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노트

원더풀 사이언스 - 분자생물학

by 강대원 2024. 8. 16.
분자생물학 : 세포와 부속품 (Molecular Biology : Cells and Whistles)

 

세상에는 세균들이 넘친다

 

   세균은 어디에서나 산다.  도저히 생명체가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세균은 산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도 세균은 있고 해저 깊은 곳에도 세균은 있다. 극지방의 빙관에도 세균은 있고 펄펄 끊는 열수공에서도 세균은 있다. 세균은 지하 깊은 곳에 묻혀 있는 바위 속에서도 살며, 중금속과 유출된 석유도 빨아먹고 러브 운하에서도 수영을 할 수 있다. 정말 잘 어울리게도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듀란스(Deinococus radiodurants('방사선을 잘 견디는'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세균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사능보다 1,500배나 강한 방사선도 견뎌내며 끈질긴 생존의 대가인 바퀴벌레가 견딜 수 있는 것의 15배가 넘는 화력도 견딜 수 있다.

    세균 세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다. 세균은 자신 속에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화학물질, 부품, 상태 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으며, 자신의 세포적 소명을, 30억 년 전 세포가 처음 탄생한 순간부터 휴가를 즐기거나, 규칙을 어기거나, 지나치게 커지거나, 누군가를 능가하려 하건, 시대에 뒤지거나, 완전히 사라지는 일 없이 변함없이 자신의 사명을 달성해온 수많은 성공 사례를 담고 있다. 이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성과이며 생물학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원리이다. 일단 최초의 세포가 만들어진 뒤로는, 즉 여러 물질이 모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하나의 개체로 거듭난 뒤로는, 다시 뒤로 돌아간 경우도, 세포가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진 경우도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세포

 

   세포들의 유전암호를 조사해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포들이 여러 개의 조상에서 각자 갈라져 나와 다른 경로를 밟아온 후손들이 아니며 모든 세포가 하나의 공동 조상 세포에서 나온 후손들임을 알고 있다. 세포들의 내부 구조도 같은 사실을 말한다. 세균 세포든 옥수수 ㅅ포든 초파리이든 간에 생명체의 세포 구조는 모두 같다. 어떤 장소에 서식하건 간에 세포는 자신이 생명체의 보편적인 기본 단위이며 그토록 완벽하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를 확실히 알려주는 일련의 특징들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인다. 어떠한 종이든 세균 하나를 택해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내부 구조는 모두 같아서 모든 세균이 같은 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학물질의 구성 상태나 산과 염기의 균형 상태도 세균의 종류에 상관없이 거의 비슷하다. 세균 세포의 내부는 또한 우리 인간의 간이나 심장 세포의 내부 인테리어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인간뿐 아니라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의 세포 내부 환경과도 거의 비슷하다. 이것이 세포가 가진 힘과 아름다움이자 현대 생물학의 가장 획기적인 통찰력 가운데 하나이다. 세포는 자기 자신을 피난처로 만듦으로써 외부 세상의 거침과 불안정에 맞섰다. 세포는 움푹 들어간 자신의 내부 공간을 따듯하고 촉촉하게 유지하고 경계 안쪽을 질서 정연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갖추고 있다. 균형 잡힌 빈틈없는 내부 구조에 더해 최상의 성능을 자랑하는 단백질과 효소라는 엄청난 능력의 일꾼을 갖춘 세포는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세상에 세포보다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세포는 살아 있고 숨 쉬고 먹어야 하며 노폐물도 만들고 필요할 때면 증식도 해야 한다. 세포의 아름다움과 힘은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세포는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미끈미끈한 방수복인 바깥의 세포막이 있다. 이는 세포와 주변 환경을 분리시켜준다. 둘째로 끈쩍끈적한 내부는 세포질로 세포의 거의 대부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동 명령이 담겨 있는 매뉴얼이자 내일로 가는 기차표, 세포의 유전물질인 DNA 저장소까지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을 비롯해 단 몇 개에 불과할지라도 한 개 이상의 세포가 모여 생명체를 이룬 다세포 생물의 DNA 는, 크기는 더 작지만 성분과 구조는 세포막과 동일한 이중 막으로 둘러싸인 안락한 핵 속에 들어 있다. 반면 단세포 생물인 세균의 DNA 는 세포질 속에 골고루 퍼져 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DNA 가 들어 있는 형태를 가지고 우리 셒와 세균 세포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핵막이 있는 세포를 우리는 진핵세포 (eukaryote cell)라고 한다. 'eu'는 '진짜' 혹은 '좋은'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karyote' 는 당연히 DNA 가 들어 있는 '핵'을 뜻한다. 세균을 비롯한 단세포 생물의 세포는 원핵세포(prokaryote cell) 라고 하는데, 'pro'는 'professional' (전문적인)  이라고 할 때의 pro 와는 전혀 상관 없으며 'pre'(원시적) 에서 온 뜻이다. 그러니까 원핵세포란 핵막을 가진 '좋은' 세포보다 십억 년 전에 지구를 더럽힌 원시 세포란 뜻이다. 

