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파우스트 - 괴테 -

강대원 2024. 12. 11. 19:33
비극 1부

 

지령          삶의 흐름 속에, 일의 모진 바람 속에,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이리저리 오락가락 누비며 탄생과 무덤, 영원한 바다, 변하는 인생, 불타는 생명, 이렇게 시간이라는 어수선한 베틀에 앉아서 신의 살아 있는 옷을 짜고 있다.

 

파우스트   그저 우두커니 앉아서 주워 모은 조각을 아교로 붙이고, 타가 남은 잿더미를 긁어모아 보잘것없는 불꽃을 일으켜 봤자 어린애나 원숭이라면 감탄할런지도 몰라. 그것이 자네 소원이라면 별문제 없겠지만, 그러나 자네의 마음 속에서 오러나온 것이 아니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지는 못하지. 정직한 태도로 성공을 기다려야 되지. 방울을 흔들고 돌아다니는 어릿광대처럼 바보가 돼서는 안 돼. 명석한 두뇌와 성실한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연설을 할 수 있지. 진실하게 할 말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언사를 꾸며 댈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 자네들의 연설이란, 인생의 종이 조각을 구겨 놓은 것처럼 겉만 번지르하게 번쩍거리지만, 마치 가을에 가랑잎을 와스스 스쳐가는 축축한 찬바람처럼 기분 나쁜 것일세. 

    우리들의 정신이 획득한 가장 훌륭한 덕성에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질적인 불순물이 달라붙는다. 우리들이 세상의 선에 도달하고 나면, 더욱 선한 것이 허위나 환상이라고 부른다. 

    우리들의 생활에 영혼을 부여해 준 아름다운 감정도 어수선한 속세의 혼잡 속에서 굳어져 버린다. 

    평소에는 공상이 대담한 활개를 치고, 희망에 부풀어 영원까지 훨훨 날아가다가도, 거대했던 행복이 하나씩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서져 가면 그 공상도 작은 공간 속으로 움츠러든다. 그러면 갑자기 가슴속 깊숙이 근심이 깃들고, 거기에 남몰래 고통이 싹트기 시작하며 불안에 몸부림치면서 기쁨과 안식을 깨트린다. 

 

파우스트   우리들이 지금까지 흔히 보아 온 일이지만, 사람은 자기가 이해 못하는 것을 비웃고, 종종 자기를 귀찮게 하는 일에 부딪히면 착함과 아름다움을 보아도 투덜거린다. 개도 마치 사람처럼 이렇게 으르렁거리는 거냐?

 

메피스토텔레스   나는 그저 약간의 진리를 말했을 뿐이다. 사람은 어리석어서 작은 체계를 이루고 있을 뿐인데, 언제나 스스로를 전체라고 생각하지. 나는 부분 중하나의 부분인데, 처음에 전체였다가 나중에 부분이 된, 저 광명을 낳은 암흑의 한 부분이다. 

    교만한 광명은 이제 그 어머니의 밤을 상대로 하여 낡은 지위, 즉 공간을 빼앗으려 다투고 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이 잘 안 되는 것은 광명이 물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광명은 물체에서 흘러나와 물체를 아름답게 하지만, 물체는 광명의 진로를 가로막으니, 그래서는 공명이 물체와 더불어 멸망하게 되는 날도 머지않으리라고 생각되는데...

 

메피스토텔레스   세월은 유수 같으니 시간을 아끼게. 그러나 계획을 세워서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면 시간을 벌 수 있지. 친애하는 학생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하겠는데, 우선 논리학을 듣도록 하게.

     그러면 자네 정신이 훈련되어 마치 스페인의 장화가 종아리를 죄듯 덕분에 길을 걷는 데도 조심스럽게 가만가만 걷게 되고, 도깨불처럼 정신 없이 비틀거리며 날아다니지 않게 되지. 

     그 다음에 얼마 동안 배워야 할 것은, 지금까지 무엇이든 단숨에 해치우던 일을 하나, 둘, 셋 질서를 세워서 하도록 수양하는 거야. 

     사실, 사상(思想)의 공장도 베짜는 훌륭한 솜씨와 다름이 없어. 

     한 발을 디디면 수천의 실이 움직이고 조그만 북은 왔다갔다하고, 실이 흐르는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한 번 치면 수천의 매듭이 생기는 것과 같은 것이야. 

      철학자가 걸어 나와서, 이것은 이래야 한다고 증명해 준다. 첫째는 이렇고, 둘째는 이러니 셋째, 넷째는 이러이러하다. 만일 첫제와 둘째가 없다고 하면, 셋째, 넷째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이런 이론은 어디서나 학생들은 찬양하지만 아무도 훌륭한 직조공이 된 사람은 없네. 누구나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고 기술하려고 하면, 으레 정신을 그 속에서 몰아내려고 하지. 그럼 부분적인 것들은 손아귀에 넣게 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신적 맥락이 통하지 않아. 그것은 자네가 모든 것을 근원으로 환원하여 같은 속성끼리 분류하는 법을 배운다면 차차 지금보다 더 잘 알게 될 걸세.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을 배워야 하네. 그러면 사람의 머리로써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도 심오한 뜻으로 파악할 수 있네. 

     머릿속에 들어맞는 것이나 들어맞지 않는 것이나, 훌륭한 용어가 마련되어 있어서 편리하지. 그러나 처음 반 년 동안은 모든 질서를 성실히 지키도록 하게나. 매일 다섯 시간 강의가 있는데 종소리와 더불어 바로 강의실에 들어가야 되네.

     미리 예습을 잘 해 두어야 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을 잘 공부해 두게.

 

비극 2부 1막

 

메피스토텔레스          행복에는 수고가 따른다는 것을 바보들은 언제까지나 깨닫지 못한다. 설사 그들이 현자(賢者)의 돌을 손아귀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돌일 뿐이고 현자는 찾아볼 길조차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