에 오래 살아도 죽을 때까지 이방인인 거죠. 그래서 나는 언제나 고향이 그리워요. 그런데 뿌리 뽑힌 느낌이 드는 건 이제 한국에 놀러가도 마찬가지에요."

 

    루이제 린저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가 문득 '생의 한가운데'를 독일어로 읽고 싶어진 나는 독일 서점 사이트에서 원서를 주문한 후 독자들의 리뷰를 클릭해보았다.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쓴 리뷰를 차례차례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한 리뷰에서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맞닥뜨렸다. "Alles is noch unentschielen. Man kann verden, was man wlll." (아직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처음 이 문장을 보았을 때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 리뷰에서도 같은 문장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고, 리뷰들을 죽 살핀 후에는 많은 독자들이 이 문장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똑같은 문장을 되풀이해서 읽고 나자 이 문장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에서 보았을까? 곱씹을수록 그건 정말 낯익은 문장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침대 옆에 쌓아둔 선자 이모의 일기장을 아무거나 한 권 집어들었다. 최근에 내가 몰두해 읽는 건 선자 이모의 일기뿐이니. 일기장 어딘가에서 본 문장일 확율이 높다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집어든 일기의 첫 페이지에서 선자 이모의 글씨체로 적혀있는 "Alles is noch unentshieden. Mann kann verden, was man will"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영원히 간직할 것처럼 착각하지만 대개 그것들은 서글플 만큼 빨리 옅어진다.

    

   나는 한수가 병원 안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리까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해보았다. 한수는 나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꽤 오랜 시간 용돈을 모았을 것이다. 새하얀 병실에 누워 있는 선자 이모를 바라보며 엄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엄마를 구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괴로울 때마다 나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했겠지. 첫사랑을 찾는다 해서 선자 이모가 다시 건강해질 수 없었기 때문에 한수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렸을 것이다. 서글픈 목소리를 듣자 한수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나뿐인데 내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는 죄책감이 일었다.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조금도 최선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괴로워졌다. 

 

      이모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들려준 건 시간제 의사로 개인병원에 고용되어 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이모는 그 병원에서 터무니없이 적은 보수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는데, 가뜩이나 의사들의 취업난이 심했던데다 외국인 여성인 이모를 받아주는 병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병원이 어떤 장례 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었거든."

    "장례 업체요?"

    "응, 사람이 병원에서 죽으면 그 병원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써 주어서 바로 장례를 치를 수 있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병원에서 죽는 건 아니잖니. 그치만 병원 아닌 곳에서 죽은 사람도 그 서류가 있어야만 장례를 치를 수 있거든. 그러니까 병원 밖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주치의를 부를 수 없을 경우 장례 업체랑 게약된 병원 의사들에게 연락을 해서 와달라고 하는 거지. 그런 연락을 받으면 나는 중고로 산 차를 타고 어디든지 달려가서 시체들을 살피고 사망 진단서를 써주곤 했단다. 죽은 게 확실합니다. 열흘쯤 되었네요. 교통사고로 인한 과다 출혈이군요. 이런식으로. 그러다보니 별의별 시체를 다 보게 되었다. 익사해서 퉁퉁 불은 시체부터, 추락해서 머리가 깨진 시체, 교통사로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시체도.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자동차 바퀴에 쓸려들어가 죽은걸 본 적도 있단다. 사람들이 계절을 골라 죽는 건 아니지만 사망진단서를 요청하는 연락은 유독 여름이 많았어. 많은 의사들이 여름에 휴가를 가니까 그랬을 거야. 나는 언젠가 개인병원을 차릴 돈을 모으고 싶었으니까 휴가 따윈 가지 않고 일을 해야 했지.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의 상당 부분을 여전히 네 외할아버지한테 보내고 있었거든. 동생들 시집 장가 갈 때까지 돈을 보태주는 것이 좋든 싫든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던 어느 여름의 일이었어."

     대부분의 의사들이 휴가를 떠나 먼 지역의 요청까지 이모에게 할당되던 8월의 어느 날, 이모는 그 일을 하며 안면을 튼 경찰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수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수첩에 경찰이 불러준 주소를 받아 적던 이모는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주소가 불과 일주일 전에 사망진단서를 써주기 위해 찾아갔던 집이기 때문이었다. "착오가 아니에요, 선생님." 경찰은 딱하다는 듯한 톤으로 말했다. "이번엔 지난주에 죽은 노인의 딸이 자살을 한 것 같아요."

     놀랍게도 이모는 삼십 년도 더 넘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죽은 노인의 이름은 토비아스 텐들러. 구십 세가량의 노인이 사망했다는 신고를 받고, 너무 자주 펼쳤다 접어 모서리가 나달나달해진 지도 하나에 의지해 이모가 찾아간 텐들러 씨의 집은 가구 수가 적고 근처에 울창한 숲과 밀밭이 펼쳐져 있는 시골의 오두막이었다. 토비아스 텐들러의 사망 진단서를 써준 날로부터 닷새 뒤에 죽은 소피아 텐들러는 노인의 딸이자 사실상 유일한 보호자로, 노인과 연을 끊은 다른 형재자매들을 대신해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결혼도 하지 않고 모시며 그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이모는 소피아 텐들러의 사망진단서를 써주고 집으로 돌아가던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시체를 보는 일은 매번 괴로웠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를 한탄하곤 했지만 그날은 유난히 기분이 이상했다고.

     "일주일 전까지 살아 있던 여자, 평생 돌본 아버지가 죽자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요?' 하며 초면인 나를 붙잡고 울었던 오십대 여자의 뚱뚱하고 뜨겁던 육체가 차갑고 딱딱하게 변해 있는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어."