 

 

 

달걀이 하나의 세포라고

 

   핵막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나머지 세 부분은 세포라면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세포의 3대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예 하나가 바로 달걀이다. 달걀은 세포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막이 있고 우리가 노른자위라고 부르는 먹을 수 있는 끈적끈적한 세포질이 있다. 또 수정란이 아닐 경우에는 체세포 유전자의 절반밖에 들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어쨋든 반일지라도 분명히 유전물질을 지니고 있는 세포이다. 나머지 절반의 유전물질을 지닌 정자가 핵 속으로 들어와 세포분열을 통해 배아로 발생하기 전까지는 달걀은 분명 단 하나의 세포이다. 달걀이 단세포임은 마구 휘저어보면 알 수 있다.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세포는 또 있다. 대부분의 세균 세포는 지름이 수백만분의 1 미터에 불과해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간신히 보일 정도지만, 나미비아 해안에서 처음 발견되고 황을 좋아해서 나미비아 유황 진주라는 의미의 티오마르가리타 나미비엔시스(Thiomargarita namibiensis)라는 이름이 붙은 세균은 지름이 몇 밀리미터에 이를 정도로 크기 때문에 육안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커다란 세포는 극히 예외적인 예일 뿐이고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아주 작은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은 물론이고 코끼리도, 이 세상에 등장한 생명체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하는 흰긴수염고래의 세포도 모두 1만분의 1센치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크기가 작으면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홉킨스 대학교의 신시아 올버거는 설명했다. 작은 것은 관리하기 쉽ㅈ다. 작은 것은 유연하다. 세포는 내부 공간을 주변 환경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바깥세상과 달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한 개의 세포가 감독해야 할 공간이 적으면 적을수록 내부 조직을 좀더 조직적으로 빈틈없이 역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기업들도 이런 가르침을 거듭 되새겨, 작고 긴밀히 협력하되 반쯤은 자율적인 소규모 조직이 가지는 활력과 융통성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다. 개별적인 담당 영역이 작고 한정적이라면, 다국적 기업이 여러 나라를 좌우하는 골리앗 같은 괴력을 지니면서도 다윗의 교활함 역시 함께 가질 수 있다. 

   우리가 74조 개나 되는 세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할지도 모르지만, 세포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듣고 있으면 마치 외계 언어를 듣는 듯 당황스럽고 낯설게 느껴진다.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면 우리는 단백질을 만드는 납작한 주머니인 거친 소포체 (endoplasmic reticulum) 에게 두들겨 맞거나, 단백질은 저장하거나 필요할 때면 단백질의 화학 구조를 바꾸는 납작한 주머니인 골지체에 긁히거나, 아니면 리소좀, 리보솜, 미토콘드리아들에게 연거푸 구타를 당한다. 이런 작은 존재들을 몽땅 다 세포소기관(organelles) 이라고 부른다.

 

 

단백질은 죽은 고기가 아니다

 

   생명의 기본 단위에는 가장 중요한, 움직이고 흔들리고 잡아당기고 먹고 배설하는 등의 모든 기능을 맡고, 또한 세포 자체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분자가 있다. 바로 단백질이다. 사실 세포를 이해한다는 의미는 단백질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단백질은 생명체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원소인 탄소, 산소, 수소, 질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쪽 긑에 각기 다른 전하를 띠는 손잡아를 가진 독특한 구조 덕분에 일렬로 쭉 늘어설 수 있는 아미노산이 조합된 것이다. 분자 하나가 (+) 와 (-) 의 양극을 모두 디고 있는 특성 덕분에 아미노산은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구조를 만드는 데 이상적이다. 세포는 직접 마들거나 음식물에서 추출해낸 아미노산을 가지고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새로 만들어진 단백질들은 아미노산이 몇 개밖에 연결되지 않은 잛은 펩티드부터 연결된 아미노산의 개수가 수천 개 에 달하는 긴 단백질 사슬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가 아주 다양하다. 

   단백질의 크기보다 아미노산이 접히고 구부러지고 뒤틀리고 지그재그로 엉키면서 만들어내는 단백질의 입체 구조가 훨씬 더 중요하다. 흔히 단백질을 세포의 작은 기계라고 부르는데, 이 산업적이고 투박한 용어는 단백질이 보여주는 우아한 곡선과 아름다운 탄력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단백질의 형태는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한다. 단백질의 특정한 모양과 양전하와 음전하가 분포되어 있는 방식에 따라 단백질은 저마다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단 한 개의 세포 속에 들어 있는 단백질만 해도 54만 여 종에 달한다. 단백질은 대부분 단단한 부분과 쉽게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한 부분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일생 동안 비교적 별다른 변화 없이 그 모습을 유지하는 영역과, 임무에 따라 이웃하는 분자의 자극에 반응해 보양을 바꾸는 부분이 있는 셈이다. 

 

단백질은 무엇을 할까

 

   단백질들은 대부분 효소이며, 평상시라면 다로 떨어져 있는 물질들을 함께 묶어서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활성화시키거나 화학 반응의 속도를 높이는 일을 하며, 또는 다른 단백질의 모양을 바꾸어서 과감한 모험에 뛰어들거나 화학 반응에 불을 붙이도록 자극한다. 효소는 저마다 모두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한 종류의 효소에 영향을 받는 분자는 세포 내에 한 개밖에 없거나 한 개 이상이라도 지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효소가 기질이라고 불리는 목표 분자와 결합하면 자신들이 명령받은 특별한 변형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간세포 속에는 콜레스테롤의 고리를 인식할 수 있는 형태의 효소가 있는데, 이 효소의 걸쇠가 기름진 콜레스테롤 고리에 걸려야만 콜레스테롤을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 같은 몸이 필요하는 성 호르몬으로 바꿀 수 있다. 또한 간세포가 분비하는 효소 중에는 염분이나 산, 콜레스테롤, 지방, 색소들과 결합해 씁쓸한 황갈색 소화액인 담즙을 만드는 효소도 있다. 게다가 간세포는 우리가 체면을 지켜주는 효소도 분비한다. 잔뜩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토악질을 하거나 고성방가를 하기 전에 지독한 폭탄주를 독성이 없는 작은 분자로 분해해주는 알코올 분해효소가 바로 그것이다. 

    백혈구가 분비하는 효소는 바이러스 껍질을 녹이고, 췌장에서 분비하는 효소는 혈액을 걸쭉하게 만드는 혈당을 조절하며, 신경세포가 분비하는 효소는 뇌로 들어가는 화학 신호를 만들며, 생각하고 느끼고 어떤 일을 하게 만들며, 어떤 일을 한 것을 후회하게도 한다. 심할 경우에는 우울증까지도 일으킨다. 

    직접 효소로 작용하는 단백질 말고도 세포 골격(cytoskeleton)이라고 하는 실처럼 생긱 구조 단백질도 있다. 구조 단백질은 몸을 지탱하는 뼈가 그렇듯 세포의 모양과 구조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며, 뼈 조직이 그렇듯이 전혀 타성적인 조냊가 아니어서 아주 혈기왕성하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세포 속에 들어 있는 몰질들이 밖으로 튀어나가지 못하게 세포의 경계를 관리한다. 

 

 구조 단백질 가운데 가장 유명한 단백질은 액틴이다. 액틴은 세포의 대들보와 도리 역할뿐 아니라, 다른 세포의 단백질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수송하는 역할도 하고, 세포 속에 만들어진 쓰레기를 들어 혈관 밖으로 버리는 역할도 하며, 한 개의 세포가 두 개의 세포로 증가하는 정교하고도 복잡한 작전을 수행할 때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키도록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근육 세포 속 액틴은 도 다른 구조 단백질인 미오신과 협력해 아령을 들어올리거나 음식물 덩어리를 목구멍으로 넘길 때 처럼 수축 운동을 할 때면 근육 세포를 잡아당기고, 운동을 끝내거나 음식물을 다 삼키고 나면 근육 세포를 놓아주는 역할도 한다. 