    소피아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건 이웃집 여자였다. 수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닭에게 사료를 주기 위해 마당으로 나오던 소피아의 모습이 며칠째 보이지 않아 걱정되어 창문 너머로 집안을 들여다보았고, 목을 맨 소피아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왜 스스로 삶을 포기했을까? 마당엔 장작이 쌓여 있고 찬장마다 피클이며 잼이 가득 쟁여져 있었어.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면 그 여자는 겨울까지 살아 있었을 테지. 창고 앞에 쌓아둔 장작이 다 없어질 때까지. 나뭇가지마다 다시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들을 따다 만든 잼을 또 다 먹을 때까지. 그 사람은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죽은 거였어.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삶의 의미를 잃었기 때문에. 그 사실이 나를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했단다."

 

    "그 일을 했던 오 년간 깨달은 건 사람은 누구나 갑자기 죽는다는 거였어. 멀리서 보면 갑작스러워 보이지 않는 죽음조차 가까운 이들에게는 언제나 갑작스럽지. 그리고 또하나는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라는 것."

 

     이모가 손을 뻗어 내가 아이였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모의 손길이 닿자, 나는 오래전 이모의 집 거실에 서 있던 어린아이가 되어 이십 년이 훨씬 넘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여전히 언니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 때가 있다고 상실 이후 시간이 때때로 선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쳇바퀴를 돌듯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이모는 네가 찬란히 살았으면 좋겠어.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고 아까운 거니까."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것. 언니를 느닷없이 떠나보낸 후, 나는 늘 둘 중 더 힘든 것은 전자일 것이라고 확신해왔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울먹이는 한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 앞에서 덜 고통스러운 상황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아는 선배가 하는 기차역 근처 약국에 채용되어 일한 적이 있었거든. 기차역 근처긴 하지만 조금 변두리에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는 않은 곳이었어. 일은 별로 없고, 조그마한 약국은 전면이 유리라 바깥을 구경하는 게 낙이었지. 그런데 한파가 몰려왔던 어느 추운 겨울날 노숙자 한 명이 약국 앞을 계속 왔다 갔다하는 거야. 나가서 왜 그러시냐고 물어보니 너무 추워서 얼어죽지 않으려고 계속 걷는 거래. 따뜻한 약국 안으로 혼자 들어와서 유리 앞에 몸을 드러냈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그 사람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하더라고. 약국에 잠깐 들어와서 몸 좀 녹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마침 나 혼자 근무하는 날이기도 했고, 연말연시에 착한 일 좀 해도 될 것 같았지. 근데 있잖아. 아저씨가 약국에 들어오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닌거야. 왜냐하면 냄새가 너무 지독했거든. 정말 너무너무 지독했어. 가까이 닥올수록 너무 지독했어. 그래서 다음날 그 아저씨가 또 들어와 있어도 되냐고 묻는데 들어오란 말을 할 수가 없었어. 오늘은 안돼요. 그 다음날 또, 오늘도 안 돼요. 그런데 어느 날 출근해서 약국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 앞에 똥이 한 덩어리 있는거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똥이."

    "똥?"

    "응, 똥. 선배가 시시티브이를 돌려봐야 한대서 같이 봤는데, 똥을 누고 간 사람이 그 노숙자였어."

    우재는 무릎을 손바닥으로 몇 번 쓸면서 말했다. 

    "해미야,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상대를 바라보잖아? 그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하지만 가끔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느낀 모멸감을 되갚아주기 위해 인적이 드문 새벽 일부러 찾아와 똥을 누구 간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 똥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들어. 아무리 인간에게 한계가 있다 해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토록 모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자료에만 근거해 누군가를 찾아나가는 것과 직접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듣는 일. 기자로서 취재할 때도 그랬지만 타인의 인생에 흙 묻은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불청객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은 매번 갈피를 차릴 새 없이 흐트러지곤 했다. 

 

    대학교 1학년의 끄트머리, 우래와 내가 단둘이 제주도의 바닷가를 거닐던 그 겨울밤의 풍경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만 들릴 뿐 고요했던 그 밤바다에도 해변을 따라 늘어선 야자수들이 있었다. 아마도 우재와 단둘이 있다는 사실에 달떳던 거겠지만 나는 평소보다 말을 많이 했고, 어떻게든 둘만의 시간을 조금 더 이어나가고 싶었다. 

     "제주도는 정말 한국 같지가 않아. 야자수가 이렇게 만다니. 동남아도 하와이도 아닌데 신기해."

     그러자 우재가 말했다.

     "근데 해미야.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원래 제주도에는 야자수가 한 그루도 없었다?"

     "진짜?"

     "그렇잖아. 생각해봐. 야자수는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제주도가 조금 덥기는 하지만 아열대기후는 아니잖아."

     "그러면?"

     "나도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엔 왕벚나무 편백나무 같은 것들이 길거리에 많았대. 그런데 70, 80년대에 제주도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아름다운 남국의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 야자수들을 정책적으로 수입해 심었다더라. 그래서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야자수들은 열매를 맺지 못한대."

     그 이야기를 오래전 독일에서 살던 시절의 우리 가족이, 무엇보다 나의 이모들이 떠올라버린 건 왜였을까? 황량한 바닷가에 묵묵히 서 있는 야자수들을 보면서, 이국적인 풍경을 위해 뿌리째 뽑아 기후와 토양도 맞지 않는 곳에 심었다니 너무하네. 정말 너무해. 슬프고 사나워졌던 그 밤의 마음은 지금도 선명히 생각난다. 하지만 이제 그보다 더 간직하고 싶은 건 고운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우재가 한 말이다. 

      "그런 야자수들이 살아남아 이젠 제주의 일부가 되었으니, 정말 아름다운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