   '효소(enzyme)'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발효시키는 것'이라는 뜻으로, 빵과 포도주를 발효시키는 효모 단백질에 어원적인 경의를 표하는 단어이다. '르하임(L'chaim) 또한 '자임(zyme' 과 어원이 같다고 여겨진다. 유대인들이 축제에서 발효주를 높이 치켜들며 외치는 이 말은 간단히 말하면 '삶에게'라는 의미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생물학자 톰 마니아티스는 세포의 가장 윗부분을 벗겨내 안을 들여다 보면 개미집이나 벌집 같은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 말한다. 세포와 세포핵을 감싸고 있는 세포막에는 분자들의 출입을 조절하기 위해 열고 닫을 수 있는 구멍과 수로가 있고, 세포질 곳곳에는 소포체라고 하는 거품처럼 생긴 헐렁한 자루가 있어서 세포 속 액틴의 이동 경로를 따라 움직이다가 분자에게 달려들어 맞춤 제작한 구속복을 입히고 다른 장소로 데려가 뱉는다. 또 다른 무시무시한 자루인 리소좀은 세포의 작은 위라고 할 수 있는데 세포 속의 쓰레기는 무엇이든지 집어 삼킨 후 산으로 완전히 녹여버린다.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벌집 같은 세포 속에서, 단백질은 서로 셋, 여셧, 혹은 열 개씩 짝을 져 단백질 복합체라는 형태로 함께 몰려다닌다. 지난 몇 년 동안 생체 세포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점점 더 많은 동의를 얻고 있는 주요 주장 가운데 하나는 단백질은 대부분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한데 모여 단백질 중합체라는 형태로 활동하기 때문에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효소의 특징과는 전혀 다른 특징들을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백질들의 연합은 유동적인 데다 쉽게 바뀔 수 있다. 

 

우리들은 언제나 DNA 를 먹는다

 

   동일한 종류의 DNA 를 가진 세포가 저마다 다른 단백질을 만드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핵이라는 소파에 앉아 응석을 부리고 있는 DNA 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돌돌 말린 DNA 분자를 쭉 잡아 늘리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만큼의 길이가 된다. 그렇게 DNA 는 아주 조그만 핵 속에 엄청나게 돌돌 말린 상태로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왠만한 단백질 분자에 비해서는 수백 배 더 크다. 그러나 몸집만 클 뿐 DNA 는 아주 단순한 분자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단백질에 비하면 정말로 간단한 형태를 하고 있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스무 개 정도 정도 된다. 단백질은 스무 개 정도 되는 아미노산 가운데 필요한 것을 택해 서로 섞고 연결해 만들어지지만, DNA 는 놀랍게도 염기라고 하는 단 네 개의 분자만을 가지고 골격을 만든다. 이 네 염기의 정식 이름은 시토신(cytosine), 구아닌(guanine), 아데닌(adenine), 티민(thymine)이지만 보통은 이름 대신 알파벳 첫 글자를 딴, C, G, A, T 라고 쓴다. 네 염기 모두 생긴 모습은 다르지만 질소와 탄소가 고리를 이루는 간단한 구조라는 점과 당과 인산이 결합해 만들어낸 빼대 속에 들어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질소와 탄소로 이루어진 고리는 동료를 찾기 위해 자신들의 뼈대 밖으로 나온다. 어쨋든 DNA 는 이중나선 구조이며 이는 두개의 당-인산 뼈대에 붙어 있는 두 가닥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한쪽 가닥에 붙어 있는 C, G, A, T 들은 각각 다른 염기와 상을 이루어 마주 보고 있으며 두 염기 사이를 약한 수소결합이 이어주고 있다. 그런데 쌍을 이루는 염기는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붙는 것이 아니다. A는 언제나 T 와 짝을 맺고 C는 언제나 G 와 짝을 맺는다. 이렇게 염기들이 정해진 짝과 제대로 결합해야만 DNA 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안정된 형태의 나선형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아데닌과 구아닌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고 티민과 시토신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다. 몸집이 큰 염기와 작은 염기를 짝지어줌으로써 균형잡힌 배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생명의 요리법

 

   30억 개의 염기 가운데 흩어져 있는 3억 개 정도의 염기만이 유전자라 할 수 있다. 이 핵심 화학 서열들이 우리 모므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암호를 담고 있다. 이들은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요리법, 공식, 마법의 주문이앋. 유전자를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C, G, A, T 라는 네 개의 문자로 적혀 있는 단백질 요리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전자 암호는 세 개의 염기가 한 조가 되어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한다. CAT 라는 유전자 암호는 보통 히스티딘이라는 아미노산을 만드는 요리법이다. 마찬가지로 CTT  라는 요소리법이 모이면 발린이라는 아미노산을 만든다. 염기쌍 중에는 '여기부터 요리법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게시 암호를 담당한 염기쌍도 있고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이제 요리법이 끝남'을 알려주는 종결 암호도 있다. 

   그러나 단백질 대분이 순서대로 쭉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한 유전자의 다른 부분, 즉 요리법의 다른 단계가 거대한 DNA 분자 여기저기에 따로 새겨져 있고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순간에야 한 맥락에서 암호를 '읽을' 수 있다. 정크 DNA 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유전자들이 유전자들 사이뿐 아니라 한 유전자 안에도 끼어 들어가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 게놈 해독을 상당 부분 마무리 지었지만 염기서열 해독은 고작 개시 암호인 ACT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 그 뒤는 아직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아직 우리는 인류의 DNA 가 얼마나 많은 유전자를 품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신체가 생산하는 단백질의 종류는 2만 5천 종이 넘는다고 하며, 그 수가 20만에 이를 것이라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 유전자 하나가 단백질 하나를 만들 것이라는 깔끔한 짐작은 설 자리를 잃었다. 실제로 유전자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와 같은 문장과 같다. 문장 내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바꾸어 완전히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듯이 세포 속의 눈치 빠른 감독관은 몸 안의 유전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낸다. 이런 감독관 역할을 하는 단백질은 몸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의 종류를 재빨리 파악해 DNA 분자로 다가가 필요한 단백질 생산을 개시하게 한다. 

 

암호를 해독하라

 

   책 속에 든 내용을 읽으려면 반드시 책을 펼쳐야 하듯이 필요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중나선 구조를 쪼개 그 속에 감춰진 지시사항을 읽어내야 한다. 췌장 세포 속에는 배배 꼬인 거대한 DNA 의 어디쯤에 더 많은 인슐린을 단계적으로 만들라는 명령이 적혀 있는지 아는 단백질이 있다. 어떤 방법으로 30억 개나 되는 염기쌍 더미 속에서 정확하게 지시사항이 적힌 부분을 찾아내는지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그런 단백질이 있다는 사실, 인슐린 암호를 찾아내는 인식 단백질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 단백질은 명령서가 있는 DNA 부위에 붙어서 꼬인 나선 가닥을 풀고 이중 나선 가닥을 두 가닥으로 분리해 염기를 벌린 입 사이로 보이는 치아처럼 밖으로 드러나게 한다. 일단 이중나선 가닥이 벌어지면 또 다른 단백질들이 펄쳐진 나선 안으로 들어가 인슐린을 ㅁ나들기 위해 필요한 정보인 염기 암호를 수집한다. 인슐린을 만들 때 단백질들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인슐린을 만드는 법이 실린 부분을 복사하는 것이다. 이 복사본을 인슐린 유전자의 RNA 메시지, 과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령(메신저)  RNA(mRNA) 라고 한다. 단백질들은 벌어진 DNA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점자책을 읽듯이 촉감으로 그 부분을 해독해낸 후 세포에 들어 있는 여분의 염기를 가지고 와 전령 RNA를 만들어낸다. 전령 RNA 는 단 하나의 예외가 있을 뿐 원본 DNA 와 거의 유사하게 생겼다. 전령 RNA 에는 DNA 를 구성하는 티민 염기 대신에 티민과 비슷한 친척 염기인 우라실(U)이 있다. 전령RNA 가 최종적으로 단백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유전자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쓸데없는 암호를 삭제하고 진짜 인슐린 합성 유전자만을 하나로 잇는 편집 단백질의 교정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교정 과정을 거쳐 깔끔해진 전령 RNA 는 세포 속에 있는 수많은 리보솜 가운데 한 곳으로 이동하고 리보솜과 RNA 덩어리는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전령 RNA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리보솜도 촉각을 이용해 RNA 의 유전암호를 읽어낸다. 리보솜은 세 염기가 한 개의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호출부호를 스캔해낸다. 물론 T 가 U 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곳 단백질 생산 공장에서는 히스티민을 만드는 암호는 CAT 가 아니라 CAU 이며 트립토판을 만드는 암호는 TGG 가 아니라 UGG 이다. 전령 RNA 의 암호를 읽은 리보솜은 필요한 아미노산을 찾아 나선다. 다신의 세포는 일종의 벼룩시장과 같아 단백질을 만들 재료와 RNA , 다른 단백질, 새로운 DNA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인ㅅ슐린을 만들려면 리보솜이 110개의 아미노산을 가져와야 한다. 110개의 아미노산을 순서에 맞춰 늘어세우고 나면 리보솜은 손을 떼고 새로 만든 단백질이 제 갈 길을 가도록 한다. 리보솜에서 벗어난 아미노산 사슬은 주변에 있는 단백질들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은 채 스스로의 힘으로 종이접기처럼 정해진 방식으로 구부러지고 접히면서 입체 구조를 만들어간다. 

 

세포는 힘이 세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세포 속에서 1초 동안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양은 2천 개 정도 되며 하루 단위로 봤을 때는 한 세포당 1억 7천 3백만 개가량의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한 사람의 전체 체세포는 74조 개 정도이니 당신이 하루에 만들어내는 단백질의 양은, 1.28x10^21개나 된다. 이토록 많은 단백질을 생산하는데도 우리 세포가 터지거나 갈라지지 않는 이유는 만들어내는 양만큼 단백질을 가차 없이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포는 단백질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분해되기도 한다. 세포가 만들어내는 단백질 가운데 상당수는 다른 분해 효소를 포함해 다양한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들이다. 효소 중에는 콜라겐 섬유와 뼈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분해하는 효소도 있다. 세포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은 보통 하루에서 이틀 정도 밖에 살아남지 못하며 사실 리보솜에서 태어나자마자 분해되고 마는 단백질도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신경생물학자인 메리 케네디는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 의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동적 평형이란 세포처럼 고도로 복잡한 생물계를 이루는 구성원들은 정확하면서도 느슨하게 결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효소는 자신이 목표로 삼은 분자와 정확하게 결합해야 하며, 비슷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결합하면 안 된다. 

    케네디는 효소는 정확한 동시에 유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경우에 따라서 유연함의 정도도 달리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떨 때는 아주 단단하게 달라붙어야 하고 어떨 때는 조금 유연하게 어떨 때는 아주 유연하게 달라붙을 수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DNA  분자의 유연성은 중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케네디는 정확하되 유연함을 가지는 동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면 '시스템 내 모든 단계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조절과 피드백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세포가 이 특별한 정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얻는 한 가지 방법은 한꺼번에 수많은 단백질과 전령 RNA 들을 내부에 두는 것이다. 거주자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세포 안은 굉장히 비좁겠지만, 덕분에 필요한 것들을 필요한 대에 즉각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이 비좁기 때문에 만들어지는만큼 예전 것들은 분해되어야 한다. 세포가 기름을 칠한 듯 매끄럽게 일할 수 있는 것은 새 단백질을 다양하게 많이 만들어내고 오래된 것들은 처분하는 시스템 덕분이다.

    끊임없이 단백질을 생산하고 파괴하는 것은 단백질의 행동을 조절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많은 단백질이 이마에 조건부 만료 일자를 찍은 채 태어난다. 외부에서 아직 사라질 때가 아니라는 지시가 오거나 다른 일에 쓰이지 않는 한 단백질들은 대부분 생성되자마자 사라질 운명이다. 이 같은 방식은 특히 세포 분열을 시작하게 하는 단백질처럼 가장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단백질들이 도를 넘지 않고 규칙을 지키게 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분열하기 쉽고 빨리 반응해야 하는 단백질, 이를테면 바이러스가 침입한 초기에 곧바로 복제를 시작하는 면역 세포 같은 것이 있다고 해보자 그렇지만 동시에 아무 때나 자기 마음대로 세포 분열을 시작해서 복제된 단백질이 세포 주위를 무작정 떠돌아다니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해결 방법은 이것이다. 단백질을 지속적으로 합성하되 불안정한 상태로 두는 것. 단백질이 안정한 상태로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세포 속으로 단백질을 성장시킬 적당한 성장 호르몬이나 단백질과 결합할 다른 분자가 들어와야 한다. 

   간세포 속에 들어 있는 DNA 는 뇌나 혀, 췌장, 방광 세포의 DNA 와 전혀 다를 것이 없으며 모든 세포 속에 들어 있는 DNA는 몸속 어디에 속하든지 정확하게 그에 맞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시사항을 모두 갖고 있다. 사실 세포 속에서 DNA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의 대부분은 세포가 속한 장소에 상관없이 거의 비슷한 일상 업무이다. 체세포라면 반드시 DNA 암호 일람표를 이용해 흡수한 음식을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연료로 바꾸는 크레브스 회로를 가동시킬 단백질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한 체세포라면 누구나 망가지거나 변이를 일으킨 DNA 를 수선할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DNA 암호 일람표를 펼쳐봐야 한다. 

    그러나 DNA 암호 일람표에는 특별한 암호들도 있다. 이런 암호는 모든 세포의 암호 일람표 속에 똑같이 들어 있지만 펼쳐보는 세포는 소수에 불과하다. 방광 세포의 게놈 속에도 인슐린을 만들 때 필요한 암호가 들어 있지만 소변보기가 어렵다고 해서 방광이 인슐린 만드는 비법을 펼쳐보지는 않는다. 이론적으로 췌장 세포는 디저트 속에 들어 있는 쓴맛을 느끼는 미각 수용체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지만 복강 뒤쪽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망치처럼 생긴 이 분비샘은 그보다는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한다. 체세포가 조직마다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이유는 DNA 가 다르게 가동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활동하는 유전자와 입을 다물고 있는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유전자의 전원을 켜겨나 끄는 역할을 맡은 노당자들이다. 뇌 세포 속에 들어 있는 단백질은 DNA 분자에 달라붙어 그 위에 적힌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만들라는 지령을 복사해 꼬불꼬불한 피질을 가로질러 그 신호를 전달한다. 

    어째서 세포가 서로 달라지고 각자의 위치에 알맞은 특수한 임무를 어떻게 인식하게 되는지에 대한 해답은 대부분 배아 발생이라는 수수께끼 속에 숨겨져 있다. 난자와 정자를 결합해 생명의 첫걸음을 내딛었을 때, 경이로운 능력을 지닌 수정란은 본질적으로는 단 하나의 세포에 불과했지만, 자신의 미래를 모두 알고 있었고 모든 기관으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배아가 자라나 세포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 점차 세포들은 집단을 이루고 층과 구역이 생겨나면서 원시 기관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한다. 세포의 수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다리나 신장, 폐처럼 특정한 임무를 띤 기관의 일원이 되어갈수록 세포의 행동과 가능성에 더 큰 제약을 받는다. 세포 분화가 진행되어가면서 각 세포 속에 들어 있는 게놈은 조금씩 미묘한 변화를 겪는다. 간의 일부가 될 운명을 타고난 세포는 간의 활동에 필요한 유전자 암호가 서서히 활동적인 상태로 바뀌게 된다. 

   간세포가 자신이 간세포임을 알게 되는 이유는 배아 발생 동안의 조기 교육과 더불어 주변에 있는 세포들이 매일 매순간 자신이 간세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세포막에는 쭉 뻗은 팔처럼 밖으로 튀어나온 수용체 단백질이 수백 개 내지 수천 개 정도 있다. 각 수용체들은 저마다 제각기 다른 호르몬이나 성장 인자 같은 특정한 분자와 결합한다. 자신과 모양이 맞는 분자와 결합하면 수용체 단백질은 세포막 아래 전체에 확실히 전달할 수 있게끔 자신들의 형태를 분명하게 변화시킨다. 세포는 분자 서한을 혈액이나 림프액에 띄워서 몸의 다른 부분으로 보낸다. 뇌에 자리 잡고 있는 뇌하수체의 세포들은 난소 세포를 설득해 난자를 성숙시키거나, 정소 세포를 설득해 새로운 정자를 만들어낼 성호르몬을 분비한다. 면역계의 대식 세포는 몸속으로 침입한 알르레기를 유발하는 위험한 물질을 만나면 주변 조직에 히스타민이라는 화학물질을 화학물질을 뿌린다. 대식 세포 주변에 있다가 히스타민 세례를 받은 세포의 수용체는 즉시 그 신호에 반응해 눈을 붓게 하고, 콧물이 나오게 하고, 여러 차례 재채기를 나오게 하고, 천식처럼 씩씩거리게 하는 등 몸에서 불쾌한 반응을 유발한다. 

    물리적인 자극을 받은 수용체는 강력한 호르몬 신호를 받았을 때처럼, 세포 내부의 단백질을 재배치하고 핵으로 이어지는 화학적 신호를 내려 보낸다. 상처를 입게 되는 순간 상처 주변에 있는 세포들은 자극을 받고, 서로 잡아당기고 뻗어나가면서 상처를 치료해나가기 시작한다. 반대로 세포 속으로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세포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살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자살 프로그램으로 죽은 세포의 쭈글쭈글한 세포막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주변에 있는 건강한 세포들도 같은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서로에게 귀를 귀울이며

 

   세포들은 반드시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언제 분열을 시작하는지 알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몸의 많은 체세포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분열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 세포들의 기본 방침은 성장이라서 다른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 한 세포들은 성장하려 한다. 그래서 세포가 다른 세포들에 보내는 화학 신호의 대부분은 바로 성장 억제를 명령하는 신호이다. 성장을 억제하는 신호가 없는 동시에 성장을 촉진시키는 신호를 받아야만 하는 세포는 다양한 단백질 집단이 수행하는 분열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유전자 암호를 읽을 때처럼 세포가 분열할 때도 DNA 이중나선 가닥이 벌어져야 하는데, 이때는 일부가 아니라 DNA 전체가 갈라져 모든 염기가 밖으로 드러나야 한다. 밖으로 드러난 30억 개나 되는 염기는 철자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가면서 상보적인 짝염기를 찾아 새로운 이중나선 가닥을 두 개 만든다. 염기를 짝짓는 일이 모두 끝나면 모(母)DNA 와 이 엄마를 똑같이 닮은 딸 DNA 라는 무거운 두 분자를 각각 핵의 반대편 모퉁이로 가져간 후 핵 가운데 부분이 갈라져 완전한 DNA 가 들어 있는 작은 두 개의 핵으로 나뉘고 곧이어 세포도 완전히 반으로 갈라진다. 세포는 단백질 생산을 사랑하듯이 쪼개지는 일도 사랑해서 잘 조절된 방법으로 정말 아주 잘 해낸다. 

   세포가 분열하고 DNA가 복제될 때마다 실수가 생긴다. 구아닌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티민이 들어가거나 A 대신 C  가 들어가기도 한다. DNA를 복제;할 때 일어나는 실수는 세포 분열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교정 단백질이 발견해 고쳐나간다. 몇 가지 실수는 그냥 교정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하는데 그런 곳은 해가 없는 부분이라 그대로 놔두어도 대부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따금 심각한 변이를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어서, 분열 후 생긴 딸세포 속에는 암호가 바뀌어 실제로 기능을 못하는 단백질이나 잘못된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DNA가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기능이 망가진 단백질은 자신을 낳은 세포를 공동체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킬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속한 세포를 암세로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정상적인 세포, 곧 다세포 생명체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세포들은 한 세포와 그 세포를 둘러싼 환경, 그리고 더 세밀하게는 DNA 와 DNA 를 둘러싼 단백질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동적 평형의 좋은 예이다. 많은 생물학자들은 사람들이 세포의 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암이나 심장병, 우울증, 배우자 선택과 같은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DNA 에서 구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오해라며 불만을 터뜨린다. 사람들은 본성 대 양육을 놓고 논쟁을 벌이며 자신들의 특징 중 얼마만큼이 일반적으로 '본성'이라고 부르는 DNA 에 의해 결정됐으며, 얼마만큼이 조기교육, 좋은 학교, TV 같은 외부의 환경 혹은 '양육'에 의해 결정됐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본성과 양육에 관한 논쟁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의미가 없는 사소한 문제로 그저 논쟁과 싸움 붙이기를 좋아하는 언론이 과장하고 질질 끌어오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리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 문제의 불행은 본성(nature)이라는 말과 양육(nurture)이라는 말이 비슷하다는 거지요." 

    DNA 는 분명 우두머리 분자라고 불릴 만하다. 그러나 자기 혼자만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단백질의 도움이 있어야만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단백질들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주변을 돌보면서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무엇을 만들려 하는지 세심하게 기울인다. 또 외부 신호를 받아  DNA 에게 전달하는 단백질은 때로는 자신들이 활성화시키는 유전자를 미세하게 변화시킴으로써 게놈의 특성을 직접 바꾸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DNA에 암호화되어 있다'고 하면 고정되어 있고 손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환경은 쉽게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틀렸다. 당신의 게놈은 환경과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세포는 복잡한 도시를 작게 축소해놓은 공간이며 모든 게놈은 그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게놈은 반응하는 조냊이며 변화에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